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6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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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外山 無量寺 浮屠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125-1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윤형원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435년 - 김시습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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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493년 - 김시습 사망 |
건립 시기/일시 | 1495년경 - 무량사김시습부도 건립 |
건립 시기/일시 | 1642년 - 계영당 부도 건립 |
건립 시기/일시 | 1762년 - 표월당 부도 건립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2년 6월 10일 - 외산 무량사 부도군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56호 지정 |
현 소재지 | 외산 무량사 부도군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125-1 |
원소재지 | 외산 무량사 부도군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125-1 |
성격 | 승탑 |
양식 | 팔각원구형|팔각원당형|석종형 |
관련 인물 | 김시습|강귀성 |
재질 | 석재 |
크기(높이) | 1.29m[취죽당 부도]|2.84m[무량사김시습부도]|1.53m[표월당 부도]|1.31m[풍계당 부도]|1.18m[계영당 부도]|1.71m[청신사 강귀성 부도] |
소유자 | 무량사 |
관리자 | 무량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56호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에 있는 조선 시대 승탑군.
[개설]
외산 무량사 부도군(外山 無量寺 浮屠群)은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에 있는 조선 시대 승탑들이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 각 사찰별로 승탑의 건립이 성행하면서 사찰 입구에 승탑들을 모아서 조성하는 경우 많았는데, 무량사의 승탑군도 같은 배경에서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외산 무량사 부도군은 2002년 6월 10일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56호으로 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외산 무량사 부도군은 불도들에게 고승들에 대한 숭배와 함께 사찰의 역사와 위상을 현창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위치]
외산 무량사 부도군은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125-1번지에 있다. 현재 도로가 개설되기 이전 무량사로 들어가는 진입로였던 곳에 있다.
[형태]
외산 무량사 부도군의 형태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무명 부도는 높이 1.95m로, 기단부와 지붕돌은 평면이 팔각형이고, 탑신은 원구형이다. 하대석은 연잎이 길쭉한 복련문으로 장식하였으며, 상대석은 연잎 형태의 연화문을 이중으로 새겨 하대석과 대칭되도록 하였다. 탑신석은 전형적인 원구형 양식이다. 상륜부는 지붕돌과 동일하며 상하에 연화문을 새겼으며, 위에 올렸을 것으로 보이는 보주석은 남아 있지 않다.
두 번째 취죽당 부도는 높이 1.29m로, 조선 후기 크게 성행한 종모양[석종] 부도 형태를 따르고 있다. 석종은 자연석에 가까운 넓은 대석을 마련하여 올렸으며, 하부의 지름이 넓고 상부로 올라가면서 조금씩 좁아지는 형태로 치석하였다. 상륜부는 일정한 높이의 돌기대를 받침으로 삼아 연봉형 보주를 올렸다.
세 번째 무량사김시습부도는 높이 2.84m로,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의 사리를 모신 부도이다. 무량사 부도군에서 건립 시기가 가장 빠르고 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 성행한 팔각원당형 양식을 취하고 있다.
네 번째 표월당 부도는 높이 1.53m로, 지대석을 자연석에 가까운 대석으로 마련하였으며, 석종이 결구되는 부위는 일정한 형태로 괴임을 마련하고 위에 석종을 올렸다. 석종은 가운데가 약간 볼록한 형태이며 앞면은 명문을 새기기 위하여 납작하게 치석하였다. 석종 상부에는 일정한 높이의 돌기대를 받침대로 마련한 후 위에 연화문이 새겨진 보주를 올려 마무리하였다.
다섯 번째 풍계당 부도는 높이 1.31m로, 전형적인 종모양 부도 양식을 취하고 있다. 지대석은 자연석에 가까운 돌로 마련되었으며, 위에 석종을 올렸다. 석종은 하부의 지름과 상부의 지름이 거의 동일하여 원주형 기둥을 세워 놓은 듯하며, 앞면에 명문을 세로로 음각하였다. 상륜부는 상부로 올라가면서 좁아지는 3단의 받침을 마련한 후 반원형의 보주를 올려 마무리하였다.
여섯 번째 무명 부도는 결실 혹은 파손된 상태이다. 현재 기단부의 지대석으로 활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파손된 일부 부재만 남아 있다.
일곱 번째 계영당 부도는 높이 1.18m로 석종 부도이다. 석종은 하부와 상부의 지름을 약간 좁게 한 원주형 기둥 형태로 치석하였으며, 앞면에는 사각형으로 구획한 후 명문을 음각하였다. 상륜부는 3단의 받침을 마련하여 보주를 올리도록 하였으나 보주는 파손되어 남아 있지 않다.
여덟 번째 무명 부도는 높이 1.16m로, 파손이 심하여 4매의 지붕돌만 남아 있지만, 부도의 양식으로는 보기 드물게 석탑형 양식이 채용되었다.
아홉 번째 무명 부도는 높이 2.02m로, 원구형 양식의 부도로 기단부와 지붕돌은 팔각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탑신은 원구형으로 마련하였다. 기단부는 자연석에 가까운 넓은 지대석을 마련하여 위에 팔각의 대석을 올린 후 복련문이 장식된 하대석을 결구하였다.
열 번째 청신사 강귀성 부도는 높이 1.71m로, 원구형 양식을 따르고 있다. 기단부는 팔각으로 하대석과 상대석은 연화대석을 결구하였다. 하대석과 상대석의 연화문은 연잎이 기다란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사이에 연봉형 장식이 있는 연화문을 추가적으로 새겼다. 이러한 수법은 조선 후기 이후의 수법이다. 중대석은 표면에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파손었다가 새롭게 보강한 석재로 보인다. 탑신은 가운데가 볼록한 원구형이다. 지붕돌은 처마 끝에 높게 돌출된 귀꽃을 장식하였으며, 낙수면은 급경사를 이루도록 치석하였다. 지붕돌 상면에는 모서리마다 복련문을 새기고, 위에 보주를 올려 마무리하였다.
[금석문]
외산 무량사 부도군 중 취죽당 부도에는 “취죽당묘안(翠竹堂妙安)”, 표월당 부도에는 “능허적손 표월당대사일지(?)탑 상지삼십구년임오사월일건(凌虛嫡孫 月堂大師一之[?]塔 上之三十九年壬午四月日建)”, 풍계당 부도에는 “풍계(楓溪)”, 계영당 부도에는 “청허적손 호계영휘태수 숭정십□년 임오오월일(淸虛嫡孫 號桂影諱太守 崇禎十□年 壬午五月日)”, 청신사 강귀성 부도에는 “청신사강귀성선생정골지탑 무양사주지박자진 신도전원 사자창호 불기이구팔팔년 신축구월일입(淸信士姜貴成先生精骨之塔 無量寺住持朴字振 信徒全員 嗣子昌鎬 佛紀二九八八年 辛丑九月日立)”이라는 내용의 금석문이 새겨져 있다.
[의의와 평가]
외산 무량사 부도군에는 청신사 강귀성 부도와 같이 일반인들의 유골을 봉안한 사리탑이 승려들의 승탑들과 함께 조성되어 있다. 불교적인 세계관과 아울러 불교적인 장례법이 널리 있었음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