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6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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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愉 |
영어공식명칭 | Lee Yu |
이칭/별칭 | 명보(明普),은재(隱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광우 |
출생 시기/일시 | 1365년 - 이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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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382년 - 이유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418년 - 이유 명나라 사은사 파견 |
활동 시기/일시 | 1418년 - 이유 형조참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418년 - 이유 함길도도관찰사 부임 |
몰년 시기/일시 | 1423년 - 이유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827년 - 이유 낙산서원 제향 |
거주|이주지 | 이유 거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동원리 |
외가|처가 | 이유 처가 -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동원리 |
부임|활동지 | 이유 부임지 - 경상북도 상주시 |
사당|배향지 | 낙산서원 -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낙산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덕산(德山) |
대표 관직 | 형조참판|함길도도관찰사 |
[정의]
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개설]
이유(李愉)[1365~1423]는 형조참판·함길도도관찰사 등을 지냈다. 동북면 지역에 있는 백성들을 교화하고, 여진족들을 회유하는데 힘썼다.
[가계]
이유의 본관은 덕산(德山), 자는 명보(明普), 호는 은재(隱齋)이다. 아버지는 판도판서를 지낸 이영(李英), 어머니는 정부인 여흥민씨(驪興閔氏), 할아버지는 집현전대제학을 지낸 이사목(李思牧), 증조할아버지는 춘성군 이겸(李謙)이다. 부인은 좌윤을 지낸 안영부(安永孚)[1398~1464]의 딸 정부인 순흥안씨(順興安氏)이다. 이유가 순흥 고을의 토성(土姓) 출신인 안영부의 집에 처가살이하게 되면서, 지금의 영주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다. 지금의 영주시 단산면 동원리에 이유의 집터가 있다.
[활동 사항]
이유는 1382년(우왕 8)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이후 여덟 고을의 수령을 지냈다. 새 왕조가 개창되자 절의를 지키기 위해 한동안 은둔하였으나, 교우였던 하륜(河崙)[1347~1416]·권근(權近)[1352~1409]·변계량(卞季良)[1369~1430]의 설득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405년(태종 5) 대호군으로 있으면서 동북면에 나아가 여진족 추장 먼터무[동맹가첩목아(童猛哥帖木兒)]를 회유하였다. 1418년(태종 18)에는 동지총제가 되어 명나라에 사은사로 다녀왔다. 이때 명나라에서 가지고 온 옷감으로 관복을 지어, 조정 중신들의 관복을 구분케 하였다. 1418년(태종 18) 형조참판에 올랐으며, 1418년 세종이 새롭게 즉위하자 함길도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 재임 중 열읍을 순행하면서 민생을 살폈고, 여진족을 관리하였다. 또 이유의 교화로 인해 이 지역 백성들이 가지고 있던 오랑캐 풍습이 많이 변모했다고 한다.
[묘소]
이유의 묘소는 『재향지』에는 경상도 순흥도호부 파문단(破文丹) 성지동(省知洞)[지금의 봉화군 봉화읍 적덕리 일대로 추정]에 있다고 하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다만 부인 순흥안씨의 묘소는 봉화군 봉화읍 적덕리 산22에 있다.
[상훈과 추모]
이유는 1827년(순조 27) 낙산서원(樂山書院)[지금의 칠곡군 지천면 낙산리]에 아들 이사맹(李師孟)[1396~?]과 함께 제향되었다. 또 칠곡군 동명면 봉암리에는 추모시설인 태봉재(台峰齋)가 있다. 이유의 후손들은 단종복위운동으로 순흥도호부가 폐읍될 무렵, 화를 피해 지금의 칠곡으로 이주하여, 조선 후기 동안 칠곡 지역에 추모시설이 세워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