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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때 초대 여수군수 오횡묵의 문집 및 정무 일지. 고종 연간 문인이자 지방관인 오횡묵(吳宖默)[1834~?]이 1897년 5월부터 전라남도 여수군 군수로 있으면서 적은 지방행정에 관한 기록. 3책으로 1책에 시 259수, 2책에 시, 256수 3책에 송(頌) 1, 서(序) 10, 기(記) 7, 제문(祭文) 15, 상량문(上樑文) 1, 전문(箋文) 1, 율령문(律令文) 1, 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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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운동. 1919년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확대될 당시 여수 지역에도 「독립선언서」가 순천을 통해 율촌면과 여수읍 내로 전달되었다. 이후 4월 1일 쌍봉면·소라면·율촌면의 3개 면에서 산발적인 소규모의 만세 운동이 일어났고, 또 그날 밤 돌산면·화정면·남면·삼산면 등 4개 면에서도 일부 어민들이 산발적인 시위 운동을 벌였다고는 하나 본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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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병담(康秉談) 목사는 평양 숭실학교를 졸업하고 제주도와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의 우학리교회에서 전도사로 활동하였다. 이후 1940년 5월경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성삼교회 목사로 재직하면서 식민 정치의 종말을 말세론과 비유하여 설교하는 등 교인들에게 일제의 국체(國體) 변혁과 항일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던 중 19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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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강화선(康華善)은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의 우학리교회, 제주특별자치도의 모슬포교회 등 7곳의 교회를 개척한 강병담(康秉談) 목사의 6남매 중 장녀이다.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나 1907년부터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성장하였다. 강화선은 전라남도 광주 수피아여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10일 전남 광주군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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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고종 22) 4월 15일 영국이 동양함대를 파견하여 거문도를 불법 점령한 사건. 19세기 중엽 산업자본이 독점자본으로 성장하면서 해외 시장을 개척하려는 서구 열강들의 각축은 더욱 치열해져 식민지 침략의 손길이 동북아시아까지 뻗치기 시작하였다. 1860년 러시아는 한반도 동해(東海)에 임해 있는 블라디보스토크를 강점하였으나, 이 항구는 겨울철에 얼어붙어 해만(海灣)으로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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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거문도 점령 사건 이후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유촌리에 설치된 진. 영국 해군의 거문도 점령 사건이란 1885년(고종 22)부터 1887년까지 약 2년 동안 영국동양함대사령관 포트 해밀턴 중장이 불법 점령한 사건을 말한다. 영국군 철수 후 경략사 이원희를 보내 동도 유촌리에 거문진을 설치하였고, 첨사 겸 수방장 신석효로 하여금 창사를 건립케 하였다. 그러나 8년 만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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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여수애양병원 안에 있는 일제 강점기 세워진 포사이드 의사 기념비. 1909년(순종 3) 미국 남장로교에서 파송한 의사 W. H. 포사이드(W. H. Forsythe)가 한센병 환자 치료와 병원 건립에 도움을 준 공을 기리기 위하여 고 포싸잍 의사 기념비를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봉선리 광주 나병원 안에 건립하였다. 고 포싸잍 의사 기념비는 192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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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 설립되었던 일본인 회사. 한일합병이 되자 일본 정부는 한반도 전역에 걸쳐 본격적인 식민 작업에 들어갔고, 고뢰농장이 여수에 진출한 것도 이 식민 사업의 일환이었다. 이후 고뢰농장은 일본 정부의 식민지 정책을 등에 업고 자본다운 자본이 없던 여수 지방에서 많은 축재를 하였다. 1911년 3월 다카세[高瀨]명명회사(命名會社) 여수지점의 이름으로 여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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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1930년 3월 여수공립수산학교(麗水公立水産學校) 재학 중 윤경현(尹炅鉉)·이용기(李容起) 등과 함께 비밀결사인 독서회를 조직하여 사회과학을 연구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광주학생운동이 전국으로 파급되면서, 각급 학교에서는 독서회 형태의 항일비밀결사가 결성되었다. 동 단체 역시 그와 같은 배경에서 조직되었으며,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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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곽찬신(郭贊信)은 전라남도 여수 출신으로 광주 전라남도공립사범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9년 6월 조길룡(曺吉龍) 등이 비밀리에 조직한 독서회에 가입해 독립 의식을 키우며 항일 운동을 모의했다. 1929년 11월 12일 전개된 광주 학생 항일 운동에 참가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93년 건국포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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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곽희주(郭喜主)는 1903년 10월 2일 전라남도 여수시 서정동에서 태어났다. 전라남도 목포의 정명여학교[현 목포정명여자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1년 11월, 『동아일보』 등을 통해 워싱턴회의[1921년 11월 12일부터 1922년 2월 6일까지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회의]가 개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선 민족 대표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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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여수 지역의 독립운동은 주로 청년과 학생층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919년 3·1운동 당시 여수 지역에서는 일부 면에서 산발적 시위는 있었으나 대규모 만세시위에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그러나 3·1운동에 가담했던 재경 여수유학생들이 조직한 맞돕회를 비롯한 청년단체를 중심으로 항일의 기운이 유지되었는데, 이는 곧 태평양전쟁 후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진 1942년에 벌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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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중앙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때 설립된 제일은행의 지점 건물. 여수관광 중심지인 여수시 중앙동 691[통제영5길 7]에 위치해 있다. 구 제일은행 여수지점의 건물은 일제강점기 말까지 조선식산은행 여수지점의 건물이었다. 조선식산은행은 해방 후 한국식산은행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54년에 한국저축은행은 한국식산은행의 건물과 직원을 승계하여 한국산업은행으로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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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에 있는 지신(地神)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 사직단은 국토의 주인인 사(社)와 오곡의 우두머리인 직(稷)의 두 신위(神位)에 제사를 드리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직단이 설치된 것은 삼국시대부터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고려 시대인 991년(성종 10)에도 사직을 세웠는데, 1014년에 강감찬의 건의에 따라 수축되었다. 조선왕조가 들어선 1393년(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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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출신 교육자이면서 서예가. 여수 출신 교육자로 후학을 양성하고 여수 지역에 음악 단체를 창립하여 지도하고, 여수시교육장과 문교부 교육과정 심의위원 등 교육 관료로서 헌신하였으며, 말년에는 서예가로 활동하였다. 여수시 봉산동 출신으로 대구사범대학을 졸업 하고 한 때 여수서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일본 동경성악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경성상공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광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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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향토 사학자. 김계유(金鷄有)는 1925년 8월 15일 지금의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안포리 세포마을에서 태어나 유년기에 여수리 소라면 가사리 농곡마을로 이주하였다. 19세에 일본 오사카의 송전중학교를 졸업하고, 20세 때인 1944년 여천군청 공무원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보성군청을 거쳐 1969년 퇴직하였다. 광복 전 김계유는 일본인 편강의가 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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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권문(金權文)[1912~1983]은 1930년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항일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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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프로 권투 세계 챔피언. 