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양주시 남면 황방리 감악산 정상부에 있는 신라 시대의 절터. 감악사(紺嶽寺)의 정확한 연혁은 알 수 없으나 신라 때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11 경기도(京畿道) 적성현(積城縣) 불우조(佛宇條)에 ‘감악산’이라고 기록하면서, 동각(東閣) 김신윤(金莘尹)과 관련된 고사를 함께 수록하고 있다. 또한 『범우고(梵宇攷)』[1799년 왕명에 의해...
-
경기도 양주시 남면 황방리 감악산 정상에 있는 비석. 비스듬히 서 있어 ‘삣뚤대왕비’라고 불렸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빗돌대왕비’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설인귀(薛仁貴)를 기리기 위한 사적비라고도 한다. 또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비라고도 하나 이는 와전인 듯하다. 글자가 잘 보이지 않으므로 몰자비(沒字碑)라고도 한다. 비가 감악산 정상에 서게 된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
경기도 양주 지역을 포함하는 고려 시대의 행정 구역. 본래 고구려의 매성군(買省郡)이었던 견주(見州)는 신라 경덕왕(景德王) 대 내소군(來蘇郡)으로 편제되었다가 898년 전후에 견주로 불리게 되었다. 이때 왕건(王建)이 양주와 견주를 쳐서 복속시켰기 때문이다. 고려 건국 후 견주는 개경 인근이자 양주 경계 내에 있던 곳으로, 정치·경제적인 중요성을 띤 행정 구역으로 편제되었다. 다...
-
경기도 양주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에 설치되었던 고려 시대의 행정 구역. 1390년(공양왕 2) 7월 서운관에서 송도 개경의 지적을 쉬게 하고 국운을 일으키기 위해 『도선비기(道詵秘記)』를 따라 한양으로 천도할 것을 상서하였고, 한양 궁궐 수리 등 관련 조치들이 행하여졌다. 그중 한양부를 중심으로 한 경기도 재편이 이루어졌다. 도성에서 바라볼 때 왼쪽에 해당하였던 양주 일대는 경기좌...
-
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양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경기도 양주시와 관련하여 양주라는 지명이 등장하는 것은 898년 부터이다. 양주와 함께 이미 견주(見州)도 이때 설치되어 있었다. 이후 고려 시대의 양주를 편의상 건국 후 정종(靖宗) 대까지를 초기, 문종(文宗) 대부터 원종(元宗) 대까지를 중기, 충렬왕(忠烈王) 대부터 고려 말까지의 후기로 나누어...
-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남양주시 화도읍 구암리에 있던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고대 이래 중앙 정부와 지방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통신 조직의 일종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구곡역(仇谷驛)은 고려 시대에는 춘주도(春州道)의 역 가운데 양주[남경] 지역에 속해 있으면서 양주·한양에서 춘주[춘천] 방면을 연결하였고, 조선 시대...
-
고려 시대의 삼경(三京) 중, 경기도 양주에 설치된 행정 구역. 경기도 양주는 한강과 삼각산 등을 끼고 있어 지리적·경제적·군사적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었고, 교통 및 무역로가 발달해 있었다. 이런 연유로 1067년(문종 21)에 양주를 남경(南京)으로 승격시켰다. 이로서 양주는 서경[평양]·동경[경주]과 함께 삼경의 하나가 되었다. 양주 지역은 원래 양주목에서 지주사(知州事)로 격...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증조할아버지는 밀직부사 남군보(南君甫), 할아버지는 풍저창 부사 남익저(南益㫝)이다. 아버지는 지영광군사를 지낸 남천로(南天路)이다. 어머니는 함양 박씨(咸陽朴氏)로 중랑장 박종(朴琮)의 딸이다. 부인은 순창군부인(順昌郡夫人) 임씨(任氏)이다. 형은 시중(侍中)을 지낸 남을번(南乙蕃)이다. 아들은 남근(...
-
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현재의 동두천시 지역에 있던 고구려의 현. 475년(장수왕 63) 고구려의 장수왕은 남진 정책을 추진한 결과 백제 도성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사로잡아 죽였다. 이후 고구려는 한강 유역과 양주 일대에 남평양(南平壤)을 설치하였고, 양주를 그 치소로 삼았다. 내을매현(內乙買縣)은 이때 설치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권35, 잡지4 지리2 신라 한주 견성군]에...
