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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희석(姜凞碩)[1881~1939]은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석탑리 출신으로, 농업에 종사하던 중, 38세의 나이로 안평면 석탑리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의성군 안평면 석탑동 교회 교인이었던 강희석은 송내동 교회 권수백(權秀伯) 조사(助事)의 권유로 같은 교회 교인 김복식(金福植)·정금동(丁今同) 등과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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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의성 출신의 의병. 구성집(具聖執)[1876~1909]은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덕천리 출신으로, 1906년 9월 12일경 김동산(金東山) 의진의 일원으로 화승총으로 무장하고 경상북도 봉화군·강원도 삼척군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으는 일을 맡았고, 9월 25일경에는 삼척군 개산동의 윤천총(尹千總)과 이학서(李學瑞)로부터 군자금을 모았다. 1907년 7월경에는 성익현(成益賢)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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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의성 출신의 의병. 본관은 안동. 자는 순백(舜伯). 호는 만포(晩圃).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에 세거한 안동 권씨 부정공파(副正公派) 32세손이다. 권대직(權大稷)[1853~1930]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서변리 출신으로, 1895년 전기 의병 전쟁이 발발하자 김상종 의진에 가담하였다. 의성 의병은 경상북도의 다른 지역에 비해 다소 늦게 창의하였다. 먼저 봉기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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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사연(權士淵)[1881~1925]은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석탑리 출신으로,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 당시 석탑 교회 교인으로서 대사동 시위에 참여하였다. 대사동 교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만세 시위는 3월 15일부터 3월 19일까지 진행되었다. 권사연은 3월 17일 이종출(李鍾出)·이양준(李良俊)·김옥돈(金玉頓)·이만준(李萬俊) 등 15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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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승헌(權承獻)[1898~1982]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출신으로, 점곡면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의성 지방 3·1 운동에서 양반 유생이 주도한 시위는 봉양면 사부동과 점곡면 사촌동, 춘산면 금오동 등 세 곳이다. 특히 점곡면 사촌동 시위는 유림 집안인 안동 김씨 청년들이 나서서 시위를 이끌었다. 점곡면소재지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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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중수(權重秀)[1869~1980]는 경상북도 의성군 산운면 학미리 출신으로, 권중권(權重權), 권성우(權聖佑)이라는 다른 이름도 전한다. 1915년에 결성된 대한 광복회(大韓光復會) 회원으로 활약하였다. 한일합병 이후 1910년대 무단통치 하에서는 독립운동은 지하화될 수밖에 없었다. 대한 광복회는 풍기 광복단(豊基光復團)[대한 광복단이라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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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호는 두국(斗國). 권해운(權海雲)[1894~1919]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대사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15일부터 19일까지 의성 지역에서 가장 대규모로 일어났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19일 권해운은 도리원 장날을 이용하여 시위 군중을 모아 의성 경찰서로 돌진하여 수감 중인 동지들을 탈환하려는 계획을 수립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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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경성(金慶聲)[1879~1943]은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도덕리 출신으로, 김중탁(金重槖)이라는 다른 이름도 전한다. 1919년 3월 24일 김천군 개령면에서 일어난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김경성은 1919년 10월경 개인 재산을 처분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조성하였으며, 서간도 지역에 설립된 신흥 무관 학교에 입학하기를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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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군석(金郡石)[1890~1967]은 경상북도 의성군 조문면 구련리 출신으로, 조문면에서의 3·1 운동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조문면의 시위는 대리동 교회 영수인 박낙현(朴洛鉉)과 같은 교회 집사 윤용구와 교인 윤영주·오상룡 등이 3월 18일 의성 장날 장터에서 시위할 것을 결의하여 시작되었다. 4명은 동지 규합에 나서 같은 교회의 김자룡·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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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규복(金圭福)[1905~1977]은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중리 출신으로, 김규만(金圭晩)이라는 다른 이름도 있다. 김규복은 1925년~1926년 경 대대적으로 정비된 의성 청년회의 집행 위원으로 활동했다. 조선 공산당 운동의 일환으로 1932년 10월 10일에 조직된 의성 적색 독서회에도 참여하여 농민부의 책임을 맡았다. 