여지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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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에 간행된, 충청북도 음성군의 운곡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운곡서원 중건 기록문. 1990년 12월 14일에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11호로 지정된 운곡서원은, 1602년(선조 35) 충주목사로 있던 정구(鄭逑)[1543~1620]가 이미 있던 서원을 새로 확장한 것으로, 1661년(현종 2)에 정구를 배향하고 서원 이름을 운곡서원(雲谷書院)이라 하였다. 정구는 조선 중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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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누구나 이름이 있듯이 사람들이 살아왔고 살아가는 마을에는 곳곳마다 땅이름이 있다. 사정1리 강당말과 용대동에도 가는 곳마다 독특한 땅이름을 지니고 있다. 땅이름에는 마을의 자연,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마을 사람들의 생활과 삶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강당말과 용대동 마을 사람들이 전해 준 마을 곳곳의 땅이름에는 두 마을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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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촌리는 본래 충주군 거곡면 지역인데 조선 고종 광부 10년(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오리, 신촌, 장평리, 판요리, 문암리를 병합하여 문암(文岩)의 문(文)자와 신촌(新村)의 촌(村)자를 따서 문촌리(文村里)라 하여 감곡면에 편입되었다. 『음성읍지』의 기록을 보면 문촌리, 상오리, 신촌, 장평, 판요, 문암리가 병합된 것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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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건립된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사창리에 있는 고려 전기의 문신 민영모의 묘단. 민영모는 『여지도서(輿地圖書)』 여주(驪州)의 「인물조」에 “고려 인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문하시랑(門下侍郞)에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른 기록에서는 고려 인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이부원외랑(吏部員外郞)을 지냈고, 명종 즉위 후 왕의 총애를 받아 문하시랑평장사를 거쳐 태자태사(太子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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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에 속하는 행정리. 『여지도서』 충원현 방리의 기록에 의하면 본성리는 본리를 기초로 이루어진 마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본래 충주군 맹동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중돈리·두북리·하본리·중본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본성리라 하여 맹동면에 편입되었다. 중돈에서 신돈리로 넘어가는 곳에는 장고개, 덕삼면 신통리로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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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봉전리에 있는 산. 일명 부용산이라고도 한다. 1757년(영조 33)에 편찬된 『여지도서』충원현(현 충주)조에는 충원현 남쪽 소파면에 봉산리가 있는데, 충원현에서 남쪽으로 40리 떨어진 지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산비탈에 닥나무가 많아서 마을 이름을 딱나무비탈·딱비탈·딱비알·딱벌 등으로 부르다가 지금은 댁벌(일명 저전리)로 부르게 되었다. 남쪽으로 국사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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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있었던 조선시대 도로 이름. 충청북도 음성현 음성읍에서 북쪽으로 20리 지점에 있던 넓은 길로, 사정고개를 넘어 금목면(金目面)[지금의 금왕읍]으로 연결되었다. 옛날에는 대로였으나 지금은 겨우 사람이 지나갈 정도로 폭이 좁다. 『여지도서(輿地圖書)』의 충청도 음성현 도로조(道路條)에 ‘북사정현이십리대로(北沙丁峴二十里大路)’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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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는 옛 절 터. 음성 지역에서 확인되는 사지(寺址)는 상당수가 있으나 기록에서 확인되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서가섭사 상봉악사 구재가섭산(西迦葉寺 上鳳岳寺 俱在迦葉山)”이라 하여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서 확인되는 서가섭사지 곧 응진암지(應眞庵址)와 상봉악사지(上鳳岳寺址) 등이 확인된다. 1632년에 만들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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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향6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감곡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3㎞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이천시 장호원, 동쪽으로는 오궁리, 남쪽으로는 상평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옛날에 살구나무가 많아서 살구나무쟁이라 하였다. 지금의 김택진 가옥 근처에 큰 고목과 우물이 있었다. 주막(묵집·대포집)이 많았고, 장날이면 사람들의 왕래도 잦았다. 본래는 충주군 거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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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 있는 고려 후기의 절터. 