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438
한자 扶餘古蹟保存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헌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15년연표보기 - 부여고적보존회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9년 2월 - 부여고적보존회 재단법인 승인
성격 기관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부여군에 있던 부여 일대 고적 보존 및 조사 활동 기관.

[설립 목적]

일제 강점기 일제는 일선동조론에 바탕을 둔 일본과 조선의 동화 정책을 실시하였다. 동화 정책을 고고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하여 경주, 부여 등 고도(古都)에 대한 고적 조사 및 고적의 재해석이 이루어졌다. 특히 부여 지역의 경우 고적 조사와 고적에 대한 재해석을 통하여 백제 사비기와 일본 고대 아스카[飛鳥] 시기와의 밀접성과 친연성을 강조하고, 이러한 바탕 위에 재구성된 고적을 식민지 조선인에게 보여 주고자 하였다. 부여고적보존회(扶餘古蹟保存會)는 이러한 배경에서 설립되었다.

[변천]

부여고적보존회는 1915년에 발족하였으며, 1927년부터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하여 2만 원 적립을 목표로 면장회의 등을 통하여 각 면에 모금액을 할당하는 등 재정 확충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아울러 부족한 진열관 시설을 확충하고자 박물관 설치를 위한 여론전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1928년 부여고적보존회는 재단법인으로 변경하기 위한 진정서와 취지서를 조선총독부에 제출하였고 결국 1929년 2월 재단법인 허가를 받았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부여 지역의 고적 조사는 1909년 세키노 타다시[関野貞]에 의하여 처음 시도되었고, 고분과 사지(寺址)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세키노는 부여의 고적 조사 결과를 토대로 고대 한국[백제(百濟)]·중국[양(梁)]·일본[왜(倭)] 간 문화 관계와 영향 등을 설정하였다. 즉, 백제 사비기 문화가 중국의 영향을 받았고, 다시 일본으로 전달되어 아스카 문화가 형성되었다는 문화 전달자설을 역설하였다. 한민족 문화의 고유성을 부인하고 백제 문화를 중국 문화의 아류 또는 단순 전파자 역할로 왜곡 해석한 세키노의 관점은 일제 강점기 내내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부여고적보존회는 부여 고적에 대한 탈맥락적 해석을 통하여 고대 일본과 백제와의 관계를 동화론적 관점에서 재정립하였다. 특히 낙화암(落花岩)[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고란사(皐蘭寺)[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부여 청마산성(扶餘 靑馬山城)[사적] 등에 대한 재해석을 통하여 일본과의 친연성을 강조함으로써 일제의 동화 정책을 역사적 사실 관계로 확정 짓고자 하였다.

부여고적보존회는 고적 보존, 유물의 보존 및 수집, 고적 유물에 관한 조사 연구, 관람자의 편의 도모를 위한 제반 계획 및 설비, 그 외 고적 유물의 보존에 관한 사항 및 고적 유물을 사회에 소개하는 업무를 맡았다.

[의의와 평가]

부여고적보존회는 일제 강점기에 백제 고적을 조사·보존한 단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지만 일제 동화 정책의 맥락에서 행하여졌다는 점은 한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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