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2162 |
---|---|
한자 | 皇甫能長-龍馬-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
집필자 | 김지숙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2년 - 영천시에서 발행한 『永川의 傳說』에 「황보능장과 용마바위」라는 제목으로 수록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6년 - 영천시에서 발간한 『충효의 고장』에 같은 제목으로 수록 |
관련 지명 | 고경면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
관련 지명 | 용마바위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창하리 |
채록지 | 창하리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창하리 |
성격 | 설화|전설|암석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금강장군|용마|마을 주민 |
모티프 유형 | 용마|과욕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창하리에 전해 오는 이야기.
[개설]
「황보능장과 용마바위」는 금강장군의 과욕으로 인해 용마가 죽게 된다는 이야기로 지나친 욕심에 대한 경계를 나타내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1982년 영천시에서 발행한 『영천(永川)의 전설』에 「황보능장과 용마바위」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또 2006년 영천시에서 간행한 『충효의 고장』과 영천시 관광 홈페이지, 관광지식정보 시스템, 지역포털 사이트에도 같은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영천시 주남 신보 절벽 아래 오솔길을 거슬러 오르면 주남 구보가 나온다. 이 보의 서북 양면은 넓은 벌이 펼쳐져 있으나 동쪽과 남쪽은 높이가 100m가 넘는 절벽이 곧 쓰러져 보 안을 메울 듯이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그 절벽의 중턱에 높이 10m 정도의 큰 바위가 있는데, 바위는 절벽을 밀고 절벽은 바위를 잡아당기고 섰으니 이것이 ‘용마바위’이다.
이 절벽을 중심으로 뻗은 금강산에 큰 산성을 쌓았는데, 바로 이 성주가 ‘황보장군’, ‘금강장군’이라 하는 영천 황보씨의 시조인 황보능장을 말한다. 육군3사관학교 영내에 그의 무덤이 자리 잡고 있다.
성주인 금강장군이 국령을 받아 수년에 걸쳐 성을 완성할 무렵 어느 고요한 밤, 산이 무너져 내리는 듯 우레 같은 소리가 났다. 장군은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성 밑 절벽에서 말의 울음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괴상한 물체가 절벽 위로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날개가 달린 말로 하늘을 날아서 성 쪽으로 오고 있었다. 날개 달린 말은 장군 앞에 내려앉아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장군은 이 말을 하늘이 주신 선물로 알고 크게 기뻐하였다.
그리고 지난 밤 서기(瑞氣)가 서려 있던 곳을 자세히 살펴보니 절벽이 크게 갈라져 새로운 바위가 우뚝 솟아 있었다. 용마(龍馬)가 단단한 절벽을 뚫고 솟아올라온 곳으로, 우레처럼 큰 소리는 이 바위가 깨어지는 소리였다.
얼마 후 성이 완성되어 이름을 ‘금강산성’이라고 하고, 장군 역시 ‘금강장군’이라 칭하였다. 낙성을 축하하는 잔치가 벌어졌고, 성주인 장군과 마을 사람들이 모두 외성 뜰에 자리를 잡았다. 군사들의 무예 시범 등 여러 가지 행사가 진행되었고, 장군 역시도 사람들 앞에서 용마의 힘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장군이 활을 쏘고 말을 달려 호살과 말 가운데 누가 더 빠르냐를 가름하는 것이었다.
장군은 “만약 내 말이 화살보다 빠르지 않으면 목을 베겠다”고 하였고,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드디어 장군의 활에서 화살이 날아갔고, 용마는 저편 산기슭까지 단숨에 내딛었다. 용마가 도착해서 돌아섰으나 화살의 흔적을 찾을 길이 없었다. 이에 크게 화가 난 장군은 약속대로 말의 목을 베었다.
그때 장군의 칼에 맞아 비틀거리는 말의 머리에 화살이 꽂혔다. 화살보다 용마가 훨씬 빨랐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장군은 자신의 급한 성미 때문에 말을 죽인 것을 후회했다. 용마 역시 주인을 원망하듯 큰 눈알을 부릅뜬 채 그 자리에 쓰러져버렸다. 장군은 크게 상심하며 그 자리에 죽은 말을 고이 묻어 주었다.
지금도 고경면 창하동에는 ‘말무덤’이라는 커다란 무덤이 해묵은 솔밭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로 인하여 인근 동네를 ‘말무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장군은 잘못을 뉘우침과 자신의 운명을 탓하던 나머지 끝내 자리에 눕게 되어 세상을 떠났는데, 말무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금의 육군3사관학교 영내에 안치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용마바위’에는 말발굽이 남아 있고 ‘금강산성’과 ‘금강장군’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모티프 분석]
「황보능장과 용마바위」의 주요 모티프는 ‘용마’와 ‘과욕’이다. 용마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말이다. 하지만 장군의 지나친 욕심 때문에 죽임을 당하고, 장군 또한 욕심에 대한 속죄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 전설에는 전승 집단의 과욕에 대한 경계 의식이 드러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