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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신안 주씨 일가가 소장하고 있는 김쾌손이 작성한 민원 관련 문서. 발괄[白活]은 소지(所志)의 일종으로 관청에 올리는 청원서나 진정서를 이른다. 발괄은 순우리말의 이두식(吏讀式) 표기법이다. 1876년(고종 13년) 광주군 하도 월곡면 하초평[지금의 의왕시 초평동 일대]에 사는 김쾌손(金快孫)은 본동(本洞)에 10두락지(斗落只)[마지기]가 있는 곳을 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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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신안 주씨 일가가 소장한 권리 매매 문서. 명문(明文)은 각종 매매 문기(文記)로서 무형·유형의 자산에 관한 권리 양도서를 이른다. 1884년(고종 21) 서주서(徐注書)댁 노비 인관[奴仁寬]이 김판종(金判宗)에게 전답의 소유권을 양도한 토지 매매 명문으로 인천부 신고개면 장언(獐堰)[지금의 시흥시 은행동 일대]에 있는 전답을 전문(錢文) 816냥(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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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신안 주씨 일가가 소장한 권리 매매 문서. 명문(明文)은 각종 매매 문기(文記)로서 무형·유형의 자산에 관한 권리 양도서를 이른다. 1888년(고종 25) 김판종(金判宗)의 처 김소사(金召史)[‘召史’는 조선시대 양반가 여인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널리 쓰인 것으로 한자음은 ‘소사’이지만 ‘조이’로 읽음]가 주노(朱奴) 삼개복(三介福)에게 전답의 소유권을 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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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신안 주씨 일가가 소장한 권리 매매 문서. 명문(明文)은 각종 매매 문기(文記)로서 무형·유형의 자산에 관한 권리 양도서를 이른다. 1901년(광무 5) 최경식(崔景植)이 노비 개복(介福)에게 전답의 소유권을 양도한 토지 매매 명문으로 1901년 시흥현 남면 노온사리[지금의 광명시 노온사동 일대]에 있는 전답을 전문(錢文) 2500냥(兩)을 받고 매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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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신안 주씨 일가가 소장한 권리 매매 문서. 명문(明文)은 각종 매매 문기(文記)로서 무형·유형의 자산에 관한 권리 양도서를 이른다. 1910년(순종 3) 임건호(任健鎬)가 주영식(朱永植)에게 전답의 소유권을 양도한 토지 매매 명문으로 인천부 황등천면 과림동 원이리(元二里)[지금의 시흥시 과림동 일대]에 있는 전답을 전문(錢文) 평당 1900냥(兩)을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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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경기도 시흥 지역을 점령한 북한 조선노동당 군자면당부가 시흥군당부에 올린 문서. 「군자면당부 정치정세 보고」는 북한이 점령 지역의 하부 단위로부터 상부 단위로 보내는 현황 보고서로 작성되었다. 이 보고서는 면 단위 당 수준의 현황과 활동 상황 및 북한의 점령 지역이었던 군자면의 조선노동당 당원과 사회단체의 역점 사업이 무엇이었는지 등이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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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의 옛 지명인 시흥군에서 활동한 한시 동호회 연성음사의 계첩. 계첩(契帖)은 계원의 명단과 조항에 관한 문서로서 주로 계를 결성한 경위와 의의가 포함되어 있다. 1920년 음력 5월 16일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 하중리[지금의 시흥시 하중동]에 '연성음사(蓮城吟社)'라는 한시 동호회가 창설되었으나 활동이 미진하다가, 1925년에 재결성되며 연성음사의 계첩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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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인 조선시대 안산군 관청에 하달된 문서. 감결(甘結)은 상급 관청에서 하급 관청으로 내리는 문서이며 주로 지시, 명령으로 되어 있다. 『감결 안산(甘結安山)』의 발신자는 경기감영이다. 조선 후기 고종은 통리군국사무아문을 재정비하고 그 예하 기관으로 농상사(農商司)를 두어, 농업 발전을 위한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였다. 그래서 1883년(고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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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의 옛 지명인 시흥군에서 활동한 한시 동호회 연성음사 회원들이 지은 48편의 문집. 1926년 연성음사(蓮城吟社) 회원들이 김교성(金敎聲)의 집에 모여서 김교성의 한시에 차운(次韻)하여 시를 지었는데, 이를 『연성음사 시첩(蓮城吟社詩帖)』으로 편찬하였다. 김교성, 강영윤(姜永尹), 김봉성(金鳳聲), 이운근(李雲根), 류원성(柳遠聲) 등 연성음사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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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의 옛 지명인 시흥군에서 활동한 한시 동호회 연성음사가 발행한 전국 한시 현상 공모전 수록집. 1927년 연성음사(蓮城吟社)에서 전국적으로 한시 작품을 현상 공모하여 1929년 전국 한시 현상 공모전 수록집으로 『연성음사(蓮城吟社)』 제1회집을 출간하였다. 김창수(金昌洙), 권택(權澤), 이관용(李寬鎔) 등이다. 한시 현상 공모에 북만주의 동포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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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가 속해 있던 안산군의 사로사 일원인 백상형의 개인 문집. 18세기 안산군[지금의 시흥시 일대]에서 결성된 사로사(四老社) 일원인 백상형(白尙瑩)[1705~1789]의 문집으로 그의 저작과 사로사에 관한 기록이 포함되어 있다. 사로사는 안산군의 남인 및 소북계(小北系) 사대부들이 결성한 시 모임이다. 본관은 수원(水原). 자는 순보(純甫), 호는 오헌(傲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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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이 경기도 시흥 지역으로 전해져, 1919년 3월 하순에서 4월 초순까지 일제에 맞서 지역민들이 향촌의 전통 리 조직을 통해 일제의 무단 통치(武斷政治)를 반대하며 하부 통치 기구인 면사무소와 경찰관 주재소로 몰려가 독립운동을 벌였다. 