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원수격인 박정희 의장이 울릉도를 방문한 지도 어언 40여년이 훌쩍 지났다. 저동이 동해안 어업전진기지로 지정됨으로써, 박 의장의 약속이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울릉 주민들은 40년이 지나도록 완성을 보지 못하는 일주도로에 대해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울릉도 주민들은 아직도 일주도로가 완성되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이 많습니다. 40년 전에 울릉도 일주도로 건설은 박정희...
-
촛대바위 는 저동 앞 바다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이다. 모양이 마치 촛대를 세워 놓은 듯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촛대의 형상이 가장 잘 나타나는 곳은 수협의 냉동 창고 전면에서 보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의 저동마을에 어느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일찍이 죽고 딸과 함께 살았습니다. 조그마한 배 한 척과 손바닥만한 밭이 재산의 전부였습니다. 겨울 양식이라...
-
저동의 수협공판장에서 아주머니들이 이면수를 손질하고 있다. 지난 저녁에 그물을 펼쳤다가 새벽에 바다로 나가 거둬들인 것들이다. 칼로 할복을 하고 내장을 꺼내고 그 다음 머리부터 꼬리까지 반으로 쪼개어 펴면 일차적인 손질은 끝난다. 한 마리 손질에 10여 초 남짓. “갈매기랑 한번 놀아볼래요? 내가 갈매기를 불러 줄까요?” 아주머니는 손질하던 이면수의 내장을 시멘트 바닥에...
-
어업전진기지로서의 저동은 이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황금알이라고 여겨졌던 오징어잡이 환경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울릉도는 인구가 근 3만 가까이 되었는데, 그때, 전성기 때는 개가 천 원짜리, 5천 원짜리 물고 다니고 했었는데, 지금은 경기가 아주 안 좋습니다. 정말 지역에서 고향을 지키고 살아가던 사람들이 다 외지로 떠나고 몇 분만 남았지만은 모두 다 상당...
-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곳에는 식물성 플랑크톤과 동물성 플랑크톤이 살기에 적당한 수온을 유지한다. 울릉도를 비롯한 주변 어장은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는 지역이다. 울릉도 주변 해역은 플랑크톤이 많을 수밖에 없다. 플랑크톤이 많으면 이것을 먹이로 하는 작은 물고기들이 많고, 작은 물고기들이 많이 살고 있으면 이들을 먹이로 하는 다양한 물고기가 몰려들게 마련이다. 일제강점기, 울릉도 연근...
-
1922년생으로 북한에서 월남하였다는 윤병두. 저동에서는 한때 오징어잡이의 지존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많이 배운 데에다가 성실하기가 그지없기 때문. 그는 해방이 되고 고향을 떠나 왔다고 한다. “북한 강계에 살았는데, 8·15 해방이 되자 남쪽으로 내려왔어. 서울에 살다가…… 한때는 묵호에도 있었지. 울릉도는 그 뒤에 왔어. 묵호서 살다가 울릉도에 온 것은 한 30...
-
“선주가 주선해주면 선장이 하고, 선장이 교회 장로나 교회를 다니면 하지 않지. 그래도 불교 신자들은 거의 빌어요. 제물로는 돼지머리도 삶고, 떡도 하고, 부침개도 하고, 어물도 하고……. 그것도 제법 돈이 많이 들어요.” 출항을 하기 전에 지내던 기원제에서는, 선원들의 안전을 주로 빌었다고 한다. “지금은 해경이 감시하고 있어……. 3, 40년 전에는 그런 거 없었어요. 그러니...
-
꽁치를 물회로 먹는 고장은 거의 없다. 울릉도 꽁치는 청정 해역에서 자라는데다가 손으로 잡기 때문에, 꽁치를 물회로 즐길 수 있다. 손질한 생물꽁치를 바로 냉동실에 넣어 하루 이상 냉동시켰다가 물회로 해 먹는데, 처음 꽁치물회를 먹는 사람은 적응이 잘 안 되어 설사가 날 수 있다고도 한다. “처음 꽁치물회를 먹는 사람은 아다리가 잘 돼요. 특히, 배를 타는 날이면(출도를 하는날이면...
-
대섬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한다. 관광객, 낚시꾼, 그리고 낚시꾼들을 뒷바라지 하는 동네 아주머니도 빼놓을 수 없는 대섬의 손님이다. 그들을 낚시도우미라 한다. 낚시꾼들은 본섬에서 물과 솥, 가스버너, 각종 먹을거리 등을 배에다 싣고 들어온다. 강태공들이 낚시를 하는 동안, 점심이며 참이며 먹을거리를 준비하는 일이 낚시도우미의 임무이다. 보통 도우미를 필요로 하는 낚시...
-
“이 항구가 저동인데, 저동은 동해안 어업전진기지야. 동해안 전체의 배가 오징어를 잡으러 이리 오곤 해. 오징어 철이 끝나면, 포항에 날나리를 만들 재료를 사러 가지. 파는 것이 없어서 직접 만드는데, 빙글빙글 거리면서 까닥까닥 거리기에 날라리라고 하지.” ‘날나리’. 그는 그것을 직접 만들었단다. 그리고 아무런 뜻도 없이 그냥 ‘날나리’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날라리’는 오징어잡...
-
윤병두 씨는 자녀교육에도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열심히 잡아야 해. 애들도 내 배운 만큼은 해줘야 해. 아버지 노릇 할려면 내가 고등학교까지 배웠으면 애들도 고등학교까지 배워주어야 해.” 방탕한 생활에 곁눈질 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였기에, 그는 선주나 선장에게 인정을 받았다. 자신의 이야기라면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어줄 정도로 신뢰를 받았다고 한다. “술...
