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개심사 대웅보전에 있는 칠성도. 별자리 신앙은 고대부터 존재하였으며 불교는 도교와 융합하여 독특한 칠성 신앙을 형성하였다. 우리나라에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칠성도는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된 치성광여래도[14세기]로 소가 끄는 수레를 탄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가 식재보살(息災菩薩)과 소재보살(消災菩薩), 십일요(十一曜) 등을 이끌고 강림하는 모...
-
개항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1876년(고종 13) 조선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강화도 조약 이후 서산 일대에도 예외 없이 개화의 물결이 들이닥쳤다. 당시 국가 권력의 해체 과정에서 관료들의 수탈과 약탈이 횡행했는가 하면, 대외 무역의 확대에 힘입어 만석꾼으로 성장한 부호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였다. 이른바 시대 변화에 편승하여 경제력과 권력을 거머쥔 새로운 주도 세력이 나타...
-
개항기 서산 천장암에서 수도한 승려. 본관은 여산. 본명은 송동욱(宋東旭), 법호는 경허(鏡虛), 법명은 성우(惺牛). 아버지는 송두옥(宋斗玉)이고, 어머니는 밀양 박씨이다. 경허(鏡虛)[1849~1912]는 1849년(헌종 15)에 전주 자동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9세 때 어머니를 따라 경주 청계사에 들어갔다. 청계사 주지 계허(桂虛)를 은사로 삼아...
-
개항기 서산 출신의 의병. 김병수(金炳洙)는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 출신으로 안흥첨사(安興僉使)를 지내다 고향인 서산으로 내려와 은거하였다. 1905년 11월 일본에 의해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산군 대술면 상항리에 거주하는 이남규(李南珪)를 찾아갔다. 이남규는 일찍이 유학(儒學)으로 이름을 떨친 인물로 갑오경장의 부당성과 명성황후(明成皇后) 시해에...
-
근대 서산 출신의 학자이자 교육자. 본관은 경주. 자는 경필, 호는 소암(溯巖).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감찰을 지내고 1889년(고종 26)에 효행으로 정려를 받은 김학방(金鶴芳)[1746~1822]이다. 김상억(金商億)[1862~1938]은 서산의 오랜 세거 성씨인 경주 김씨[일명 한다리 김씨]의 후손으로, 서산군 대산면 광암동[현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광암마을]에서 태...
-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광암마을에 있는 개항기 효자 김학방(金鶴芳)의 정려. 김학방 정려(金鶴芳旌閭)는 부친을 지극한 효성으로 봉양하였던 김학방[1746~1822]의 효자 정려이다. 김학방은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경주 김씨(慶州金氏) 가문의 후손이다. 1768년(영조 44) 무과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을 지냈고 통정대부 증직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
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 향교골에서 두레의 농기로 제작한 기. 서산시 동문동 향교골은 1574년(선조 7) 군수 최여림에 의해 서산향교가 이건해 온 마을이다. 이로 인해 교하촌(校下村)의 성격을 띠고 형성된 이 마을은 교동 또는 향교골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동문동 향교골 용대기는 1899년(광무 3)에 두레의 농기로 제작한 기로, 용이 그려져 있어 속칭 ‘용...
-
1894년에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일어난 반봉건·반외세 농민 봉기. 서산 지역은 일찍부터 동학이 왕성하던 곳으로, 1894년 북접 농민군이 내포 지역에서 농민 봉기를 일으킬 때, 예산과 더불어 예포 농민군의 중심 근거지였다. 예포 농민군이 일본군과 관군에 맞서 싸운 홍주성 전투는 대단히 규모가 큰 전투였으며, 서산 지역에서는 해미성 전투와 매현 전투 등이 벌어졌다....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 문수사 극락보전에 있는 삼세불회도. 삼세불회도는 사파세계(裟婆世界]) 석가모니불, 동방 유리광세계(琉璃光世界) 약사불, 서방 극락세계(極樂世界) 아미타불을 주불로 한 설법회를 표현한 불화이다. 본래 삼세불(三世佛)은 과거불 연등불(燃燈佛), 현재불 석가불(釋迦佛), 미래불 미륵불(彌勒佛) 등 시간의 개념을 상징하는 부처를 가리킨다. 우리나라...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 문수사 극락보전에 있던 신중도. 불법승을 수호하는 호법신을 그린 신중도는 조선 후기에 크게 유행하였다. 언제부터 신중도가 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제석천을 단독으로 그린 고려 후기의 제석천도에서 그 시원을 찾을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고려 후기 제석천도처럼 제석천이 단독으로 조성되면서 그와 짝을 이루는 천룡도가 제작되었으며, 18세기...