소래산·대부도의 대몽 항쟁(對蒙抗爭)과 하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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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 성립까지 경기도 시흥 지역을 비롯한 한반도 전역에서 벌어진 남한과 북한의 전쟁.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전면 남침으로 발발하였으나, 경기도 시흥 지역은 북한군의 주 공격 방향에서 비켜나 있어서 1950년 7월 초 북한군에게 점령되었다. 1950년 9월 유엔군의 인천 상륙 작전을 앞두고 시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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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이 속해 있던 옛 시흥군 군자면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강은식(姜殷植)[1885~?]은 경기도 시흥군 군자면 원곡리[지금의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출신으로 1919년 4월 4일 군자면 3.1운동을 주도하고 일제로부터 피체(被逮)되어 옥고를 치렀다.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강은식은 시흥군 군자면 원곡리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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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계수동에 설립된 시흥 포도의 원조 포도 농장.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이규석이 1930년대 말 향리(鄕里)인 경기도 부천군 소래면 계수리[지금의 시흥시 계수동] 수노골에 내려와 과수 농원인 계림농원을 설립하였다. 계림농원은 시흥 지역에서 한국인이 경영한 최초의 근대식 포도 재배지였다. 이규석은 인근 주민들에게 포도 심기를 권장하고 재배 기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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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지금의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양안 작성을 위해 진행되었던 근대적 토지 조사 사업.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명에 의하여 1899년부터 1901년에 걸쳐 충청남도와 경기도의 실제 토지 측량 작업이 진행되었고, 양전(量田)에 토대한 양안(量案)[조세 부과를 목적으로 전지를 측량하여 만든 토지대장]이 만들어졌다. 지금의 경기도 시흥 지역은 당시 안산군과 인천부에 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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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애국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학교 설립과 근대 서양 문물 교육 운동. 국권 상실의 시기인 1905년부터 1910년까지 전국적으로 벌어진 교육 계몽 운동의 영향으로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에서도 여러 학교가 설립되었다. 1906년 정윤영(鄭允永)이 세운 학교를 필두로 1908년 창흥측량학교(昌興測量學校)가 설립되었으며, 흥인의숙(興仁義塾)과 진명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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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서 출생한 사회활동가이자 도의원. 구경회(具慶會)[1934~1991]는 지역 주민을 위한 국민 운동과 의식 개혁 운동 등의 활동을 하였고, 소래농업협동조합 초대 조합장으로 농촌 부흥을 위해 힘썼다. 국내 사회활동가로 활동하면서 해외 선진 문화에도 눈길을 돌렸으며 1991년 광역 의회 의원에 당선되어 경기도의회 내무 분과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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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소래 지역에서 활동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구연준(具然濬)[1886~1945]은 1919년 3.1운동 당시 강화도에서 동지들과 『자유민보(自由民報)』와 독립선언문 등을 비밀리 인쇄하고 배포하여 일제에 의해 투옥되었다. 이후 1920년에 부천군 소래면 신천리[지금의 시흥시 신천동]으로 이주하여 소래공립보통학교의 훈도를 역임하고 부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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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약주식회사에서 화약 성능 시험장을 건설한다는 명분으로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공유수면을 간척하여 매립한 사업. 한국화약주식회사[1993년 (주)한화로 상호 변경]는 1987년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공유수면 147만 평[약 485만 9504㎡] 매립에 착수하였으나, 공유수면 매립법 개정 시기를 틈탄 특혜라는 사실이 알려져 1991년 2월 범시민 반대 운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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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경기도 시흥 주민들이 군자공립보통학교의 학년제를 4학년에서 6학년까지 늘리기 위해 벌인 운동. 1930년대 시흥군 군자면[지금의 시흥시 군자동]의 유일한 공교육 기관인 군자공립보통학교[초등학교]는 4학년제였다. 4년제 학교는 졸업을 해도 상급 고등보통학교[중학교] 진학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1924년부터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학교 운영 의연금을 모으고 당국에 학년 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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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지역이 속해 있던 옛 시흥군 군자면에서 1919년 3월에 일어난 독립 만세운동. 군자면 3.1운동은 일제에 맞서 지역민들이 향촌의 전통 리(里) 조직을 통해 일제의 무단통치(武斷統治)를 반대하며 군자면사무소와 거모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가 펼친 항일 독립 만세운동으로, 시흥 지역의 대표적인 민족 광복운동이다. 