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5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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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慰禮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김창겸 |
성격 | 지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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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인물 | 온조 |
[정의]
백제시대의 도성.
[명칭유래]
위례라는 명칭은 한성시대 백제의 도성이었던 위례성을 의미한다. 그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한강을 가리키는 아리수(阿利水), 욱리하(郁利河)의 ‘아리’, ‘욱리’에서 기원하였다는 설이 있는데, 여기서 ‘아리’, ‘욱리’는 모두 크다[大]는 뜻을 지니고 있는만큼, 대성(大城)의 뜻이다. 그리고 백제에서 왕을 가리키는 ‘어라하(於羅瑕)’의 ‘어라’에서 기원하였다는 설이 있다. 곧 왕성(王城)의 뜻이다. 그밖에 ‘우리’, 즉 울타리에서 기원하였다는 설이 있다. 그 뜻은 성곽을 의미한다.
[위치]
위례성은 한강을 기준으로 하북위례성(河北慰禮城)과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으로 나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부여계(夫餘系)인 비류(沸流)와 온조(溫祚)의 집단이 남쪽으로 내려와서 건국한 근거지가 위례성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건국한 지 13년만에 하남위례성으로 도읍을 옮겼다고 하므로 처음에 정착한 위례성의 위치는 하북, 즉 한강 북쪽에 있었을 것이다. 그 위치는 서울 북한산 동쪽 산기슭이나, 북한산을 배경으로 한 세검정과 평창동 계곡 일대 또는 상계동, 중랑천 방면을 비정(比定)하고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하북위례성에서 한강 남쪽으로 천도한 곳이 하남위례성이다. 천도시기는 『삼국사기』에 따르면 서기전 6년(온조왕 13)이지만, 실제는 그보다 훨씬 후대의 일이다.
위치에 대해서 『삼국사기』에는 “하남의 땅은 북쪽은 한수(漢水)를 띠고, 동쪽은 고악(高岳)을 의지하고 있으며, 남쪽은 기름진 옥토를 바라보고, 서쪽은 큰 바다로 막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 근거한 하남위례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그동안 지금의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과 남한산성을 포함하는 일대라는 설 등 견해가 구구하였으나, 최근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서울 풍납토성 또는 몽촌토성으로 비정하고 있다.
한편, 위례성의 위치에 대해서 『삼국유사』에서는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 직산면으로 비정하였다. 직산이 위례성으로 지목된 근거는 확실하지 않으나, 475년 한성 함락 후 남쪽으로 피란하던 문주왕이 일시 머물렀던 데서 기인한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또한 웅진천도 후 한성시대의 지명이 이동한데 기인한 현상으로 풀이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