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24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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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允期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1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권재형 |
[정의]
경기도 성남시 상대원1동 제2공단에 있는 덕진양행의 노동조합 탄압에 맞서 분신 사망한 노동 운동가.
[개설]
1980년대 말에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노동자들의 민주적인 노동조합 설립을 위한 투쟁이 전국적으로 일어났으며, 이러한 흐름에 따라 성남 지역에서도 공단의 사업장별로 노동조합 설립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활동사항]
김윤기는 1964년 12월 서울에서 태어나 1983년 국민대학교 무역학과에 입학하였다. 1980년대 군사독재 시절에 대학 생활을 보내며 민주화 투쟁에 참여하였으며,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라는 열악한 노동 조건 속에서 생활하는 봉제 공장 노동자들의 인권 보호와 민주적인 노동조합 설립을 위해 투쟁하였다.
1986년 5월 5·3 인천투쟁에 참가하여 구속되어 1년형을 선고 받았다. 만기 출소 후 노동자와 삶을 함께 하고자 1988년 7월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1동에 위치한 덕진양행에 입사하였다.
김윤기는 봉제 공장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조건을 개선시키고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1988년 11월 29일 남자 기숙사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노동조합은 덕진양행 측과 교섭에 들어갔으나 사측의 무성의한 태도로 교섭은 계속 결렬되었으며, 구사대는 조합원을 구타, 폭행은 물론 단전·단수 등의 조처를 취하며 노동조합의 업무를 방해하였고 퇴거 불응 등의 명목으로 고발하는 등 노동조합을 탄압하였다.
급기야 1989년 1월 덕진양행 측은 공장 이전을 선포하였다. 이에 노동조합은 동년 2월 16일부터 파업 농성에 돌입하였고 3월 30일까지 십여 차례에 걸쳐 교섭을 진행하였으나 번번이 결렬되었다.
파업 농성 47일째인 동년 4월 3일 김윤기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협상에 임하였으나 또 다시 회사 측의 무성의한 태도로 교섭이 결렬되자 공장 이전 철회에 대한 분명한 답변을 요구하며 자신의 몸에 시너를 붓고 항의하던 중 온몸에 불이 붙어 병원으로 옮기던 중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김윤기의 무덤 앞에는 그의 동생 김선미가 남긴 추모시가 새겨져 있다.
열사의 무덤 앞에서
품이 넉넉한 오빠 대신에
세상을 껴안기로 했지요.
세상은 내 한몸으로 보듬을 수 없을 만큼
크고, 넓고, 깊고 무겁지만
삶과 죽음이 가로 놓여 가까이 가려해도
갈 수 없는 오라버니 따스한 품속보다
차라리 오라버니가 껴안으려 했던 세상을
보듬기로 했습니다.
그 편이 덜 안타깝고 속 있는 일이라 생각이 듭니다.
가까이 가서 품에 다아 본 세상은
삐죽삐죽 가시가 돋아 있기도 하고
뭉글뭉글 어머니 젖가슴 마냥 귀퉁이 밖에 안 되겠지만
칙칙한 흙 속에 갇힌 오라버니 몸뚱이보담
따스함을 가진 사람들이 부대끼고 살아가는 세상이
훨씬 살아있을 적 오라버니를 닮았지요.
이제 속절없이 오라버니 곁에 함께 있지 못함을 서운해 하지는
않을 겁니다.
오라버니가 불덩이를 이고 걸었던 노동해방의 길에
태우다 사그라든 불을 지펴 놓을랍니다.
오빠가 짐졌던 죽은 자리 대신에
보란 듯 노동자 세상을 채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