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8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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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廷龍墓-神道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산1-2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민식 |
성격 | 묘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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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원형 합장분 |
건립시기/연도 | 1689년 |
관련인물 | 이정룡 |
높이 | 1.7m |
지름 | 5.4m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산1-2 |
소유자 | 한산이씨 한평군파 종중회 |
문화재 지정번호 | 경기도 기념물 |
문화재 지정일 | 1989년 12월 29일 |
[정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에 있는 이정룡(李廷龍)의 묘.
[개설]
이정룡[1629~1689]은 현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몽경(夢卿)이다. 아천군(鵝川君) 이증(李增)의 증손이자 대구부사 이제(李穧)의 아들이며, 이조참판 이정기(李廷蘷)의 동생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홀어머니를 봉양함에 효를 다하였고 성격이 온화하였다.
음보(蔭補)로 관직에 진출하여 후릉(厚陵) 참봉(參奉)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퇴하고, 다시 목릉(穆陵) 참봉을 거쳐 장흥고봉사(長興庫奉事)를 역임하였다. 또한 외직으로 나아가 문화현령(文化縣令)과 김제군수(金堤郡守)를 지내면서 백성을 잘 다스려 칭송이 자자하였다. 죽은 뒤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위치]
이정룡 묘는 수내동 중앙공원에 위치한 한산이씨묘역 내에 자리 잡고 있다.
[형태]
봉분은 부인 제주양씨(濟州梁氏)와의 원형 합장분이며 용미와 활개를 갖추고 있다. 봉분 중앙에 묘표, 혼유석, 상돌, 4각 향로석과 좌우에 8각 망주석, 문인석 등의 석물 외에 봉분 좌측에 원래의 상돌 1매가 놓여 있다. 상돌은 백색대리석제로 최근에 마련된 것이며, 4면에 귀면(鬼面)이 양각된 두 개의 고석이 받치고 있다. 향로석은 교자상 형태로 전후 4엽, 좌우 1엽의 복판복련문이 수려하게 조식되어 있다. 크기는 높이 40㎝, 너비 34㎝이다. 망주석은 적색으로 변색되어 있으며 석수가 양각되어 있다. 크기는 좌우가 높이 140㎝이다. 문인석은 좌우가 높이 155㎝, 얼굴부분 50㎝인 3등신의 신체비율로 소형이다. 금관조복(金冠朝服)을 착용한 문인석은 앞면의 폐슬(蔽膝)과 뒷면의 후수(後綬), 패옥(佩玉)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금석문]
봉분의 앞쪽에 방부원수(方趺圓首) 양식[장방형의 받침돌에 월두형 비신을 갖춘 양식]의 묘표(높이 178㎝)가 세워져 있으나, 비신의 앞면에 묘주의 신원만을 밝혔을 뿐, 나머지 면에는 아무런 기록도 하지 않았다.
이정룡 신도비는 중앙공원 탄천변의 비각에 이경류 정려비(李慶流 旌閭碑)와 같이 보호되고 있다. 백색화강암의 비좌 및 비신과 팔작지붕 형태의 지붕돌[옥개석]을 갖추고 있다. 지붕돌의 처마 밑에 화문(花紋)을 장식하고 방부에는 복련(覆蓮)과 당초문(唐草紋)을 정성들여 조각하였다.
예조참판 홍현보(洪鉉輔)가 비신의 상단에 ‘贈吏曹參判行金堤郡守李公神道碑銘(증이조참판행김제군수이공신도비명)’이라 올린 전액(篆額)을 통해서 비석의 종류가 신도비임을 파악할 수 있다. 비제는 ‘有明朝鮮國贈嘉善大夫吏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行通訓大夫行金提郡守全州鎭管兵馬同僉節制使李公神道碑銘 幷序(유명조선국증가선대부이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행통훈대부행김제군수전주진관병마동첨절제사이공신도비명 병서)’이다. 비문은 우의정 이의현(李宜顯)이 짓고 종부시정(宗簿寺正) 김진상(金鎭商)이 아름다운 예서(隷書)로 써서, 회색 대리석의 비신 앞뒷면에 글자를 새겼다. 건립연대는 1728년(영조 4)이며, 전반적으로 상태가 양호하다.
신도비의 크기는 비좌 높이 60㎝, 너비 154㎝, 두께 99㎝이고, 비신 높이 214㎝, 너비 87㎝, 두께 30㎝이다. 지붕돌은 높이 52㎝, 너비 137㎝, 두께 86㎝이며 총 높이는 326㎝이다.
[현황]
이정룡 묘 및 신도비는 1989년 경기도 기념물 제116호로 일괄 지정된 한산이씨묘역에 위치하며, 한산이씨 한평군파 종중회에서 소유·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