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4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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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嵎夷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김기섭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웅진도독부 소속 지방 행정 구역.
[개설]
우이(嵎夷)는 고대 중국에서 해가 뜨는 동쪽 바닷가 이민족의 땅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는데, 당(唐)나라가 백제를 공격할 때 군사 진격로의 이름을 ‘우이도(嵎夷道)’라 하였다. 또한 백제를 멸망시킨 뒤에는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와 13개 현(縣)을 설치할 때 백제왕도 사비 지역에 설치한 현을 우이현(嵎夷縣)이라 하였다.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일대로 추정한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5 신라본기 태종무열왕 7년(660) 3월 조 및 『신당서(新唐書)』 권3 고종(高宗) 현경(顯慶) 5년 3월 조, 『자치통감(資治通鑑)』 권200 당기(唐紀)16 고종 현경 5년 조 등에는 당나라 고종이 백제를 공격하기 위해 13만 대군을 파견할 때 좌무위대장군(左武衛大將軍) 소정방(蘇定方)을 신구도행군대총관(神丘道行軍大摠管)으로 삼고 신라의 태종무열왕을 우이도행군총관(嵎夷道行軍總管)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에 새겨진 ‘부여당평백제국비(扶餘唐平百濟國碑)’에는 소정방의 관직이 ‘사지절신구우이마한웅진등14도행군대총관·좌무위대장군·상주국·형국공(使持節神丘嵎夷馬韓熊津等一十四道大摠管左武衛大將軍上柱國邢國公)’으로 표기되어 있다. 중국 섬서성(陝西省) 서안시(西安市) 남쪽의 예씨(禰氏) 가족 묘지에서 발견된 예군묘지명(禰軍墓誌銘)에는 예군이 웅진 우이 출신[熊津嵎夷人]이라고 적혀 있다.
[내용]
『삼국사기』 권37 지리지4 도독부13현 조에는 맨 앞에 우이현(嵎夷縣)이 적혀 있어 당나라가 백제의 옛 수도였던 사비성(泗沘城)에 새로 설치한 현으로 추정한다. 2001년에는 부여 관북리 유적의 연못터에서 ‘우이(嵎夷)’라는 붓글씨가 적힌 목간이 출토되었는데,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백제 때 사비도성의 동쪽 구역 지명이 우이였다고 보기도 한다.
[의의와 평가]
우이는 『상서(尙書)』 권1 요전(堯典)에서 해 뜨는 동쪽 바닷가를 가리키는 지명으로 처음 나오고, 이를 『후한서(後漢書)』 권85 동이열전 서문에서 인용하여 ‘9종의 동쪽 오랑캐[九夷]’가 사는 곳으로 소개하였다. 이에 중국에서는 흔히 산동반도 방면을 가리키는 지명으로 이해하였는데, 660년 당나라가 백제를 공격하면서 군사 진격로에 ‘우이도’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백제 멸망 뒤에는 백제 땅에 우이현을 설치함으로써 한반도 방면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