-
고려부터 조선 시대까지 경기도 양주에 설치되었던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고려와 조선 시대 주요 도로에 일정한 거리마다 설치되어 교통 통신의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불렀다. 노원역은 청파역과 함께 한성부 성저십리(城底十里) 지역에 위치하였으며, 함경도 지방을 연결하는 첫 번째 역으로 청파역과 함께 병조에서 관리하였다. 노원역은 다른 지역의 역들과 마찬가지로...
-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의정부시 녹양동에 있던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고대 이래 고려·조선 시대에 중앙 정부와 지방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통신 조직의 일종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녹양역(綠楊驛)은 고려 시대에는 청교도(靑郊道)의 역 가운데 양주 관내 견주 지역에 속해 있으면서 개경(開京)에서 양주[남경] 방면을 연결하...
-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에 있던 국영 숙식 시설. 원(院)은 고려·조선 시대에 공무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주요 도로나 인가가 드문 지역에 설치한 국영 숙식 시설로, 대개 역(驛)과 관련되어 역의 중간 지점에 설치되므로 보통 역원(驛院)이라 하였다. 고려와 조선 시대의 원은 중앙 집권적 지방 통치와 교통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주로 교통상의 요지에 자리 잡고 있어 교역...
-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고구려의 군. 본래 지금의 양주시 일대는 고구려에 속하였다가 백제 근초고왕이 취한 이후 백제 군현으로 편제되었다. 그러나 다시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 정책으로 다시 고구려 군현이 되었다. 특히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7 지리지에서는 매성군이라 칭하고 있으나 같은 지역을 놓고 『삼국사기』 권35 지리2 신라 한주 내소군조 및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밀양. 자는 자계(子啓). 증조할아버지는 박강생(朴剛生)이며, 할아버지는 교서관 정자 박절문(朴切問)이고 아버지는 정난공신 박중손(朴仲孫)이다. 어머니는 공조 정랑 문승조(文承祚)의 딸이다. 박건(朴楗)[1434~1509]은 1453년(단종 1) 사마시에 합격한 뒤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집현전 수찬과 부교리 등 삼...
-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에 있던 국영 숙식 시설. 원(院)은 고려·조선 시대에 공무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주요 도로나 인가가 드문 지역에 설치한 국영 숙식 시설로, 대개 역(驛)과 관련되어 역의 중간 지점에 설치되므로 보통 역원(驛院)이라 하였다. 고려와 조선 시대의 원은 중앙 집권적 지방 통치와 교통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주로 교통상의 요지에 자리 잡고 있어 교역...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있는 조선 시대 성황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의 터. 고려 전기의 성황신은 국가 수호의 의미를 가진 신으로 각 지방관이 입묘(立廟)하여 춘추(春秋)로 제사를 지냈다. 이후 점차 민속화하여 고려 중기에 이르러 전국 각 지방으로 퍼졌으며, 후기에는 토속적인 고유 신앙과 결합되어 제사를 지냈다. 조선 건국 초에는 국가의 공적 의례에 포함되어 전국적으로 군현의 읍치...
-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거주하고 있는 성씨(姓氏). 성씨의 연원은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한 다음 전국의 군·현의 이름을 개정하고 개국 공신을 책봉했던 940년(태조 23)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이전 고대 국가에서는 성씨는 왕족과 극히 일부 중앙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후삼국 시대 성주(城主), 장군, 촌주 등의 신분을 지니면서 지방 세력을 대표하던...
-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남양주시 진전읍 내곡리에 있던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고대 이래 중앙 정부와 지방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통신 조직의 일종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쌍수역(雙樹驛)은 고려 시대에는 상수역(桑樹驛)으로 불렸으며 춘주도(春州道)의 역 가운데 양주 관내 풍양현에 속해 있으면서 양주[남경]에서 포천·가평...
