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7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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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任羅之訟事-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 |
집필자 | 김월덕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10년 2월 2일 - 「임나지송사」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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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록지 | 운교리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 |
성격 | 송사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임씨|임씨 아들|임씨 데릴사위 나씨 |
모티프 유형 | 송사 해결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에서 임씨와 나씨의 송사에 관련하여 전해지는 이야기.
[개설]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에서 전해지는 「임나지송사」 이야기는 나주 목사로 부임한 만헌 정염이 임씨 아버지의 유서 내용을 새롭게 해석하여 기존 판결을 뒤집는 판결로 임씨와 나씨의 송사를 해결했다는 내용이다.
[채록/수집 상황]
「임나지송사」는 한국학 중앙 연구원 어문 생활 연구소와 안동 대학교 민속학 연구소가 공동으로 추진한 ‘한국 구비 문학 대계 개정·증보 사업’ 전북 조사팀이 2010년 2월 2일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정영수[남, 80세]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한국학 중앙 연구원에서 지원하는 한국 구비 문학 대계 웹 서비스에 「만헌 선생의 임나지송사」란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조사 자료 텍스트와 연동되는 디지털 음원을 들을 수 있다.
[내용]
조선 시대에 만헌 정염이 나주 목사로 부임해 와서 임씨와 나씨의 송사를 맡게 되었다. 임씨 아버지가 칠십 세에 임씨를 낳았는데 아들이 너무 어려서 데릴사위인 나씨가 집안 살림을 맡아서 하였다. 칠십 세의 아버지는 나이가 많아서 곧 죽었는데 죽기 전에 유서를 써서 병풍 뒤에 남겨 두었다. 유서에는 “칠십 생 남자 비오자 자지답정상 서답정하 가산일체 급여서 외인물침(七十生男子 非吾子 子之畓井上 婿畓井下 家産一切 給與婿外人勿浸)”이라고 적혀 있었다.
시간이 흘러 임씨의 어린 아들이 점차 커서 보니 재산을 데릴사위에게 다 빼앗기게 생겨서 유서 내용을 놓고 데릴사위 나씨와 송사를 벌이게 되었다. 부임하는 원님마다 유서 내용을 ‘칠십에 아들을 낳으니 내 아들이 아니오. 아들 논은 샘 위에 있고 사위 논은 샘 아래 있다. 가산 일체를 사위에 주고 그 외 사람은 침범치 말라.’로 해석하여 샘 위의 건답은 아들이, 샘 아래의 옥답은 사위가 갖고 재산도 사위가 관리하라고 판결하였다.
그런데 만헌 정염이 나주 목사로 부임해 와서 그 동안의 판결을 뒤집는 판결로 임씨와 나씨의 송사를 해결했다. 만헌은 유서의 내용을 ‘칠십에 아들을 낳은들 내 아들이 아니겠소? 아들의 논은 샘이 위에 있고 사위의 논은 샘이 아래에 있다. 가산 일체를 주되 사위는 외인이니 침범치 말라.’로 해석한 것이다.
[모티프 분석]
「임나지송사」의 주요 모티프는 ‘송사 해결’이다. 소송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지방관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였다. 이 설화는 나주 목사로 부임해 온 정염이 임씨의 유서에 대한 전임 지방관들의 판에 박힌 해석을 뒤집는 새로운 해석으로 임씨와 나씨의 소송 문제를 해결했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송사는 사안을 해석하는 시각에 따라서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으므로 송사를 다루는 사람이 문제에 접근하는 관점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송사 설화에서 문제 해결의 지향점은 전승자들의 사회 정의에 대한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