-
울릉도는 지형상 평지 면적이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주거환경은 열악한 편이다. 가옥의 실내 공간이 대체로 좁을 뿐만 아니라 정원을 갖추지 못한 집이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내 환기조건이 그렇게 양호하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가능하면 오징어를 바닷바람에 당일 말릴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러나 비가 오거나 습기찬 바람에는 오징어를 건조하기 어려워 집 안에서 말릴 경...
-
저동의 주택들 지붕에는 철제 막대가 어지럽게 걸쳐져 있다. 오징어를 말리기 위한 ‘덕장’이다. 오징어가 많이 생산될 때 이들 덕장은 오징어로 장관을 이룬다. 덕장은 일반적으로 평지에 조성된다. 그러나 평지가 거의 없는 울릉도에서는, 덕장이 주택 위에 많이 설치되어 있다. “나는 움직이는 덕장이 2개 있어요. 집에는 덕장이 없고요. 내야 혼자니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
저동이 어업전진기지로 각광을 받을 시기, 보다 큰 규모의 오징어배는 약 한달 정도 바다에 머문다고 한다. “한 30년 전에 45톤짜리……, 대화퇴 소련 앞바다까지 가서 밤새워 오징어를 잡곤 했어. 그 배에서 4년 탔는데, 일등은 두 번밖에 안 놓쳤어.” 한 달 동안이나 바다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그 생활은 말도 못하게 비참하다고 한다. 오징어는 특성상 밤에 잡기 때문에,...
-
“사방에 대나무가 천지였다 카데예. 지금도 보만 대나무가 많다 아임니꺼. 지금은 절벽 같은데 만으예” 대섬은 울릉도 본섬과 약 2k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울릉도 주변 도서 중에서 가장 큰 섬이다. 이곳은 개척 당시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던 곳이었다. ‘대나무가 많이 자라는 섬’이란 뜻으로 대섬이라 불렀고, 한자로는 ‘죽도(竹島)’라고 표기했다. 약 6만여 평 남짓한...
-
대섬(죽도)에는 샘물이 없다. 빗물을 받아서 생활한다. 지금은 1가구뿐이지만 최근까지 3가구가 살았었다고 한다. 경작지의 면적은 약 1만 5천여 평. 대부분에 더덕을 재배하고 있으며, 다른 먹거리는 대개 반찬을 만들 채소나 양념재료가 대부분이다. 때로는 수박이나 토마토, 참외와 같은 과일을 재배하기도 하지만 바람이나 비가 자주 오기에 안정된 수확이 어려워 가능하면 적게...
-
저동에서 배를 타면 내수전과 섬목, 관음도 등을 거쳐 대섬(죽도)에 도착한다. 저동항에서 대섬까지는 10분 남짓한 시간이지만, 주변지역의 관광을 곁들이면 3, 40분은 소요된다. 대섬 선착장에 내려 365개의 나선형 계단을 걸어야 비로소 섬에 오르게 된다. 약 6만 평에 달하는 대섬에는 오직 1가구만이 살고 있다. 68세의 아버지와 38살의 아들이 가족의 전부...
-
원래 대섬(죽도)에는 더덕주와 더불어 부침개, 닭백숙 등이 유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몇 해 전에 식당을 경영하시던 어머니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는 바람에, 식당은 문을 닫았다. 더덕주는 남아있는 이들에 의해 이어졌지만, 부침개나 닭백숙 등은 맛보기가 어려워졌다. “땅이 넓어가지고, 5년 상간으로 릴레이식으로 돌아가거든요. 간격으로 돌아가면서 짓거든요. 예전에는 천궁, 마늘,...
-
“돌지 않는 풍차 선전 안하든가요. 그 밑에 저수지가 있었거든요. 거기서 농사짓다가 여기 도시(저동)로 시집왔어요.” 그녀는 23세에 결혼을 했다. “촌에서 살았어도 신식으로 했어요. 드레스 입고 예식장에서, 도동에서 결혼식 마치고 돌아갈 때는 가마 타고 배 타고 저동으로 왔어요. 친정엄마는 내 기억으로는 나리분지에서 태어난 걸로 알고 있어요. 작년 6월에 돌아가셨는데, 나리분지...
-
저동마을 입구, 울릉고등학교로 돌아드는 길에는 커다란 고목이 한 그루 버티고 서있다. 온갖 외압에 이젠 밑둥치만 남아, 풍상을 겪은 그 동안의 시련을 말해 주는 듯하다. “영험이 깃든 나무지요. 함부로 할 수 있는 나무는 아닌가 봐요. 아마 나무를 보면 톱으로 잘린 흔적이 있을 겁니다. 저 나무를 손댄 사람은 병이 들고 몸이 온전치 못해요. 두 사람이 나무에 손을 대었는...
-
“지금에사 버스나 택시가 있어 쉽지만, (예전에는) 저 만디를 올라가기가 힘든기라. 저 만디만 올라서면 다 왔다 켔는데. 지게에 짐이나 울머지고 갈라크마 시간도 수타 걸리고. 거리는 얼마 안 되도 엄청 힘들었제.” 지금은 울릉의 관문인 도동과는 차로 10분 채 걸리지 않는 시간이지만,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에는 지게를 지고 걸어서 저동재를 넘어야 했다. 저동재는 도동과 저동 사...
