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서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의 이름은 남양리의 서쪽이 되므로 남서리가 되었다. 본래 남면 지역인데, 1906년 행정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등 5개 동과 북면의 태하·학포 등 2개 동을 병합하여 서면을 설치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면과 구암을 병합하여 남서동[현 남서리]으로 개편하였다. 그 뒤 남서동을 2개 구로...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서리에 속하는 행정리. 남서리는 남양리의 서쪽이라 하여 불렸는데, 남서천 서측의 대등[566.1m]을 넘어서면 남서2리가 된다. 본래 남면 지역인데, 1906년 행정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등 5개동과 북면의 태하·학포 등 2개동을 병합하여 서면을 설치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면과 구암을 병합하여 남서동[현 남서...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리에 속하는 행정리. 남양리는 원래 골계의 일부였으나 행정구역을 편제할 때 2개로 나누어 하나는 남양리라 하고, 하나는 남양리의 서쪽이라 하여 남서리라 하였다. 본래 남면 지역인데, 1906년 행정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등 5개 동과 북면의 태하·학포 2개 동을 병합하여 서면을 새로 설치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리에 속하는 행정리. 남양리는 원래 골계의 일부였으나 행정구역을 편제할 때 2개로 나누어 하나는 남양리라 하고, 하나는 남양리의 서쪽이라 하여 남서리라 하였다. 그리고 석문동은 평지이면서 삼면이 성을 쌓아놓은 것과 같은 모양이다. 다만 입구에 서쪽으로 뻗어 있는 큰 바위가 문을 세워 놓은 것 같다고 해서 ‘석문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남면 지역인데,...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리에 속하는 행정리. 남양리는 원래 골계의 일부였으나 행정구역을 편제할 때 2개로 나누어 하나는 남양리라 하고, 하나는 남양리의 서쪽이라 하여 남서리라 하였다. 본래 남면 지역인데, 1906년 행정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등 5개 동과 북면의 태하·학포 2개 동을 병합하여 서면을 새로 설치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1882년(고종 19)에 울릉도 개척령이 반포되면서 주민이 입도하기 시작하여 이곳에 자치지휘소를 설치하고 도방청이라 불렀다. 그 이후 이규원의 일기에서도 도동을 도방청포구(道方廳浦口)라 기록하고 있으며, 도방청은 번화한 곳을 가리켰으며, 이후 도방청의 도(道)자를 따서 도동(道洞)이라 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태하에 있던 군청이 191...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1882년(고종 19)에 울릉도 개척령이 반포되면서 주민이 입도하기 시작하여 이곳에 자치지휘소를 설치하고 도방청이라 불렀다. 그 이후 이규원의 일기에서도 도동을 도방청포구(道方廳浦口)라 기록하고 있으며, 도방청은 번화한 곳을 가리켰으며, 이후 도방청의 도(道)자를 따서 도동(道洞)이라 하였다. 일제강점기 때에 태하에 있던 군청이 19...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1882년(고종 19)에 울릉도 개척령이 반포되면서 주민이 입도하기 시작하여 이곳에 자치 지휘소를 설치하고 도방청이라 불렀다. 그 이후 이규원의 일기에서도 도동을 도방청포구(道方廳浦口)라 기록하고 있으며, 도방청은 번화한 곳을 가리켰으며, 이후 도방청의 도(道)자를 따서 도동(道洞)이라 하였다. 일제강점기 때에 태하에 있던 군청이 1...
-
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해 있는 행정구역. 석포동 남쪽 산등성이를 타고 남서쪽으로 올라가서 이 섬의 최고봉인 성인봉을 거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타고 내려가서 태하령과 노인봉을 지나 태하동, 말바위와 남서동 물칭칭 사이 산 끝까지를 경계로 하여 북쪽에 있다고 해서 북면이 되었다. 1900년 10월 25일 군제를 실시하면서 남면과 북면으로 나누어지고, 북면에는 석포·천부·신리·평리·...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사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이 마을은 예로부터 옥과 같은 맑은 모래가 바닷가에 가로 놓여 있었기 때문에 이곳 지명을 ‘옥같은 모래가 누워 있다’는 뜻에서 와옥사(臥玉沙)라 불렀다. 그러나 오랫동안 불려지는 동안에 어느덧 와옥사(臥玉沙)가 와록사(臥鹿沙)로 변하였고, 뒤에 한자식 이름으로 표기될 때 사(沙)만 취하여 사동(沙洞)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도 와록사...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사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이곳은 나무도 울창하고 평지가 있어 농사짓기에도 알맞아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는데, ‘산 안쪽 깊숙한 곳에 있는 평지’라는 의미로 안평전[內平田]이라 한 것이다. 그리고 옥천동(玉泉洞) 또는 우복동(牛伏洞)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이 산등성이가 마치 소가 엎드려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황무지였는데, 1884년...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사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울릉읍과 서면의 면계에 마치 큰 배의 앞부분을 엎어놓은 듯한 산이 바다에 솟아 있다. 이 동리는 신리나 죽영보다 더 산의 끝 쪽의 고개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갓영·갓령[邊嶺]이라 불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에 한자로 표기하면서 간령(間嶺)·간영이라 불려지고 있다. 금강원 아래 마을에 사람들이 점차 많이 살게 되자 우복동 일부와...