상봉악사의 연혁은 알 수 없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서가섭사와 더불어 가섭산에서 운영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호서승람(湖西勝覽)』이나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언급이 없고, 조선 말기의 『호서읍지(湖西邑誌)』에는 이미 폐사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42년 간행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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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있었던 조선시대 도로 이름. 충청북도 음성현 음성읍에서 10리 지점에 있었던 좁은 길로 충원현과 경계를 이루었다. 충청북도 충주시로 연결되어 있던 선선동 소로는 오늘날 국도 36호선과 거의 일치한다. 『여지도서(輿地圖書)』의 충청도 음성현 도로조(道路條)에 ‘동선선동십리소로충원계(東善善洞十里小路忠原界)’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선선동 소로에서 선선동은 비선동(碑仙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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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 지역에 거주하거나 연고가 있는 동일 혈연 집단. 성씨에서 성(性)은 혈연관계를 나타내며 씨(氏)는 지역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성에는 관(貫)이 있는데 적·본관·관·관향이라고도 한다. 음성 지역에는 조선 후기로 내려오면서 새로운 성씨를 가진 씨족이 지속적으로 이주하여 와서 살았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토성(土姓)으로 박(朴)·채(蔡)의 두 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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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있었던 조선시대 도로 이름. 충청북도 음성현 음성읍에서 남쪽으로 20리 지점에 있었던 넓은 길로 청안(淸安)으로 연결되었다. 충청북도 청주시로도 통하였다. 백마산 중간쯤에 있던 송오리현이 안부(鞍部)를 형성함에 따라 개설되었던 도로인데, 지금은 폐도가 되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의 충청도 음성현 도로조(道路條)에 ‘남송오리현이십리대로(南松五里峴二十里大路)’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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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의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충청북도 북부 지역은 구석기를 비롯하여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선사시대의 유적지가 많다. 따라서 이들 지역과 인접한 음성에서 일찍부터 사람들이 살았을 개연성이 높다. 실제로 삼성면 용성리에서 석영질 암석으로 만든 찍개와 긁개, 밀개 등의 연모가 출토됨으로써 음성 지역의 구석기시대와 문화의 존재를 입증하였다. 청동기문화를 대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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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에 있는 산. 『여지도서』·『대동지지』·『호서읍지』 등에서는 오갑산(烏甲山)으로 나타나 있고, 『음성읍지』와 『조선환여승람』에서는 오갑산(梧甲山)으로 나타나 있는데 남쪽의 수리산의 줄기라고 기록되어 있다. 오갑산의 주변 지세는 매우 험하나 남부의 문촌리·상우리 일대는 사곡천이 서류하여 왕장리에서 청미천에 유입되고 있다. 오갑산의 정상에는 큰 바위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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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사곡리·영산리·월정리에 걸쳐 있는 산. 『조선환여승람』과 『대동지지』충주 산수조, 『음성읍지』산천조 등에서는 원통산(圓通山)으로, 『여지도서』충원현 산천조, 『호서읍지』충주목 산천조 등에서는 원통산(元統山)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산줄기가 웅장하고 암석이 가득 차 있어 산세가 험하고 삼림이 울창하며 주위 산들의 주봉으로서 산에 오르면 시야가 확 트일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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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있었던 조선시대 도로 이름. 충청북도 음성현 서쪽 35리 지점에 있었던 길로 청안과 경계를 이루었다. 유곡 소로는 보천(甫川)에서 조촌(助村)을 지나 맹동, 진천으로 연결되어 있던 대로였으나 지금은 겨우 사람이 지나갈 정도로 폭이 좁다. 『여지도서(輿地圖書)』의 충청도 음성현 도로조(道路條)에 ‘유곡삼십오리소로(流谷三十五里小路)’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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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양덕리 망이산 일원에 축조된 고대 국방 시설. 그간 봉수대로 알려져 왔으나 1980년 단국대학교 학술 조사단에 의해 고구려의 남진 기지로 쓰인 산성으로 추정되었다. 산성에 대한 기록은 주로 조선시대에 편찬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여지도서(輿地圖書)』·『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기록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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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일원에 있는 고대 국방 시설. 