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938 |
---|---|
한자 | 出抱川途中口號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병찬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675년 - 「출포천 도중구호」 저자 조태억 출생 |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728년 - 「출포천 도중구호」 저자 조태억 사망 |
성격 | 한시 |
작가 | 조태억 |
[정의]
조선 후기 조태억이 포천으로 가는 도중에 즉석에서 입으로 부르며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개설]
「출포천 도중구호(出抱川途中口號)」는 조선 후기의 문신 겸재(謙齋) 조태억(趙泰億)[1675~1728]이 포천으로 출발하여 가는 도중에 입에서 나오는 대로 즉흥적으로 읊은 한시이다.
조태억은 경종 대에 문형(文衡)과 정승(政丞)을 지낸 소론(少論)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왕세제(王世弟) 대리 청정(代理聽政)을 반대하였다는 이유로 영조 초에 노론이 탄핵한 원흉 오적(元凶五賊)의 한 사람이었다. 조태억은 자(字)를 대년(大年), 호(號)를 겸재라 했고, 본관은 양주(楊州),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최석정(崔錫鼎)[1646~1715]의 문인으로 최창대(崔昌大)[1669~1720], 이광좌(李光佐)[1674~1740], 이하곤(李夏坤)[1677~1724], 윤순(尹淳)[1680년~1741], 이덕수(李德壽)[1673~1744] 등과 교유했다. 1693년(숙종 19) 사마시에 합격하고, 1702년(숙종 28) 전시에 나가 합격하였다. 1709년(숙종 35) 철원 부사, 대사간, 대사성을 거치고, 경상 관찰사를 지냈다. 이후 경기 관찰사 대제학, 형조판서, 공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했다.
「출포천 도중구호」은 조태억의 문집인 『겸재집(謙齋集)』에 수록되어 있다. 『겸재집』은 저자의 수고본(手稿本)을 전사(轉寫)한 것으로, 그 경위는 불분명하다. 분량은 45권 20책으로 서발 및 목차는 없다.
[내용]
잔생무책답군은(殘生無策答君恩)[남은 여생 계책은 없으나 임금의 은혜에 답하리]
중야우시사울번(中夜憂時思欝煩)[밤중에 생각을 하면 속에 열은 올라오니]
유유일귀차적의(惟有一歸差適意)[오직 한 번은 돌아갈 일 이때가 적기인데]
만천풍설출동문(滿天風雪出東門)[동문으로 나가니 하늘 아래 바람과 눈뿐이네]
[특징]
「출포천 도중구호」는 제목 다음에 ‘정월 9일 틈을 빌러[正月九日乞暇]’라는 구절이 붙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저자가 여가를 내어 포천에 들렀다가 지은 작품으로 추정된다. 「출포천 도중구호」는 임금의 부름에 부응하여 군은에 보답할 것을 다짐한 시이다.
[의의와 평가]
조태억은 어머니의 묘소가 포천 독곡(獨谷)에 있는 관계로 포천에 가끔 내왕한 것으로 추측된다. 「출포천 도중구호」도 그러한 인연으로 지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