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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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周鎬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계형 |
추모 시기/일시 | 1963년 - 이주호 대통령 표창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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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이주호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 시기/일시 | 1863년 1월 8일 - 이주호 출생 |
출생지 | 이주호 출생지 - 경기도 포천군 가산면 궁촌리 648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대한 독립단 서울 중앙 총지부 담당 |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주호(李周鎬)[1863~?]는 1863년 1월 8일 경기도 포천군 가산면 궁촌리 648번지에서 태어났다. 이후 일제의 국권 침탈에 항거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경 의병 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고, 1910년 8월 국권 상실 이후에 고향이 같은 강지형(姜芝馨)을 만나 1920년 9월경 대한 독립단(大韓獨立團)에 입단하였다. 대한 독립단은 박장호(朴長浩)·조맹선(趙孟善) 등이 1919년 4월 만주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서 결성한 독립운동 단체로 군자금 모집, 친일 세력 처단,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
당시 대한 독립단은 국내 각 지방에 대한 독립단 지단을 설치하고 동지를 규합, 확대하여 국내외와 연락을 공고히 하기 위해, 1919년 11월 평안남도와 황해도 지단에 이어 서울에 중앙 총기관을 설치하고자 하였다. 대한 독립단 서울 중앙 총지부 조직을 맡게 된 이주호는 1920년 8월 서울에 들어와 동지를 규합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한편 경기도 지부를 조직 중에 있던 강지형·김기한(金起漢)과 서울에서 만나 지부 설치를 위한 유인물 작성과 배포를 협의하였다.
이들은 활자를 구입하여 「격고 국내 진신 사림(檄告國內縉紳士林)」[국내 진신 사림에게 고하는 격문], 「경고 국내 동포 중위 왜인 관리문(警告國內同胞中爲倭人官吏文)」[국내인 동포 가운데 왜인 관리가 되었던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글], 「경고 경향 각 부호문(警告京鄕各富戶文)」[경향 각지 부호들에게 경고하는 글], 사형 선고장(死刑宣告帳) 등의 유인물을 인쇄하였다. 이주호는 이러한 유인물을 이기룡(李起龍) 등과 함께 전국 각지에 배포하여 대한 독립단에 가입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런데 1920년 11월 김기한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면서 대한 독립단의 정체가 발각되어 이주호는 강지형·정순영(鄭舜永)·홍영전(洪永傳)·조종하(趙宗夏)·안흥기(安興起)·이기룡·안영기(安永基)·손명근(孫命根)·송내호(宋乃浩) 등과 함께 체포되어 경성 지방 법원에서 징역 8개월 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