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1386
영어공식명칭 Jangnaegi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성복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날이 몹시 가물 때 비를 기원하며 시장을 옮기던 풍속.

[개설]

새로 길을 내는 것을 ‘길내기’라고 하듯이, 장내기(場내기)는 새로운 장을 낸다는 뜻이다.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는 가뭄이 지속될 때 시장을 옮기는 ‘장내기’라는 주술적인 행위를 통하여 비를 기원하였다.

과거 농경을 근간으로 하던 전통사회에서는 관개·수리 시설이 미흡하여 가뭄이라는 자연재해를 극복하는 일이 생사를 좌우하는 절박한 문제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다양하게 강구되었는데, 그중에는 사시(徙市) 기우와 같은 주술적인 방법도 있었다. 시장을 옮긴다는 뜻의 사시는 삼국 시대부터 내려오는 오랜 기우 관행인데, 부여 지역의 장내기와 마찬가지로 큰 가뭄이 들면 시장을 옮기고, 물을 주관하는 용을 대상으로 기우제를 지냈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장내기 풍속은 전통적인 사시 기우에서 비롯되어 민간에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시대 부여 지역은 지금의 홍산면 홍산장부여읍 부여장 일대에서 장내기를 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홍산 지역 사람들은 시장이 열리면 각 고을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는데, 많은 사람의 절박한 마음이 하나가 된 것을 보고 하늘에서 비를 내려 준다고 믿었다고 한다. 또 부여장은 비가 내릴 때까지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시장을 옮겼다고 전한다. 부여의 장내기와 동일한 기우 풍속은 충청남도 다른 지역에도 분포하고 있는데, 예컨대 공주시의 이인장 옮기기, 서천군의 남산장 내세우기 등이다.

[유래]

부여 지역에서 언제부터 장내기를 시작하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부여 지역의 장내기와 같이 시장을 옮겨 비를 기원하는 사시 기우 풍속은 고대부터 우리나라 문헌 속에 계속 등장한다. 이를테면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628년(신라 진평왕 50) 큰 가뭄이 들어 시장을 옮기고 용의 그림을 그려서 비가 오기를 기원하였다고 기록되어 있고, 『고려사(高麗史)』에도 비가 오랫동안 오지 않아 사시(徙市)[시장을 옮기다]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시대에도 여러 임금의 실록에 가뭄이 들었을 때 행하는 주술적인 방법으로 사시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부여 지역의 장내기 풍속은 이러한 사시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우제와 장내기]

기우제는 산천이나 물을 주관하는 절대적인 존재에게 비를 내려 달라고 기원하는 의례이다. 부여 지역에서는 흔히 ‘비우제’ 또는 ‘무제’라 부른다. 부여 지역도 농경을 근간으로 하였던 만큼 가뭄 해소는 중요한 문제였고, 그렇기에 기우제는 단지 한 차례의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비가 내릴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를테면 부여군 홍산면 일대에서는 조선 시대부터 내려오는 4곳의 기우단 외에 면 소재지인 태봉산부여 홍산현 관아 뒷산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가뭄이 극심한 해에는 무량사(無量寺)에 봉안된 괘불(掛佛)을 홍산의 동헌 앞마당에 걸어 놓고 관민이 합동으로 비를 기원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밤낮으로 기우제를 베푼 뒤에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2·7일에 장을 여는 홍산장을 임시로 옮겨 세우고 당일 저녁 기우제를 지냈으니, 바로 이것이 장내기이다.

[현황]

홍산장 장내기는 1950년 무렵 이후로는 행해지지 않는다고 전하며 부여장 장내기는 아예 조사된 바가 없다. 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 기우제 같은 주술적 의례는 중단되어 전승이 끊기거나 민속문화 행사로 축제화되었고, 시장을 공간적으로 옮겨야 하는 장내기는 완전히 소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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