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4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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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得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장필기 |
[정의]
조선 후기 성남 지역 출신의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지(重之), 호는 만회(晩晦)이다. 권득기가 궁내동에 살고 있던 전주이씨 집안의 귀성군 이첨의 사위가 되어 분당구 금곡동 쇳골에 처음 정착하게 된 이후 안동권씨의 세거지가 되었다.
[가계]
친아버지는 예조판서 권극례(權克禮)이며 어머니는 윤천석의 딸인데, 큰아버지인 선공감역 권극관(權克寬)에게 입양되었다.
[활동사항]
1589년(선조 22) 진사시에 합격하고, 1610년(광해군 5)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예조좌랑에 제수되었다. 그 뒤 광해군이 인목 대비(仁穆大妃)를 서궁(西宮)[지금의 덕수궁]에 유폐시키고 영창 대군을 살해하는 등 폭정을 휘두르자 고산도찰방(高山道察訪)을 사임하고 충청남도 태안에 은거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만회집(晩晦集)』, 『연송잡기(然松雜記)』 등이 있다.
[묘소]
권득기 묘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금곡동 산8-21에 있다.
[상훈과 추모]
사후 이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대전광역시 탄방동의 도산서원(道山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