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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서 가신(家神)에게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민간 신앙. 민간 신앙은 크게 마을 신앙과 가신 신앙[가정 신앙], 무속 신앙으로 구분할 수가 있다. 마을 신앙은 마을 단위의 안녕과 풍작을 기원하는 공동체적인 신앙인 데 비해, 가신 신앙은 가족 구성원의 안녕과 무사를 기원하는 개별적·개인적인 신앙이다. 경상북도 영천시에서 모셔지는 가신으로는 성주·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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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도유리에 있는 광주 이씨의 시조 묘. 광릉은 600여 년 전 고려 말 광주 이씨 이집(李集)과 영천 최씨 최원도(崔元道) 두 사람의 신의와 우정이 담겨 있는 장소이다. 전해지는 이야기는 고려 말 최원도는 신돈(辛旽)의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고 고향 영천으로 내려와 살았다. 당시 우의가 돈독했던 친구 이집 또한 정사에서 떠나 둔촌동 집에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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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괴연동에 있는 마을 상엿집. 상엿집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데, 경상북도 북부 지역에는 ‘곳집’, ‘상여집’, ‘상엿집’이라 부르고, 영천 지역에서는 ‘상여집’, ‘행상집’, ‘생이집’, ‘고새이집’, ‘고생이집’ 등 다양하게 부르고 있다. 상엿집은 마을 공동의 상여나 그 제구를 보관하는 건물로 주로 마을 밖 산 밑에 지어 주민들이 관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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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서 가족이 질병에 걸렸을 때 무당을 불러 굿을 하게 하는 치병 의례. 구병제(驅病祭)는 영천시에서 전승되던 치병 의례 중 하나로서 무당을 불러 굿을 함으로써 병을 치유하게 하는 방법이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동네마다 무당이 1~2명씩은 있었고, 이들이 구병제[굿]를 주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구병제[굿]는 그 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에 대상이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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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옥계리에 있는 조선 시대 보(洑)를 막은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와 비각. 대재보는 화북면 옥계리 비집걸마을 앞을 흐르는 고현천에 놓은 조선 시대 보로, 벼농사 등의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건설했다. 옥계리는 화북면소재지가 있는 자천리의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비교적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산간 마을이다. 비각이 있는 비집걸마을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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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용소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전상필(全祥弼)이 세운 비. 대한광무황제 애민불망비(大韓光武皇帝愛民不忘碑)는 화북면 용소리 부들밭마을 남쪽 고현천변에 있는데 1910년 경술국치를 겪은 후 고종을 배알하기 위해 전상필이 건립했다. 용소리 부들밭마을은 화북면 내에서 북쪽에 있는 마을로 영천에서 청송으로 넘어가는 두메산골이다. 대한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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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도동에 살던 광주 안씨(廣州 安氏)들이 접빈객들에게 대접하던 국수. 영천에서 국도를 따라 4㎞쯤 가면 북안 쪽으로 흘러오는 호계(虎溪)가 있고 호계 기슭에 울창한 숲으로 마을 전체를 감추다시피 한 아담한 동네가 있다. 이곳이 바로 도남동인데 신라 시대에 도동현이 있던 자리라고 해서 오늘날 도동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이곳은 광주 안씨(廣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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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나무에 글을 새긴 인쇄용 판. 목판은 주로 사찰과 서원, 문중(門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문집 간행에 필요한 인쇄용 판을 말한다. 영천 지역에서는 고려 말 성리학이 도입되고 조선 왕조가 숭유정책을 취하면서 일찍부터 유가적 문풍(文風)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1. 고려 시대 여말 선초 영천 지역의 유풍(儒風) 진작에 영향을 끼친 인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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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학문에 뛰어난 사람. 