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6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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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逢萊詩集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성환 |
[정의]
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문인이자 서예가인 양사언의 시집.
[저자]
양사언(楊士彦)[1517~1584]은 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문인이자 서예가이다. 본관은 청주, 자는 응빙(應聘), 호는 봉래(蓬萊)·완구(完邱)·창해(滄海)·해객(海客)이다. 아버지는 주부 양희수(楊希洙)이다.
1546년(명종 1) 문과에 급제하여 대동승(大同丞)을 거쳐 삼등·함흥·평창·강릉·회양·안변·철원 등 8고을의 수령을 지냈다. 회양 군수로 있을 때는 금강산에 자주 가서 경치를 완상하였고, 안변 군수로 있을 때는 북변의 병란을 미리 알아차리고 마초를 많이 비축하여 위급을 구하기도 하였다. 지릉(智陵)에 일어난 화재의 책임을 지고 해서 지방으로 귀양 갔다가 2년 뒤 풀려 돌아오는 길에 죽었다.
[편찬/간행 경위]
『봉래시집(逢萊詩集)』은 간행된 연대나 편찬 과정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류근(柳根)이 권 3의 「비자기(飛字記)」를 지은 때가 1625년 겨울로, 그 이후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또 1630년(인조 8) 조경(趙絅)이 지은 묘갈명에 “봉래 양 선생의 아들이 선생의 시를 간행하여 세상에 행해진다.”라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간행 시기는 1626년~1630년으로 추정된다. 양사언의 아들 양만고(楊萬古)가 유고를 수집 편차하여 1626년 이후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형태/서지]
목판본으로, 크기는 22×16.2㎝이다. 국립 중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봉래시집』에는 오언 절구·육언 절구·칠언 절구·오언 율시·칠언 율시·오언 배율·칠언 배율·오언 고시·칠언 고시 등 260여 수의 시가 편차되어 있다. 권3에는 시 이외에 1540년의 진사시 때 지었던 「단사부(丹砂賦)」가 실려 있는데, 신선이 되기 위해 단사를 복용한다는 것이 허황된 일임을 설명하고, 성명(性命)의 대화(大化)에 순응하고 도덕의 진수를 행하라고 권고하는 내용이다.
또 1546년의 정시(庭試) 때 지은 「전책(殿策)」이 있는데, 사기(士氣)의 진작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주청한 내용이다. 이외에도 중국 항주의 지도에 쓴 발문으로 「항주도발(杭州圖跋)」, 평양의 기자성(箕子城) 안에 있는 찰방의 정자인 열운정(閱雲亭)의 사연을 기록한 「열운정기」, 「강릉 기우제문(江陵祈雨祭文)」·「기청허서(寄淸虛書)」등도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성호 이익(李瀷)은 양사언의 시를 “사람들은 양사언의 글씨가 진속(塵俗)을 벗어난 줄만 알고, 그의 시가 세상 사람의 말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 못한다.”라고 평하였고, 허균(許筠)은 ‘선표발속(仙標拔俗)’이라 평하였다. 조선 중기 시인으로서 유명한 양사언의 성향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