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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738
한자 花原君影幀
영어음역 Hwawongun Yeongjeong
영어의미역 Portrait of Hwawongun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신석리 608[신평길 71-7]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진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3년 8월 18일연표보기 - 화원군영정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81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화원군영정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성격 서화류|초상화
제작시기/일시 1728년연표보기
소장처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신석리 608[신평길 71-7]지도보기
소유자 권영갑
문화재 지정번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신석리 봉강영당에 있는 초상화.

[개설]

화원군영정은 1728년(영조 4)에 그려진 화원군(花原君) 권희학(權喜學, 1672~1742)의 영정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 공이 있는 인물에게 공신 호칭을 주고, 공신도상(功臣圖像)을 그려 봉안하는 작업이 조선 전기부터 활발하였는데, 화원군영정은 공식적인 공신 도상으로서는 마지막으로 그려진 것으로, 57세 때의 권희학을 그린 초상이다.

권희학영조 때의 무신으로 1728년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분무공신(奮武功臣) 3등이 되었고 종2품의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라 화원군에 봉해졌다. 권희학은 안동부사 시절 자신을 발탁해 출세의 길을 열어준 최석정(崔錫鼎)의 은혜를 끝까지 잊지 않고 그 집안을 돌보고 문집을 간행하며 토지를 구해 사당에 바치는 등 지극한 노력을 다했다.

만년에 고향인 안동시 풍천면 구담리로 돌아와 집 한 채를 지어 감고당(感顧堂)이라 짓고 조용히 여생을 보냈다. 1742년(영조 18) 71세로 세상을 떠나자 영조는 나라의 지관을 보내 장지를 물색케 하고, 친히 예관을 보내 제사 지내게 했으며, 영정(影幀)을 대궐 벽에 걸게 하여 9일 동안이나 보고 내려보냈다고 한다. 1993년 8월 18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8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2009년 현재 소유자는 권영갑이다.

[형태 및 구성]

화원군영정의 규격은 180×117㎝이다. 짙은 녹색의 단령(團領)을 입고, 오사모(烏紗帽)를 썼으며, 쌍학 흉배(胸背)에 각대(角帶)를 두른 관복 정장의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으로서 공신 도상의 상용(像容) 형식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다. 좌안 구분면(左顔九分面)의 모습을 보여주는 안면의 표현은 전체적으로 갈색계인데 적갈색 선으로 윤곽과 이목구비를 나타내고 선염(渲染)으로 음영을 처리하여 요철감을 표현하고 있으며, 눈꺼풀 등에 삽입된 홍기는 인물의 면모를 좀 더 생생하게 전달해 주고 있다.

사모(紗帽)의 꼬리가 길쭉하며, 각이 지고, 모자의 높이가 상당히 높은 것은 이 시대의 모제(帽制)를 시사해 주며, 의자에 호피를 깔고 앉아 있는 것은 17세기 말 이후 새롭게 나타난 양식으로서, 17세기 중엽까지 유행했던 바닥의 채전(彩氈)은 사라져 표현되지 않았다. 현재 후손들이 마모를 염려하여 모사해 둔 별본영정(別本影幀)과 「영종어제가(英宗御製歌)」, 「영종조어제시(英宗朝御製詩)」, 「정종조어제시(正宗朝御製詩)」 등이 함께 보존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뛰어난 화가의 솜씨는 아니나, 권희학의 인격과 개성을 충분히 담아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권희학은 안동의 향리 출신으로서 가의대부에 올라 공신 도상까지 그려진 특이한 인물로서, 능력에 따라 이례적인 신분 상승도 가능했던 영조시대 사회상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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