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2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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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麒瑞 |
영어음역 | Yi Giseo |
이칭/별칭 | 시징(時徵)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 원박마을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길찬 |
출생 시기/일시 | 169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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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891년 |
출생지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 원박마을 |
비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성산 |
[정의]
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시징(時徵). 태조 이성계의 사위인 경무공(景武公) 이제(李濟)의 후손이다.
[활동 사항]
이기서(李麒瑞)는 1699년(숙종 25)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 원박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느 해 할머니가 화상창(火傷瘡)으로 고통을 받자 입으로 빨아서 치료하였다. 또 어느 땐가 어머니가 병환 중에 꿩고기를 먹고 싶어 하자 하늘을 향해 지성으로 기도하니, 꿩이 집으로 날아드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전한다.
[상훈과 추모]
1891년(고종 28) 조정에서 조봉대부 동몽교관(朝奉大夫童蒙敎官)을 증직하고 정려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에 후손들이 1893년(고종 30)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에 정려비를 세웠으며, 이도복(李道復)이 「효자 통덕랑 성주 이기서공 정려기(孝子通德郞星州李麒瑞公旌閭記)」를 지었다. 또한 1927년 최영조(崔永祚)가 「효자 통덕랑 이공 정려기(孝子通德郞李公旌閭記)」를 지었으며, 기우만(奇宇萬)이 여기(閭記)를 지었고, 이승희(李承熙)가 갈명(碣銘)[위가 둥근 비를 갈(碣)이라 하고 거기에 글을 새기는 것 또는 새긴 글을 갈명이라 함]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