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E020304 |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상기 |
유진형 씨는 마수리 농요보존회원 중 두 번째로 지남기 선생을 잘 아는 사람이다. 1943년에 중원군 살미면 문화리 2구에서 태어난 유진형 씨는 음악적인 재질이 있는지 어릴 때부터 농악대를 쫓아다니는 걸 좋아했다. 청년이 되어 꽹과리도 잘 두드리고 장구도 잘 치고 상모도 잘 돌리게 되었다. 그리고 농악놀이나 무당의 푸닥거리에는 빼놓지 않고 구경을 가거나 참여했다고 한다. 1970년대 동생이 마수리로 시집을 갔는데 동생네 집에 놀러갔다가 이 동네가 마음에 들어 1975년 12월 20일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아주 마수리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마음에 들었다는 말이 마수리 농요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니 확답을 해주지는 않는다. 옆에 있던 부인에 따르면 유진형 씨는 마수리에 사는 것에 대해 만족해했다고 한다. 이곳으로 이사 와서는 가게도 하고 벌도 키우고 하면서 살았다. 농사는 부업이었던 것 같다. 당시 상황을 부인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이사와 보니 이 동네가 전적으로 농악하는 데여. 꽹과리라면 밥두 안 먹구 나가. 자기 없어도 실컨 하니까 가만 있으라구 해두 안돼. 아주 1등 출반주루 나서징유. 취미가 있으니 하지 한 번도 안 빠져. 그래두 일은 어떻게든 해 놓구 나가” 라 하였다.
그러니까 유진형 씨와 지남기 씨의 인연은 1975년 말부터 시작된다. 유진형 씨는 지남기 씨가 타고난 목청으로 고삿반을 잘했다고 한다. 고삿반이란 일종의 사설로 노동요 일체를 말한다. 그리고 지남기 씨는 농악도 잘해 지남기 씨가 상쇠를 맡으면 유진형 씨가 부쇠를 했다고 한다.
1980년대에는 서울 행당동 노인회의 초청으로 정월 초하루부터 열사흩날까지 농악을 놀아주러 행당 1동 노인정을 찾았다고 한다. 이때 마수리에서 지남기, 유진형, 조백만 등 5명이 올라가고 그곳의 농악꾼 두 명을 더해 7명 정도가 행당동에서 동대문까지 농악을 하며 거리를 누볐다고 한다. 유진형 씨 표현에 의하면 골목 하나를 지나면 돈이 한웅큼씩 모였으며 사람들이 줄지어 뒤를 따랐다고 한다. 그만큼 마수리 농악이 매력이 있었다는 얘기다.
지남기 씨가 고삿반을 어찌나 잘하는지 사람들이 입을 딱 벌리고 쳐다보았다고 한다. 함경도부터 시작해 전라도까지 지역을 읊으면서 불러대는 사설은 끝없이 이어졌다고 한다. 목청 좋지 농악 잘하지 복구 잘 돌리지 정말 삼박자를 갖춘 양반이 지남기 씨라고 말한다. 특히 절이나 여관 그리고 고깃간에서 더 인기가 있었고, 어떤 집에서는 더 좀 잘 놀아달라고 주머니에 돈을 집어넣어주기도 했단다. 이때 유진형 씨는 시간당 5천원씩을 받았는데 아마 지남기 씨는 더 받았을 것이라고 증언한다.
유진형 씨는 1986년 아시안 게임을 축하하기 위해 서울 호암아트홀에 갔던 때를 기억한다. 객석으로부터 큰 박수갈채를 받았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출연료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1994년 마수리 농요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으면서 전국 두레소리 보존회 회원으로 가입하게 되었고, 농악 공연이 좀 더 주기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제는 충주 지역에서의 우륵문화제, 외지에서의 두레소리 공연, 농악놀이 경연대회 등에 참가하면서 마수리 농요는 명실상부 충북을 대표하는 농요와 농악으로 자리매김했다.
유진형 씨는 지남기 씨 사후 마수리 농악의 상쇠를 맡았을 뿐 아니라 충주 국악협회에서도 상쇠를 10년 넘게 했다고 한다. 당시 유진형 씨가 충주 지역의 농악을 이끌고 충북도대회에 나가면 그곳에 지남기 씨가 단양 지역 농악대를 이끌고 나와 경쟁을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지남기 씨가 너무 잘하니까 단양에서 스카우트해 간 것이었다. 충북 농악에서는 충주의 지남기 씨와 청주의 이종환 씨가 라이벌이었다고 한다. 노래와 사설 등 고삿반에서는 지남기 씨가 앞섰고 복구 등 재롱에 있어서는 이종환 씨가 앞섰다고 한다.
유진형 씨는 자신도 두드리는 데는 자신이 있는데 돌리는 건 어렵다고 말한다. 연도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자신의 농악 최고 성적은 전국대회 2등이었다고 한다. 충북 대표 45명으로 구성된 농악대를 이끌고 한 달간 연습하여 얻은 결과였다고 말하면서 만족해한다. 그는 지금도 충주 지역의 농악의 발전을 위해 몰개 등 단체들을 지도하고 있으며, 임창식 조곡동 씨 등과 중원 민속보존회를 이끌고 있다.
유진형 씨는 2002년부터 2006년까지 5년간 마수리 농요보존회장을 지냈고, 현재도 행사가 있을 때마다 상쇠로 마수리 농악을 이끌고 있다. 그에게 꽹과리 장단 몇 가지를 들려달라고 하자 기본 일체, 두마치, 세마치 외에 행진곡 풍의 군악장단, 쩍지기 장단을 들려준다. 쩍지기 장단은 지남기 씨로부터 배운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장단을 구별하기가 참 어렵다. 농악도 그만큼 어렵고 전문적이라는 얘기다. 이 마을에 사는 박용기, 이윤원 씨 등도 꽹과리 장단에 의문이 생기면 그를 찾아 조언을 구한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