-
꽁치는 무리를 지어서 이동하기에 보통 그물로 잡게 된다. 그러나 울릉도에서는 꽁치를 그물이 아닌 맨손으로 잡는다. 이를 두고 주민들은 손으로 잡은 꽁치라는 의미에서 '손꽁치'라고 이름한다. “혹시 꽁치를 손으로 잡는다는거 아시나요. 거짓말 같죠? 서울에서 직장생활 할 때 팥으로 매주를 쑨다고 해도 믿어주는 친구가 있었는데요. 손으로 꽁치 잡는다고 하니까 안믿는거에요. 거짓말하지말라...
-
내수전 전망대 는 울릉도의 동쪽 해발 450m 가량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 올라서서 내려다 보면, 저동항은 물론 대섬(죽도)·관음도·섬목 등 주변의 크고 작은 섬들과 광활하게 펼쳐진 청정한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내수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동해의 일출과 독도 조망도 빼놓을 수 없는 비경이다. 최근에는 트래킹코스까지 완비되어 자연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더 없...
-
“도동만디에서 이쪽이 저동이라 카는데, 옛날에 모시가 마이 났다고 하는 기라요. 현 도동 3리는 큰모시라 카고, 저동 1리를 중간모시, 내수전 가는데 저동 2리를 작은 모시, 저동3리는 내수전이라 캐요.” 저동(苧洞)은 ‘모시풀’이 많이 자라고 있는 동네라는 뜻이다. 개척 당시, 갯벌에 모시가 많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모시개’라고 불렀다. ‘모시가 많은 갯벌(개)’을...
-
저동의 수협공판장 입구에 비교적 넓은 터에는 버스와 택시 승강장이 있다. 승강장이라고 하지만 도시와 같이 경계가 구분되어 있지 않아 무질서해 보이기까지 한다. 택시가 2중 3중으로 정차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있다. 버스가 들어오면 택시는 버스에게 공간을 양보한다. 택시를 탈 손님이 오면, 먼저 대기한 순서에 따라 손님을 태우고 출발한다. 워낙 좁...
-
2007년 4월 초순, 출어를 하루 앞둔 문어잡이배를 만날 수 있었다. 동성호의 선주이자 선장은 저동항에 정박한 채, 문어를 잡기 위한 어구를 손질하고 있었다. “요즈음 독도 근해에 문어가 조금 나와요. 그래서 내일 새벽에 출항해서 2, 3일 정도 문얼 잡아볼 생각입니다.” 어구는 일일이 직접 손질한다. “많이 잡혀야 하는데……. 놀면 뭘 합니까?”라며, 옆의 동료에게 문어를 좀...
-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및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박정희 의장이 울릉도에 도착한 것은 1962년도의 일이다. 당시 그는 군함을 타고 울릉도를 방문하였다. 그가 도착한 것은 도동항. 도동항 은 말이 항구이지 방파제나 접안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한 초라한 어촌에 불과하였다. 국가원수격인 박의장의 방문에도 울릉의 항구는 별다른 대책을 마련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접안시...
-
박정희 의장이 물에 빠지자, 가장 당황했던 사람들은 박의장 자신은 물론 수행원들이었다. 박의장은 귀경하자 마자, 곧장 ‘울릉종합발전계획’을 수립하게 되고, 온전한 방파제 하나 없던 저동에는 불과 2년 만에 방파제가 만들어졌다. 저동이 동해안 어업전진기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울릉도 주변해역의 풍부한 수산자원 때문이겠지만, 울릉도에서 제일 먼저 방파제가 만들어...
-
박정희 의장의 울릉도 방문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와 감사의 취지는 관해정 내의 「朴議長閣下記功碑趣旨文」에 잘 나타나 있다. 1963년 7월에 건립한 기공비는 1962년 10월 10일 박의장 방문 이후, 울릉도의 변화상 및 기대감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비의 원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朴議長閣下記功碑趣旨文 東海의 孤島인 鬱陵島는 大韓民國의 領土이면서도...
-
박정희 의장의 방문으로 저동 지역의 개발은 본격화되었다. 1967년 어업전진기지로 지정되어 1979년 12월에는 항만공사가 완료된 저동항은, 울릉도에서 가장 큰 항구이다. 동해안 어업전진기지로 지정되면서, 가장 시급한 것은 방파제 건립이었는데, 방파제가 완성되어 주민들의 숙원 사업이 이루어진 셈이었다. 현재의 방파제는 그때 만든 방파제에서 약 4m 가량 높인...
-
“여기 사람들은 전부 선주에요. 육지분들은 돈이 있으면 집이니 땅에 투자하지만, 여기는요, 저 배가요 한척에 2억, 1억 몇 천. 그리고 다마(집어등) 하나에 5만원이고 자동조상기 하나에 500만원. 집에 500만원 투자하면 번들거리잖아요. 배에는 투자해도 표시도 안 나요.” 배가 비싼 만큼 어획량이 많아야 하는데, 울릉 주민들은 근심이 많다. 올해 들어와 기름값도 큰 폭으로 인상...
-
김범동(1940년생). 그는 군하사관으로 근무하다가 배를 타기 위해 저동으로 들어온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결국 평생의 직업으로 선택한 것은 뱃일이 아니다. “한 30년 전에 왔는데, 배가 안 맞는 모양입디다. 배를 타면 구역질도 나고 토하고 도저히 못 견디겠더라구요.” 이것저것 할 일을 찾다가 선택한 것이 고물상, 그것이 평생의 직업이 되었다. “몸을 놀리는 것은 죄악...