수정산성의 축조 시기와 연혁을 알려주는 고문헌 기록은 없으나 조선시대 문헌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여지도서(輿地圖書)』·『호서읍지(湖西邑誌)』·『대동지지(大東地志)』·『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등에 의하면 수정산이 ‘음성 읍내의 동쪽 3리 또는 5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들을 살펴보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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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지역에 언제 처음 성곽이 축조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나라 전체로 보면 청동기시대 구릉 위에 만든 마을의 둘레에 환호(環壕)를 두른 유적이 나타나고, 이어서 그 안팎으로 나무말뚝 따위를 죽 이어서 박아 만든 울타리, 곧 울짱의 형태와 같은 목책(木柵)을 두른 시설이 나타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목책 이외에 흙으로 다져서 성벽을 만드는 단계로 발전된 것이 확인되었다. 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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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에서 발원하여 괴산군 목도리에 이르는 하천. 1760년대의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가섭산 하류는 충원 달천으로 구비 돌아 여강으로 흐른다고 기록되어 있고, 1861년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열운천이 보현산과 가섭산에서 출발하여 동쪽으로 흘러 현 남쪽 충주 땅의 경사리나 불정리로 흘러들어가 달천이 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1870년대의 『호서읍지(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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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년(신라 경덕왕 16)에서 1895년(고종 32)까지 충청북도 음성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음성은 잉홀(仍忽)·설성(雪城)·잉근내(仍劤內)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음성현의 지명으로는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의 향교말과 감원역에서 유래한 역말 등이 남아 있고 음성향교가 아직 현존하고 있지만 음성현시대의 유적과 유물 등은 거의 사라졌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확대된 영토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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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 집단의 계수. 음성군의 인구는 2011년 8월 현재 38,373세대에 91,485명(남자 47,947명, 여자 43,538명)이다. 인구 밀도는 1㎢당 175.8명으로 나타났다. 1757년~1765년에 발간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음성군의 인구 수는 8,208명으로, 이 중 남자가 3,924명, 여자는 4,284명이었다. 17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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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에 있었던 조선시대 도로 이름. 장호원은 청미천을 경계로 현재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장호원리와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 등으로 행정구역이 분리되어 있다. 국도 3호선과 국도 38호선이 교차하고 있어 충청북도 음성군, 충주시, 경기도 안성시 등과의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서울~동래로 통하였던 영남대로의 장후원 부근 큰 길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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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충청북도 음성군의 역사. 조선 초기 음성 지방은 고려의 지방제도와 같이 충주목에 속한 4속현(영춘·제천·음성·연풍)의 하나였다. 음성현은 1413년(태종 13)의 지방제도 개편 때 현감을 두었으나 규모가 매우 작아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충주 제천에 이르기까지 7리, 서쪽으로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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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 지역에서 전통시대에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을 실천한 신하. 충신은 나라에 도움이 되는 성신(聖臣), 양신(良臣), 충신(忠臣), 지신(智臣), 정신(貞臣), 직신(直臣)의 육정(六正) 가운데 하나이다. 음성 지역에도 충과 관련된 인물과 유적이 상당수 남아 있어 정치적·사회적 규범으로 자리잡았던 충 사상의 영향을 알 수 있다. 음성 지역의 충신에 관한 기록으로는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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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대동은 사정1리 제일 위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서 역사가 오래된 마을이다. 오늘날 용대동은 경주이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으나, 용대동이라 부르는 마을이 생기기 전에 이미 마을이 있었는데 바로 퉁뱅이이다. 따라서 용대동은 이 퉁뱅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퉁뱅이란 퉁쇠로 농기구 등을 만드는 곳으로 천민 취급을 받던 수공업자들이 모여 살던 곳이라 전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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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한벌리에 있었던 조선시대 도로 이름. 충청북도 음성현에서 한벌리를 거쳐 동쪽의 한벌고개 또는 충주현과의 경계인 선선동에 이르던 대로로서 충주현으로 통하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조선시대에 역원제도가 발달함에 따라 충청북도 음성현 관문에서 한벌리를 지나 충주현으로 왕래할 목적으로 한벌리 대로를 만들었다. 현재는 국도 36호선이 4차선으로 포장되어 있어 음성읍과 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