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3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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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坪里 |
이칭/별칭 | 대평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종호 |
개설 시기/일시 | 1910년 - 마산부에 편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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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14년 - 대평리 창원군으로 편입 |
변천 시기/일시 | 1980년 - 대평리 의창군으로 편입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 대평리 마산시로 편입 |
법정리 | 대평리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대평리 |
성격 | 법정리 |
가구수 | 68가구 |
인구[남,여] | 136명[남자 73명, 여자 63명]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한국 지명 총람』에 대평리(大坪里)는 큰 들 가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대평’은 ‘큰 들’을 뜻하는 ‘한 뫼’에 가까운 표기로 읽어야 한다. ‘한 뫼’의 ‘한’은 크다[大]의 뜻이고 뫼는 들[坪]을 뜻하는 표기로 볼 수 있다. 한편 대평리의 옛 이름인 대산리의 ‘대산’도 ‘한 뫼’로 읽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대산’과 ‘대평’은 ‘한 뫼’를 나타낸 등가 표기이다. 대평 마을 동남쪽에 있는 들을 함들이라 하였는데 이것은 ‘한 뫼’에서 변이된 ‘함 뫼’가 ‘함 들’로 대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대산리는 ‘큰 들에 있는 마을’이라는 생성 의미를 지니는 ‘한뫼 마을’을 차자한 지명이다.
[형성 및 변천]
진북면의 옛 이름은 진해현 북면이다. 『여지도서』에는 방리 이름으로 처음 나오며 이후 지리지에도 확인된다. 1895년(고종 32)에 진주부 진해현 북면이었다가 1908년(순종 1)에 창원부 진북면이 되었다. 이후 1910년에 마산부 진북면이 되었고 1914년에 창원군 진북면이 되었으며 1995년에 마산시 진북면이 되었다. 진북면은 진해현의 진과 진해현의 북면을 각각 취해 만든 한자어 지명이다.
『경상도 읍지』에 나오는 대산리(大山里)는 지금 대평리(大坪里)의 옛 이름으로 추정된다. 대산리가 『경상도 읍지』에서 진해현 북면에 속한 방리로 나오나 『영남 읍지』에서 대평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자연 환경]
대평리 뒤로 야반산[342m] 자락이 마을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으며 양 옆 아래로 인곡천과 덕곡천이 흐른다.
[현황]
대평리의 북으로는 이목리, 서로는 덕곡리, 동으로는 인곡리, 남으로는 예곡리, 지산리가 있다. 대평리에는 지산 저수지가 있고 옛 마을로 대평 등이 있다.
마산 대평리 고분군은 대평리(大坪里) 대평 초등 학교를 에워싼 해발 50~60m의 구릉 일대에 있는 원삼국 시대와 가야 시대의 고분군이다. 주로 구릉의 남·서쪽에 입지하며 30여기의 고분이 발견되었다.
마산 대평리의 유물 산포지 및 조개 더미는 대평리 대평 초등학교를 에워싼 해발 50~60m의 구릉 일대에 있는 원삼국시대와 가야시대의 유물산포지이다. 주로 구릉의 북쪽에 위치하며 유물의 분포지가 매우 넓은 것으로 보아 당시의 집자리가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 산포지의 아래쪽에는 가야 시대 조개 더미[패총(貝塚)]가 있는데 조개 더미의 퇴적층에서 유물 산포지의 출토 유물과 동일한 유물이 발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