-
저동항 의 울릉도 해양경찰 파출소 옆에는 선박출입항 관리사무소가 있다. 동해해양경찰서 울릉파출소의 소속이다. 여기에서는 말 그대로 선박출입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해양경찰청의 전경들이 근무하고 있다. 군복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저희들은 낚시배나 어선, 선박에 승선 인원이 얼마인지를 기록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언제 몇 명 타고 나가...
-
‘봉래’, 이 이름은 어디서 가져온 것일까. 중국 진시황 때, 신선이 살고 있다고 믿었던 산 이름에서 따온 것일까. 신선이 살고 있다고 믿었던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 이 가운데서 봉래산은 동쪽 바다 한가운데 있으며 불로초와 불사약이 있다고 믿던 곳이다. 천하를 호령하던 진시황이 동남동녀를 봉래산에 보내어 신선이 먹는다는 불로초를 구해 오라고 하였다는 설화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
“대섬(죽도)에는 불편한 것이 없어요. 물도 쓰기에 부족함이 없고, 전기도 충분해요. 따로 저수조를 만들어, 쓰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항상 대비합니다. 풍력발전기와 태양광발전시설이 있어 전기로 난방을 합니다. 다만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1년 내내 이곳에서 살지는 않는다. 그는 뭍으로 나가 주로 부족한 공부를 하기도 하고 외국여행을 가끔...
-
50세라는 나이에 울릉도로 온 그는, 바로 오징어 배를 타지 못했다. “당장 할 게 있어야지. 저동에서 노가다도 하고, 방파제 공사도 하고…….” 오징어배를 타게 된 것은 저동에서 어느 정도 낯을 익히고 난 다음이었다. 처음 배를 탔을 때는 멀미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멀미를 많이 했죠. 빙글빙글 돌고, 토하고……. 한 보름동안은 죽기 아니면 살기다 하고 참았죠. 그...
-
저동항 에는 2개의 등대가 있다.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 등대까지는 약 30분가량 걸어야 한다. 방파제와 더불어 이들 등대는 바닷가의 경관과 정취를 한층 풍요롭게 한다.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내는 등대의 색깔에도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다. 그리고 야간에 점멸하는 등대의 불빛도 마찬가지다. “배는 항구로 들어오는 배가 우선입니다. 들어오는 배의 우측에 붉은 색을 두...
-
2004년 9월 8일, 태풍 ‘송다’가 불어왔을 때, 봉래폭포에 많은 상처를 남겼다. 전망대 일부가 유실되고 수많은 토사가 계곡을 메웠다. 당시의 사진은 때마침 사진사의 카메라에 담겨져 있다. “아침 8시에서부터 약 30분간 일어났습니다. 모든 것이 휩쓸려 갔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기 때문에, 직접 그 광경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사건이 터지고 난 다음 드러난 참상으로 대...
-
방파제를 제외하면, 저동에서는 해안을 산책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제 곧 저동에서도 해안산책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촛대바위에서 행남등대로 이어지는 해안산책로가 건설 중에 있기 때문이다. 저동과 행남등대는 손에 닿을 듯한 위치에 있지만, 가파른 절벽으로 막혀 있었다. 그러나 저동에서 행남등대에 이르는 산책길을 내는 공사가 수년간 진행되어, 이제 완공을...
-
서울을 떠나, 그는 강원도 묵호에서 한 동안 정착하였다. 처음에는 양복점을 하였고 그 뒤 탄광사업에 손을 대기도 했다. “묵호에서는 양복점을 하여 돈을 많이 벌었지. 당시 강원도 부자들은 탄광을 했는데, 나도 시작하게 된 거야. 철원 탄광이었는데……. 그때는 박정희(대통령)가 혁명을 일으켰을 때인데, (신청서가) 하루 늦어지는 바람에 들통이 났어. 대한석탄공사에 사업권을...
-
대섬(죽도)은 울릉도의 부속도서들 가운데 가장 큰 섬이다. 저동항에서 북동쪽으로 약 4㎞, 도동항에서는 약 7㎞ 가량 떨어져 있다. 섬 둘레는 절벽으로 우뚝 솟아 있으나, 섬 내부는 거의 평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섬은 본섬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사람이 사는 섬이라 하지만 1가구 2인만이 살고 있다. 항상 조용한 분위기라서, 자연과 더불어 산책하면서 한적함을 즐기...
-
꽁치가 들어왔다는 소식이 저동에 언제 퍼졌는지, 사람들이 몰려들고, 흥정이 이루어진다. 우리한테 팔 여유가 있느냐, 내일 또 들어오느냐, 우리 집에 두 두름 손질해 달라는 등 마치 번개시장이 열린 셈이다. “이때쯤부터 꽁치가 들어오면, 집집마다 냉동실에는 꽁치를 재어놓고 지내요. 입맛이 없을 때, 꽁치를 꺼내 깨끗하게 씻어 물회로 먹으면, 이것보다 맛난 것은 없지요. 입맛을 되돌리...
-
강태공들이 가장 선호하는 바다낚시터의 하나는 울릉도이다. 육지와는 조금 멀기는 하지만, 바다낚시터로 울릉도만한 곳도 없다. 그러나 웬만한 여유를 갖지 못하면 울릉도에서 낚시를 즐기기란 쉽지가 않다. 울릉도는 섬 전체가 낚시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낚시하기가 좋은 곳이다. 특히 저동에서는 촛대바위 인근, 내수전 등지에서 많은 강태공을 만날 수 있으며, 죽도나 관음도와 같...