또한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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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길도(金吉道)[1878~1924]는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대사리 출신으로, 안평면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안평면 시위는 3월 15일부터 19일까지는 안평면 대사동 교회를 중심으로 전면적으로 확산되었다. 3월 15일, 16일 시위대는 밤 8시경 마을 앞에 있는 밭에서 독립 만세를 외친 후 곧 시위에 들어갔다. 그리고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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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도식(金道式)[1889~1923]은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박곡리 출신으로, 의성군에서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안평면 대사동에서 3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하고 그 다음날인 3월 19일에는 400여 명의 군중들과 함께 도리원 장터로 시위 행진한 다음 도리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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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만식(金萬植)[1921~?]은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낙정리 출신으로,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여 미국 정보 기관인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 훈련을 받던 중 광복을 맞이하였다. 광복군은 1945년 5월 OSS와 제휴하여, 한반도 진입을 위한 ‘독수리 작전’에 착수했다. OSS와의 합작 훈련은 2지대와 3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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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명출(金明出)[1893~1987]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안계리 출신으로, 비안면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비안면 독립 만세 시위는 쌍계 교회 중심으로 일어났다. 쌍계 교회 박영화 목사 등 추진 세력은 밀의를 거듭하면서 3월 13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김명출을 비롯한 배도근·이일만·박세길 등을 동지로 규합하고 태극기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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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의성 출신의 의병. 김반석(金盤石)[1879~?]은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사미리 출신으로, 1905년 을사늑약 이후 거의한 박연백(朴淵伯) 의병장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박연백은 사방으로 격문을 보내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과 사곡면의 경계에 자리 잡은 공산(孔山)에서 의병 부대를 결성하였다. 김반석은 의성·영흥·영천·청송 등지로 옮겨 다니며 야간 기습과 화공을 펼쳐 일본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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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봉수(金奉洙)[1900~1973]는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하령리 출신으로, 안평면에서 3월 15일부터 19일 사이에 벌어진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김봉수는 17일 안평면 하령동에서 동리 청년들과 함께 군중을 규합하여 시위를 주도하였다. 100여 명과 함께 독립 만세를 연창하면서 안평면 삼춘동까지 행진하였다. 19일에도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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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부문(金富文)[1887~1952]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 출신으로, 점곡면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18일부터 20일까지 계속된 점곡면 만세 시위는 처음 송내동 교회 권수백 조사 등 교인들이 시위의 초석을 마련하였고, 사촌동의 안동 김씨 청년들이 시위를 확산시켜 나갔다. 여기에 윤암동의 영양 남씨, 송내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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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의성 출신의 의병장. 호(號)는 운산. 만취당(晩翠堂) 김사원(金士元)의 12세손으로 아버지는 생원 김수익(金壽翼)이고, 어머니는 한산인 이덕(李悳)의 딸이다. 부인은 도사 이만기(李晩起)의 딸인 진성 이씨(眞城李氏)이다. 김회종은 동생이다. 김상종[1847~1909]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출신으로, 안동 의병 주역인 정재학파 문인인 김흥락과 김도화의 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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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 운동가. 김성수(金成守)[1890~1965]는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서부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16일 비안면 동부동·서부동 주민들에 의한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적극 참여하였다. 의성군에서 벌어진 3·1 운동 독립만세 시위는 3월 12일 비안면 비안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과 쌍계동의 만세 시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동부동에 사는 김석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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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의성 출신의 의병. 본관은 안동. 생원 김양징(金養澂)의 손자로 아버지는 인암(忍庵) 김헌유(金憲裕)이고, 어머니는 이병은(李秉殷)의 딸 한산 이씨(韓山李氏)이다. 김수담(金壽聃)[1852~1896]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서변리 사촌 출신으로, 의성에서 을미의병 당시 봉기한 김상종 의진에 참여하여 선봉장을 맡았다. 