-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현포2리에 속하는 마을. 바다에서 이 마을로 들어오다 보면 집은 보이지 않고 지형이 살강[부엌에 그릇을 얹어 놓는 선반]처럼 생긴 곳이 있는데 이곳을 살강터라고 한다. 빨래를 하거나 설거지를 하던 곳으로 가는 곳까지 바위가 징검다리 모양으로 놓아져 있어, 건널 때마다 흔들렸다고 한다. 본래 북면 지역으로 우산국 때부터 사람이 살았는데, 조선시대 때 공도 정책에...
-
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해 있는 행정구역. 저동(苧洞) 와달리(臥達里) 북쪽 산등성이를 타고 남면 쪽으로 올라가서 최고봉인 성인봉을 거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타고 내려가서 태하령을 지나 태하동[현 태하리]의 말바위와 남서동[현 남서리]의 물칭칭 사이 산 끝까지를 경계로 하여 그 서쪽을 서면이라 하였다. 1906년 행정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등 5개...
-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천부4리에 있는 지명. 개척 후 전라도 사람이 나선을 타고 와서 배가 정박하기 좋은 곳과 고기가 많이 잡히는 곳을 찾다가 이곳을 발견했는데, 울릉도의 생김새가 마치 사람의 머리와 같고 이곳은 그 목 부분에 해당한다고 해서 섬목이라 하였다. 북쪽에는 두루봉이 있으며, 주변 지역은 대부분 150~250m의 높고 낮은 산으로 되어 있다. 경사는 30~100%인 산악...
-
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해 있는 행정구역. 1882년(고종 19)에 울릉도 개척령이 반포되면서 도장제(島長制)를 실시하였고, 1900년 10월 25일에는 군제(郡制)를 실시하였다. 저동 와다리[臥達里] 북쪽 산등성이를 타고 남면 쪽으로 올라가서 최고봉인 성인봉을 거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타고 내려가서 태하령을 지나 태하동[현 태하리]의 말바위와 남서동[현 남서리]의 물칭칭 사이...
-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천부3리에 속하는 마을. 대바위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웃대바위라 한다. 본래 북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석포동과 나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천부동이 되었다. 그 뒤 구제 실시에 의하여 3개 구로 나누었다가 1952년 구를 동으로 고쳤다. 1965년 북면 조례에 의하여 천부3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17일 동이 리로 명칭이 변경...
-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현포1리에 속하는 마을. 현포리에서 태하리 쪽으로 나가면 있는데, 이곳은 지형이 움푹하게 들어가 모퉁이가 졌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본래 북면 지역으로 우산국 때부터 사람이 살았고, 공도 정책에 의하여 수백 년을 비어 오다가 1884년(고종 21) 울릉도 개척 정책에 따라 전라도 개척민들이 이 곳에 살면서 가문작지바위 이름을 따서 가문작지 또는 현포라 하였다...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저동은 울릉의 개척 당시 이곳 갯벌에 모시가 많이 자생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시가 많이 나는 갯벌이라는 뜻으로 모시개라 부르다가 지명을 한자로 표기할 때 모시 저(苧)자를 써서 저동이라 하였다. 일반적으로 저동의 중심지인 저동항은 행정명으로 도동3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시가 많이 나는 곳이란 의미의 저동은 저동1리와 저동2리·도동3리...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저동2리는 중간모시개와 작은모시개 일원을 말한다. 중간모시개는 큰모시개와 작은모시개 사이에 위치하며, 작은모시개는 내수전[저동3리] 사이의 저동을 말한다. 이곳은 해변 전면에는 북저바위와 주도(冑島)가 위치하며 서측의 주요 능선에서 급경사를 이루며, 주거지는 주로 도로변과 해변 일대에 형성되어 있다. 저동은 울릉의 개척 당시 이곳 갯...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저동은 울릉의 개척 당시 이곳 갯벌에 모시가 많이 자생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시가 많이 나는 갯벌’이라는 뜻으로 모시개라 부르다가 지명을 한자로 표기할 때 모시 저(苧)자를 써서 저동이라 하였다. 내수전(內水田)이라고 일컫는 지역은 과거 김내수(金內水)라는 자가 화전을 일구고 살았다고 하여, 김내수가 화전하던 곳이란 의미에서 내수전이...
