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80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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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玟順 |
영어공식명칭 | Choi Minsun |
이칭/별칭 | 요한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류덕제 |
출생 시기/일시 | 1912년 10월 3일 - 최민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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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3년 9월 18일 - 최민순 대구 성유스티노신학교 라틴어과 입학 |
활동 시기/일시 | 1929년 6월 - 최민순 대구 성유스티노신학교 라틴어과 수료 |
활동 시기/일시 | 1935년 6월 - 최민순 대구 성유스티노신학교 신학과 졸업 |
활동 시기/일시 | 1944년 3월 30일~4월 17일 - 최민순 대구 성유스티노신학교 학장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51년 - 최민순 대구대교구 출판부장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51년 3월 25일~1953년 2월 5일 - 최민순 『천구교회보』에 「밤의 일기」 연재 |
활동 시기/일시 | 1953년 - 최민순 성신대학 교수로 복직 |
활동 시기/일시 | 1966년 - 최민순 가톨릭대학 신학부 교수 |
몰년 시기/일시 | 1975년 8월 19일 - 최민순 사망 |
출생지 | 전라북도 진안군 - 전라북도 진안군 |
수학|강학지 | 성유스티노신학교 신학과 - 대구광역시 |
성격 | 가톨릭 사제|시인 |
성별 | 남성 |
대표 관직|경력 | 대구대교구 출판부장|『천구교회보』 사장 |
[정의]
6·25전쟁 중 대구에서 언론인, 시인으로 활동한 천주교 신부.
[개설]
최민순(崔玟順)[1912~1975]은 1912년 10월 3일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세례명은 요한이다. 1935년에 대구 성유스티노신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44년 3월 30일 모교 대구 성유스티노신학교의 교장이 되었으나 일제의 전문학교령에 의하여 폐교됨으로써 1944년 4월 17일 사퇴하였다. 이후 성신대학(聖神大學)의 전신인 천주공교신학교(天主公敎神學校)[현 가톨릭대학교 신학부] 교수로 전임되었다. 천주교 신부로 활동하면서 수필과 시를 쓰고, 번역서를 냈다.
[활동 사항]
최민순은 1951년 1·4후퇴 때 대구로 피난 와 머물면서 대구교구장 최덕홍 주교의 권유로 대구대교구 출판부장을 맡았다. 이후 『대구매일』의 주간, 『천구교회보』 사장을 지냈다. 『대구매일』을 『대구매일신문』으로 개명하고 문화란을 신설하여 수필을 발표하는 한편 시인 구상과 함께 논설을 맡아 쓰기도 하였다. 한편 『천구교회보』를 『가톨릭시보』로 개칭하여 신문의 유지 발전에 힘썼다. 1953년 신문사에서 퇴직하여 성신대학의 교수로 복직하였다. 『천구교회보』[1951. 3. 25.~1953. 2. 5.]에 전쟁 의식을 북돋우는 전쟁 참여 소설 「밤의 일기」를 연재하였다. 1966년 가톨릭대학교 신학부 교수로 재직하였다.
최민순은 1975년 8월 19일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최민순의 저서는 번역서 단테의 『신곡』「지옥편·신곡전편」[1959],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1960],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1965], 『예수의 데레사, 완덕의 길』[1967], 구약성서의 「시편」[1968], 『영혼의 성』[1970], 『십자가의 요한』[1971], 『깔멜의 산길』[1971], 『어둔 밤』[1973] 등이 있다. 시집 『님』[1955], 『밤』[1963]과 수필 「부활전야」[1951], 「낙동강」[1954], 「겨자씨」[1956] 외 25편이 있다.
[상훈과 추모]
최민순은 1961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가 주관하는 제2회 한국번역문학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