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579
한자 扶餘 石城山城
영어공식명칭 Seokseongsanseong Fortress, Buyeo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현내리 산83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최병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63년 1월 21일연표보기 - 부여 석성산성 사적 제89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부여 석성산성 사적으로 변경 지정
현 소재지 부여 석성산성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현내리 산83 지도보기
성격 산성
양식 포곡식|테뫼식
크기(높이,길이,둘레) 1,605m[1차 외성 둘레]|751m[2차 내성 둘레]|607m[3차 내성 둘레]
소유자 부여군 등
관리자 부여군
문화재 지정 번호 사적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현내리에 있는 백제 시대의 산성.

[개설]

부여 석성산성현내리 서쪽의 야산 정상부에 자리한 3중 석축산성이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8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사적으로 변경되었다.

[건립 경위]

부여 석성산성사비도성에서 강경 및 논산으로 연결되는 남쪽 외곽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6세기 전반에 축성된 대규모의 거점산성이다.

[위치]

부여 석성산성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현내리 산83번지에 있다. 석성면의 서쪽에 금강을 따라 높게 솟아 있는 용마산과 파진산의 산줄기 한가운데 높이 185.5m의 정상부에 있다.

[형태]

부여 석성산성은 정상부를 둘러싼 두 겹의 내성과 정상부 및 경사면을 둘러싼 외성이 확인된다. 가장 외곽에 있는 1차 외성은 3개의 능선과 2개의 골짜기를 감싸는 형태로 평면 장방형에 가까우며, 둘레 1,605m의 포곡식을 이룬다.

1차 외성 성벽은 협축식과 편축으로 구분된다. 발굴 조사는 남동벽의 진입부에서 진행되었고, 성벽은 기저부를 암반까지 굴착 후 협축으로 쌓아 올렸다. 성벽 폭은 7m 정도이며, 성돌은 잘 치석되지 않아 불규칙한 것을 사용한 허튼층쌓기를 하였다. 백제 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2차 내성은 정상부의 2개 능선과 완만한 곡부 2개의 일부를 감싸는 형태로 평면 불규칙 방형에 가까우며, 둘레 751m의 테뫼식을 이룬다. 2차 내성 성벽은 서벽 일부가 잔존한다. 단면 조사를 통하여 백제 말에 초축된 이후 2번에 걸쳐 통일 신라 시대에 개축이 이루어졌음이 확인되었다. 성벽은 경사면을 굴착 정지 후 잘 다듬은 성돌을 사용한 바른층쌓기를 하였다. 내외벽 협축 조성 후 안쪽으로 흙다짐하여 성내지면을 조성하였다. 가장 안쪽에 있는 3차 내성은 가장 북쪽에 있으며, 정상부 일원을 둘러싼 평면 불규칙 장타원형에 가까운 둘레 607m의 테뫼식을 이룬다. 3차 내성 성벽은 내외 협축식으로 쌓았다. 성돌은 다듬은 성돌을 사용한 바른층쌓기를 하였고, 단면 조사를 실시하지 않았지만 안쪽은 2차 성벽과 유사할 것으로 보인다.

성내에서는 집수지와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성돌은 다듬은 성돌을 사용한 바른층쌓기 하였다. 발굴 조사를 통하여 확인된 2차 성벽 안쪽에서는 고려 시대 건물지가 확인되었고, 계곡을 경유하는 성벽에는 수구지가 무너진 상태로 확인된다. 3차 성벽 내에서는 평면 원형의 집수지가 확인된다. 통일 신라 시대에 초축된 후 조선 시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벽면이 계단식으로 이루어진 석축 집수지로 외곽 배수구, 호안석렬, 출수구 등도 확인된다. 규모는 지름 7.5m, 잔존 깊이 3.4m이다.

[의의와 평가]

부여 석성산성사비도성을 방어하기 위하여 축성된 거점성 가운데 하나이다. 규모와 성격면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였던 것으로 파악되며, 660년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3일간 치열한 격전이 이루어진 곳으로 중요한 유적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