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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체육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4235
한자 馬山體育會
분야 문화·교육/체육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성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2년 8월 26일연표보기 - 마산 체육회 기성회 설립
개칭 시기/일시 1928년 10월 1일 - 마산 체육 협회 재발족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10년 - 마산 체육회 통합 창원시 체육회로 통합
현 소재지 경상남도 창원시
성격 체육단체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에 있었던 마산 지역 체육을 보급·발전시키기 위한 단체.

[설립 목적]

마산의 각급 아마추어 체육 경기 단체를 총괄하여 이를 대표하여 시민의 체육 향상과 운동 정신의 앙양을 도모하고 건전하고 유능한 시민을 배양함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마산에 근대적인 체육 단체에 대한 기록은 1922년 8월 26일 마산에서 활동하는 여러 체육 단체들을 통일하고, 체육 활동을 장려하기 위하여 마산 체육회를 조직한 것이 최초이다. 1922년 8월 19일 오후 5시 마산 운동계의 어떤 유지의 제안에 따라 마산의 체육인들은 마산 구락부 회관에서 모임을 가졌다. 이때 임시회장은 여 씨였고, 모임의 취지를 설명한 인사는 손문기였다. 참석자들은 여기서 마산 체육회 기성회를 조직하기로 하고, 규칙 기초 위원회 위원으로 손문기 등 3인을 선출하고, 1922년 8월 26일 오후 2시에 마산 구락부 회관에서 창립 총회를 가지기로 하였다.

1928년 10월 1일 마산 체육 협회가 재발족되어 마산 체육계의 발전을 위한 분기점이 되었다. 1928년 3월 제5대 마산 부윤으로 사카가키가 부임해온 것이 이 협회의 창립 계기가 되었다. 초대 마산 체육 협회장직은 사카가키 마산 부윤이 직접 맡았고, 부회장으로는 마산 교육계의 원로인 다나카 겐오우가 추대되었다.

해방 이후 민족적 체육 부흥운동에 뜻을 모은 동호인끼리 지방 체육회를 창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게 되었다. 마산 체육회는 1945년 10월 15일에 성호 국민학교에서 옥종수, 팽삼진, 김성두, 박삼조 등 40대의 체육 동호인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발족하였다. 이 창립 총회에서는 마산 체육회의 초대 회장에 옥종수가 선출되었다. 1950년대의 마산 체육회는 안정된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1962년 최병순 마산 시장이 체육 회장에 추대되었다.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는 스포츠 내셔널리즘이 대두 되었고, 부산시가 경상남도서 분리되어, 마산시가 경상남도 내에 제1의 도시로 부상하게 되었다.

1980년대의 마산 체육[1982~1990]은 엘리트 체육이 강화되었다. 1980년에 출범한 제5공화국은 “스포츠 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체육 정책 및 체육 활동에 역점을 두었다.

1990년대 이후의 마산 체육[1991~현재]은 지방 자치 시대의 개막과 체육의 발전을 이루었다. 제6공화국이 출범하여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시기를 전후하여, 한국 사회는 점차로 민주화, 자율화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 체육 분야 역시 사회의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마산시 체육회통합 창원시 출범과 함께 통합 창원시 체육회로 통합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52년 8월 15일 최초로 제1회 전 마산 종합 체육대회 개최, 1950년대 후반 마산의 중·고등학교에 농구부 창단, 마산에 복싱을 보급하였다. 1957년 8월 14일 성호 국민학교에서 “체육 영화의 밤” 행사 개최하여 체육 선수들에게는 많은 교훈을, 일반인들에게는 체육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였다.

1964년 7월 16일 마산시 체육회의 기관지로 『마산 체육보』 창간하였으며, 1982 제63회 전국 체육 대회 개최하였다. 1983년 10월 27일~29일 제22회 경남 도민 체전 개최, 1991년 3월 15일 3·15의거 제1회 단축 마라톤 대회 개최하였다.

통합 창원시 출범으로 인해 2010년 통합 창원시 체육회로 통합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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