시흥군 군자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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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월곶동을 비롯한 주변 일대의 천일염을 생산하였던 염전. 전통적인 소금 생산 방법은 가마솥에 바닷물을 끓여 얻는 것이었는데 이 제조법은 높은 생산비 때문에 효과적이지 못하였다. 값싼 중국산 소금이 수입되다가 천일염이 생산된 것은 1907년 인천에 주안염전이 조성된 이후이다. 일제는 이를 더욱 확대하고자 염전 조성에 유리한 경기만을 주목하여, 1925년 시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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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하중동에서 태어나고 묘소가 있는 일제강점기 문인이자 학자. 권호(權澔)[1886~1956]는 시흥시 하중동 392-1에서 출생하였다. 초명은 대이고 1913년에 ‘호(灝)’로 바꾸었으며 1940년에 다시 ‘호(澔)’로 바꾸었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백헌(伯獻), 호는 우석(又石)·경암(敬菴). 행중추원사(行中樞院事) 권극화(權克和)의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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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이 속해 있던 옛 시흥군 군자면의 구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권희(權憘)[1900~1955]는 1919년 4월 7일 군자면 구 장터 만세운동을 모의하다 일제로부터 피체(被逮)되어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본관은 안동(安東). 경기도 안산군 마유면 장상리 안두일[지금의 시흥시 장현동]에서 대대로 세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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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하중동 출신의 일제강점기 연성음사 회원. 안동 권씨(安東權氏)라는 것 이외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권희원은 일찍이 뛰어난 한학 실력과 문장으로 관내외에 그 이름을 떨쳤다. 1926년경 시흥 지역의 인사 45명이 중심이 되어 ‘연성음사(蓮城吟社)’란 한시 동인회가 결성될 때 일원으로 참여하였다. 이듬해에는 시흥의 옛 읍호인 ‘연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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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부터 1945년 광복까지 경기도 시흥 지역의 역사. 개항 이래 조선은 외세의 개입과 수탈 속에서 쇠락해 갔다. 개화파가 주도한 갑오개혁(1894~1896)과 대한제국의 선포를 통해 서구의 근대 문물을 받아들여 자강 부흥을 노렸으나, 이미 기운 국운을 되돌리기 어려웠었다. 결국 1906년 통감부(統監府)가 설치되면서 조선 사회의 근대적 개혁은 일제에 의해 주도되었다. 당시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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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갑오개혁에서 1945년 광복까지 경기도 시흥시에서 이루어진 일반 대중 중심의 교육. 갑오개혁 이후 근대 대중 교육의 시대가 열렸다. 초기 근대 교육의 보급은 주로 외국 선교사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1905년 교육 계몽 운동의 열기 속에서 경기도 시흥 지역에도 여러 사립학교가 설립되었다. 일제는 1906년 통감부(統監府) 설치 이후 애국적인 교육을 차단하는 식민지 교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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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에서 출생한 일제강점기 종교인이자 교육자.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지석(芝石)·교원(敎源). 경기도 부천군 소래면 무지리 438[지금의 시흥시 무지내동 428]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김용수(金龍洙), 어머니는 이씨(李氏)이다. 아들은 민선 인천시장과 국회의원을 역임한 김정렬(金正烈)이고, 사촌형은 시흥시 관내 최초의 기독교인 김동현(金東賢)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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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에서 출생한 시흥 지역 최초의 기독교인. 본관은 경주(慶州). 경기도 부천군 소래면 무지리 352[지금의 시흥시 무지내동]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김광수(金廣洙), 어머니는 최씨(崔氏)이다. 본관이 하동(河東)인 부인 정씨(鄭氏)는 젊은 나이로 죽었다. 슬하에 1남 3녀를 두었다. 흥업강습소 창업자 김동일(金東一)은 사촌 동생이다. 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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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이 속해 있던 옛 시흥군 군자면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김천복(金千福)[1897~1968]은 시흥군 군자면 죽율리 출신으로 1919년 4월 4일 군자면 3.1운동을 주도하고 일제로부터 피체(被逮)되어 옥고를 치렀다.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본관은 금녕(金寧). 대사헌공파(大司憲公派) 24세손으로 입향조인 17세손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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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능곡동에 있었던 중등 교육과정의 야간학교. 능곡재건학교는 농촌 계몽의 일환으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교육하기 위해 야학으로 시작한 학교이다. 시흥군 수암면 능곡리 출신의 김규성이 권병국, 유기환, 강재원 등 마을 청년들과 함께 설립한 농촌 계몽 학교로 1966년 2월 문을 열 당시에는 안산감리교회[지금의 연성중앙교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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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에 있었던 경기도 최초의 사립학교. 