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8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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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田得雨 |
영어공식명칭 | Jeon Deuk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근호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427년 - 전득우 묘소에 세종이 비를 하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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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부여 - 충청남도 부여군 |
묘소|단소 | 전득우묘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봉정리 679-1 |
성격 | 문신 |
성별 | 남성 |
본관 | 남양(南陽) |
대표 관직 | 형조참의 |
[정의]
조선 전기 부여 출신의 문신.
[가계]
전득우(田得雨)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아버지는 전주(田柱)이다. 부인은 정씨(鄭氏)이고, 아들은 판중추원사 전흥(田興)이다.
[활동 사항]
전득우는 고려 말 부여에서 태어났다. 조선 초 형조참의를 역임하였고, 자세한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묘소]
전득우의 묘소는 부여군 석성면 봉정리 679-1에 있다. 전득우묘는 1980년 10월 23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2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묘소에는 1427년에 건립된 비문이 남아 있는데, 세종이 직접 하사하였다고 하여 하사비문(下賜碑文)이라고 한다.
[상훈과 추모]
전득우는 사망한 뒤에 아들 전흥의 공로로 가선대부 한성부윤에 증직되었다. 부인 정씨도 정부인(貞夫人)으로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