-
경상북도 울릉군 천부면 현포2리에 속하는 마을. 석봉산 아래에 있는 이 마을은 가까운 산에 닥나무가 많아 이 껍질로 한지를 만들던 지통(紙筒)이 있었기 때문에 지통골이라 부른다. 본래 북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평리동을 병합하여 현포동이 되었다. 그 뒤 구제 실시에 의하여 3구로 나누었다가 1952년 평리·구암·살강태·지통골을 합하여 현포2동이 되었다. 19...
-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천부리에 속하는 행정리. 울릉도 최초의 개척선이 와 닿은 항구가 있던 마을이다. 개척 초에는 ‘왜선창(倭船艙)’이라 불리던 것이 잘못 인식되어, 옛날의 선창 곧 옛 선창이란 뜻에서 예선창이라 부르다가 후에 한자식 표기를 할 때 현 천부동의 동명을 그대로 사용하여 천부(天府)라고도 하였다. 또한, 울릉도 개척 초 이곳에 살기 위해 온 사람들이 나무를 베어낸 뒤...
-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천부리에 속하는 행정리. 울릉도 개척 초에 예선창에 내린 사람들 중에 덕산이씨(德山李氏)의 백산노인과 간성이씨(杆城李氏)의 철원노인 두 사람이 바닷가에 살 수가 없다고 하여 가족을 거느리고 이곳에 왔다. 와서 보니 아름드리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하늘을 찌르고, 갖가지 넝쿨이 엉켜 있는 운동장 남짓한 평지가 있어 만약 샘물만 있으면 살기에는 가장 좋은 곳인 듯해서...
-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천부리에 속하는 행정리. 본래 북면 지역인데, 1900년 10월 25일 군제를 실시하면서 석포·천부·신리·평리·현포·태하·학포의 7개 동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06년 행정구역을 다시 나누어 석포·천부·나리·현포·평리 5개 동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현포동과 평리동을 병합하여 현포동으로, 천부동·석포동·나리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천부동으...
-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천부리에 속하는 행정리. 본래 북면 지역인데, 1900년 10월 25일 군제를 실시하면서 석포·천부·신리·평리·현포·태하·학포의 7개 동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06년 행정구역을 다시 나누어 석포·천부·나리·현포·평리 5개 동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현포동과 평리동을 병합하여 현포동으로, 천부동·석포동·나리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천부동으...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1리에 속하는 마을. 원래 태하에는 황토가 많이 났다고 한다. 지금도 현포 쪽 바닷가 산에 보면 황토를 파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조선조 때는 이곳의 황토가 나라에 상납까지 되었다고 하고, 또 조정에서 3년에 한 번씩 삼척영장을 이 섬에 순찰을 보냈는데 그 순찰 여부를 알기 위해서 이곳의 황토와 향나무를 바치게 했다고도 한다. 개척...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리에 속하는 행정리. 울릉도 개척 때 사람들이 현 태하리에 와 보니 바닷가 산에 황토를 파낸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큰황토구미라 하였던 것이다. 뒤에 한자식 지명으로 표기할 때 대하(臺霞)라 하다가 다시 태하(台霞)라 표기하였다. 본래 북면의 지역인데, 순종 원년에 서면에 편입되었다. 1906년 행정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등 5...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리에 속하는 행정리. 울릉도 개척 때 사람들이 현 태하리에 와 보니 바닷가 산에 황토를 파낸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큰황토구미라 하였던 것이다. 뒤에 한자식 지명으로 표기할 때 대하(臺霞)라 하다가 다시 태하(台霞)라 표기하였다. 본래 북면의 지역인데, 순종 원년에 서면에 편입되었다. 1906년 지방행정 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현포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의 이름은 동쪽에 있는 촉대암(燭臺岩)의 그림자가 바다에 비치면 바닷물이 검게 보이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본래 북면 지역으로 1900년 10월 25일 군제를 실시하면서 석포·천부·신리·평리·현포·태하·학포의 7개 동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06년 행정구역 개편시 석포·천부·나리·현포·평리의 5개 동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
-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현포리에 속하는 행정리. 현포(玄圃)라는 마을 이름은 동쪽에 있는 촉대암(燭臺岩)의 그림자가 바다에 비치면 바닷물이 검게 보이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본래 북면 지역으로 1900년 10월 25일 군제를 실시하면서 석포·천부·신리·평리·현포·태하·학포의 7개 동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06년 행정구역 개편시 석포·천부·나리·현포·평리의 5개 동을 관할하였다....
-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천부2리에 속하는 마을. 개척 당시 이 곳 한 농가의 주인이 병으로 고생을 하다가 점을 쳐 보았다. 그러자 집 앞에 붉은 대문을 세워 두면 병이 나을 것이라는 점괘가 나왔다. 주인은 곧 깊은 산 속에 들어가 좋은 나무를 베어 대문을 만들고 붉은 칠을 해서 세워 놓았다. 그러자 정말 신통스럽게도 병이 나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웃 마을 사람들이 이곳은 붉은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