무지리여학교의 교실을 짓는 비용은 미국 감리회 해외선교부의 선교사인 메리 스크랜턴(Mary Fletcher Benton Scranton, 1832~1909)이 원조하였다. 당시 미국 감리회 선교사들은 서울 이외의 농촌 지역 선교에도 주력하였으며, 특히 농촌 지역 여성들의 교육에 관심이 컸다. 무지내교회가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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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능곡동 삼거리마을 주민들이 문명석과 조덕준의 자선을 기념하며 세운 비석. 문명석 조덕준 자선기념비는 일제강점기 관내 주민들의 삶과 선행 그리고 '보은(報恩)'이라는 지역 공동체 사람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일제강점기인 1921년 문명석(文明錫)과 조덕준(趙德俊)이 마을 사람들을 위해 세금을 대신 내주고 학교를 세웠고, 마을 주민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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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죽율동 출신의 기업가. 본관은 남평(南平). 문순모(文順模)[1911~1983]는 경기도 시흥군 군자면 죽율리[지금의 시흥시 죽율동 393]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문창영(文昌永)이고 어머니는 강달산(姜達山)이다. 슬하에 5남 4녀를 두었다. 문순모는 소래공립보통학교[지금의 소래초등학교]를 거쳐 1931년 서울 중동중학교를 졸업한 후 전매국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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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호조벌 방죽 일대에서 1895년 무렵 이루어진 개신교의 선교 과정. 1880년대 조선 선교에 나선 미국 감리회는 시흥 지역 호조벌 방죽 주변을 의미하는 '방죽뫼' 지역을 중요 선교 거점으로 보고 적극적인 농촌 선교에 나섰다. 1895년 무렵에는 교인이 되기 위해 학습하는 사람이 12명이었다. 1901년 김동현[1869~1928]에 의해 시흥 지역 최초 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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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에 있던 옛 장터. 뱀내장은 조선 후기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오랜 역사를 가진 시장으로, 매월 1일과 6일에 개장하였다. 축산물 거래가 대부분인 우시장의 성격이 강했으며, 농산물·수산물·직물 등도 거래하였다. 특히 수원장, 소사장과 함께 경기도의 대표적인 우시장이었다. 가장 많은 소가 들어온 것은 200~300마리 정도의 소가 들어온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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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경기도 시흥시 북부 지역을 1914년 4월부터 1973년 6월까지 관할하였던 옛 행정구역. 부천군(富川郡)은 경기도 중서부 지역에 있었으며, 서울과 인천 지역 사이에 있는 부평평야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부천군 지역인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은 부천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시흥시의 교통 중심지로 높이 299.4m의 소래산이 있다. 소래산 산림욕장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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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능곡동에 있던 옛 시장. 시흥시 능곡동[능곡동·화정동], 연성동[하중동·하상동·광석동·장현동], 장곡동, 군자동[군자동·거모동], 월곶동 일대의 주민들이 이용하던 옛 시장으로 축산물의 거래가 많았다. 능곡 삼거리마을[지금의 능곡동 삼거리] 옛 정미소 자리 주변 장터는 장의 중심지로 특별히 '장마당'이라 불렀다. 삼거리장(三巨里場)의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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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진행된 지역 사회 개발 운동.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는 1971년 무렵부터 새마을 가꾸기 사업이 시작되었다. 농가의 지붕 개량에서 시작하여 소득 증대 사업, 농로와 마을길 정비 사업 등으로 확산해 나가면서 정신 혁명운동이라는 의미까지 부여되었다. 1970년대 중반 농촌 주민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사업 성과를 올렸으나, 1970년대 후반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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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논곡동에서 출생한 언론인. 서철원(徐澈源)[1933~1985]은 『대한일보(大韓日報)』 기자로 입사 후 사회부장을 역임하였으며 한국신문상을 수상하였다. 육영재단 총무부장과 식품 회사 대표 등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하였다. 본관은 대구(大丘). 경기도 시흥시 수인로2431번길 13-5[논곡동 271]에서 출생하였다. 서철원은 서영석(徐永錫)의 2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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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무단 철거 직전의 소래염전 소금창고를 박물관, 미술관, 체험 학습관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 벌인 운동. 소래염전 부지의 소유주였던 (주)성담이 2006년 6월 4일 현장에 남아 있던 소금창고 40동 가운데 38동을 방화 등으로 무단 철거하였다. 이에 시흥 지역 시민 단체와 문화 연대 등이 ‘구염전 소금창고 무단철거 항의 시민행동’을 조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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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의 소래공립보통학교에서 윤복동 교사가 일본 메이지 천황의 교육칙어를 감춘 사건. 1932년 4월 부천군 소래면 신천리 소래공립보통학교에서 일제 메이지 천황[明治天皇]의 상징처럼 귀중하게 보관되던 교육칙어(敎育勅語) 등본이 사라졌는데 그 사실을 며칠 후 알게 되었다. 경찰이 나서서 고강도 수사를 벌인 끝에 31세의 윤복동(尹福同) 교사가 자백하였다. 