함경북도 북청 출신으로 월남하여 여수에 정착하였다. 방호남 사범의 지도로 권투를 시작하여 전국을 석권하고, 국가대표를 거친 후 1966년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미들급 챔피언에 올라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챔피언이 되었다. 1·4후퇴 때 가족과 함께 월남하였고, 여수여항중학교 교장선생님의 권유로 복싱에 입문하였다. 방호남 사범의 지도하에 ‘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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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정치인 및 경제인. 은행 근무를 시작으로 경제인으로 활동하다가 국회의원과 여수군수를 지낸 정치인이다. 여수시 서교동에서 출생하여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했고, 해동은행, 한성은행, 동아일보 여수지국 등에서 근무했다. 1948년 대한독립촉성국민회로 제헌국회의원을 역임하였고 여수군수를 지냈다.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의 사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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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손병희(孫秉熙), 강기덕(康基德) 등의 지휘 아래 각 학교에 독립선언서가 교부되던 1919년,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김백평(金柏枰)은 경성고등보통학교(京城高等普通學校) 4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당시 김백평은 학교에 도착한 독립선언서 중 200매를 할당받아 비밀리에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며 3월 1일 오후 2시 탑골 공원에서 대한 독립을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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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에서 활동한 개화기 관리 출신의 신교육 선각자. 여수시 삼산면 서도리 출생으로 육군교관(1903), 경무관(1905) 등의 고관직을 역임했으며, 사재를 출연하여 1906년 11월 16일 사립낙영학교를 설립하였다. 스스로 교장 겸 교사가 되어 신교육을 실시했다. 호는 우탁(又濯). 삼산면 서도리 출생으로 개화기에 신교육의 선각자다. 1899년 일본명치대학 법학부를 졸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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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경제인 및 정치인. 여수에서 출생하여 한국은행부총재를 역임하는 등 금융 분야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 하였고, 5.16 군사정변 때 국가재건최고회의 재정자문위원으로 초빙되어 경제개발5개년계획에 깊이 관여를 하였다. 제8대와 제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사단법인 한국산업정책연구소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1914년 여수에서 출생하여 여수공립보통학교 졸업, 부산제2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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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의병. 김성택(金聖澤)은 1878년(고종 15) 전라남도 여수군 삼산면 초도리[초도]에서 태어났다. 1907년 7월 일제가 ‘정미칠조약(丁未七條約)’을 체결하여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키는 등 식민지화에 박차를 가하자, 전국적으로 수많은 의병이 봉기하여 일본군을 공격하거나 일진 회원을 비롯한 친일 주구배를 처단하며 무너져 가는 국권을 회복시키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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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공간에서 6.25 전쟁까지 활동한 정치인. 보성전문대학과 메이지대학을 졸업하고 건국준위윈회의 여수치안부장 그리고 6. 25전쟁 때 인민위원장 역임하였다. 김수평은 광복 공간에서 여수 지역의 중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경력에서 볼 수 있듯이 광복 후 좌익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그에 관한 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 『여수·여천향토지』와 문정인의 기록을 통하여 김수평을 단면이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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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순배는 전라남도 광주(光州)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으며 여수읍(麗水邑)교회 신도들에게 항일 의식을 고취시킨 인물이다. 1919년 3월 10일 오후 3시 전라남도 광주 부동교(不動橋) 아래 작은 장터에는 천여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김순배를 필두로 한 기독교인과 숭일학교 및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이 광주천(光州川)을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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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양호(金良浩)는 여수공립수산학교(麗水公立水産學校)에 재학 중이던 1930년 3월 하순 정보한, 윤경현, 이용기, 백인렬, 오놀보, 정재석, 정학조, 진자미 등과 함께 여수 등대산(燈臺山)에서 비밀 결사 조직인 독서회의 창립을 결의하였다. 이들은 윤경현을 회장으로 추대하고 동시에 다수가 만날 경우 경찰에 발각될 우려가 높을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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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에서 활동한 기업인. 경상남도 의령군에서 태어난 김영준은 15세에 일본인 상점의 점원으로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디뎠다. 1917년 일본으로 건너갈 기회를 얻어 일본에서 고무 배합 기술을 익힌 뒤, 1926년 부산에 천일고무공장을 세워 천일표 고무신을 생산함으로써 기업가로 변신했다. 그러나 일본 회사 마루다이[丸大]로부터 유사상표 사용이란 트집에 몰려 전 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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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1930년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항일 운동을 적극적으로 주도했던 인물이다. 김용환(金龍煥)은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전국적으로 파급되고 있을 때 여수보통학교에서는 동조 시위가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1930년 1월 25일 항일 격문 80여 매를 작성하여 교실 및 교정 등에 살포한 후 일본 경찰에 피체되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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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는 언론인으로 광복 후에는 부흥부장관을 지낸 정치인. 일본과 미국 유학을 거쳐 일찍이 구미 각국을 순방하여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로 일제하에 동아일보 기자와 만주국의 재무부 참사관을 지내고, 광복 후에는 미군정의 외자청의 구매처장을 거쳐 제5대 민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호는 종산(種山)으로 김한승의 아들로 일본 유학을 거쳐 미국 콜롬비아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인물로 일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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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인식은 1911년 12월 27일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죽포리 1643번지[죽포1길 21-13]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김영환이고, 어머니는 김순언심이며, 의인·효자인 김경식의 형이다.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하였고, 여수 적색노동조합운동을 주도하였으며,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김인식은 여수보통학교[현 여수서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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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활동한 아동문학가. 1973년 광주 교육대학을 졸업한 후 초도초등학교, 율촌초등학교, 북초등학교, 구봉초둥학교, 자산초등학교, 경호초등학교 등 주로 여수의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1990년 이후 여수 여도초등학교에서 근무했다. 1952년 전남 순천시 생목동에서 아버지 김찬수씨와 어머니 이덕순 여사의 둘째로 태어나 순천에서 성장하였고, 고등학교까지 순천에서 다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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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정치인. 여수군청 근무를 시작으로 화양면장, 여수시장을 역임하였다. 광복 후 제3대 여수읍장으로 발탁된 뒤 정부 수립 후 지방자치법의 시행에 따라 여수시장이 되었다. 재임기간에 시내 간선도로를 확장 개설하는 업적을 남겼다. 1958년 여수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1960년 세 번째 여수시장에 임용되었다. 여수보통학교와 여수수산학교를 졸업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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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지방관리이자 자선가. 삼산면 서도리 출신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인동부사까지 지냈다.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서도리에 유배되어 살았다. 흉년이 들어 굶주림에 시달리는 섬 주민에게 백미 600석을 풀어 섬 주민들을 구한 자선가이다. 삼산면 서도리에서 김석옥(金錫玉)의 4남으로 태어나 과거에 급제하여 인동부사까지 지냈다. 재임 중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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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서도리 서산사에 있는 일제강점기 선행을 베푼 김지옥의 불망비. 장방형의 비좌에 비신의 이수부가 없이 비신이 둥글게 마무리된 갈(碣)의 형태이다. 김지옥 불망비의 높이는 107㎝이고, 너비는 40㎝이다. 삼산면 서도리의 서산사 경내 오른쪽에 거문부사 김정태불망비인 철비와 같이 서있다. 