-
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 지금의 경기도 양주시 일대에 설치한 행정 구역. 신라 경덕왕 대에 한강 주변 지역을 한산군으로 편제하여 다스렸는데, 양주(楊州) 지역도 여기에 포함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898년 왕건(王建)에 의해 양주와 견주(見州)가 정벌되면서 궁예(弓裔)의 세력 아래에 속하게 되었고, 고려 건국 이후 한강과 임진강 일대에 해당하는 양주는 요충지로 인정받았다. 때문에...
-
경기도 양주시 어둔동과 백석읍 방성리 대모산에 걸쳐 있는 백제 시대의 성곽. 양주 대모산성(楊州大母山城)은 근초고왕(近肖古王) 이래 백제가 양주 일대를 지배하면서 한강 이북을 방어하기 위해 전략적 요충지에 세운 성의 하나로 여겨진다. 양주산성(楊州山城)이라고도 한다. 산성에서 발견된 세발 토기를 비롯한 백제 토기와 ‘덕부사(德部舍)’ 등과 같은 명문 기와편이 이를 증명해 준다. 양...
-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조선 시대 진상되었던 특산 밤. 양주 밤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되어 있는 특산물로, 임금님에게 진상되었던 양주의 대표 작물이었다. 양주 밤의 연원은 정확하게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양주 지역에는 산이 많아 자생 밤나무가 많았으며, 달고 맛있는 밤을 맛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시대 한양 부근인 양주에서 생산되는 밤은...
-
성씨의 연원은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나 찾아볼 수 있다. 왕건이 전국의 군·현 이름을 개정하고 개국 공신을 책봉했던 940년(태조 23)으로 거슬러 올라갈 때 고려 이전 고대 국가에서는 성씨가 왕실 및 일부 귀족의 전유물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양주의 토착 성씨는 조선 전기 사회 상황을 전하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있는 조선 시대 여제(厲祭)를 지내던 제단 터. 여제는 제사를 받지 못하는 무주고혼(無主孤魂)이나 전염병을 퍼뜨리는 귀신인 여귀(厲鬼)에게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조선 시대에는 서울과 지방의 각 군현에 여단을 두어 역병을 예방하였다. 여제단(厲祭壇)을 줄여서 여단(厲壇)이라고도 하는데, 동쪽의 성황단, 서쪽의 사직단과 함께 관아에서 필수적으로 세우는 제단이었...
-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교통·통신 제도. 역(驛)은 고대 이래 고려·조선 시대에 중앙 정부와 지방 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 통신 조직의 일종이다. 역은 국가가 지방 통치를 위한 정령(政令)의 전달과 관리의 왕래, 외교 사행의 영송(迎送), 군사의 왕래 등 국가의 공적 행위가 원활히 수행되도록 하는 교통·통신...
-
고려부터 조선까지 경기도 양주에 설치된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고대 이래 중앙 정부와 지방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통신 조직의 일종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영서역(迎曙驛)은 고려 시대에는 청교도(靑郊道)의 역 가운데 양주[남경] 지역에 있으면서 파주·교하·개경 등지를 연결하였고, 조선 시대에는 양주 치소에서 서쪽 60리[24㎞]...
-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의 주요 도로에 세워져 국가가 경영한 여관. 원(院)은 고려·조선 시대에 공무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주요 도로나 인가가 드문 곳에 둔 국영 숙식 시설의 일종이다. 대개 역(驛)과 관련되어 역의 중간 지점에 설치되므로 보통 역원(驛院)이라 하였다. 공무 여행자의 교통 숙식 시설 중에는 관(館)도 있었는데, 객관(客館) 혹은 객사(客舍)...
-
경기도 양주시 남면과 파주시 적성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고려 및 조선 시대의 현. 임진강을 끼고 있어 교통상, 군사상의 요지였던 경기도 양주 지역에는 삼국 시대 때부터 토탄성(吐呑城)·아미성(峨嵋城)·육계성(六溪城)·수철성(水鐵城) 등의 많은 성이 있었다. 따라서 일찍부터 요지로 인식되었고, 고려 시대에 들어 성이 많다 하여 ‘적성(積城)’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주로 속...
