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1034
한자 裡里劇場
영어공식명칭 Iri Theater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지명/시설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양지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관|개장 시기/일시 1920년대 - 이리좌극장 개관 추정
성격 문화예술시설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중앙동에 있었던 영화관.

[개설]

이리극장은 현재 행정구역상 전라북도 익산시 중앙동에 있던 종합 문화예술 시설이었다. 1920년대 이리좌극장으로 설립되어 강연이나 공연, 토론회 등이 다각적으로 개최되던 공간으로 운영되다가 이리극장으로 명칭이 변경된 것으로 추정된다. 1970~1980년대 이후에는 영화만을 상영하는 ‘영화관’이나 ‘극장’의 역할을 하였고, 이후 다양한 미디어 매체의 보급으로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사이 폐관한 것으로 보인다.

[변천]

이리극장의 모태는 이리좌극장이다. 1920년대 부산에서 ‘행관(幸館)’이라는 극장을 운영하던 사쿠라바 후지오[櫻庭藤夫]가 극장의 직영순업부로 이리에 극장을 설립하였다. 이리좌극장에서는 유명 일본 기업가의 강연과 일본의 전통극 공연, 동경소녀가극단공연을 비롯하여 한국인 수해복구시민대회와 소작문제 해결을 위한 토론회, 이리유치원이나 이화여전[현 이화여대]을 포함한 지역 내외 여러 교육기관의 발표회 등이 개최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이리좌극장은 ‘이리극장’이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1928년 6월 17일 화재가 났던 이리극장을 1929년 신축하였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이러한 과정에서 명칭이 ‘이리좌극장’에서 ‘이리극장’으로 변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리극장은 해방 직후 일본인 주인이 떠나가면서 적산 관리국에 넘어갔다가 한국인에게 불하된 것으로 보인다. 이리극장의 사장은 김삼만이었으며, 김삼만은 전주시 경원동 옛 전주시청 앞의 백도극장, 익산시의 이리극장삼남극장을 소유 또는 관리 운영한 사람이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이리극장 관련 기록으로 1975년 영화 「원시인의 100만 년」 상영 홍보물이 있다. 당시 입장료는 중고학생 100원, 초등학생 50원이었다. 1970~1980년대 이후 이리극장은 영화만 상영하는 전용 공간으로 활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다양한 미디어 매체의 보급으로 인해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사이에 폐관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1970~1980년대 당시 이리시의 중심가는 이리극장에서 시작되는 영정통으로 통하였다. 당대에 청소년기에서 청년기를 보낸 시민들에게는 현재까지도 구 이리극장 자리가 하나의 상징적인 위치로 자리 잡혀 있다. 2019년 현재 이리극장이 존재하였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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