비석에 "유망효의원시천진갑오계축연활촌인승기모훈시덕이인사창설시우휼궁린우승부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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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으로 전라좌도수군절도사를 지낸 무신. 1891년 부호군으로 있다가 1894년(고종 31) 전라좌수영의 마지막 수군절도사로 부임했다. 이때 동학군들이 여수·순천·광양 등에 이르러 형세가 매우 위태로웠으나 선방하여 좌수영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관할 하에 있던 하동·광양·순천·보성·장흥·흥양을 평정하는 데도 일조하였다. 기적비(紀績碑)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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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광주 독립 만세 운동에 전라남도 광주 숭일학교의 대표로 참석했던 인물이다. 당시에는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광주면에 살고 있었으며 광주 독립 만세 운동의 숭일학교 각 학년별 대표 5인 중의 1인이었다. 1919년 3월 10일 숭일학교 대표자 중 한사람으로 독립 선언문 20여 매를 받아 배부하고 모여든 1,000여 명의 군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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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초암은 일찍부터 확고한 민족의식을 가지고 있던 청년으로서, 특히 일본인과 조선인의 처우가 현저하게 차별적이고 좋지 않다는 점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김초암은 1916년 5월 12일 전라남도 여수군 여수면에서 태어났다. 1931년 3월 여수공립보통학교[현 여수서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광주일보 여수지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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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중추원참의를 지낸 일제강점기의 기업인. 김한승은 여수군 출신으로 대한제국 말기에 여수군 주사 등 하급 관리직을 지냈으나, 이후 지역 유지로서의 이력이 더 두드러진다. 1910년부터 주요 공직을 거쳤으며 1920년에는 전라남도 도평의원에 선출되어 세 차례 연임했다. 조선수산회 이사로 여수자동차 중역,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었다. 여수군 주사 재직 때 사재를 기부하여 여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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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형석은 1929년 12월 서울 중동학교(中東學校) 재학 시 광주 학생 운동에 이은 각지의 동맹 휴교에 동참하여 신용우(申用雨), 강대성(姜大成) 등과 함께 조선학생전위동맹(朝鮮學生前衛同盟)을 조직하고 격문의 인쇄 배부 및 동맹 휴학·만세 시위 등을 주동한 인물이다. 1929년 12월 7일 중동학교 교실에서 “동지들이여 싸우자. 우리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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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화가이자 독립운동가. 김홍식은 여수시 교동 234번지[진남상가길 21-1]에서 1897년 1월 11일 김한익과 유목임 사이의 7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4세 때인 1910년 여수보통학교[현 여수서초등학교]가 문을 열자 1회로 입학하여 신학문을 익혔다. 5학년 때인 1914년 정재진과 결혼했다. 1916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방 유지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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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노병주는 1929년 11월 3일 전라남도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일본인 학교인 광주중학교 학생들 간의 충돌 사건으로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학교 강당에서 향후의 행동 방침을 세우기 위해 열었던 집회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당시 5학년 대표였던 노병주(盧秉柱)는 이형우(李亨雨) 등의 제의를 받아들여 가두시위 투쟁을 결정하고 대오를 정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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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부터 1914년 사이에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지역에 있던 행정구역. 1896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과거 돌산현의 돌산이라는 명칭을 따 나주부 흥양군[고흥]·순천군·광양군·낙안군[보성 벌교읍·순천 낙안면] 등에 속했던 두남면·남면·화개면·옥정면·삼산면·태인면·봉래면·금산면의 8개면으로 구성된 돌산군이 신설되었다. 뱃길 따라 남해안의 중서부를 가다보면 갑자기 큰 산이 나타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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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해안 방비를 담당한 관청.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는 방답진 설치 이후에 공공건물로 아사향청(衙舍鄕廳), 순교청(巡校廳), 장교청, 서기청, 형리청, 사령청, 취수방(吹手房) 등 관아가 있었던 곳이며, 그 중 하나가 군관청이다. 방답진은 전라좌수영 관하의 첨사진으로 1487년(성종 18)에 창설되어 1895년(고종 32)에 폐지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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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고종 31)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일어난 농민운동. 동학은 심화되고 있던 봉건 체제의 모순과 열강의 침략 위기 속에서 1860년 최제우(崔濟愚)에 의해 창시되었다. 동학은 인내천 사상을 내세웠으며, 유·불·선은 물론 민간 신앙과 천주교를 포용한 당시 사회사상의 합성체로 평민은 물론이고 천민에 이르기까지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동학의 교리에는 개벽과 평등의 반봉건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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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8월 9일 여수시 남면 두룩여 해상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들이 미군의 불법적인 폭격으로 희생된 사건. 6.25전쟁 당시 전선이 여수 지방까지 남하하자 위기를 느낀 미군은 전선과 전혀 관계가 없는 여수시 남면 소두라 인근의 두룩여 해상의 어민들까지 무차별 폭격을 감행하여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증언자들이 비교적 많이 생존하고 있고, 인근의 섬에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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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 청년들이 조직하였던 사회 운동 단체. 3·1운동 때에 서울에서 유학하던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학생들은 여수향우회를 만들어 활약하였다. 3·1운동의 후유증으로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거나 자퇴하고 피신한 여수향우회 소속 학생들은 구심점을 잃고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중 여수 지역에 은신하고 있는 몇 사람들이 모여 서로 맞잡고 돕자는 뜻으로 맞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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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문균(文均)은 1930년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항일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일본 동경 소재 동양대학 경제학부 학생이던 1928년 7월 12일 전라남도 구례군 구례면의 청년동맹회관에서 한국어를 사용하여 ‘임시대회를 맞아’라고 하는 취지를 담은 문서를 제작하여 회원들에게 배부하였고, 7월 22일에는 동회관에서 개최한 청년동맹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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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학자. 1885년(고종 22)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동도리 유촌마을에서 태어난 박규석은 재주가 출중하여 어려서부터 귤은 김유(金瀏)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경사(經史)와 문학(文學)에 뛰어났던 박규석은 스승인 김유가 타계하자 스승의 유고를 모아 『귤은집(橘隱集)』을 펴냈으며, 낙영재(樂英齋)를 이어 받아 후학을 양성하였다. 삼산면 초대 집강(執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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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출신 영화배우. 1930년 2월 4일 전남 여수 봉강동 출생으로 서초등학교, 여항중학교를 거쳐 순천사범대 체육과를 졸업했다. 순천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24세 때 배우가 되기 위해 악극단에 들어갔다, 1955년 이강천 감독의 「격퇴」로 데뷔한 뒤 이듬해 「5인의 해병」을 통해 액션배우로 한국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초기에는 주로 멜로드라마 주인공으로 출현했지만 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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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노운(朴魯韻)은 1922년 1월 21일 지금의 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면 농상리 861번지에서 태어났다. 일본식 이름은 판정노운(坂井魯韻)이다. 여수공립수산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1939년 3월 완도군 출신들이 주도하는 비밀결사 조직인 독서회에 들어가 『삼천리』, 『농어촌의 장래』, 『흙』, 『원효대사의 유정』 같은 소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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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동부지역에서 활동한 정치인. 경찰공무원으로 출발하여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다. 호는 양촌(陽村)으로 광양 출신으로 여수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법대를 졸업하여. 제10회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하였다. 