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14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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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九峰祠 |
영어의미역 | Gubongsa Shrine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화양리 48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권순강 |
성격 | 사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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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목조와가 |
건립시기/일시 | 1786년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1.5칸 |
소재지 주소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 482 |
소유자 | 김해김씨 사정공파 |
관리자 | 김해김씨 사정공파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 곡목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귀의 사당.
[개설]
구봉사(九峰祠)는 김해김씨 창원입향조 금산공(琴山公) 김귀(金龜)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김귀는 세종 대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춘추관편수관 및 경연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이극돈에 의해 무고되어 용인에서 창원으로 이거하였다. 1485년 향년 60세에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동읍 금산리에 있다. 묘소 앞에 경모재(敬慕齋)라는 재실이 있다.
[위치]
동읍 화양리 곡목마을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곡목마을은 행정명으로는 화양리라 하고, 본동이 있는 마을을 곡목마을이라 한다. 동읍의 읍사무소에서 지방도 30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약 2㎞ 정도 가면 왼쪽 편에 비석군이 있는데, 바로 곡목마을 입구이다. 여기에서 약 500m 정도 들어가면 용계서당·도남서원·효경당 등이 있고, 그 다음에 구봉사가 있다.
[변천]
구봉사는 1786년(정조 10) 화산사(花山祠)로 건립되어, 유계(柳溪) 김윤종(金胤宗)과 곡천(谷川) 김상정(金尙鼎)[1668~1729]의 위패를 모셨다.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1976년에 입향조인 금산공 김귀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중건되었다.
[형태]
정문에 해당하는 1칸 규모의 유정문(由正門)과 본당인 구봉사가 나란하게 배치되어 있다. 구봉사는 정면 3칸, 측면 1.5칸 규모이고, 어간이 협칸보다 넓게 구성되어 있다. 바닥은 모두 마루로 이루어져 있고, 좌우 측면과 배면에는 벽으로 둘러싸 정면성을 강조하고 있다. 툇마루와 사당 내부 사이에는 불밝이문을 달았는데, 어칸에는 두 짝, 좌우 협칸에는 각각 1기가 달려 있다. 기단은 가공한 돌을 외벌대로 쌓고, 다음은 초석을 올렸다. 기둥은 각주와 원주를 혼용하여 사용하였다. 건축양식은 정면과 좌우 툇간 부분에만 소로수장을 하였으며, 나머지는 장여수장으로 간략히 처리하였다. 도리는 각주를 사용하였으며, 지붕은 부연이 있는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처리하였다. 기와는 암수막새를 모두 사용하였다.
[현황]
현재 금산공 김귀의 제향은 곡목종중에서만 행하고 있다. 제향일은 음력 3월 7일이다.
[의의와 평가]
구봉사에서 약 20m 정도 떨어진 곳에 사당이 없는 도남서원과 효경당이 있는데, 도남서원과 구봉사를 연결시켜 보면 구봉사는 단순한 반가에 부가된 사당이기보다는 서원의 사당으로 판단된다. 즉 구봉사는 도남서원의 사당에 해당되고, 도남서원은 강당에 해당되며, 효경당은 동서재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 후기 서원의 변화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