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18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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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물품·도구/물품·도구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집필자 | 고광민 |
[정의]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밭을 가는 도구.
[연원 및 변천]
언제부터 ‘쟁기’를 밭갈이에 사용하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삼국사기』에 502년경(지증왕 3)부터 “소로 밭을 갈기 시작했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났음을 알 수 있다. 제주도에서의 쟁기의 이용은 이보다 더 후대로 보이나, 제주도 농경신의 내력담인 「세경본풀이」에서는 머슴 아홉에 소 아홉 마리를 이용해 밭갈이를 했음을 보여주고 있고, 또한 옛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농경과 관련된 ‘굿’에서도 이용된듯하여 제주도에서의 소를 이용한 밭갈이도 오래전부터 있어왔음을 알 수 있다.
[형태]
쟁기는 ‘성에’와 ‘몽클’·‘설칫’·‘양주머리’로 구성되며 전체적으로 눕힌 A자형을 이루고 있다. 몽클[술]·성에·설칫[한마루]를 삼각으로 맞춘다. 몽클 끝에 보습을 끼운다. 그 위 설칫 몸에 의지하여 볏을 덧댄다. 성에 앞 끝에 줄을 매어 소에 멍에를 건다. 몽클의 맨 위쪽에는 쟁기의 손잡이인 ‘양주머리’가 가로로 끼워져 T자 모양을 이룬다. 성에의 앞에 ‘벵이뿔’이 가로 꽂힌다. 그리고 설칫 밑으로는 볏을 받쳐 주기 위한 ‘벳바도랭이’를 박아놓는다. 겨리[소 두 마리가 끄는 쟁기]와 호리[소 한 마리가 끄는 쟁기]가 크게 다르지 않다. 제주도의 보습의 너비는 13.7 cm, 길이는 23 cm다. 그리고 보습의 모양은 한쪽으로 쏠리게 만든다. 자갈 함량이 많은 제주도 경작토의 물리적 압력을 극소화하기 위해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1974년 서귀포시 안덕면 감산리에 경운기가 보급되는 등 산업화의 산물로 1970년대 초반부터 경운기의 보급으로 ‘쟁기’도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러나 1990년대까지도 일부지역에서는 작은 밭이나 비탈진 곳 등의 밭을 갈 때는 쟁기를 이용하였다. 특히 자갈이 많은 제주도의 밭을 갈기 위해서 타지역의 쟁기에 비해 훨씬 견고한 구조로 만들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