그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졸업을 졸업하고. 26세의 젊은 나이로 총경으로 전주경찰서장을 지냈다. 1972년 신민당 공천으로 전남 제4선거구(여수, 여천, 광양)에서 제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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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활동한 현대 시인. 1933년 경남 충무시에서 출생한 시인 박보운은 본명이 박두정이다. 1956년 광주 조선대학 국문과 졸업했다. 1955년 엄심호, 김용태 등과 함께 〈여수문학〉의 전신인 〈여항〉을 발간해 여수문학의 산증인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 뒤 〈여항〉을 〈역우〉로 바꾸어 〈역우〉 동인을 중심으로 여수문협과 여수예총의 설립을 주도했으며 지역문학 활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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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 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 여수 출신으로 일본 유학 후 선장면허를 얻어 선장으로 활동하다가 광복되던 해 조선 선박운항통제 주식회사의 선박감독관이 되었다. 1953년 6월 중장으로 제2대 해군참모총장이 되었다. 삼산면 거문도 덕촌리 출신으로 일본 간사이대학[關西大學] 전문부를 졸업한 후 관립진해고등해원양성소를 졸업하고 1932년 갑종 선장면허를 얻어 선장으로 있다가 광복되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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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우종백(朴又宗伯)[1905~1960]은 1930년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항일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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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채영(朴采永)은 1930년대 노동자, 농민 중심의 항일 노동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당시의 국내외 정세를 정확히 인식하여 노동자, 농민 중심의 항일 민중 의식 고취와 조직화된 저항만이 유효한 항일 투쟁 방법임을 확신하고 항일 노동 운동을 주도하였다. 1934년 1월 일본 경찰에 피체되어 2년의 옥고를 치른 후 1945년 해방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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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를 중심으로 활동한 현대 화가. 1920년 광주 출생으로 17세에 그림 공부를 위해 일본에 유학했다. 1939년부터 1944년까지 일본 가와바타 미술학교를 졸업했다. 1943년 일본 자유미술작가협회 공모전 입상하여 정회원으로 등단하여 본격적인 화가로서의 길을 걷는다. 해방 후 귀국하여 당시 불모에 가깝던 한국수채화단의 새로운 영역을 확대하는 역할을 했다. 1947년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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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세동(裵世彤)은 전라남도 여수 출신이지만 1919년 당시 전라북도 김제군 수류면 구월리에 살고 있었다. 1919년 3월 13일 전주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한 후인 같은 월 20일 전도명(田道明)·전도근(田道根)·전부명(田富明)·이병섭(李秉燮)·김성수(金成守) 등 8명과 함께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에서 장날을 기하여 만세 운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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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에서 고종과 순종의 장례식에 통곡단을 조직하여 참석한 사건. 1864년 16세의 어린 나이로 조선왕조 제26대 왕에 등극한 고종은 헤이그밀사사건으로 1907년 퇴위하기까지 43년 동안 실로 내우외환이 겹치는 국난 가운데서 초의한식(草衣寒食)으로 편할 날이 없다가 1919년 1월 일본인에 의한 독살설이 나도는 가운데 서거하였다. 1919년 3월 3일의 고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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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전국으로 파급되면서 각 급 학교에서는 독서회 형태의 항일 비밀 결사 조직이 결성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당시 여수공립수산학교(麗水公立水産學校)에 재학 중이던 백인렬(白仁烈)도 1930년 3월 정보한, 윤경현, 이용기, 김양호, 오놀보, 정재석, 정학조, 진자미 등과 함께 여수 등대산(燈臺山)에서 비밀 결사인 독서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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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9월 9일 주민 투표에 의해 여수시·여천시·여천군의 3개 행정구역의 통합. 여수 지역 행정구역 통합 논의는 여수상공회의소가 1983년 1월 여수시와 당시 여천지구출장소의 통합 당위성에 대한 용역을 하여 홍보하면서 대두되었다. 그러나 여수시 쪽의 일방적인 처사에 격분한 여천지구출장소 관내 유지들이 통합 반대 운동을 전개하였다. 1994년 2월 14일 정부와 여당은 당정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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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여수를 관할하는 순천부사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푼 인물. 서정순의 자는 원중(元仲)이며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순천부사로 부임하여 그 행정력이 여수까지 미쳐 선정을 베풀었으며, 중앙 정치에 참여해서는 함경도의 방곡령 사건 등 외교문제를 처리했고, 갑오개혁 이후 공무아문 대신과 박정양 내각의 법부대신 겸 고등재판소 재판장을 지냈으며, 만민공동회에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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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성상규(成商圭)는 1923년 5월 8일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내발리 769번지에서 태어났다. 일본식 이름은 성전상규(成田商圭)이었다. 여수공립수산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1942년 7월 27일 여름방학 동안 여수 신월리의 해군 비행장 부지 정리 작업장에 근로보국대(勤勞報國隊)로 참가하라는 당국의 방침에 3학년, 4학년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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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현대 화가. 1949년 여수시 남면 안도리에서 출생하여 서초등학교, 제일중학교, 여수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때 홍대 주최 전국학생실기대회에서 수채화부문에 특선을 비롯하여 각종대회에서 이상을 하면서 미술재능을 인정받았다. 1973년에 원광대학교 사범대학미술교육과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작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1976년 제7회 구상전 공모전에서 은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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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정치인. 경남 사천시 출신으로 여수에 이주하여 일본에 유학, 정부수립 후에는 대통령의 주치의를 거쳐 보사부장관을 지냈다. 대한적십자 총재직 시절 여수에 적십자병원을 유치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고, 여수 야구의 저변확대에 공헌을 하였다. 손창환의 출생지는 『여수·여천향토지』에는 사천시 삼천포 출신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손창환 묘비에는 전라남도 함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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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에 일본 어민들을 식민시키기 위해 만든 집단 이주촌. 1900년 전후로 일본에서 조선 이민론이 본격적으로 대두되면서 식민어촌 건설이 주창되었다. 식민어촌은 일제가 러일전쟁을 전후하여 본국 어촌의 과잉 인구를 분산하기 위한 식민지 어업 정책으로서 한국 연안에 이주시킨 일본 어민의 취락이다. 당시 식민어촌 조성 조건으로서 가장 중시한 것은 어장 근처의 적당한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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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에 있는 조선 말기 법부대신 신기선의 비. 신기선은 갑신정변 후 개화당과 가까이 지냈다는 이유로 고금도와 흥양현 여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 갑오개혁 후 법부대신으로 등용되었을 때, 섬사람들이 행정 구역을 정비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도재의 건의를 받아들여 완도군, 지도군과 함께 돌산군이 창설되었다. 이때 신기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군민들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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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여도현(呂道玄)은 1929년 3월 23일 전라남도 광주보통고등학교에 재학하면서 졸업식장에서 일본인 교장을 응징한 사건으로 1929년 5월 30일 대구복심법원으로부터 징역 6월 집행 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또한 1929년 11월 3일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의 모체인 비밀 결사 성진회 사건의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여수공립수산학교 학생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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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관문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지역 청년운동의 본거지. 여수시 관문동 여수경찰서와 여수엑스포역을 잇는 대로변 우리은행 여수지점(구, 한일은행) 뒤에 있다. 은행 뒤쪽 소로를 끼고 자리를 잡고 있다. 전라좌수영성에 ‘덕지’ 혹은 ‘못물동’이라고 부르는 400평~500평 가량의 연못이 있었다. 1930년 이 연못을 메우고 좌수영 밑에 있던 좌청[일명 취방청-당시 우체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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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부터 8월까지 전라남도 여수시, 여천군에 거주하고 있던 국민보도연맹원들이 경찰에 의해 총살되었거나 해상에서 총살된 후 바다에 수장하여 유기한 사건. ‘국민보도연맹’은 여순사건 이후 내무부·국방부·법무부 정부인사의 주도하에 1949년 4월 20일, 서울시경찰국에서 국민보도연맹을 창립하여 30만명으로 추산되는 전국적인 조직이다. 1949년 좌익 운동을 하다 전향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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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던 악공청과 관련된 자료 일괄. 