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6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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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對綠林論劍結義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관수 |
작가(원작자) | 이원명(李源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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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야담 |
[정의]
조선 중기 임경업(林慶業) 장군을 소재로 한 야담.
[개설]
조선 후기의 문신 이원명(李源命)이 지은 『동야휘집(東野彙輯)』에 전해오는데, 임경업 장군이 사냥을 갔다가 잘못하여 들어간 태백산에서 검술을 익혀 돌아와 무과에 급제한 후 명청(明淸) 교체기에 장군이 되어 활약한 이야기이다.
임경업의 무인적 출중함과 충절을 기리는 이야기로서 청나라에 적대적이었던 당시의 상황을 임경업의 활약상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내용]
임경업은 젊어서 사냥을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슴을 쫓아서 태백산까지 갔는데, 날이 어둡자 한 나무꾼에게 길을 물었다. 임경업은 그 나무꾼 말대로 산을 넘어갔더니, 텅 빈 기와집 한 채가 있어 그곳에서 쉬고 있었다. 얼마 뒤 한 사람이 밖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바로 저물녘에 자신에게 길을 가르쳐준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바로 이 집의 주인이었던 것이다. 이 주인 덕에 임경업은 벽장에 넣어두었던 술과 안주까지 얻어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갑자기 집 주인은 다시 벽장에서 커다란 칼을 꺼내 밖으로 나가더니 임경업에게 연못가에 있는 녹나무 위에 올라가 조용히 기다리라고 하고 자신은 연못 위에 솟아 있는 작은 섬에 세워놓은 정자로 올라갔다. 그 정자에는 벌써 두 남녀가 앉아 있었다. 얼마 뒤 집 주인은 그 남자와 칼싸움을 하여 죽이고, 그 여자를 질타했다. 그리고 나무에서 내려온 임경업에게 자신은 녹림(綠林)의 호걸로 전국 각지에 큰 집을 지어놓고 그곳에 미녀를 두고 지내면서 세상에 나아가지 않고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잠시 전에 있었던 칼싸움은 남대문 밖에 사는 한 사내가 밤이면 와서 바로 이곳에 데려다놓은 미녀와 정을 통하고 돌아가는 것을 지금까지 눈감아 주었는데, 급기야는 자신을 해하려 하는 까닭에 그를 죽였다고 했다. 그 사내는 양국대장(兩局大將: 훈련도감과 어영청을 아울러 맡은 장군)의 재주를 가진 절초장(折草匠)이었다. 그러면서 이 여인은 삼공(三公)과도 바꿀 수 없는 미인인데, 이 미인을 임경업에게 줄테니, 이곳에서 숨어살기를 권유했다.
그러나 임경업이 자신은 분에 넘치는 일이라고 하면서 이를 거절하자, 결국 집 주인은 미인을 칼로 베어 죽이고 속세로 돌아가려는 임경업에게 속세에서 필요한 검법을 가르쳐주었다. 임경업은 그로부터 중국의 황제로부터 시작하는 검법의 전수과정과 검법의 법도 등을 전수받고 태백산에서 돌아와 무과에 급제하여 장군으로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병자호란이 일어나 청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오자 청에 협조하지 않고 그 뒤에도 여러 번 명나라 군사와 거짓으로 싸움을 하여 패하기도 하였다. 청나라에서는 이를 알고 결국 임경업을 포로로 잡아갔는데, 임경업은 양주 금교역(金郊驛) 부근에서 탈출하여 (회암사의) 승려가 되어 지내다가 고양 행주에서 배를 타고 해주의 영평도에 이르서 중국으로 입국하여 등주(登州)에 있는 명나라 장군 마홍주(馬弘周)의 군영에서 머물면서 청군과 싸웠다. 그러다가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이 사신으로 가서 임경업을 데려오게 되었는데, 결국 김자점(金自點) 등이 음해를 하여 임경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이때 임경업이 타던 말은 며칠을 굶더니 하늘을 향해 울부짖다가 죽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