-
“뭍에 폭포는 가물면 물줄기가 약해지고 그러잖아요. 봉래폭포는 그렇지 않아요. 연간 일정하게 폭포수가 내리기 때문에, 이만한 폭포는 거의 없을 겁니다. 울릉 주민은 대개 봉래폭포수를 마십니다. 폭포물이 하루 평균 2,500여 톤이 솟아나기 때문에 도동과 저동 사람들은 모두 봉래폭포수를 마십니다.” 절벽을 떨어져 내린 폭포수는 커다란 집수장에 모았다가 굵은 관을 통해 정수장으로 보내...
-
박정희 의장이 울릉도를 방문하기 전까지, 저동항은 자연항이었다. 주민들이 해마다 촛대바위 부근에 석축을 쌓았으나 태풍이 한번 불면 여지없이 휩쓸려 나가곤 했다. “옛날에는 망태기에 줄 매가지고 미고 했는데, 20년 했는데, 저기 보이는 촛대바위라고 있지요. 저기 3분지 1도 못 했어. 지금 높이가 10m 되는데 그전에는 큰 파도 한 번 치면 무너지고, 또 쌓아놓으면 넘어...
-
저동은 아름다운 해돋이 광경을 볼 수 있는 명소이다. 촛대바위와 어울린 해돋이 풍경은 우리나라 최고의 경관을 자랑한다. 과거 촛대바위는 바다 한 가운데 우뚝 솟아 있어서 접근조차 어려웠다. 그러나 현재는 완성된 방파제와 맞닿아 있어 접근하기가 쉽다. 그리고 천연의 바위와 인위적인 구조물인 테트라포트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종이 풍부하고 다양한 어류가 서식...
-
2007년 6월 말, 대섬(죽도)의 작은 주인인 김유곤 씨는 본섬(울릉도)에 나올 준비로 분주하다. 지난 3월 대섬에 들어온 이후 첫나들이이다. 서둘러야 관광객이 타고 들어온 배를 얻어 탈 수가 있다. “오늘같이 이렇게 손님들 들어오면 돈을 안 주는데, 그렇지 않으면 돈을 주어야 합니다. 5만원입니다. 왕복 10만원입니다.” 김유곤 씨가 본섬에 나가려는 목적은, 그날 저...
-
다소 마른 체구에, 인상이 차갑게 보이는 사진사 한 분이 봉래폭포를 지키고 있다. 7, 8여 년 전에 포항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울릉도에 들어와 사진 찍는 일로 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봄철에는 아침 8시경에 올라와서 오후 5시경까지 봉래폭포와 함께 한단다. 여기 폭포에 온 지는 6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풍기는 외모가 도를 닦는 도인 같기도 하고, 신선인 듯도 하다. “사진은 취미...
-
울릉도에서 에어컨이 필요 없는 곳을 말하라면, 성인봉이나 봉래폭포 아래쪽에 위치한 풍혈을 댈 듯하다. 그러나 저동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선창가를 가리킨다. 저동마을의 부두에는 2층으로 된 구조물이 있다. 1층은 경매를 하거나 그물 수선, 할복 등을 할 수 있는 작업공간으로 사용하고 있고, 2층은 각종 사무실 또는 식당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저동 주민들이 말하는...
-
울릉도는 논이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쌀 그 자체가 매우 귀한 것이었다. 옛날 울릉도 처녀들은 ‘쌀 서 말을 먹지도 못하고 시집간다.’고 하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태풍이 온다거나 주의보가 자주 내리면 한 보름 정도 배가 안 뜨기 때문에 식량이 매우 귀했습니다. 안 그래도 울릉도는 쌀이 부족한데다가 정말이지 때거리가 걱정되었죠.”...
-
저동에서 태어나 이곳을 떠나지 않고 살고 계시는 이주술(74세) 할아버지. 어린 시절 할아버지 세대들은 주로 여름엔 바다수영을 하고, 겨울엔 스키를 타며 놀았다고 한다. “학교 댕길 때는 운동하고, 축구나 육상을 많이 했제. 쪼그말 때는, 동 앞에서 멱 감고 그랬지요. 친구들캉 모디면(모이면) 내수전 있는 데나 촛대암 그런 데로 수영하러 가고, 겨울에는 눈이 원캉 마이...
-
동성호의 선주이자 선장은 평생 뱃일을 한 사람이다. “배를 한 35년간 탔어요. 울릉도에 온 거는 1989년입니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한 13년간 조깃배를 탔지요. 그리고 부산으로 가 외항선도 탔다가 …… 87년도 외국 나갔다가 89년에 왔는데……. 우연찮게 울릉도에 놀러 왔어요. 1회용 가스 불 하나, 냄비하나 들고……. 그 바람에 눌러앉아가 이 모양이 되었지. 오징어...
-
저동의 수협사무실 아래층에서 횟집을 경영하는 신현갑(68세). 그는 요양차 울릉도에 왔다가 정착한 사람이다. 올해로 25년이 된다고 한다. “원래는 포항서 건축일도 하고 했는데 몸이 마이 안 좋아가지고 일을 하기가 힘들 때가 있어. 여기 편한 데가 있으니 한 3개월 정도 작정하고 휴양 삼아 들어왔는데……. 3개월 있는 동안 여 수해가 났거든. 수해가 났는데, 파출소 앞에...