김수담은 김상종의 족숙이었다. 김상종 의진은 거병한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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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의성 출신의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 천사(川沙) 김종덕(金宗德)의 고손자(高孫子)로서 아버지는 김율원(金栗園)의 문인 김영유(金永裕)이고, 어머니는 김한운(金漢運)의 딸 의성 김씨(義城 金氏)이다. 김수욱(金壽旭)[1852~1902]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서변리 사촌 출신으로, 성품이 온후하고 효도와 우애가 돈독하였다고 한다. 김흥락의 문하에 수학하여 문학과 시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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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의성 출신의 의병. 본관은 안동. 만취당 김사원의 손자인 김상원의 9세손이다. 김수협(金壽莢)[1853~1896]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서변리 사촌 출신으로, 의성에서 을미의병 때 봉기한 김상종 의진에 참여하였다. 김상종의 동생 김회종이 당시의 사정을 기록한 『병신창의실록(丙申倡義實錄)』에는 김수협이 관향장(管餉將)의 역할을 맡고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김수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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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오명(金五命)[1889~1933]은 김명식(金明植)이라는 다른 이름도 전한다.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하령리 출신으로, 의성군 안평면에서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는 3월 15일 대사동 교회 교인을 중심으로 일어났다가 주민들의 참여가 확산되는 가운데 3월 19일까지 안평면 일대에서 계속되었다. 3월 19일에는 도리원 장날 장터에서 약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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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옥돈(金玉頓)[1889~1975]은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대사리 출신으로, 의성군에서 3월 15일에서 19일까지 가장 대규모로 전개된 안평면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서 주동적 역할을 하였다. 1919년 3월 11~12일 경 그는 이화실의 집에서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3월 15일 일요일 낮 예배를 마친 후 대사동 교회 영수 이종출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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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원휘(金原輝)[1884~1949]는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출신으로, 비안면 만세 시위 운동을 주도하였다. 당시 김원휘는 안평면 괴산동 괴산 교회 조사(助事)로서, 평양 신학교에 등록하기 위해 평양에 갔다가 마침 그 곳에서 벌어지고 있던 격렬한 만세 시위를 목격하였다. 그는 시위로 인해 학업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판단하고 3월 4일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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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위창(金渭昌)[1900~1941]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서변리 출신으로, 점곡면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는 처음 송내동 교회 교인들이 시위의 초석을 마련하였고, 사촌동의 안동 김씨 청년들이 시위를 확산시켜 나갔다. 교회의 권수백 조사는 사촌동의 김태호 등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같은 동네 김위창을 비롯 김점득·김유경·김수석·김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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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유식(金有式)[1899~1959]은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박곡리 출신으로, 안평면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대사동 교회 교인 중심으로 전개된 이 시위는 3월 15일부터 3월 19일까지 진행되었다. 3월 19일 김유식을 비롯 권사연·김일석·이봉수·김치명 등이 앞장서서 시위 군중과 함께 장터에 있는 도리원 주재소로 몰려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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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익휘(金益輝)[1885~1959]는 김익하(金益夏)라는 다른 이름도 전한다.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대사리 출신으로, 의성군에서 최대 규모로 전개되었던 안평면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그는 대사동 교회 집사인 이화실로부터 “만세 운동을 하면 조선이 독립될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이에 찬동하여, 동민들과 함께 만세를 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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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일석(金日錫)[1891~1969]은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마전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19일 의성군 안평면 대사동 교회 교인을 중심으로 전개된 도리원 장날의 시위를 선두에서 이끌었다. 3월 19일 김일석을 비롯 권사연·김유식·이봉수·김치명 등은 도리원 장날을 이용하여 수감 중인 동지들을 구출하고자 시위 군중들에 앞장 서 시위를 전개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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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자룡(金子龍)[1893~1954]은 경상북도 의성군 조문면 구련리 출신으로, 의성면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는 1919년 3월 18일 조문면 대리동 교회 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주도하였다. 