여수에는 악공청(樂工廳)이라 불리는 음악기관이 있었다. 악공이란 관아에서 음악을 담당하던 음악인을 지칭하며, 원래 악공청이 있는 곳은 여수 진남관의 왼쪽(동쪽) 뒤쪽이다. 이런 입지 조건으로 볼 때에 악공청이 과거 관아와 관련 있던 기관임을 알 수 있다. 『호좌수영지(湖左水營誌)』를 보면, 취군(吹軍)이 131명, 기생(妓生)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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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고려시대인 1350년(충정왕 2)부터 있던 여수현을 1396년(태조 5)에 태조의 정치 보복으로 폐현시켜 순천부에 예속한 후 500년에 걸쳐 순천부와 전라좌수영 두 관청의 부역과 조세를 이중으로 부담하는 폐단을 겪었다. 이후 복현 운동의 결과로 1897년(고종 34) 5월 16일 여수군(麗水郡)을 설군하라는 칙령(勅令) 제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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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여수군청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 여수군청은 간숙당이라는 건물로, 1479년(성종 10)에 전라좌수영성과 같이 지어졌다. 역대 수군절도사들의 시무청인 운주헌으로 불려오다가, 1897년 여수군이 설치되면서 여수군청으로 사용되어온 건물이었다. 위치는 전라좌수영 역내 지금의 군자동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2.314m²의 부지에 결승당과 완경루 등의 두 부속 건물이 있었다. 내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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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여수현을 다시 설치하기 위하여 벌인 동맹 운동. 1896년 2월 완도나 돌산 같은 섬마저 군이 되었으나 여수 만은 열심히 복현 운동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설군(設郡) 문제가 실패하여 여전히 순천부 관할에 묶이게 되었다. 이에 형편에 맞지 않은 조정의 처사에 분개하여 1896년 3월 18명이 고장의 비원을 풀기 위해 동맹하였다. 전라남도 여수현에서 발생한 삼복삼파 이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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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여수수산학교 독서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항일운동. 1930년대 여수는 일제의 침탈이 본격화되면서 민중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심화되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지식인들 사이에 유입되던 사회주의 사상이 민중들에게까지 확산되면서 일제에 의한 현실사회의 모순을 사회주의의 시각에서 분석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었다. 여수수산학교의 독서회는 사회주의의 함양과 보급을 통한 항일운동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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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와 순천 및 광양, 구례, 보성, 고흥 등 인접 지역에서 광복과 제주4·3사건 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서 발생한 대규모 민간인 희생 사건.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한 국군 제14연대 병사들이 제주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단독 정부 수립 반대, 미군 철수를 주장하며 여수·순천 등 전라남도 동부 지역을 점령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승만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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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만흥동에 여순사건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세운 비석. 여순사건희생자위령비는 여순사건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2009년 9월 13일 건립하였다. 전라남도 여수시 만흥동 149-6번지에 있다. 만흥동 마래터널을 지나 200m쯤 가면 나오는데, 이곳은 여순사건 때 대표적인 집단 학살지였다. 여순사건희생자위령비는 대좌, 비신, 개석 세 부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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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여운종(呂運鍾)은 1930년대 민중 속에서 항일 노동 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1930년 1월 25일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전국적으로 파급되고 있을 때 유독 여수보통학교에서는 동조 시위가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독립 선언서 80여 매를 작성하여 교실 및 교정 등에 살포한 후 일경에 피체되기도 하였다. 1930년대에는 당시의 국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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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전라남도 여수시 여자만 해상에서 벌어진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 1950년 8월 9일 여수시 여자만 해상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들이 미군의 불법적인 폭격으로 희생된 사건이다. 6.25전쟁 당시 전선이 여수 지방까지 남하하자 위기를 느낀 미군은 전선과 전혀 관계가 없는 여자만 해상의 어민들까지 무차별 폭격을 감행하여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었다. 1950년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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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에 있는 1885년 거문도 사건과 관련된 영국군의 묘지. 거문도 사건은 1885년(고종 22)부터 1887년까지 약 23개월에 걸쳐 영국군이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다는 구실로 거문도를 무단으로 점령한 사건이다. 영국군 묘지는 거문도 사건의 과정에서 병이나 사고로 죽은 영국군을 묻은 묘지이다. 영국군 묘지는 본래 여객선 터미널에서 동북쪽으로 100m 떨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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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오놀보(吳㐗甫)는 전라남도 완도 사람으로 여수공립수산학교 재학 당시인 1930년 3월 항일 운동을 위한 비밀 결사 조직인 독서회 활동을 하였다. 그는 이용기, 정학조와 함께 제1조에 편성되었다. 조직의 활성화를 위해 다수의 회원을 독서회에 가입토록 하는 등 주도적으로 활동하다가 1931년 9월에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구속·수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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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오영섭(吳永燮)은 1922년 10월 26일 전라남도 완도군 노화면 내리 147번지에서 태어났다. 일본식 이름은 오본영섭(吳本永燮)이었다. 여수공립수산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1939년 3월 완도군 출신들이 주도하는 비밀결사 조직인 독서회에 들어가 『삼천리』, 『농어촌의 장래』, 『흙』, 『원효대사의 유정』 같은 소설을 윤독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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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일본인 경제인. 오오츠카 지사브로[大塚治三郞, 1882~?]는 일제강점기 후쿠나가 마사지로[福永政治郞, 1864~1935]가 설립한 고뢰농장(高瀨農場)[다카세농장]의 창설 지배인으로 고뢰농장의 상무취체역, 여수전기주식회사 사장, 전남도회 의원, 여수읍회 의원, 여수실업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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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우홍(吳宇鴻)은 1930년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노동 운동 및 청년 항일 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1931년 여수공립수산학교 3학년 재학 중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의 영향을 받아 식민지 교육 철폐 운동, 동맹 휴학 등을 주도하다가 퇴학 처분을 당하였다. 그리고 1932년 7월에는 여수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노동 조건 개선 투쟁, 항일 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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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원정상(元正常)은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항일 운동가이자 상록수 운동가이다. 일제강점기 최대 규모의 노동 쟁의 사건인 1929년 원산노동연합회 총파업 주모자(당시직책: 원산노련 상무집행위원)로 체포되었다. 이후 법원으로부터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옥고를 치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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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9년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덕촌리에서 원세학의 5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난 원종상(元鍾常)은 1928년 광주고등보통학교 4학년 재학 중 ‘동맹휴학’ 가담으로 퇴학당하였다. 이후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덕촌리 고향의 덕흥학원 교사 및 삼산면사무소 서기로 근무하면서 덕흥학원에서 청소년 100여 명을 대상으로 야학을 운영하였다. 야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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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출신의 의사. 일본에 유학 후 군의관으로 전역하고 병원을 개원하여 인술을 베풀고, 여수로타리클럽 회장, 여수시 체육회장, 진남제전위원회 위원장, (사)진남제전보존회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지역사회발전에 노력하였다. 