영천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이후 많은 문인과 학자들이 배출된 고장으로, 특히 조선 시대에는 수많은 문인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1. 조선 전기 조선 초기 영천으로 유배를 온 태재(泰齋) 유방선(柳方善)이 팔공산(八公山) 아래에서 후학을 양성하기 시작하여, 대전(大田) 이보흠(李甫欽)과 경재(警齋) 곽순(郭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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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영천 관련 인물이 쓴 각종 시문(詩文) 등을 모아 편집한 책. 문집(文集)은 특정한 주제 의식이나 문체를 의식하는 것과 달리, 문체나 주제에 특별한 제약 없이 특정한 인물의 전 저작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또 편집도 다른 부류의 전적과 달리, 사적(私的)인 성격이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문집의 출간은 저자의 사후 학연(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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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생활 풍속. 영천 지역 주민들의 구체적인 생활 방식의 하나인 민속 행위는 과거 농경 사회라는 사회경제적인 조건을 기반으로 하여 구성된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민속 행위 가운데에는 현재적 요구에 적합한 것만이 전승되고 있는 실정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것은 점차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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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도계서원(道溪書院)에 있는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의 문집을 새긴 판목. 노계 박인로 선생의 판목은 도계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68장의 『박노계집』 책판을 말한다. 『박노계집』은 조선 선조 때 가사문학의 선구자인 시인 박인로[1561~1642]의 시문집이다. 박인로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장 정세아(鄭世雅)의 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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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천 지역의 무신. 본관은 구산(龜山), 자는 치서(致瑞), 호는 괴암(槐庵). 고조할아버지는 박이종(朴以宗), 증조할아버지는 박수창(朴壽昌), 할아버지는 박자형(朴自亨)이다. 아버지는 박세방(朴世芳)이며, 어머니는 오천 정씨(烏川鄭氏)이다. 부인은 숙부인(淑夫人) 영천 이씨(永川李氏)이며, 아들은 박몽렴(朴夢濂)와 박몽설(朴夢卨)이며, 사위는 주덕창(周德昌)과 정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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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보현산(普賢山)에서 많이 생산되는 산나물. 영천에 있는 많은 산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산은 보현산이다. 최근 들어서는 보현산에 천문대가 생기고 이곳을 중심으로 별빛 축제가 개최되면서 영천시를 상징하는 산으로 거듭나고 있는 상황이다. 보현산은 웅장하면서 수려하기도 하거니와 과거에는 모자산(母子山)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청송군과 경계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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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서 지속적인 관리와 환경 조성을 위해 보호하고 있는 나무. 생물의 유전자·종·자원생태계 등의 보전과 관리를 위한 목적을 지닌 보호수는 시·도지사 또는 지방산림청장이 지정하게 되어 있다. 보호수의 선정 기준은 보존할 가치가 있는 노목(老木)·거목·희귀목, 그 밖의 산림 밖에 있는 것을 포함한다. 보호수의 해제는 지정 목적 달성으로 존치할 필요성이 없다고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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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부산1리 핏골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면서 지내던 마을 제사. 동제(洞祭)는 마을 공동체의 풍작을 기원하면서 주민들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민간 신앙으로서 동제는 크게 유교식과 무속식이 있는데, 영천 지역의 동제는 대부분 유교식에 해당한다. 이것은 조선 중기 이후부터 유교적인 이념이 민간에까지 뿌리를 내려 정착하였기 때문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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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서 전해 내려오는, 아이의 출산과 성장을 관장하는 가신(家神). 삼신은 가정신앙의 하나로 영천시에서는 주로 ‘삼신할매’로 많이 불리는데, ‘삼신할매’는 아이를 점지해 주며, 태어난 아이가 크는 동안 탈 없이 자랄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몸에 몽고반점이 많으면 엄마 뱃속에서 늦게 나간다고 ‘삼신할매’한테 맞아서 멍든 자국이라는 속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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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일어난 변천과 흥망 과정의 기록. 