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591 |
---|---|
한자 | 尹載五 |
영어공식명칭 | Yun Jeo |
이칭/별칭 | 강중(剛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권오영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강중(剛中). 칠원윤씨 33세손. 순수공파. 아버지는 윤형국(尹衡國)이며, 어머니는 청송심씨이다. 할아버지는 통덕랑에 오른 윤경행(尹敬行), 증조부는 윤덕로(尹德老), 고조부는 윤세적(尹世績)이다. 부인은 숙인 한양조씨이다. 슬하에 아들이 없어, 윤이의(尹履誼)를 양자로 맞아들였다. 윤이의는 통훈대부로 연천현감을 지냈다.
[활동사항]
윤재오는 통훈대부로 하양현감을 지냈다.
[묘소]
묘는 중원구 하대원동에 있다. 하대원동의 웃말은 칠원윤씨의 세거지이다. 칠원윤씨는 순수공파의 사온서령 윤이(尹伊)[1502~1576]의 아들 윤탁연(尹卓然)이 여산송씨 송맹경(宋孟璟)의 딸을 부인으로 맞으면서 처갓집 근처로 이주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그후 10여대를 살다가 일파는 광주로, 일파는 해주로 이주하였다. 윤이의 아들 윤탁연은 호조참판 겸 오위도총부도총관으로 칠원군에 봉해졌고 시호가 헌민이었다. 윤탁연의 아들 윤경원은 양성현감으로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웠고, 윤길원(尹吉元)은 예문관검열, 윤희원(尹喜元)은 충무위부사용, 윤상원(尹祥元)은 선교랑, 윤영원(尹榮元)은 전력부위였다. 손자 윤계기는 한성부판관, 윤안기(尹安基)는 예조정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