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23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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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明堂由來 |
영어의미역 | Origin of Tuttle Shaped Propitious Site |
이칭/별칭 | 「구암」,「거북바위」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송학리 |
집필자 | 박종익 |
성격 | 풍수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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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 | 용왕|거북|정승 |
관련지명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송학리 |
모티프 유형 | 소주길흉(所主吉凶) 명당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송학리에 전해오는 거북이가 찾은 명당 이야기.
[개설]
「거북이 명당 유래」는 소주길흉론(所主吉凶論)에 관련한 응보 주제의 풍수전설이다. 소주길흉에 대한 전설은 공주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상당히 수집되는데, 철저한 윤리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만큼 천편일률적인 권선징악으로 표현되어 왔다.
명당은 반드시 덕(德)과 선(善)을 쌓아야 차지할 수 있다거나, 최고의 명풍수(名風水)를 초빙해서 명당을 잡는다 할지라도 그 땅을 쓸 사람이 생전에 악행을 많이 했으면 소용없는 허혈(虛穴)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들이 그런 예이다.
[채록/수집상황]
2006년 공주문화원에서 간행한 『공주의 전통마을』5에 실려 있다.
[내용]
옛날 동해 용왕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용왕은 자신의 무덤을 지상에 지을 생각으로 거북에게 명당을 찾아보라고 하였다. 명을 받은 거북은 조선 팔도를 돌아다니다가 공주시 의당면 송학리에서 명당의 기운을 느꼈다. 그러나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다 보니 기운이 쇠잔하여 더 이상 올라갈 힘이 없었고, 그만 지금의 거북바위가 있는 자리에서 숨을 멈추었다. 거북은 죽은 뒤 그 자리에서 바위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 바위를 ‘거북바위’ 또는 ‘구암(龜岩)’이라 이름 지어 불렀다.
이러한 전설이 알려지면서 송학리에 명당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주가 이 거북바위를 넘지 못하고 되돌아갔다. 거북이가 잡아 놓은 명당이 분명히 있는데 사람들이 찾지 못하여 쓰지 못했다는 소문을 들은 한 정승이 용한 지관을 보내 명당 터를 잡아놓았다. 그리고 자기 조상의 묘를 쓰기 위해 상여를 메고 이 마을로 들어섰다.
그런데 막 송학리에 접어들었을 때 상여에 벼락이 떨어지는 참변이 일어났다. 하늘이 울고 벼락이 떨어지면서 상두꾼들이 메고 오던 상여는 바위가 되었다. 그 경황에 혼백을 모시는 교의 틀이 하늘 높이 날아가 들말 앞 산자락에 떨어졌으며, 선소리꾼이 흔들던 요령은 몸티 앞산에, 그리고 시신은 마을 앞산에 떨어졌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지금도 상여바위, 조이(교의)틀산, 요령바위, 송장산이 있다. 마을의 노인들은 ‘언젠가 역사가 기록할 큰 인물이 거북이가 본 명당에 묻힐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거북바위는 1970년 도로 확장 때 훼손되어 전하지 않는다.
[모티프 분석]
「거북이 명당 유래」의 주요 모티프는 소주길흉의 명당이다. 예로부터 ‘명당은 주인이 따로 있다’고 한다. 억지로 명당을 찾아서 쓰려고 해도 인물이 맞지 않으면 화를 입고, 이와 반대로 참된 명당의 주인이라면 굳이 길지를 찾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명당을 사용하게 된다는 인식이다. 즉 소주길흉이란 명당에 맞지 않은 사람이 차지하면 흉하게 되고 반대로 맞는 사람이 점유하면 길하다는 이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