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9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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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抱川途中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병찬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71년 - 「포천도중」 저자 이안눌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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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37년 - 「포천도중」 저자 이안눌 사망 |
성격 | 한시 |
작가 | 이안눌 |
[정의]
조선 중기 이안눌이 포천으로 가는 길에 천둥과 거센 비를 만나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개설]
「포천도중(抱川途中)」은 조선 중기의 문신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1571~1637]이 포천으로 가는 도중에 천둥과 거센 비를 만나 느낀 감흥으로 읊은 한시이다.
이안눌의 자는 자민(子敏)이고, 호는 동악(東岳, 東嶽), 동곡(東谷), 동엄(東广) 등이라 했다. 본관은 덕수(德水), 시호는 문혜(文惠)로 고옥(古玉) 정작(鄭碏)[1533~1603], 석주(石洲) 권필(權韠)[1569~1612], 월정(月汀) 윤근수(尹根壽)[1537~1616], 오봉(五峯) 이호민(李好閔)[1553~1634] 등과 교유한 인물이다. 1588년(선조 21) 진사 초시에 수석을 하고, 1599(선조 32) 정시에 을과로 합격하여 함경도 병마평사(兵馬評事)가 되었다. 이후로 단천 군수, 홍주 목사, 동래 부사를 거쳐, 1623년(인조 1) 예조, 호조, 형조참판을 지내고, 1633(인조 11) 예조판서가 되었다.
이안눌의 시문은 1637년 무렵부터 자편(自編) 수고(手稿)를 바탕으로 조카 이침(李梣)과 재종질 이식(李植)[1584~1647]이 수집, 편차하여 1639년에 『동악선생집(東岳先生集)』으로 전주에서 간행하였다. 「포천도중」은 『동악선생집』 권(卷) 15의 「북찬록(北竄錄)」 중의 한 작품으로 수록되어 있다. 「북찬록」에는 1599년 8월에 29세의 나이로 함경도 병마평사에 제수되어 1600년 5월까지 경성의 임소에 있을 때 지은 작품들이 실려 있다.
[내용]
행경축석령구금(行經祝石嶺嶇嶔)[험준한 축석령을 지나는 길]
삼각고봉격만잠(三角高峯隔萬岑)[높은 세 봉우리가 많은 봉우리 틈에 있네.]
낙일괘산수반조(落日掛山收返照)[떨어지는 해, 걸린 산은 석양을 거두고]
분운수야기층음(奔雲垂野起層陰)[흐르는 구름, 드리워진 들엔 겹겹의 그림자가 일어나네.]
뢰굉상파엄위성(雷轟尙怕嚴威盛)[진동하는 우레 소리는 성한 위엄인 듯 두렵고]
우습번사총악심(雨濕翻思寵渥深)[젖어드는 비는 깊은 총애인 듯 생각하네.]
회수금원혼이단(回首禁垣魂已斷)[궁궐을 돌아보지만 넋은 이미 끊겨]
새성하처위고침(塞城何處慰孤忱)[변방 어느 곳에서 외로움을 달래리오.]
* 축석령명(祝石嶺名): 축석령은 의정부에서 포천으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이다.
[특징]
「북찬록」에 수록된 작품은 대부분이 우국충정을 노래한 것이다. 「포천도중」도 이안눌이 함경도로 부임하면서 포천에서 천둥을 동반한 소나기를 만나서 임금을 생각하며 지은 시이다.
[의의와 평가]
이안눌은 이른바 동악 시단(東岳詩壇)을 결성하여 권필, 윤근수, 이호민 등과 교유하는 등 시작에 특히 많은 관심을 지녔던 만큼 4천여 수가 넘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특히 오봉 이호민과 나눈 시가 많다. 신익성(申翊聖)[1588~1644]이나 이식은 이안눌의 시에 대해, 칠언율(七言律)에 특히 능하고 그때그때의 감흥과 풍자를 자유자재로 표현하였다고 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