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24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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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興德亭子-由來 |
영어의미역 | Folktale about the Origin of Heungdeok Pavilio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율정리 |
집필자 | 박종익 |
성격 | 지명유래담|풍수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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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 | 욕심 많은 선비|지관|흥덕 |
관련지명 | 율정리 |
모티프 유형 | 소주길흉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율정리에서 흥덕정자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흥덕정자의 유래」는 『공주의 전통마을』4(공주문화원, 2005)에 실려 있는데, 채록 및 수집상황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내용]
공주시 의당면 율정리에는 흥덕정자와 관련된 두 가지 유래가 전한다. 첫 번째는 300여 년 전 이 마을에 살았던 욕심 많은 선비 이야기이다. 선비는 지관의 만류를 뿌리치고 아버지의 산소를 이곳 참나무쟁이에 썼다. 참나무쟁이는 큰 명당이 있다고 전해오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는 악행만 일삼던 인물이기 때문에 명당에 조상을 모신 것이 화근이 되어 집안이 몰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집안의 몰락과 함께 자손이 고향을 떠나 충청북도로 이사를 갔다.
무덤은 자손들이 돌보지 않아 흔적도 없이 사라질 정도였다. 일제강점기에 후손들이 찾아와 산소를 이장하였는데, 이장을 위해 묘를 파헤쳤더니 300년 된 묘에서 나온 시신이 황금빛이었다. 후손들이 이것을 보고 묘를 판 것을 후회하며 대성통곡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며 ‘명당이라도 덕을 쌓지 못한 사람이 들어가면 멸문의 화를 당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덕을 쌓으라는 뜻으로 정자의 이름을 ‘흥덕(興德)’이라 지어 부르게 되었다.
두 번째 이야기 역시 정자 이름의 유래에 관한 것이다. 조선시대 중엽에 전라도에 사는 흥덕(興德)이라는 선비가 과거를 보러 가는 도중 이곳을 지났다. 당시 전라도에서 서울로 가는 길은 이 마을을 지나는 길이 아니었다. 선비 흥덕이 길을 잘못 들어 이곳 율정리를 지나게 된 것이다. 삼복의 무더위 속에서 먼 길을 가던 흥덕은 자신이 길을 잘못 든 줄도 모르고 “많은 사람이 오가는 큰길가에 땀을 식힐 만한 정자가 없다.”고 하면서 한양으로 올라갔다.
흥덕은 한양에서 과거를 보아 장원급제를 하였다. 급제 후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에 다시 이곳을 지나면서 올라갈 때의 정자에 대한 아쉬움을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참나무쟁이가에 느티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느티나무는 이상할 정도로 빨리 자라서 정자를 이루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이용하면서 나무를 심은 선비를 기리고자 정자의 이름을 ‘흥덕정자’라고 지었다.
[모티프 분석]
「흥덕정자의 유래」는 앞서 말한 것처럼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한다. 전자는 명당을 통한 발복의 동기에서 시도된 것이고, 후자는 단순한 휴식공간의 마련을 위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두 이야기 가운데 명당과 주인과의 관계를 그린 전자가 보다 전설로서 흥미를 끈다.
큰 명당에는 주인이 따로 있다고 한다. 때문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 명당을 차지할 경우 자손이 사망하고 일가가 몰락한다는 예를 흔히 볼 수 있다. 풍수 이론으로 말한다면 소주길흉(所主吉凶)으로 명당은 주인에 따라 길하기도 하고 흥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전설에서는 명당을 쓴 인물이 악행을 저질러 그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을 암시해주고 있다. 실제 ‘적불선지가 필유여앙(積不善之家 必有餘殃)’이라 하여 패악한 인물이 명당에 자리를 쓰면 오히려 재앙을 초래한다는 말이 있다. 「흥덕정자의 유래」는 이와 같은 풍 수관념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