대리동 교회 영수인 박낙현(朴洛鉉)은 1919년 3월에 대구 성경 학당에 갔다가 전국적인 만세 시위 소식을 듣고, 급히 귀향하여 동지를 규합하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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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차쇠(金且釗)[1899~1920]는 경상북도 의성군 신평면 덕곡리 출신으로, 의성군 신평면 3·1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의성 지역에서 전개된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는 3월 19일을 고비로 점차 수그러들었다가 3월 25일 신평면 덕봉 교회 교인이 마지막으로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에서 덕봉 교회 교인 김수성과 이학술 두 명이 만세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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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천특(金千特)[1888~1945]은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도동리 출신으로, 의성면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의성면의 시위는 조문면 대리동 교회 교인들 중심으로 영수인 박낙현(朴洛鉉)이 1919년 3월에 대구 성경 학당에 갔다가 거기서 전국적인 만세 시위 소식을 듣고, 장터에서 만세 부를 것을 결의하였다.이들은 동지 규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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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충한(金忠漢)[1883~1965]은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비봉리 출신으로, 김천 황금동 교회 조사였다. 3월 9일 김천에 있는 황금동 교회에서 평소 동향인으로 알고 지내던 김원휘, 대구에서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가담했다가 일본 경찰의 체포를 피해 김천으로 온 계성 학교 학생 김수길, 황금동 교회의 원로인 최용수, 교회 조수 한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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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치근(金致根)[1878~1933]은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박곡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17일과 19일 안평면과 봉양면 도리원 장날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3월 17일에는 시위 군중이 대사동 우리곡(尤利谷) 마을에 모여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한 후 창길동(倉吉洞)을 거쳐 화령동(花寧洞)까지 행진하며 만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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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의성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의성. 자는 계삼(季三). 호는 해운당(海雲堂). 본명은 김길주(金吉周)이다. 아버지 김운휘(金運輝)와 어머니 덕수 이씨(德水李氏) 사이에서 4형제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하락(金河洛)[1856~1896]은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교촌리 출신으로, 어릴 때 황학산에서 공부했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수학했는지 그 학통이 불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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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호문(金好文)[1887~1942]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 출신으로, 송내동 교회 교인이자 김해 김씨 일족으로 점곡면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부친 김수배와 함께 참여하였다. 점곡면의 만세 시위는 1919년 3월 18일부터 20일까지 계속되었는데 처음 송내동 교회 권수백 조사 등 교인들이 시위의 초석을 마련하였고, 사촌동의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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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의성 출신의 의병. 만취당(晩翠堂) 김사원(金士元)의 13세손이며, 할아버지는 생원 김수익(金壽翼), 할머니는 한산 이씨 이덕(李悳)이다. 아버지는 김회종이며, 큰아버지 김세종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의병장 김상종이 큰아버지이다. 김호직(金浩直)[1874~1954]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출신으로, 1895년 을미의병 봉기 때 의성에서는 유림 김상종이 의병을 일으겼는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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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의성 출신의 의병. 만취당(晩翠堂) 김사원(金士元)의 12세손으로 아버지 생원 김수익(金壽翼)과 어머니인 한산 이씨 이덕(李悳)의 셋째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형은 의병장 김상종이다. 김회종(金會鍾)[1852~1916]은 정재 유치명의 문인인 김흥락과 김도화의 문인이었다. 을미의병 때 김회종은 아들 호직과 더불어 형인 김상종의 의병진에 참여하여 백의종군하였다. 당시애 김회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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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희문(金喜文)[1889~1970]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 출신으로, 점곡면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점곡면의 만세 시위는 1919년 3월 18일부터 20일까지 계속되었다. 처음 송내동 교회 권수백 조사 등 교인들이 시위의 초석을 마련하였고, 사촌동의 안동 김씨 청년들이 시위를 확산시켰으며, 윤암동의 영양 남씨,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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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남규우(南圭佑)[1889~1967]는 남오대(南梧大)라는 다른 이름도 전한다.