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6223 |
---|---|
한자 | 鎭海明洞倭城 |
이칭/별칭 | 사화랑산왜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명동 산1-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주용 |
건립 시기/일시 | 1593년 - 진해 명동왜성 건립 |
---|---|
현 소재지 | 진해 명동왜성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명동 산1-1 |
성격 | 산성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명동에 있는 왜성.
[개설]
진해 명동왜성은 임진왜란 때 명동의 배후 야산에 쌓은 왜성으로 남산왜성[웅천왜성]의 지성으로 알려져 있다. 본 성은 산중턱[80m]을 두 구역으로 나누어 각각 장방형으로 깎은 자연석으로 본성과 외성을 쌓았으며 성석(城石)은 해안에 이르도록 줄지어 있다. 명동왜성의 역할은 진해만의 동쪽 기슭과 거제만의 북쪽 기슭을 감시하여 웅천왜성에 보고하는 것이었다고 짐작되지만, 왜군이 장기간 주둔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명동왜성은 1593년(선조 26) 마쯔우라 시게노부[松浦鎭信]가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 쓰시마 도주이자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사위였던 소 요시토시[宗義智]가 쌓았다는 주장도 있다. 1593년(선조 26) 8월 10일자 이순신의 장계에서도 왜군이 웅천의 3곳에 왜성을 축성하고 있음이 보고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남산왜성에서 약 1년 동안 머물렀던 세스뻬데스 신부의 서간에는 1레구아[약 5㎞]정도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 소 요시토시가 주둔한 성이 있다는 내용이 보이고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도 소 요시토시가 웅천 땅에 주둔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다. 이를 근거로 명동왜성에 소 요시토시가 주둔하였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위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명동 산1-1 일원에 해당한다.
[형태]
진해 명동왜성은 명동 뒷산 높이 80m 정상부를 삭평한 뒤 자연석을 이용하여 장방형으로 본성을 축조하였다. 성의 규모는 둘레 365m, 높이 1~2m에 이른다. 본성의 동·서 양쪽의 2구역에도 각각 장방형의 석루(石壘)를 축조하였으며, 본성 북쪽으로 500m 지점의 산봉우리에도 전방을 살필 수 있는 정방형의 석루 2개소를 축조하였다. 성벽 축조에 이용한 자연석은 큰 것은 140×110㎝, 110×60㎝ 정도이고, 작은 것은 56×35㎝, 30×18㎝ 크기이다.
[현황]
진해 명동왜성의 구조는 본성을 기준으로 동·서쪽의 산 중턱을 두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축성 재료는 장방형으로 깎은 자연석이며, 성벽은 해안에 이르도록 줄지어 있다. 현재 성벽은 대부분 허물어졌으나 성 내외에는 기와편들이 흩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