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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재학은 1919년 4월 1일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한내장터에서 김을경, 이중곤, 추성렬, 이교필, 이용호 등과 함께 시위를 주동하였다. 권재학은 수백 명의 시위 군중을 이끌고 소이면사무소로 달려가 만세 삼창을 하였다. 이때 왜경이 김을경, 이중곤을 연행하자 주재소에 가서 석방할 것을 요구하였다. 당시 음성에 거주하던 일본인 후루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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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을경은 1919년 당시 21세였다. 4월 1일 이중곤 등과 함께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한내 장터에서 만세를 삼창하며 시위를 주도하였다. 또한 군중을 선도하여 소이면사무소로 몰려가서 면장인 민동식도 시위에 가담하게 하였다. 5월 22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아 옥살이를 하였다. 김을경은 67세에 사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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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제성(朴濟成)[1902~1970]은 박서 장군의 21세 손이고 박중현(朴中鉉)의 아들로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4월 2일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에서 민병철, 박영록 등과 만세 시위를 계획, 추진하다가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10일 청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 90대를 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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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교육자. 박제익(朴齊翼)은 1881년(고종 18) 사립 광명학교를 음성향교 내에 설립하고 아동 교육을 하였다. 1909년 8월 31일 정식 인가를 받아 사립 광명학교를 설립하여 설립자 겸 교장이 되었으며, 보통과와 일어를 가르쳤다. 1910년의 수업 연한은 4년이었고, 교원 3명에 학생 수는 35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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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4월 1일 죽산공립보통학교에서 양재옥(梁在玉) 등과 함께 학생 50여 명을 모아 독립만세를 외치고, 1919년 4월 2일 전교 학생들을 동원하여 태극기를 선두에 세우고 안성군 죽산 지방의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동하여 독립 만세를 외치며 행진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8월 28일 고등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1년 6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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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1928년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로 이사 와서, 음성공립보통학교를 수료하고, 서울보성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동경 일본대학에 입학하여 재학 중에 제2차 세계대전 수행을 위하여 동원령을 공포하고 일본에 유학 중인 한국 출신 대학생들을 학도병으로 동원시키기 시작하자, 이에 반대하여 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하여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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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성용은 1875년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선정리에서 이호성(李鎬聖)의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우봉, 자는 덕경(德敬)이다. 1919년 4월 2일 밤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선정리 뒷산에서 마을 주민 수십 명과 독립 만세를 부른 후, 약 80여 명의 군중을 지휘하고 천평리 소재 경찰주재소로 달려가 독립 만세를 계속 고창하였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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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4월 1일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한내 장터에서 김을경(金乙卿), 이중곤(李重坤), 권재학(權在學) 등이 주동한 3·1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선두에 서서 군중을 이끌고 소이면사무소까지 행진하였다. 당시 민동식 면장을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토록 권유하고, 구금자의 석방을 요구하며 계속 독립 만세를 고창하고, 주재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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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4월 1일 김을경(金乙卿)과 함께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한내 장터에서 3·1운동 독립 만세 시위의 거사를 계획하고, 4백여 명의 군중을 지휘하여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다. 소이면사무소에 이르러 김을경과 함께 면장 민동식에게 “너도 조선 사람이니 함께 독립 만세를 부르자”하고 시위 군중과 독립 만세를 외치게 하는 등 활약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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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4월 1일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한내 장터에서 김을경(金乙卿), 이중곤(李重坤), 권재학(權在學) 등이 주동한 3·1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소이면사무소로 행진하여 면장을 끌어내어 독립 만세를 외치게 하고 있을 때, 왜경이 주도자를 연행하자 시위가 더욱 격렬해졌다. 시위 군중은 돌을 던져 주재소 유리창을 깨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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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계몽운동가. 사립학교인 통명학교(通明學校)는 현재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에 있는 무극초등학교이다. 1906년 4월 5일 조동환(趙東煥)을 교장으로 무극사립보통학교를 설립하였으나, 1907년 6월 1일 이필영이 설립자 겸 교장이 되어 1909년 8월 31일에 통명학교를 설립하여 인가를 얻어 애국 계몽 운동에 참여하였다. 수업 연한은 4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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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현근은 1909년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신천리에서 장원기(張遠基)의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옥구, 자는 명옥(鳴玉), 이명(異名)은 송진표(宋鎭杓)이다. 개성상업학교 재학 중에 의주 신조준(申肇峻)의 딸 신정숙(申貞淑)과 결혼하였는데, 장인 신조준은 만주에서 독립 항쟁한 인물이다. 1926년 개성상업학교 재학 중 일본인 교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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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민영은 1901년 1월 7일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초천리 881번지[초천로174번길 19-7]에서 문묘 직원이던 정모선(鄭謨善)의 차남으로 출생하였으며, 1970년 12월 6일에 향년 70세로 별세하였다. 1919년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초천리 백양서당에 다니고 있던 정민영은 평소 알고 지내던 김영익(金榮翼)으로부터 3·1운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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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0년 9월 27일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에서 출생하였으며, 1971년 11월 28일에 향년 82세로 별세하였다. 1910년 대종교에 입교하여 활동하였으며, 1912년 중국으로 건너가 상해에서 신규식(申圭植)이 조직한 동제사(同濟社)에 가입하여 항일운동을 하였다. 1918년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할 사절단의 자금을 간도 노령에서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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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4년 9월 9일에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임곡리에서 조태영(趙泰永)의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서울시 종로에서 살았다. 1950년 7월 15일 6·25전쟁 시에 폭탄에 맞아 57세로 전사하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임곡리에 있다. 조윤식은 서울에서 보통학교를 마치고 독학하면서 주권 회복의 뜻을 품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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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의병. 본관은 한양. 아버지는 조희윤(趙喜允)이다. 1875년 8월 14일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유촌리에서 출생하였다. 조병관(趙炳觀)의 양자가 되었고, 1956년 6월 25일 향년 82세로 별세하였다. 1907년 8월 23일 33세에 조응삼은 관북창의대장(關北倡義大將) 정봉준(鄭奉俊) 휘하에 입진(入陣)하였다. 강원도 원주를 중심으로 10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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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7년 2월 13일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봉전리에서 출생하였으며, 1919년 당시 충청북도 충주군 충주읍 읍내리 409-1번지에 거주하면서 잡화상을 하였다. 1970년 9월 9일에 향년 83세로 별세하였다. 추성렬은 1919년 4월 1일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한내 장터에 운집한 군중에게 독립 만세 운동의 당위성을 설명한 후 독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