-
“한마디로 인심이 좋아요. 그래서 울릉도가 좋아요. 인심들이 좋은 게, 저기 보면 울타리 하나 없잖아요. 울타리 하나 없어요. 육지 같으면 자물쇠를 잠그고 그러니. 여기는 특히 범죄가 없어요. 교통, 교육, 의료 3가지가 불편해서 그렇지, 그래도 병들지 않고 소일거리 할 만한 데가 여기만 하겠어요? 돈도 들지 않을뿐더러 물 좋겠다, 공기 맑겠다……. 우리가 살기는 여기가 딱입니다....
-
손맛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울릉도는 바다낚시를 즐기려는 사람들에게는 천혜의 장소이다. 그러나 아무리 천혜의 자연이라 하더라도, 유의해야 할 사항은 있다. 울릉도는 가파른 절벽과 깊은 수심으로 특히 안전이 강조되는 곳이다. 그렇기에 강태공을 실어 나르는 낚싯배의 운항은 본섬을 기준으로 3마일 이내 연안으로 한정하고 있다. 운항 시간도 일몰 전 1시간, 일몰 후 1시간으...
-
울릉도 최고의 명승지를 꼽으라면, 마을 사람들은 봉래폭포라고 당당히 말한다. 봉래폭포는 저동 해안에서 약 2km 지점인 주삿골 안쪽에 있다. 전체 높이는 25m가량으로 3단 폭포이다. 수량이 풍부하여 사시사철 폭포의 장관을 맛볼 수 있다. 1934년 일본인 도사가 부임해 와서 이 폭포를 잘 개발하면 제2의 금강산이 되겠다고 하면서, 관광지로 개발하였다고 한다. 주민들을...
-
울릉도에는 배를 고치는 조선소가 있다. 저동항의 중간모시개라는 곳이다. 겨울철 문을 닫았던 그곳도, 4월 초순과는 달리 6월의 방문에는 활짝 열려 있었다. 7~8척의 배가 조선소에 수리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자신의 배를 수리하고 있는 한 선주는, 울릉도에서 배를 수리할 때에 겪는 편리함과 불편을 이렇게 말한다. “다 장단점이 있어요. 우선 나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다...
-
울릉도에서 가장 큰 축제는 ‘오징어축제’이다. 오징어축제는 매년 8월에 저동항을 중심으로 열린다. 울릉군이 직접 주관하여 여는 오징어축제는, 지역민의 축제가 아니라 관광객들과 함께 하는 축제이므로 전국적인 규모의 성대한 축제로 성장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짠다. “그 때는 장사가 되지요.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빽빽하니까. 재밌습니다. (자신의 딸을 가리키며) 자가...
-
“사실 울릉도가 제대로 된 항구가 하나 있습니까? 태풍 오면 육지로 피항을 가야하지요. 죽을 고생하면서도 피항을 가야지요. 그러니 울릉도에 어찌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다 울릉도를 빠져 나가죠.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울릉 주민들이 지역과 고향을 지키고 살아날 수 있도록 이뤄져야 하고, 그 다음에 뭔가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줘야 하는데 정말 희망이 안 보입니다.” “울...
-
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해 있는 행정구역. 1882년(고종 19)에 울릉도 개척령이 반포되면서 도장제(島長制)를 실시하였고, 1900년 10월 25일에는 군제(郡制)를 실시하였다. 저동 와다리[臥達里] 북쪽 산등성이를 타고 남면 쪽으로 올라가서 최고봉인 성인봉을 거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타고 내려가서 태하령을 지나 태하동[현 태하리]의 말바위와 남서동[현 남서리]의 물칭칭 사이...
-
저동항 의 수협공판장에서 내수전 쪽으로 약 200m 남짓한 거리에 동해해양경찰서 소속의 울릉파출소가 위치해 있다. 2개의 반원이 상하로 마주보며 만들어진 적벽돌 건물로 육지에서 보는 파출소와는 사뭇 차이가 난다. ‘국민과 함께, 바다와 함께’라는 슬로건의 해양경찰은 육지경찰과는 달리, 해양수산부의 관할이라 한다. “도동항에서는 주로 여객선이 드나들 때, 안전상의...
-
대섬에 대한 김유곤 씨의 애착은 매우 강하다. 그림 같이 꾸며놓은 집만 보아도 그렇지만, 그는 아주 작은 일도 꼼꼼하게 챙기는 성격이다. 산림청이 관할하는 대섬, 여기저기에 개발해 놓은 곳들이 보인다. 김유곤 씨는 이런 인공적인 개발이 그저 못마땅하다. “산책로에다 시멘트 포장이나 블록 포장을 하는 것이 이해가 안 돼요. 그리고 파고라나 벤치도 필요가 거의 없...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저동은 울릉의 개척 당시 이곳 갯벌에 모시가 많이 자생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시가 많이 나는 갯벌이라는 뜻으로 모시개라 부르다가 지명을 한자로 표기할 때 모시 저(苧)자를 써서 저동이라 하였다. 일반적으로 저동의 중심지인 저동항은 행정명으로 도동3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시가 많이 나는 곳이란 의미의 저동은 저동1리와 저동2리·도동3리...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저동2리는 중간모시개와 작은모시개 일원을 말한다. 중간모시개는 큰모시개와 작은모시개 사이에 위치하며, 작은모시개는 내수전[저동3리] 사이의 저동을 말한다. 이곳은 해변 전면에는 북저바위와 주도(冑島)가 위치하며 서측의 주요 능선에서 급경사를 이루며, 주거지는 주로 도로변과 해변 일대에 형성되어 있다. 저동은 울릉의 개척 당시 이곳 갯...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저동은 울릉의 개척 당시 이곳 갯벌에 모시가 많이 자생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시가 많이 나는 갯벌’이라는 뜻으로 모시개라 부르다가 지명을 한자로 표기할 때 모시 저(苧)자를 써서 저동이라 하였다. 내수전(內水田)이라고 일컫는 지역은 과거 김내수(金內水)라는 자가 화전을 일구고 살았다고 하여, 김내수가 화전하던 곳이란 의미에서 내수전이...