윤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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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경기도 시흥시를 포함하는 옛 행정구역. 소래면(蘇萊面)은 지금의 시흥시 대야동, 계수동, 신천동, 방산동, 포동, 미산동, 은행동, 안현동, 매화동, 도창동, 금이동, 과림동, 무지내동 일대와 경기도 광명시 옥길동, 부천시 옥길동·계수동 등이 포함된다. 문헌상으로는 1486년 발간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1861년 제작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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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포동, 장곡동, 월곡동 일대에 있었던 소래염전에서 생산된 천일염을 보관하던 창고. 소금창고는 단순히 소금을 보관하는 기능적인 장소만이 아니다. 천일염이 금값이었던 시절에는 ‘소금 1가마=쌀 1가마’인 때도 있었고, 농촌에 수박과 참외 서리가 있었다면 해안의 염전 일대에는 ‘소금 서리’가 수시로 발생하였다. 소래염전과 소금창고는 그곳을 생업 기반으로 했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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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의 버스 노선을 운행하는 운수회사. 1928년 이래 90년간 경기도 시흥시와 부천시·안양시, 서울특별시를 잇는 버스 노선을 운행해온 시흥의 대표적 운수회사이다. 경원여객, 소신교통, 시흥교통 등은 소신여객으로부터 독립해 나왔다. 1928년 신현순이 당시 경기도 부천군 소래면 신천리와 계남면 소사리 간 여객 수요가 많은 데 착안하여 포드 8인승 1대로 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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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시흥 지역의 관개용 저수지나 제방 따위에 관한 사업을 목적으로 조직된 법인체. 일제의 산미 증식 계획(産米增殖計畵)에 따라 경기도 시흥 지역에도 네 개의 수리 조합이 설립되었다. 1929년 소래수리조합이 만들어졌고, 1939년 칠리제공려수리조합과 매화공려수리조합이 만들어졌다. 1942년에는 흥부수리조합이 세워졌다. 네 개의 수리조합은 시흥의 논을 수리 안전답(水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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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지역이 속해 있던 옛 시흥군 수암면에서 1919년 3월에 일어난 독립 만세운동. 수암면 3.1운동은 일제에 맞서 지역민들이 향촌의 전통 리(里) 조직을 통해 일제의 무단통치를 반대하며 수암면사무소와 수암주재소로 몰려가 만세운동을 펼친 항일 독립운동으로, 민족 독립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수암면은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와 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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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을 통과하는 수원~인천 간 수인선 협궤열차 부설을 위해 1936년 6월부터 1937년 7월까지 1년여 동안 진행된 공사. 수인선(水仁線)은 1937년부터 1995년까지 58년간 수원~인천 간을 운행하던 협궤철도이다. 수인선은 1935년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의 허가를 받아 조선경동철도주식회사(朝鮮京東鐵道株式會社)가 부설하였다. 수인선 시흥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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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서 1986년부터 1994년까지 시화 지구 개발 관련 보상과 민원을 담당했던 기관. 1986년부터 시화 지구 개발이 본격화됨에 따라 공업 지역과 배후 주거 단지 조성을 위해 매입 용지와 어업권 보상을 담당할 기구가 필요해졌다. 1986년 4월 25일 사업 주체인 한국수자원공사는 경기도와 용지 보상 위탁 협정을 맺고, 시화 지구 개발지원사업소를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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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미국 군정청이 식량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추진한 경기도 시흥 지역의 바다를 막아 육지를 만들었던 일. 미국 군정청(軍政廳)은 식량 정책 실패로 민심이 동요하자 쌀 생산 확보를 내세워 전국의 간척 대상지를 물색하였다. 그 일환으로 1947년 10월부터 시흥군 군자면 수인선 주변 간석지 62㏊[62만㎡]를 논으로 바꾸기 위해 간척 사업을 진행하였다. 간척 대상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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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88년까지 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영등포구·관악구·동작구·구로구와 경기도 광명시·안양시 일부를 관할하였던 경기도의 행정구역. 시흥군(始興郡)은 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에 군청을 두었다. 서울특별시 금천구를 중심으로 영등포구[양화동·여의도동 제외], 관악구[남현동 제외], 동작구 일부[신대방동·상도동], 구로구 동부[안양천 동쪽]와 경기도 광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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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운영되었던 임업 경영 단체. 1924년 임야 조사 사업을 마무리한 일제는 시흥군삼림조합을 만들었다. 삼림조합은 임야를 소유한 군민과 임야를 대부(貸付)한 군민은 모두 강제 가입하도록 하였다. 대부란 임야를 약정 기간 동안 빌려 준 다음 나무를 심어 가꾸게 하고 성공하였다고 판정되면 임야 소유권을 넘기는 제도다. 삼림조합은 상당액의 조합비를 거두어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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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직후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조직하여 활동하였던 민간 자치 기구. 일제 패망 직후 지방 행정 업무를 담당할 기구가 필요하였다. 