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9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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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夢奎 神道碑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죽정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사현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510년 - 이몽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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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563년 - 이몽규 사망 |
건립 시기/일시 | 1837년 - 이몽규 신도비 건립 |
현 소재지 | 이몽규 신도비 - 충청남도 보령시 죽정동 |
성격 | 신도비 |
양식 | 팔작지붕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35㎝[대좌 높이]|100㎝[대좌 너비]|70㎝[대좌 두께]|142㎝[비신 높이]|56㎝[비신 너비]|27㎝[비신 두께]|40㎝[이수 높이]|90㎝[이수 너비]|40㎝[이수 두께]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죽정동에 있는 이몽규의 신도비.
[개설]
이몽규 신도비(李夢奎 神道碑)는 1837년(헌종 3) 홍양해(洪量海)가 짓고 한후현(韓後賢)이 글씨를 쓰고 김연행(金淵行)이 전액(篆額)을 썼다.
[이몽규의 생애]
이몽규(李夢奎)[1510~1563]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창서(昌瑞), 호는 천휴당(天休堂), 청천당(聽天堂)이다. 아버지는 이인신(李仁臣)이며, 어머니는 광주 반씨(光州 潘氏) 반희(潘熙)의 딸이다.
종실인 이모부 흥녕부정(興寧副正) 이린(李磷)의 후사가 없었기에 이몽규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모부의 양자(養子)로 들어갔다. 1540년(중종 35) 경자식년사마시(庚子式年司馬試)에 입격한 후 성균관(成均館)에서 수학하였으나, 얼마 되지 않아 나오게 되었다. 1547년(명종 2)에는 처가의 별장이 보령(保寧)에 있어서 보령으로 이주하게 되고, 그곳에 서실을 짓고 ‘천휴(天休)’라 명명하여 오로지 시문을 짓거나 독서에 전념하였다. 1563년(명종 18) 병으로 5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이후 이몽규는 보령 인근의 화암서원(花巖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위치]
이몽규 신도비는 보령시 죽정동 봉황산에서 동북쪽으로 난 계곡 끝의 대천천 가까이에 있다. 보령아산병원에서 남쪽으로 약 525m 떨어져 있다.
[형태]
이몽규 신도비는 대좌, 비신, 옥개형 이수로 구분된다. 대좌의 크기는 높이 35㎝, 너비 100㎝, 두께 70㎝, 비신은 높이 142㎝, 너비 56㎝, 두께 27㎝, 이수는 높이 40㎝, 너비 90㎝, 두께 40㎝이고, 팔작지붕 양식이다. 신도비는 비각으로 보호되고 있다.
[금석문]
신도비문은 『율곡전서(栗谷全書)』에 「천휴당이공몽규행장(天休堂李公夢奎行狀)」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