-
저동마을은 울릉도 개척 당시 갯벌에 모시가 많이 자생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시가 많은 갯벌'이라는 뜻으로 모시개로 불리다가, 한자 표기로 모시 저(苧)를 취하여 저동(苧洞)으로 불리었다. 저동마을은 뛰어난 자연풍광과 더불어 울릉도에서 가장 큰 부두를 갖춘 항구도시이다. 마을 앞 항구 전경은 일출풍광으로 잘 알려진 우뚝 솟아 있는 촛대바위와 대나무가 많은 신비의 섬인 대섬...
-
“그전에 도동에 살았지요. 저동에 온 지는 한 14년 됐습니다. 늙어가 아무것도 못하고 살고 있죠. 저동에 헌집이라도 하나 있어서 이리 왔습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시아버지는 할아버지가 경주에서 부사까지 했답니다. 시아버지가 세살 때 엄마가 돌아가셔서 재혼을 했는데, 아들 하나 있는 사람을 재혼을 했는가 봐요. 할아버지가 그렇게 사시다가 편찮아지셔서 병이 들어 돌아가시게 됐는데,...
-
촛대바위 는 저동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이다. 촛대바위는 저동에서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방파제 건설로 바로 눈앞에서 촛대바위의 형상을 살펴볼 수 있다. “촛대바위는 촛불같이 생겼습니다. 그 촛불모양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 수협냉동창고 앞입니다. 그곳에 가면 펭귄 2마리가 있는데 그 펭귄 사이에서 보면, 촛불 모양이 가장 선명하게 드...
-
내수전 은 저동 3리를 일컫는 지명으로, 옛날에 김내수(金內水)라는 사람이 화전을 일구고 살았다고 해서 내수전(內水田)이라 불린다. 이곳에는 울릉읍 지역에 전력을 공급하는 화력발전소가 있으며, 약수터가 있다. 내수전 바닷가는 해수욕을 즐기며, 야영도 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이곳은 저동항의 풍광과 주변 풍물을 즐기면서 해안선을 따라 손쉽게 이동할 수 있기에 저...
-
“정부에서 장관을 임명할 때 최소한 수산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을 가지고 해야 하는데……. 막상 한일어업협정 회의 테이블에 앉으면 뭘 알아야지. 그래서 일본에 일방적으로 끌려간 거지. 일본은 오징어가 날만한 노란 자리는 다 포함시켜 놨어요. 한일중간수역 뿐만 아니라 한일어업협정을 하면서 그렇게 만들어놨어요. 그들은 수년간 미리 조사해 가지고 한 건데, 우리는 아무런 자료...
-
도동항에서 출발하여 저동까지, 차로는 10분 남짓 걸린다. 버스는 중간에 손님을 승하차시키기 때문에 택시보다는 조금 더 걸린다. 버스는 자주 다니는 셈이다. 내수전이나 봉래폭포까지 연장하는 노선도 있으며, 가끔은 북면으로 가는 버스조차도 저동을 둘러서 갈 때가 있기 때문에, 도동에서 저동으로 넘어가는 버스는 더 많다. 관광객이 많은 3월 말부터 가을철까지는 버스운행시간이...
-
저동항 에서 내수전 쪽의 선착장에서 만난 김범동(남, 1940년생) 씨는 군 하사관으로 장기근무하다 울릉도에 안착한 사람이다. 그는 30여 년전 배를 타기 위해 울릉도에 들어 왔으나, 배 멀미로 뱃일을 할 수 없어 지금껏 고물상을 운영해 왔다. “10여년 전만 해도 울릉도에서는 오일통 수거율이 20%도 안 됐어요. 그물은 그대로 방치되고 곳곳에 폐기물이 넘쳐났어...
-
“여기 묻힐려고. 편하게 나 혼자 여기 있는 게 제일 좋아. 할멈은 없어. 자식네 아파트에 가면 창살 없는 감옥이야. 울릉도는 돈이 거의 안 들어. 교통비도 안 들어. 애들 공부 끝내고 모아둔 돈으로, 나 혼자 먹고 지내고, 또 아들딸이 보내준 돈도 있고…….” 윤병두, 그는 저동이 동해안 어업전진기지로 활기찬 발전을 거듭할 때 조업현장의 중심에 있었던 산증인이다....
-
풍혈은 바람이 나오는 구멍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봉래폭포 입구, 매표소에서 폭포 쪽으로 약 200m 가량 올라가면 휴게소가 나타나고, 이 휴게소와 맞붙어 풍혈이 있다. 이 풍혈에는 여름뿐만 아니라 사계절 항상 일정한 온도의 바람이 나온다. 바람의 온도는 4℃ 정도. 여름철에는 에어컨 바람보다도 더 찬바람이 나오는 까닭에, 주민들은 이 풍혈을 ‘천연에어콘’이라고 한다. 풍혈에서 나...