당시 시흥 지역에서도 1945년 9월경 인민위원회가 조직되어 행정과 치안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일제의 시흥군 청사를 접수할 정도로 활발히 활동하였던 시흥군인민위원회는 1945년 말 미군정이 불법화하면서 공식적인 업무를 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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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과림동과 계수동 안골 주민들이 신안 주씨 3대가 베푼 자선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와 비각. 신안 주씨 삼세 적선비(新安朱氏三世積善碑)는 시흥시 과림동 출신의 주석범(朱錫範)[1815~1880], 주순원(朱順元)[1836~1895], 주인식(朱寅植)[1862~1952]과 주영식(朱永植)[1867~1952] 등 신안 주씨 3대가 마을에 자선을 베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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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에 강석균 등이 1968년에 세웠던 공동 축산 농장. 강석균이 뜻을 같이하는 일곱 가구와 함께 부천군 소래면 무지리[지금의 시흥시 무지내동]의 땅을 매입해 일군 농원이다. 신앙 공동체를 이루었던 이들은 황현교회도 설립하였다. 신지농원(信地農園)은 양계로 시작해 양돈과 채소 재배, 한우와 젖소 사육으로 농원을 키웠다. 강석균이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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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83번지에서 1993년 발생한 대형 화재. 시흥시 신천동 83번지는 무허가 판자촌이 밀집한 지역으로, 1995년 큰불이 난 후 영구 임대 아파트 주택 건설을 요구하는 주민들과 시행사 간의 공방이 계속되다가 2003년에 철거 작업이 시작되었다. 2006년 6월 16일 당시 무허가 주택은 모두 강제 철거를 당하였다. 2005년 시공사가 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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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금이동에서 출생한 시흥 지역 최초의 운수업자.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경기도 시흥시 도리재길 23-10[금이동 462]에서 출생하였다. 신현순(申鉉舜)[1895~1969]은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신철균(申哲均)의 2남이다. 신현순은 근대 문물에 일찍이 눈길을 돌려 1928년 포드 8인승 1대를 구입한 데 이어 1930년 10인승 2대의 차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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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부터 1929년까지 활동하였던 경기도 시흥 지역의 한시 동호회. 시흥 지역의 한시 문인들이 일제강점기인 1920년 한시를 짓고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연성음사(蓮城吟社)를 결성하였다. 자금과 장소를 구하지 못하여 폐지되었다가 1925년 재결성하였다. 연성음사는 지역 문인들이 상부상조하는 계(契)의 전통도 잇고 있다. 1927년에는 전국적으로 한시를 공모하는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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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에 시흥공단이 조성되면서 생활 근거를 상실한 주민들을 위해 오이도 서쪽 해안에 마련한 주거 단지. 한국수자원공사는 1992년 8월 시흥공단 철거 원주민을 위한 이주민단지를 시흥시 정왕동 오이도에 개발하기로 하였다. 용지 매수 면적 46만 5370㎡, 해안 매립 면적 60만 5687㎡ 등 총 1,057만㎡를 이주민단지 및 시흥공단 추가 단지로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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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이 속해 있던 시흥군 수암면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윤동욱(尹東旭)[1891~1968]은 1902년 4월부터 1911년 12월까지 서당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3월 30일 수암면 3.1운동을 주도하고 일제로부터 피체(被逮)되어 옥고를 치렀다. 1996년 8월 15일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2009년 시흥의 인물로 선정되었다.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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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이 속해 있던 옛 시흥군 수암면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윤병소(尹秉召)[1893~1919]는 1919년 당시 시흥군 수암면 능곡리[지금의 시흥시 능곡동]에 거주하였다. 3월 30일 수암면 비석거리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일제로부터 피체(被逮)되어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고인의 업적을 기려 1968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고 19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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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대야동에 정착한 국가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이석훈(李碩薰)[1919~1980]은 황해도 장단군[지금의 개성직할시 장풍군] 출신으로 시흥시에 정착하여 국가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弓矢匠)으로 선정되었다. 이석훈의 고향은 황해도 장단군이다. 10대 중반에 화살촉 제조로 유명했던 숙부 이근상(李根相)의 안내로 국궁(國弓)의 길로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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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도창동에서 출생한 현대 언론인. 본관은 전주(全州). 경기도 부천군 소래면 도창리[지금의 시흥시 도창동]에서 출생하였다. 