-
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의정부에 묘소가 있는 여말 선초의 문신. 본관은 동래. 자는 중상(仲常), 호는 설학재(雪壑齋). 아버지는 감찰 대부 봉원부원군(蓬原府院君) 정양생(鄭良生)이다. 어머니는 찬성 안축(安軸)의 딸 순흥 안씨이다. 첫째 부인은 참의 이인(李嶙)의 딸 고성 이씨이고, 둘째 부인은 좌윤 윤승경(尹承慶)의 딸 파평 윤씨이다. 아들은 정효경(鄭孝卿), 정선경(...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평양. 고려 충선왕의 장인인 문하시중 조인규(趙仁規)의 4세손으로, 할아버지는 판도판서 조덕유(趙德裕)이고, 아버지는 조선의 개국공신인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 조준(趙浚)이다. 부인은 태종의 둘째딸 경정공주(慶貞公主)이다. 자녀는 아들 조무영(趙武英)과 딸 넷을 두었다. 딸 하나는 문종의 처남이었던 김중엄(金仲淹)에게...
-
경기도 양주시에 사당이 있는 여말 선초의 무신. 본관은 한양. 호는 퇴촌(退村). 중국에서 귀화한 조지수(趙之壽)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순후(趙珣厚)이고, 아버지는 조세진(趙世珍)이다. 조선 개국공신 1등 조인옥(趙仁沃)과 개국공신 2등 조온(趙溫)과 친척으로, 그들의 출세에 힘입어 한양을 본관으로 하게 되었다. 태조 이성계(李成桂)와는 사돈 관계이다. 조영무(趙英茂)[?~14...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이원(而元). 증조할아버지는 조신(趙愼)이고, 할아버지는 공조 좌랑 조안평(趙安平)이며, 아버지는 한산군(漢山君) 조온지(趙溫之)이다. 어머니는 해주 오씨(海州吳氏)로 예빈 판사(禮賓判事) 오축(吳軸)의 딸이다. 부인은 안동 권씨(安東權氏)로 판관 권상량(權尙良)의 손녀이고, 별제 권관(權關)의 딸...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통일 신라 시대의 현. 중성현(重城縣)은 통일 신라 시대에 경덕왕이 지금의 양주시 남면 일대를 관할하기 위해 설치한 현이다. 본래는 고구려의 칠중현(七重縣)이었으나 진흥왕 대 한강 유역 점령 후 한주(漢州)가 설치되면서 이에 속하였고 후에 내소군(來蘇郡)의 두 영현 중 하나가 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권35, 잡지4 지리2 신라 한주 내...
-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같은 성씨가 오랜 기간 한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는 지역. 집성촌이란 하나의 지배적인 동성 동족(同姓同族) 집단이 특정 마을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마을이다. 집성촌이 형성된 시기에 대해선, 어떤 성씨는 고려 시대 혹은 고대까지 올려 잡기도 하고, 실제로 어떤 거주자들은 자신이 속한 집성촌이 300~400년 혹은 500~600년 전에 만들어졌다...
-
고려부터 조선까지 경기도 양주에 설치된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고대 이래 고려·조선 시대에 중앙 정부와 지방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통신 조직의 일종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청파역(靑坡驛)은 고려 시대에는 청교도(靑郊道)의 역 가운데 양주[남경] 지역에 있으면서 파주·교하·김포·부평 등지를 연결하였고, 조선 시대에는 숭례문[남대...
-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남양주시 삼패동 평구마을에 있던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고대 이래 중앙 정부와 지방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통신 조직의 일종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평구역(平丘驛)은 고려 시대에는 남경[양주]에서 평창이나 봉화 방면으로 갈 수 있는 평구도(平丘道)의 중심 역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찰방(察訪)[종6...
-
경기도 양주에 설치된 고려 후기의 행정 구역. 1308년(충렬왕 34) 심양왕(瀋陽王)이었던 충선왕이 중앙과 지방 제도 및 관제 개편 등을 단행하면서 양주에 한양부를 설치하였다. 이는 충선왕 자신의 왕권 강화 및 원의 체제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진행된 것이었다. 이를 통해 한편으로는 많은 부윤을 파견함으로써 지방의 독자성을 견제하고자 시도하였다. 『고려사(高麗史)』[권77, 지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