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5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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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桂谷里鹽岩- |
영어공식명칭 | Yeomam Kiln Site in Gyegok-ri |
이칭/별칭 | 요지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계곡리 산55 일대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유영춘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6년 - 계곡리 염암 가마터1 지표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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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2년 - 계곡리 염암 가마터2 지표조사 |
소재지 | 계곡리 염암 가마터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계곡리 산 55 일대 |
성격 | 가마터 |
지정 면적 | 약 19,128㎡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계곡리에 있는 고려~조선시대 가마터.
[변천]
계곡리 염암 가마터1은 지표에서 다량의 분청사기 조각과 백자 조각이 수습되는 것으로 볼 때 고려 말~조선 초기에, 계곡리 염암 가마터2는 지표에서 백자 조각이 수습되는 것으로 볼 때,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위치]
계곡리 염암 가마터 1, 2는 완주군 구이면 계곡리에 위치한 염암마을 주변에 위치한다. 계곡리 염암 가마터1은 마을 북쪽에 위치한 박주지골 서쪽 산줄기에 위치하며, 계곡리 염암 가마터2는 남쪽의 마을창고 부근에 위치한다. 계곡리 염암 가마터1은 행정구역상 완주군 구이면 계곡리 산 55번지 일대에 해당하며, 계곡리 염암 가마터2는 계곡리 465-1번지 일대이다. 이곳은 가마터가 조성되기에 알맞은 지형을 이루고 있고 서쪽으로 큰 하천이 흐르며, 동쪽으로 산지가 형성되어 있어 땔감[연료]을 구하기가 용이했을 것이다. 즉 계곡리 염암 가마터가 조성되기에 최적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계곡리 염암 가마터에 대한 발굴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2006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문화유적분포지도』를 발간하기 위해 실시한 지표조사에서 계곡리 염암 가마터1[분포지도 ‘염암 가마터’로 표기]이 처음 확인되었다. 이후 2012년 6월 하천 정비 사업을 실시하기 위한 지표조사에서 계곡리 염암 가마터2가 새롭게 확인되었다.
[현황]
계곡리 염암 가마터1은 현재 경작지로 조성되고 있다. 계곡리 염암 가마터1 지표에서 유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으나 지표에서 자기 조각, 도지미[가마에서 도기를 구울 때 도기를 놓는 받침], 가마 벽체 조각 등이 다량 수습되어 가마터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다. 자기 조각은 유약이 시유되지 않은 초벌구이 조각, 인화문[도장 무늬]이 있는 분청사기 조각, 합편 등이며, 대체로 굽 접지면에 태토[도자기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흙]와 모래비짐[가마에서 자기를 구울 때 바닥과 붙지 말라고 모래를 뿌리고 그 위에 자기를 올리는 것] 흔적이 있다. 계곡리 염암 가마터1은 마을 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과거에는 가마의 흔적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잔존 상태가 양호했으나 도로공사와 민묘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훼손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계곡리 염암 가마터2 역시 현재 경작지로 조성되고 있으며, 지표에서는 다량의 백자 조각과 함께 가마의 벽체 조각이 수습된다.
[의의와 평가]
완주군 내에는 조선시대에 조성된 가마터가 47개소 가량 분포한다. 향후 발굴조사를 통해 계곡리 염암 가마터의 성격이 밝혀진다면, 완주군의 조선시대 백자 생산 및 유통 관계를 규명할 수 있는 좋은 유적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계곡리 염암 가마터가 지속적으로 훼손되고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