영천(永川)은 삼한 시대 부족 국가 골벌소국(骨伐小國)이 형성된 이후 절야화군(切也火郡)·임고군(臨皐郡)·영주(永州)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조선조에 들어와 1413년(태종 13) 작은 군현은 주(州)라는 명칭을 금지하고, 대신 천(川)과 산(山)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도록 하면서 영천이라 하였는데, 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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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시는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350㎞ 지점에 위치하고, 경상북도의 동남부에 자리 하고 있다. 또 동쪽은 경주시와 포항시, 서쪽은 경산시와 대구광역시, 남쪽은 청도군, 북쪽은 청송군과 군위군이 접하고 있는 경북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도시이다. 역사적으로는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 및 봉수대(烽燧臺)와 연관이 있었고, 시장 및 교통망의 중심지로 대변되는 영천의 역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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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창구동에 있는 향토 브랜드의 맛집에서 생산하는 군만두. 영천 삼송꾼만두는 영천시 창구동 52번지에서 박원대·성정숙 부부가 1973년에 개업한 꾼만두 가게이다. 현재는 가게가 번창하여 아들·딸·며느리와 함께 가족 경영을 하고 있는 향토 브랜드 맛집이다. 현재는 아주 작은 골목길에 자리잡고 있지만, 영천삼송꾼만두 가게가 개업할 당시인 1970년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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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공설시장 내에서 소머리뼈와 사골을 이용해서 만드는 향토음식. 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공설 시장은 오늘날과 같이 상설화되기 전에는 2·7일마다 열리는 5일장이 서던 곳이었다. 여전히 2·7일 ‘장날’에는 농촌지역 주민들로 붐비면서 시장의 본질적인 향수를 느낄 수가 있는 곳이다. 영천시장은 옛말에 ‘잘 가는 말도 영천장, 못 가는 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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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서 생산되는 외떡잎식물 백합목 백합과의 두해살이풀. 양파는 백합과[파속작물]로서 구를 형성하는 작물중의 하나로 두해살이풀이다. 꽃대의 길이는 약 50~100㎝이며, 잎은 가늘고 길며 원통 모양으로 속이 비어 있다. 흰색 또는 연한 자주색의 꽃이 산형(繖形)으로 피고 땅속의 비늘줄기는 매운 맛과 특이한 향기가 있어서 널리 식용되고 있다. 양파는 겉껍질이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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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조선 전기 선조 때 문신인 조호익(曺好益)이 건립한 살림집. 조호익[1545~1609]의 본관은 창녕, 자는 사우(士友), 호는 지산(芝山)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1576년 최황(崔滉)에 의해 평안도 강동현으로 전가사변(全家徙邊)을 당한 뒤 임진왜란 때 석방되어 금오랑(金吾郞)으로 임명되었다. 그 뒤 소모관(召募官)으로 의병을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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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대재리에 있는 조선 시대 문신 조치우(曺致虞)의 묘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실과 옥비. 조치우[1459~1529]의 호는 정우당이며 조선 성종 때의 문신으로, 1494년 별사문과에 급제해 예문관 검열을 거쳐 성균관 전적이 되어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중종반정 이후 장령을 지내고 대구 부사를 역임하면서 어진 다스림을 펼쳐 칭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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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성리에 있는 조선 시대 신녕 현감을 지낸 윤명운(尹明運)의 불망비. 윤명운[1642~1718]은 본관 파평, 자는 여회(汝會)이다. 조선 숙종 26년 경진년(1700)에 의금부도사로 재직하다 외직으로 나와서 경상도 신녕현의 수령[현감]이 되었다. 신녕 현감으로서 탁월한 업적이 있어 백성들이 비석을 세워 그 은덕을 추모하였다. 윤명운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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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서당. 자양 서당은 김응생(金應生), 정윤량, 이의 등이 향리의 후진 교육을 위해 자양면 노항동에 창건한 서당 건물이다. 서당 내에는 퇴계 이황 선생의 친필 현판이 걸려 있으며, 동인각(東麟閣)에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모셔져 있는 김완(金浣) 장군은 김응생 선생의 제3자(第三子)이다. 자양 서당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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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에서 화학섬유가 나오기 전에 전통적인 방식으로 생산되던 삼베의 원료. 