호는 청송(靑松)으로 일본 규슈[九州]제국대학을 졸업하고 일제강점기 때 군의관 소령으로 전역하여, 중앙동에서 제중의원을 개원하여 시민들에게 인술을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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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유병옥(兪丙玉)[1903~?]은 1920년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항일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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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봉목(兪鳳穆)은 전라남도 여수 출신으로 1919년 8월 서울에 머물면서 독립 운동에 대한 신문 기사를 읽고 감명을 받아 귀향한 후 여수간이수산학교 학생 이선우 등과 함께 청년회를 조직하고 같은 해 12월 20일 오후 1시 여수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유봉목 일행은 여수시 덕충동에 있는 김여진의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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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윤경현(尹炅鉉)은 전라남도 여수공립수산학교 재학 당시인 1930년 3월 일제 식민 통치의 부당성에 항거하기 위해 비밀 결사 조직인 독서회를 결성하였다. 매주 1회 모임을 가지면서 항일 투쟁의 구체적 방안을 모색하면서 주도적으로 활동하다가 1931년 9월 독서회 활동이 발각되면서 결사의 주동자로 지목되어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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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자환(尹滋煥)은 전라남도 여수 출신으로 천도교 신자였다. 1919년 3월 2일 전라남도 순천군 순천면 저전리에 있는 천도교 교구에 독립 선언서 35매를 배포하고 독립 사상을 고취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윤자환은 독립 선언서를 일반인에게 알려 독립 사상을 고취하고 대중을 규합하기 위해 전라남도 순천군 해룡면 면사무소와 여수경찰서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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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장(尹莊)은 1922년 6월 17일 전라남도 여수시 공화동에서 태어났다. 1936년 4월 광주학생운동을 거치며 민족의식이 팽배했던 광주서공립중학교[광주고등보통학교로 출발]에 입학하였다. 1941년 니혼대학[日本大學] 전문부에 들어갔다. 그해 12월 귀국하고 유몽룡(劉夢龍)·강한수(姜漢秀) 등이 조직한 항일 비밀결사 무등회(無等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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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6일 김복현(金福鉉)·김강(金剛)·서정희(徐廷禧) 등은 전라남도 광주 숭일학교(崇一學校) 교사 최병준(崔丙浚) 및 수피아여학교(須彼亞女學校) 교사 박애순(朴愛順) 등과 협의하여 3월 10일 전라남도 광주의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 시위를 결행하기로 계획하고 독립 선언서를 인쇄하는 등 사전 준비를 진행하였다. 3월 10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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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1910년을 전후로 펼쳐졌던 항일 의병운동. 한반도 남해안의 중심 항구인 여수시는 지정학적 이유로 일본의 침략을 많이 받아 왔다. 삼국 시대부터 끊임없이 한반도의 남해안을 침략해 노략질을 일삼아 온 왜구는 고려 후기 여수 지역 장생포에서 유탁(柳濯) 장군에게 격퇴당하였다. 왜구는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도 수많은 침략을 감행하였는데, 이대원(李大源) 장군의 손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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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삼일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이규보의 자선기념비. 이규보는 천성이 영특하고 부모에 대한 효심이 두터웠을 뿐만 아니라 관리로서 백성을 위해 많은 치적을 쌓았다. 이에 감복한 백성들이 비석을 세워 칭송하였는데, 동문(洞門) 밖에 비를 높게 세워 지나가는 사람들이 절로 머리를 숙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비의 규모는 높이가 172㎝이고, 너비는 130㎝이다. 비문의 내용은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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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에 있는 조선 말기 학부대신 이도재의 불망비. 이도재는 갑신정변 후 개화당과 가깝다는 이유로 신기선과 함께 고금도와 흥양현 여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 갑오개혁 후 학부대신으로 등용되어 섬사람들만의 행정 구역을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고 법부대신 신기선에게 제의하였다. 이에 따라 완도군, 지도군과 함께 돌산군이 창설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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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항일운동가. 이병현(李炳鉉)은 1909년 전라남도 도서 지방을 중심으로 한 의병 부대에서 활동을 했다. 1909년 음력 5월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도와 여서도 등에서 ‘완도 삼림 문제’와 어민들의 경제적 착취를 위한 ‘어업법’ 시행 등으로 경제적 침탈이 심해지자 어민들의 생계 위협에 맞서 황준성 의병장 휘하의 김성택의 군사들과 함께 의병 활동을 전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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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10일 전남 광주군 수피아여학교 재학 중 동교 학생들과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어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이봉금(李奉錦)이 전라남도 광주 수피아여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광주 독립 만세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시위 군중에게 태극기, 독립 선언서, 격문을 나눠주면서 독립 만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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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여수에 정착한 독립유공자. 어려서 어머니를 따라 도일, 교토에 살면 심상고등소학교(尋常高等小學校)를 졸업하고 효고현에 있는 제강소에서 일본인의 모욕적 언동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 두고 조국 광복의 꿈을 키워 오다가 애국지사인 김경원(金京元) 등과 조선독립을 쟁취할 것을 결의하였다. 조선인 징병제 실시 때에 군기 교란을 모의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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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선우(李善雨)는 항일운동가로 1919년 12월 12일 여수공립수산학교 기숙사에서 유봉목의 뜻에 따라 생도 김종력 등과 함께 12월 20일 조선 독립 만세 운동을 결의하였다. 12월 19일 전라남도 여수시 덕충동에 있는 생도 복습소에서 태극기를 제작하던 중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을 선고 받고 옥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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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안도리 이야포에서 미군폭격으로 발생한 양민학살사건. 6.25전쟁 당시 여수시 남면 안도리 이야포 해상에서 미국 공군 전폭기에 의해서 발생한, 양민학살사건으로서 아직까지 종결이 되지 않은 사건이다. 1950년 8월 3일 미군의 불법적인 안도리 폭격의 희생자들은 정부의 명령에 따라 부산에서 남해안 도서로 소개되어 피난민 배에 탑승 중인 민간인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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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여수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여수 수산공립학교 재학시 독서회를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하였으며, 여순사건 당시 여수시 인민위원장이었다. 여수공립수산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0년 3월 하순 정보한, 윤경현, 백인렬, 오놀보, 정재석, 정학조, 진자미 등과 함께 여수 등대산(燈臺山)에서 비밀 결사 조직인 독서회의 창립을 결의하였다. 이용기의 독서회 결성 동기는 학업 성적이 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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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활동한 경제인이자 정치가. 여수 지역에서 정미소사업을 시작으로 경제계에서 활동을 하다가 정계로 진출하여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였다. 호는 석정(石亭)으로 여수보통학교와 여수간이수산학교를 졸업한 후 22세 때 자영 공성정미소를 설립했다. 광복 후에는 초대읍장을 역임했으며, 읍장 퇴임 후에는 여수국민회장, 금련(金聯)여수회장, 제2대 상공회의소 회장(1948~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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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에 있는 이순신 모친 초계변씨의 유적비. 1592년(선조 25)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순신 장군은 충청도 지방이 전란에 휩싸이자 모친 변씨부인과 부인 방씨부인을 여수시 웅천동 송현마을 정대수 장군 집으로 불러들여 전란 중에도 모친에게 아침과 저녁에 문안을 올렸다. 현재 이 비가 있는 정평호 집에는 자당이 쓰던 절구통과 밥솥이 보존되어 있다. 1973년 여천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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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형영(李亨永)은 1919년 3·1운동 이전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던 항일 운동가이다. 1919년 당시 경성공업전문학교(京城工業專門學校) 부속 공업전습소 1년생이던 이형영은 경성의학전문학교의 한위건(韓偉鍵)·김형기(金炯璣), 경성공업전문학교의 김대우(金大羽), 경성전수학교의 전성득(全性得)·윤자영(尹滋瑛) 등과 함께 학생 대표로서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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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여수출신의 무신. 