이성표(李成杓)[1933~1990]는 소래공립보통학교[지금의 소래초등학교]를 거쳐 1959년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한국일보 경제부 기자로 입사하여 다양한 부서를 거쳤다. 1971년 지방부 차장으로 승진하였고, 이듬해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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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논곡동 출신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이재항(李載伉)[1887~1965]은 시흥 지역 출신으로 경기도 수원군 서신면 상안리[지금의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의 이원행(李源行) 등과 1919년 3월 26일 수원군 송산면[지금의 화성시 송산면]의 만세운동을 준비하고 참여하였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원장(元璋). 아버지는 이지응(李智應),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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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논곡동에서 출생한 향토사학자 겸 자료 수집가. 이한기(李漢基)[1945~2002]는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 논곡리 227[지금의 시흥시 논곡동]에서 출생하였다. 승언(承彦)이란 필명을 애용하여 본명보다 필명이 널리 알려졌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상오재(尙五齋), 필명은 승언. 아버지 이윤학(李潤鶴)과 어머니 김숙진(金淑鎭)의 3남 1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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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에서는 민족 광복 운동사에 중요한 사건인 3.1운동이 3월 말에서 4월 초까지 수암면과 군자면 일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3.1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독립운동가들은 일제의 무단통치(武斷統治)에 맞서 지역민을 조직하여 하부 통치 기구인 면사무소와 경찰관 주재소에 몰려가 만세 운동을 펼쳤다. 그 과정에서 수암면의 유익수, 윤병소, 홍순칠, 윤동욱, 김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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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북한에 점령된 상태의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투표를 통해 인민위원을 선출한 행위. 북한은 점령 지역의 일선 정치·행정을 수행할 인민위원회를 1950년 7월부터 9월까지 선거를 통해 구성하였다. 경기도 시흥군에서는 1950년 7월 26일~7월 27일 면·리 단위의 선거를 실시하여 인민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시흥군인민위원회는 토지 개혁에 착수했으나, 1950년 8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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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갑오개혁 이후 광복 이전까지 경기도 시흥 지역을 관할하였던 행정구역. 인천부(仁川府)는 시흥군을 비롯하여 부평군, 김포군, 양천군, 안산군, 과천군, 수원군, 남양군, 강화군, 교동군, 통진군, 인천군 등 12개 군을 관할하였다. 관찰부(觀察府)는 제물포에 두었다. 인천부에는 관찰사(觀察使) 1인, 참서관(參書官) 1인, 주사(主事) 15인, 경무관(警務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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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주의 식민지였던 1910년부터 1945년까지 경기도 시흥 지역의 역사. 일제강점기 시흥은 서울 남서쪽 농촌 지역에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지역이 변화하였고, 면 중심의 식민지 행정 통제를 받았다. 1919년 3.1운동 때는 시흥의 주민들도 적극 만세 시위를 벌여 독립의 희망을 표출하였다. 하지만 식민지 지배가 계속되면서 70%가 지역 토박이인 시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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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부터 1923년까지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진행된 임야 소유권 재정리 사업.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일제는 토지 조사 사업에 이어 임야 조사 사업을 진행하였다. 임야의 근대적 소유권을 확정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1908년 삼림법에 따른 임야 조사로 엄청나게 늘어난 국유림(國有林)을 다시 원래 소유주에게 돌려주어 국유림 관리 비용을 민간에 떠넘기고 산림을 통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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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의 주민운동, 문화 운동, 복지 운동의 중심이 되었던 공간. 복음자리마을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양평동 등의 판자촌 철거민 170가구가 집단 이주해 자리 잡은 터전이었고, 한독마을은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 등 8개 지역 철거민 164가구가 옮겨 온 곳이었다. 목화마을은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 철거민 105가구가 이주한 마을이었다. 마을이 3개로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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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 주민들이 장곡동에 있는 노루우물을 지키기 위해 벌인 운동. 시흥시 장현지구 보금자리 사업으로 장곡동 노루우물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였다. 2013년 장현지구 사업 설명회 당시 노루우물 보존을 약속했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경제성 등을 이유로 약속을 번복하자 주민들이 맞섰다. 2014년 7월부터 주민들은 노루우물 보전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학술 대회,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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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이 속해 있는 옛 군자면 구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장순한(張淳翰)[1900~1981]은 1919년 4월 7일 군자면 구 장터 만세운동을 모의하다가 일제로부터 피체(被逮)되어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본관은 덕수(德水), 초명은 수산(壽山)·순한(淳翰), 자는 중옥(重玉), 호는 매암(梅巖). 