-
“지금 선진국에서는 TAC를 하고 있는데, 그건 한마디로 자원을 보전하자는 뜻인데, 그런 의미에서 한마디로 기르는 어업 쪽으로 가자하는 슬로건을 내걸고 지금 현재 TAC를 하겠다는 거예요. TAC를 하겠다는 건 좋은데 왜 조업의욕도 없는 부산 대형트롤을 갖다가 부산 동래 체낚기하고 같이 한 묶음으로 해서 TAC를 하겠다는 건지……. 나는 울릉 체낚기 어업인 연합회 회장을 할 때에...
-
명태는 매우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얼리지 않았다고 하여 생태, 얼리거나 겨울에 잡힌다 하여 동태, 겨울 덕장에서 추위와 더불어 말린 것을 황태, 그 색깔이 검은 것을 흑태, 반건조한 것을 코다리, 완전히 건조한 것은 북어 등. 매우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름 이외에 울릉도에서는 춘태라는 것이 있었다. 요즈음과 달리, 한때 울릉도에서 어획고가 높은 어종 가운데 하나...
-
2007년 4월 초, 아직도 바닷물은 차다. 찬 바닷물에 칠순을 훨씬 넘긴 할머니 한 분이 열심히 자맥질을 한다. 할머니 곁에는 언제나 그랬듯이 할아버지가 묵묵히 뱃머리를 지키고 있다. “평생을 저동에 살면서 물길질을 했어요. 할아버지가 오징어배를 탈 때에도 틈나는 대로 자맥질을 했죠. 미역이나 소라, 전복, 해삼 등 물 속에 살고 있는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모두 건져냈죠.”...
-
울릉도에도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울릉도에는 아파트를 많이 지을 수 있는 조건이 좋지 않다. 아파트를 지을 만한 넓은 터도 거의 없지만, 바람이 강하기 때문에 고층건물을 집단적으로 짓기에 부적합하다. 그리고 건축자재의 수급이 쉽지 않을 뿐더러 인구가 집중화될 경우 열악한 도로 사정으로 교통도 문제가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심각하게 우려되는 문제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
“옛날에는 폭포 물로 수력발전기를 돌렸어요. 오다가 보면 신흥교회가 있는데, 신흥교회 자리가 옛날 수력발전소 자리래요. 신흥교회가 들어서기 전에는 병원이었는데……. 그리고 폭포 물로 농사도 지었어요. 울릉도에서 논농사가 거의 없는데, 저동 일대에서는 그래도 논이 많이 있었어요. 여~ 복개된 하천 주변에 여기저기가 과거 논이었어요.” 봉래폭포 는 울릉읍민들에게 단...
-
울릉도 배 가운데서 배의 일부분이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는 선박이 있다. 이 선박은 해삼, 멍게, 소라, 문어 등을 따는 잠수 전문배이다. 배에는 바다 속 잠수부에게 산소를 공급해주는 노란 호스가 달려있다. “한번 잠수하면 한 2시간 정도는 물속에 있어요. 소변이 마렵지 않으면 더 이상 있을 수도 있고요. 반나절 정도 물속에 있는 경우가 허다해요. 그리고 요즈음은 잠수복도...
-
바닷가에서 수없이 수중다이빙을 해대며 무슨 작업을 하는 보트를 만날 수 있었다. “저희는 항만청에서 발주한 용역 받아 가지고 저동항 물속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곳은 월파를 많이 해가지고 블록들도 많이 깨지고……. 그런 것을 촬영해 가지고 분석하고 합니다. 주민들이 말씀하시는 데로 중간 중간에 패여 있는 곳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곳을 보강을 하기 위해서 측량하는 겁니다...
-
2007년 4월 8일 아침, 저동항에 2007년 첫 꽁치가 선을 보였다. ‘저동에 꽁치가 나왔다’는 소식은 이른 아침 울릉의 관문인 도동에도 금방 알려지게 된다. 새로운 소식의 전파 속도는 정말 빠르다. 울릉도의 새 소식을 전하는 매체는 다름 아닌, 택시 운전수였다. 비늘하나 다치지 않은 햇물꽁치. 손으로 잡기에 손꽁치라고도 한다. 손꽁치가 들어온 저동항의 아침은 은빛 꽁치만큼이나...
-
저동항 은 울릉도에서 가장 큰 항구이다. 울릉도에서는 가장 넓은 생활터전인 셈이다. 울릉도 사람들의 활기찬 생활이 그대로 투영된 생생한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특히, 이른 아침에 일어나는 경매 현장은 싱싱하게 퍼덕이는 활어만큼이나 생동감이 있다. 이러한 삶의 현장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관광객이 찾는다. 신선한 해산물을 싼값으로 맛볼 수 있기 때문에, 항상...
-
저동마을 한 중심부에 후박나무 숲이 있다. 마을과 가까워서 동네 아이들이 자주 모이는 곳이다. 이곳에서 만난 아이들은 주로 술래잡기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아버지가 경찰관인 아이도 있고, 뱃일을 하는 사람도 있고, 돈을 벌기 위해 육지로 떠난 부모를 기다리며 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주로 학원이나 공부방에서 시간을 보...
-
“오징어는 잡아와서 하역작업을 해서 현장에 올려놓으면 수협에서 경매를 봅니다. 그리고는 사가지고 풀어서 할복을 하죠. 우리가 세척할 수 있는 해수를 펌프로 끌어올려서 세척해서 탱기치고 끼워가지고 덕장에 올려가지고 탱기치고 해서……. 손질해서 20마리씩 축을 지어 저온실에 들어가죠. 울릉도는 생물도 안 빠져나가고 활어도 못 나가고 하니까 완전히 건조를 해서 나가는데 요즘은 그것도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