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18일부터 20일까지 전개된 점곡면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점곡면의 만세 시위는 3월 18일부터 20일까지 계속되었는데, 처음 송내동 교회 권수백 조사 등 교인들이 시위의 초석을 마련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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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의성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 박연백(朴淵伯)[1869~1909]은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효선리 출신으로, 박연백(朴淵白)이라는 다른 이름도 전한다. 1905년부터 1909년까지의 의병 항쟁사 중·후기에 속하는 시기에 의성 의진을 이끈 인물이다. 박연백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사방으로 격문을 보내 의병을 모집하여 의성군 춘산면과 사곡면의 경계에 자리 잡은 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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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선두(裵善斗)[1924~생존]는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출신으로, 1943년 10월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중국 남경(南京) 지구에 배속되어 있던 중, 중경(重慶)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大韓民國 臨時政府)와 광복군(光復軍)에 관한 정보를 듣고, 1944년 3월 권오옥(權五玉)[안동 일직]·구칠성(具七星)[또는 具七龍]·이용득(李龍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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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산축(申山祝)[1907~1939]은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개일리 출신으로, 1932년 5월 17일 일본 아이치현[愛知縣]에서 문화 보급회(文化普及會)를 조직하여 한국인 노동자의 권익 보호 활동 및 민족 의식 고양을 위한 계몽 활동 등 항일 운동을 하다가 1938년 12월 5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39년 2월 12일 나고야[名古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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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기수(吳麒洙)[1892~1959]는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후죽리 출신으로, 1912년 경성 관립 공업 전습소(京城官立工業傳習所)를 졸업하고 임시 토지 조사국(臨時土地調査局) 기수(旗手)로 근무하다가 의성 경찰서 순사보(巡査補)로 근무하였다. 1919년 5월 만주로 가서 조선 독립단(朝鮮獨立團)에 가입하고 귀향하여 1919년 음력 9월 경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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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병수(吳丙洙)[1905~1938)는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도동리 출신으로, 1932년 10월 10일 의성군 의성면 도서동에서 오기수(吳麒洙)·김규복(金圭福) 등과 함께 조선의 독립과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을 위한 지도 기관으로 의성 적색 독서회(義城赤色讀書會)를 조직하였다. 오병수는 청년부 책임자를 맡았고 의성 체육회(義城體育會)를 장악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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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진문(吳進文)[1896~1955]은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상리리 출신으로, 1919년 8월부터 대구에서 오기수(吳麒洙) 등과 함께 상해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군자금 모집 및 친일파 폭살 계획을 수립하고 활동하였다. 그는 1920년 1월 의성 출신 오기수와 김영우 등과 함께 조선규로부터 독립운동 자금 740원을 제공받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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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용득(李龍得)[1924~1992]은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산운리 출신으로, 1943년 10월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중국 파견 일본군 6844부대에 배속되어 있던 중, 중경(重慶)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와 광복군에 관한 정보를 듣고, 1944년 3월 권오옥(權五玉)·구칠성(具七星)·배선두(裵善斗)·조일주(曺日周) 등과 함께 일본군을 탈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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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재인(李在寅)[1907~1964]은 의성군 의성읍 출신으로, 1935년 1월경 의성읍 교회 청년을 중심으로 결성된 청년 면려회(靑年勉勵會)를 항일 운동 단체로 조직 개편하였다. 이재인은 의성읍 교회의 목사인 유재기(劉載奇)가 “조선 민족은 현재의 비경(悲境)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조선을 일본의 손에서 되돌려 찾아내는 일 외에는 없으며 이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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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의성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형원(馨遠). 호는 죽포(竹浦). 동강(棟岡) 이희정(李希程)의 후예이다. 이필곤(李苾坤)[1864~1907]은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오상동 출신이다. 을미의병 때 의병장 김상종이 의성에서 창의하자 이필곤은 주변 청장년들에게 통문을 돌려 의병을 모아 함께 김상종 의진에 참여하였다. 김상종 의진의 중군을 역임하기도 하였던 이필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