개항기 무신으로 돌산군의 군정에 적극 참여를 했으며, 고향을 위해 많은 업적을 남겼다. 삼산면 손죽리 출생으로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참서(宣傳參書)와 혜민원참수(惠民院參壽)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호방한 성격으로 문객이 많았으며 군정(郡政)에도 적극 참여해 고향발전에 공헌함이 컸다. 고향에 처음으로 고구마를 파종한 것도 그의 업적중의 하나로 전해 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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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출신 교육자이자 사회운동가. 경성여자 사범학교 졸업 후 여수서초등학교를 비롯하여 여수여자고등학교 등에서 15년간 교사로 봉직하고 제1대 전라남도 교육위원을 지낸 교육자이며, 한국부인회 여수지회장과 사단법인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여수에서 민족 교육과 항일 운동을 전개한 이상호의 딸로 1942년 경성여자사범학교 졸업하였다. 여수서초등학교를 비롯하여 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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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에 있는 조선 말기 전라좌수사 이희갑 불망비. 비갓은 유실되고 좌대와 비신만 있다. 비의 높이는 156㎝이고, 너비는 48㎝이다. 비의 앞면에는 "절도사이공희갑영세불망(節度使李公熙甲永世不忘)"이라고 쓰여 있다. 비갓은 유실되었고, 좌대와 비신만 남았으며, 비석의 재질이 사암이라 마멸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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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될 때까지의 전라남도 여수의 역사. 1895년 전라좌수영이 폐지되고, 1896년 도서 지방에 돌산군이 신설되고, 1897년 육지 지역에 여수군이 신설됨으로써 순천도호부에서 분리 독립되어 여수·율촌·삼일·소라의 4개 면을 관할하였다. 후에 여수면이 현내면과 쌍봉면으로 분리되는 등 7개 면으로 분할되었다. 1914면 돌산군이 폐지되었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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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거문도]에 유배되었다가 사망한 의병. 임병찬(林炳瓚)의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중옥(中玉), 호는 돈헌(遯軒)이다. 아버지는 임용래(林榕來)이다. 임병찬은 1851년(철종 2) 2월 5일 지금의 전라북도 옥구군 서면 상평리 남산마을에서 태어났다. 1888년(고종 25) 호남에 큰 흉년이 들자 그해 11월 1,000냥을 내어 백성들을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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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종화동 자산공원에 있는 현충탑. 자산공원 현충탑은 여수시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지역 출신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고 그들의 위훈을 기리기 위해 시민의 뜻을 모아 건립하였다. 공사 기간은 1995년 7월 11일부터 1996년 1월 10일까지이고, 사업비는 시비 총 5억 2800만 원이 투입되었다. 3기의 현충탑은 각각 임진왜란, 한국전쟁, 여순 사건을 의미하고, 탑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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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 장태지는 1858년(철종 9)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옥적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우 장태린(張泰隣)과 함께 경성으로 유학하였고, 1887년(고종 24) 충훈부도사(忠勳府都事), 1890년(고종 27)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과 돈녕부동지사(敦寧府同知事)를 역임하였다. 1894년(고종 31) 낙향하였는데, 고향에 동학농민운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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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평완(張平完)은 1930년대 여수사회과학연구회, 여수청년전위동맹, 여수적색노동조합전우조직 등을 결성하여 투쟁한 항일 운동가이다. 1929년 8월에 조직된 독서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30년 여수사회과학연구회를 조직하여 회계 책임자를 맡아 활동하였다. 1931년 1월에는 전라남도 여수읍 서정 자택에서 오우홍, 최준모, 강동주, 김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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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사회활동가. 정경수(丁敬秀)는 1901년(고종 38) 지금의 전라남도 여수시 미평동 소정마을에서 태어났다. 여수공립간이수산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 전라남도 장흥, 광양, 고흥, 진도 등지의 어업조합에서 이사를 역임하고 수산업 발전을 위해 기여하다 광복을 맞이하였다. 광복 후 전남어업연맹 이사장으로서 무질서했던 수산업계를 정돈하였다. 1946년 제2대 여수읍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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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의병. 정기채(鄭基采)는 개항기 전라남도 여수와 순천, 광양 등지에서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정기채는 지금의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조화리 동상개에서 태어났다. 1907년(순종 1) 7월 ‘정미칠조약(丁未七條約)’으로 군대까지 해산당하는 등 일본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자 정기채는 항일 무장 투쟁을 결심하고 전라남도 여수·순천·광양 일대에서 군자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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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두범(鄭斗凡)은 전라남도 여수에서 태어나 1919년 광주에서 만세 운동에 참가하는 등 독립 운동에 적극 가담한 항일 운동가이다. 1919년 3월 6일 김복현(金福鉉)·김강(金剛)·서정희(徐廷禧) 등은 전라남도 광주 숭일학교(崇一學校) 교사 최병준(崔丙浚), 수피아여학교(須彼亞女學校) 교사 박애순(朴愛順) 등과 3월 10일 광주 장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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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전국으로 파급되면서 각 급 학교에서는 독서회 형태의 항일 비밀 결사 조직이 결성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당시 여수공립수산학교(麗水公立水産學校)에 재학 중이던 정보한(鄭輔漢)도 1930년 3월 백인렬, 윤경현, 이용기, 김양호, 오놀보, 정재석, 정학조, 진자미 등과 함께 여수 등대산(燈臺山)에서 비밀 결사인 독서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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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항일운동가. 정용수(丁龍洙)는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대표 유림이다. 1919년 고종이 승하하자 정용수를 비롯한 정충섭, 김병순, 정영민, 정병훈 등 전라남도 여수 지역 유림 42명(여성 6명 포함)이 백기통곡단(白旗痛哭團)을 조직하여 상경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여수 유림들에 대한 평판이 달라졌다고 한다. 이것은 비록 3·1운동과 같이 적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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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정치인. 서울 중앙고보 재학 시절 3.1운동 주동자로 활약하였으며, 일본 유학 후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청년운동에 헌신했다. 일제가 철도시설을 위하여 철도연변(鐵道沿邊) 부지를 헐값에 강제 매입하려는 일제의 횡포와 부당성을 지적하여, 정상적인 보상을 받는 등 주민의 권익옹호에 앞장섰으며, 여수군수, 전남도 사회교육과장, 여수일보사장, 제2대 때부터 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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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여천동에 있는 임진왜란 때 무신 정춘의 신도비. 여수시 여천동 여천고등학교 건너편 내동마을 입구 표지석 위 학동 정수장 아래 오른쪽에 사충사 유허비와 함께 있다. 원래의 비는 비좌는 존재하지 않으며 가첨석도 한쪽이 완전 박락되고 비신도 박리현상이 심하였다. 비의 높이는 196㎝이고, 너비는 55㎝였다. 이 비는 풍화정도가 너무 심해 비문 해독이 거의 불가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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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충조(鄭忠朝)는 1930년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항일 노동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당시의 국내외 정세를 정확히 인식하여 노동자와 농민 중심의 항일 민중 의식 고취와 조직화된 저항만이 유효한 항일 투쟁 방법임을 확신하고, 민중 속에서 그들과 함께하는 항일 노동 운동을 주도하였다. 1934년 6월 일본 경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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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전국으로 파급되면서 각 급 학교에서는 독서회 형태의 항일 비밀 결사 조직이 결성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당시 여수공립수산학교(麗水公立水産學校)에 재학 중이던 정학조(鄭學朝)도 1930년 3월 백인렬, 정보한, 윤경현, 이용기, 김양호, 오놀보, 정재석, 진자미 등과 함께 여수 등대산(燈臺山)에서 비밀 결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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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국악인. 정홍수(丁洪秀)는 향토민속문화보존회를 이끌면서 한국국악협회 전남지부 초대 지부장과 한국국악협회 여수지부장을 맡아 호남의 문화 예술계를 이끌었다. 1981년 정홍수가 발굴한 현천 소동패놀이가 1982년 10월 15일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며 예능 보유자가 되었다. 현천 소동패놀이는 농사일의 노동력을 높이고 일꾼들의 피로를 덜기 위하여 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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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에 있는 조선 말기 돌산군수 조동훈의 영세불망비. 