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6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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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克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임민혁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생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경위(景撝), 호는 삼봉(三峯).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서 출생했다. 이집(李集)의 증손이며, 이지직(李之直)의 손자이다고, 충희공(忠僖公) 이인손(李仁孫)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1451년(문종 1) 생원시에 합격하여 음보(蔭補,조상의 덕으로 벼슬을 얻는 것)로 종묘서녹사(宗廟署錄事)가 되었다. 1456년(세조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군기시직장에 임명되었다. 1461년 이조정랑, 1463년 성균관직강 겸의정부검상을 거쳐 사인이 되었고, 동부승지를 거쳐 좌승지가 되었다. 1468년(예종 즉위년) 익대공신 2등에 책록되면서 광천군(廣川君)에 봉해졌다. 이듬해 도승지를 거쳐, 1470년(성종 1) 이조판서에 올라 국가경비의 식례인 『식례횡간(式例橫看)』을 찬정(撰定)하였다. 이듬해 좌리공신 3등에 녹훈되었으며, 호조판서와 전라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482년(성종 13) 우참찬으로 정조사에 임명되어 명나라를 다녀왔으며, 병조판서, 지경연사, 형조판서, 좌참찬을 지냈다. 1484년 동지성균관사에 제수되어 문묘(文廟) 중수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1488년 한성부판윤이 되었다. 벼슬은 의정부좌참찬으로 숭정대부 판중추부사에 이르렀다.
[묘소]
묘소는 성남시 야탑동에 있었으나 1990년 광주시 초월읍 지월리로 이장되었으며, 1985년에 세워진 신도비의 비문은 김도련(金都鍊)이 지었다.
[시호]
시호는 공장(恭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