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5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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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鼎弼 |
영어공식명칭 | Yun jeongpil |
이칭/별칭 | 남경(南卿)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권오영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남경(南卿). 칠원윤씨 28세손. 순수공파. 아버지는 한성부판관을 지낸 윤계기(尹啓基)이며, 어머니는 숙부인에 추증된 풍산김씨이다. 할아버지는 한성부서윤을 지낸 윤경원(尹慶元)이다. 부인은 공인 전의이씨이다. 슬하에 아들이 없어, 윤흥적(尹興績)을 양자로 맞았다.
[활동사항]
할아버지 윤경원은 임진왜란 당시 양성현감으로 재임하면서 경기감사 심대(沈岱)의 종사관이 되었는데 삭령에서 군량이 떨어져 굶어서 사망하였다. 이후 원종공신(原從功臣)에 녹훈되고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1742년에는 영조가 정려를 명하는 한편 대사헌으로 추증하였고, 1791년에는 정조가 삭령에 사당을 세우도록 하고 표절사(表節祠)라는 현판을 하사하였으며 예관(禮官)을 보내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또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의금부지사 오위도총부도총관에 추증하고, 칠평군(漆坪君)에 봉하고 시호를 충장(忠壯)이라고 하였다. 아버지 윤계기는 한성부판관을 지냈고 죽은 뒤에 통정대부 병조참의에 추증되었다.
[묘소]
묘는 중원구 하대원동에 있다. 하대원동의 웃말은 칠원윤씨의 세거지이다. 칠원윤씨는 순수공파의 사온서령 윤이(尹伊)[1502~1576]의 아들 윤탁연(尹卓然)이 여산송씨 송맹경(宋孟璟)의 딸을 부인으로 맞으면서 처갓집 근처로 이주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그뒤 10여대를 살다가 일파는 광주로, 일파는 해주로 이주하였다. 윤이의 아들 윤연은 호조참판 겸 오위도총부도총관으로 칠원군에 봉해졌고 시호가 헌민이었다. 윤탁연의 아들 윤경원은 양성현감으로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웠고, 윤길원(尹吉元)은 예문관검열, 윤희원(尹喜元)은 충무위부사용, 윤상원(尹祥元)은 선교랑, 윤영원(尹榮元)은 전력부위였다. 손자 윤계기는 한성부판관, 윤안기(尹安基)는 예조정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