오늘날에는 화학 섬유가 생산되어 전통적인 방식으로 생산된 삼베를 찾기도 어렵거니와 그 원료인 삼을 생산해 내는 곳도 거의 없다. 수작업 방식으로 마련되던 옷감이 공장제 방식으로 전환된 이후에는 사실 자천 삼은 명성으로만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삼베는 모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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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에 있는 이수명(李受明)의 묘하(墓下) 재실(齋室). 자천재(紫泉齋)는 고려 말의 문관으로 감무 벼슬을 지냈으며 학문이 출중하였던 이찬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로 알려져 왔다. 재사 좌측에 있는 산이 문중산으로 이 산 중턱에 재단을 꾸미고 묘를 두었다. 『영양지(永陽誌)』에 자천재의 기록이 있는데 “재군북성곡기룡산하한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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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서 전해 내려오는, 부엌과 불 및 재물을 관장하는 가신(家神). 조왕은 가정신앙의 하나로, 영천시에서는 부엌 전체, 가마솥, 부뚜막의 신(神)으로 여기고 있으며, 가정의 재물을 관장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신체(神體)는 주로 조왕중발이라고 하여 정화수를 한 그릇 떠 놓는 것을 말하는데, 신체가 없는 것은 ‘건궁조왕’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조왕은 섣달그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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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서 덜 여문 벼를 쪄서 말린 후에 찧은 쌀. 영천시 지역민들은 군것질 꺼리가 없던 시절에 찐쌀을 즐겨먹는 풍속이 있었다. 찐쌀은 과거 농사작황이 어려웠던 시절에 추석이 다가와도 햅쌀 수확이 어려운 적이 많았기 때문에 유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추석이 되어 조상께 차례를 모시기 위해서는 그 해 수확한 햇곡식과 햇과일을 올려야 하는데, 기후 사정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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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과전동에 있는 정대임(鄭大任)과 정제(鄭梯)를 배향한 조선 후기 서원. 정대임의 본관은 영일, 자는 중경(重卿), 호는 창대(昌臺)이며 1553년(명종 8) 6월 4일에 태어났다. 정대임은 임진왜란에 분기하여 일어나 일신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창의하여 적을 토벌하고, 왜군을 공격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정제의 자는 가승(可升), 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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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녹전동에 있는 창대 정대임(鄭大任)의 주택. 창대 종택 건물은 조선 선조 때 무장으로 경상좌도 병마우후 의금부사를 지냈고,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을 모집하여 영천성 회복 등 여려 번 큰 공을 세워 통정대부 병조참의에 증직되고 선무원종공신 2등에 기록된 정대임[1553~1594, 자는 중경(重卿), 호는 창대(昌臺)]의 종택이다. 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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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곳나무 싸움은 줄당기기에 이어서 벌어지는 대동 놀이로서 영천 고을의 읍치였던 영천읍과 그 주변 지역에서 정월 대보름 명절에 벌어진 영천 특유의 대동 놀이로, 영천 사람들은 줄당기기의 승부보다는 곳나무 싸움에 보다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영천 곳나무 싸움은, 줄당기기의 승부가 결정되면 미리 줄머리에 자리하고 있던 양편의 용맹한 싸움꾼들은 암줄과 숫줄을 결합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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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노비. 충비(忠婢)인 제비[연아(燕娥)]는 최원도(崔元道)의 노비이다. 최원도는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남대 사간(南臺司諫)에 이르렀다. 최원도는 신돈(辛旽)이 득세하여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영천에 내려와 은거하고 있었다. 최원도와 같은 해에 과거에 급제한 둔촌(遁村) 이집(李集)[1314-1387]이 개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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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에 있는 오천 정씨 집안의 묘와 정세아의 묘비를 보호하기 위하여 지은 재실과 비각. 강의공(剛義公) 정세아(鄭世雅)는 임진왜란 때 의병 대장에 추천되어 영천성 복성 전투, 경주성 전투 등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정세아는 임진왜란이 끝난 후 논공행상(論功行賞)에 참여하지 않고 강호정사(江湖精舍)에서 제자를 기르며 학문을 닦아 덕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