여수가 한창 복군(復郡) 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초대 돌산군수로 임명된 조동훈이 종포에 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지방 유지들은 조동훈에게 돌산을 돌산군에 편입시켜 여수에서부터 돌산까지 다스려 달라고 청원하였다. 이에 조동훈은 조정에 여수 네 개 면(面)을 돌산군에 편입시켜 줄 것을 건의하는 한편,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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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조병섭(曺秉涉)[1908~1950]은 1930년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항일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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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조병호(趙炳浩)는 전라남도 여수공립수산학교 재학 당시인 1930년 3월 항일 운동을 위한 비밀 결사 조직인 독서회 활동을 주도적으로 하다가 1931년 9월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구속 수감되었다. 그리고 1931년 9월 4일 광주지방법원으로부터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독립 유공자 공적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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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에서 1945년 해방 후 조직된 치안과 행정 활동을 위한 임시 행정기구. 중앙의 건국준비위원회가 조선인민공화국 체제로 바뀌자 대부분의 지방에서 건국준비위원회는 인민위원회로 개조되거나 인민위원회에 흡수되었다. 인민위원회는 초기에 미군정에 협조하고자 하였으나 미군정은 이를 배척하였다. 결국, 미군정과 인민위원회 간에는 갈등 대립 전선이 형성되었다. 그런데 상당수 많은 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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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에서 활동한 교육자이자 음악가. 충청남도 천안 출생으로 온후한 인품에 천성이 청민(淸敏)한 교육자다. 22세에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청주공립보통학교를 시작으로 공주, 나주, 광주 등지를 거쳐, 1925년에 여수수산학교에 부임하여 여수와 인연을 맺고 여수여고와 수산학교에서 교장을 역임했다. 1946년에는 여수 야간상업중학원[현 정보과학고]를 설립하였고, 1947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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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주원석(朱元錫)은 1930년대 당시 조선일보 기자이자 항일 운동가로서 여수공립수산학교 생도들의 항일 운동을 배후 조종한다는 혐의를 받아 경찰에 수차례 구속되었다. 이 때 일제가 내린 25일 구류의 언도가 부당하다고 정식 재판을 청구하는 등 조선총독부 재판부에도 철저히 항거하였다. 1932년에는 여수적색노동조합준비회를 조직하여 정미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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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주재년은 1940년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최연소 항일 지사로 1929년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작금마을에서 출생하였다. 1943년 돌산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15세 때 조선 독립의 실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말을 수시로 하고 다니면서 마을 담장 밑 큰 돌 4개에 ‘일본과 조선은 다른 나라(朝鮮日本別國), 일본은 패망한다(日本鹿島 敗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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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중국 만보산사건을 계기로 전라남도 여수에서 발생한 중국인 추방운동. 1931년 7월 2일 중국 길림성에서 발생한 만보산 사건이 국내의 일부 신문에 의해, 만주의 우리 동포들이 중국인들에게 일방적으로 습격당했다고 전해졌다. 이로 인해 전국 각지에서 중국인들을 박해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여수에서도 중국인 추방 운동이 벌어졌다. 일제는 1910년 우리나라를 강점한 이후 만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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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의료인이자 문예발전에 기여한 인물. 1931년 광주 출신으로 광주의대를 나와 안과의사가 된 그는 1964년 여천보건소장으로 부임한 것이 여수와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부임하자 자신의 전공을 살려 무료 개안수술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개안센터를 개설 운영, 장님이라 치부하던 많은 사람들의 눈을 고쳐주는 등의 인술을 베풀었다. 1965년 여수 지정익안과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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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전국으로 파급되면서 각 급 학교에서는 독서회 형태의 항일 비밀 결사 조직이 결성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당시 여수공립수산학교(麗水公立水産學校)에 재학 중이던 진자미(秦者味)도 1930년 3월 백인렬, 정보한, 윤경현, 이용기, 김양호, 오놀보, 정재석, 정학조 등과 함께 여수 등대산(燈臺山)에서 비밀 결사인 독서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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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완규(崔完奎)는 1940년 6월 일본 동경 소재 목백상업학교(目白商業學校)에 재학하면서 일본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잡역부로 일하고 있었다. 이 때 같이 근무하던 안명수(安明洙)로부터 영향을 받고 항일 독립 운동 행동 강령을 정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1942년 6월 30일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일본 경찰에 피체되어 5개월 간 옥고(獄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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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최용식(崔鎔植)[1908~1952]은 1930년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항일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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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최풍룡(崔豊龍)[1905~1937]은 1920년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항일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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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출신으로 일제강점기와 광복 공간에서 활동한 정치인. 한학을 닦아 일제강점기에 도평의원을 지냈고, 동도보통학교를 설립하였다. 건국 후에는 줄곧 어협조합장, 면의회의장, 도교육위원 등 공직에서 활동하였다. 삼산면 동도리 출생으로 호는 귤산(橘山)이다. 한학을 닦아 일제강점기에 도 평의원을 지냈고, 1925년 거문도 동도리에 동도보통학교를 설립하였다. 건국 후에는 줄곧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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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부터 현재까지 전라남도 여수의 역사. 1949년 6월 여수항의 개항이 선포되고, 같은 해 8월 여수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나머지 지역은 여천군이 되어 여수시와 분리되었다. 1973년 여천군 돌산면 경호리가 여수시에 편입되어 경호동이 신설되었다. 1980년 12월 1일에 돌산면과 삼일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6년 1월 1일 여천지구 출장소가 여천시로 승격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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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순천반란사건, 여수 14연대 반란사건, 여순봉기, 여순항쟁, 여순군란이라고도 부르는 여순사건은 제주4·3사건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서 발생한 비극적 사건이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한 국군 제14연대 병사들이 제주4·3사건 진압명령을 거부하고 단독정부 수립반대, 미군 철수를 주장하며 여수, 순천 등 전라남도 동부지역을 점령한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승만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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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출신으로 제헌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 5.10 총선거로 여천 지역에서 제헌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제2대 국회의원과 여수어업조합장, 한국 어민회 초대회장을 지냈으며, 여수시장을 역임하면서 지역개발에 기여하였다. 여수수산학교를 졸업하고, 1948년 5월 10일 여천 지역에서 제헌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다. 여수어업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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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일본인 경제인. 후쿠나가 마사지로[福永政治郞, 1864~1935]는 여수 지역에 일제의 산미 증식 계획의 일환으로 고뢰농장[다카세농장]을 설립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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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흥국사 의승수군 유물전시관에 있는 조선 말기의 완문(포고령). 목판에 음각을 했으며 테를 두른 편액이다. 임진왜란 이후 300여 년 동안 유지되어 온 의승수군과 전라좌수영의 관계가 불편해지자 좌수사 이봉호가 갈등 관계를 조정하기 위하여 일종의 법령을 발표하여 시행한 포고령으로, 흥국사에서 이를 편액으로 만들어 효시하였다. 포고령의 내용은 네 가지인데, 첫번째는 세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