신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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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과림동에서 출생한 일제강점기의 자선가. 본관은 신안(新安), 호는 송당(松堂). 인천부 황등천면 일원[지금의 시흥시 과림동]에서 오랫동안 세거하였다. 주영식(朱永植)[1867~1952]은 주희(朱熹)의 31세손이며 주순영(朱順英)의 2남이나 후에 주순거(朱順巨)에게 양자로 들어갔다. 주영식은 큰할아버지 주석범(朱錫範), 큰아버지 주순원(朱順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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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 죽율동에서 지역 유지들이 의연금을 모아 설립·운영한 사설 야학. 죽율 야학(竹栗夜學)은 1926년 시흥군 군자면 죽율리 유지들이 농한기에 운영하는 야학으로 개설되었다. 유지들은 1927년 의연금을 모금해 13칸 규모의 교실까지 갖추었다. 1928년 전국적인 큰 가뭄으로 야학 운영이 어려워지자 1929년 유지들은 다시 한번 야학 운영 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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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일대의 옛 지명. 중림동은 신안 주씨(新安朱氏)와 청주 한씨(淸州韓氏) 및 여흥 민씨(驪興閔氏)의 오랜 세거지다. 마을 서쪽 지역을 ‘안말’, 동쪽 지역을 ‘아랫말’, 중앙을 ‘가운뎃말’이라 각각 부르고 있는데, 특히 안말은 조선시대 중림역(重林驛)이 있었던 곳이다. 조선시대 인천부 황등천면 중림리는 인천부 관아에서 35리[약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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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월곶동에 군자중학교를 세운 근현대 교육자. 최긍렬(崔兢烈)[1901~1960]은 교육자인 아버지 최병문(崔秉文)과 어머니 염씨(廉氏)의 1남으로, 경기도 경성부 종로구[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63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처는 이화진이다. 최긍렬은 1911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부속보통학교, 1916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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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에서 일제강점기 토지 조사 사업 과정 중 토지 지배 권리를 두고 발생한 다툼. 일제강점기 시흥 지역에 있었던 토지 소유권 분쟁은 1912년 무렵 일제의 조선 토지 조사 사업(朝鮮土地調査事業)과 관련하여 발생하였다. 학술적 연구는 일제의 사업이 불법적으로 사적 소유권을 약탈하였다는 명제에서 출발하였다. 일제의 토지 조사 사업은 제국주의 식민지의 장기적 경영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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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토지 소유권과 지세 액수 확정, 지적도 작성을 목적으로 일제에 의해 진행된 사업. 일제는 식민 지배의 물적 기반인 토지를 정확히 파악하여 통제하기 위해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전부터 전국의 토지를 조사하는 사업을 강행하였다. 경기도 시흥 지역의 경우 1910년 지주들로부터 토지 신고서를 접수하였고, 1911년 국유지 통지를 거쳐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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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군 소래면 포리[지금의 시흥시 포동] 어업의 상징이었던 포리호가 1960년 12월 납북될 뻔했다가 수장되었던 사건. 일제강점기 시절과 달리 남북 정부 수립 이후 삼팔선(三八線)이 생기면서 남한 주민은 이북의 주요 어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자 보다 발전된 장비를 갖추고 선박이 소형에서 중형화되는 추세가 이어졌다. 포리호(浦里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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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하중동 연꽃테마파크 인근의 레미콘 공장 건설을 막아낸 시민운동. (주)청보기업이 2014년 6월 하중동 보통천 옆에 레미콘 공장을 추진하자, 주부·학부모·농민 등 시흥의 문화와 생태 오염을 우려하는 시민들이 반대 운동을 벌였다. 시민 서명운동을 통해 2만 7000여 명이 서명하였고, 1인 릴레이 시위 등이 이어지자 시흥시는 2014년 10월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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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부터 국권 회복을 위해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전개한 항일 무장 투쟁. 1907년 8월 대한제국 군대 해산을 계기로 시흥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 서부 지역의 의병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의병들은 일제의 탄압 기구인 순사 주재소를 습격하고, 일진회원(一進會員)을 위시한 친일파를 처단하였으며, 부자들의 집에 들어가 군자금을 마련하였다. 1909년까지 소규모 유격전 형태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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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시흥 지역의 역사. 1945년 광복 이래 경기도 시흥 지역은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영광을 함께하였다. 분단과 6.25전쟁, 산업화, 민주화의 성취로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고통과 기쁨을 직접 겪었다. 1973년 부천군 소래면이 시흥군에 편입된 이후 시흥군의 거듭되는 분리를 통해 인접 도시들이 만들어졌으며, 1989년 시로 승격한 시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