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20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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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朝鮮民族解放協同黨 |
이칭/별칭 | 협동당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집필자 | 전병무 |
해체 시기/일시 | 1945년 - 조선 민족 해방 협동당 해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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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시기/일시 | 1943년 6월 - 조선 민족 해방 협동당 설립 |
최초 설립지 | 조선 민족 해방 협동당 - 일본 도쿄 |
주소 변경 이력 | 조선 민족 해방 협동당 -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
성격 | 항일 비밀 결사대 |
설립자 | 김종백(金宗伯) |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 있었던 항일 비밀결사.
[설립 목적]
조선 민족 해방 협동당은 일제가 패망하는 결정적 시기에 국외의 항일 무장 세력의 진공에 호응하여 국내에서 민중의 무장봉기를 통한 민족 해방 쟁취를 위하여 결성되었다.
[변천]
1943년 6월 일본 도쿄[東京]에서 메이지[明治] 대학 출신 김종백(金宗伯)을 당수로 하여 학병 거부자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조선 민족 해방 협동당은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사유와 국유를 결합하는 제도를 지향하면서 이상적인 ‘협동’의 이념에 기초한 사회를 추구하였다. 조선 민족 해방 협동당은 1944년 이후 활동 무대를 조선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활동하였다. 근거지는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백운동의 국망봉(國望峰)이었으며, 금강산 등지에도 거점을 확보해 군사 훈련을 하는 등 전국 13도를 무대로 당원을 규합하며 활동하였다.
1944년 7월 경성 제국 대학 의학부생 10여 명이 가입하면서 더욱 활기를 띠었다. 조직은 당수 아래에 군사 부장, 조직 부장, 선전 부장, 학생 부장 등의 간부를 두었고, 별동대로 산악대를 운영하였다. 산악대는 일제 패망의 결정적 시기에 대비해 무장봉기를 준비했던 가장 중요한 조직이었다. 산악대원은 약 200명~300명 정도의 규모로, 징용·징병·학병·보국대 등에 끌려갔다가 탈출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국망봉 산속에 12개의 굴을 파고 낮에는 군사 훈련을 하고 밤에는 정세 토의와 이론 학습을 하며 생활하였다.
또한 조선 민족 해방 협동당은 일제 군사 시설과 군수 산업 시설 파괴, 무기 제작과 입수, 친일 고관의 암살 계획 수립 등 다양한 활동을 도모하고 준비하였다. 그러나 경성 제국 대학 의학부생의 말실수가 발단이 되어 1944년 12월부터 1945년 2월까지 당수 김종백을 비롯한 약 120여 명이 체포·투옥되면서 사실상 와해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 민족 해방 협동당은 일제 강점기 말기에 조선 건국 동맹과 일제 패망 직전에 국내에서 독립을 준비하였던 대표적인 항일 비밀 결사대였다. 결성된 수많은 비밀 결사대들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실천적인 조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