-
근대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교육자.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순좌(蕣佐), 호는 경암(絅庵)이다. 민태직(閔泰稷)[1868~1935]은 충청남도 서산시 오남동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유진하(兪鎭河)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다. 1885년에 부친상을 당하자 몹시 슬퍼하며 시묘살이를 하였고, 시묘살이 중에도 경서를 탐독하고 예를 강론하였다. 민태직은 근대화와...
-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취평리 부석사에 있는 아미타후불도. 아미타후불도는 아미타여래가 서방 극락세계에서 설법하는 순간을 재현한 불화이다. 조선 시대에 아미타후불도는 사찰의 주 불전과 부속 전각인 극락전에 봉안되었으며 후불도의 규모에 맞게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팔대보살, 나한, 사천왕, 신중이나 천녀 등이 외호하는 군도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19세기에는 암자를 중심으로 감실...
-
1894년 동학 농민 전쟁 때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최후 전투지. 서산 지역은 일찍부터 동학이 왕성하던 곳이었다. 특히 서산 지역의 농민군은 1894년 북접 농민군이 내포 지역에서 농민 봉기를 일으킬 때, 예포 농민군의 주력군 역할을 수행하였다. 예포 농민군이 일본군과 관군에 맞서 싸운 홍주성 전투는 전주성 전투에 버금가는 규모였다. 현재 서산시 소탐산에 위치한 매현(梅...
-
개항기 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던 초등 교육 기관. 서산의 근대 교육 역사에서 풍전신숙(豊田新塾)과 서령학교(瑞寧學校)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였다. 풍전신숙은 1907년(순종 1) 당시 대지주 한동벽 등이 서산 읍내에 설립한 학교인데, 1908년(순종 2) 서령학교가 설립되면서 이에 흡수 통합되었다. 『서산군지』에 따르면, 서령학교는 당시 서산군수였던 박승준(朴承俊)과...
-
1894년 10월 1일 동학 교도들이 충청남도 서산의 관아를 습격한 사건. 서산·태안 지역에서 조직적인 농민 봉기가 시작된 것은 1894년 음력 10월 1일[양력 10월 29일]이었다. 봉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그해 9월 14일 태안군수 신백희(申百熙)와 종친부에서 파견된 별유사 김경제(金慶濟)가 동학 두령 30여 명을 투옥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이 예포대도소(禮包大...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었던 금융 조합. 1907년경부터 군을 단위로 지방 금융 조합이 설립되어 화폐 정리 사업, 납세 선전 활동, 농사 지도 장려 사업 등의 정책 사업을 수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농공은행의 말단 조직으로서 농업 자금의 대부, 농산물의 위탁 판매, 종자·비료·농구 등의 분배 및 대여 등의 업무도 수행하였다. 이는 서산금융조합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19...
-
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개항기 천주교 조선교구 소속 성당. 19세기까지 이어진 천주교 박해가 끝나고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면서 박해 당시의 주요 교우촌을 중심으로 성당들이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해미 진영과 같은 박해의 중심지가 소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산 지역에는 비밀리에 활동하는 천주교 신자들과 신자들의 근거지인 교우촌이 많았다. 1908년 5월 9일 천주교...
-
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서산읍성의 관아문 및 외동헌. 서산읍성(瑞山邑城) 내의 건물이었던 관아문(官衙門)과 외동헌(外東軒)으로, 1867년(고종 4) 군수 오병선이 부임하면서 건축하였다. 관아문은 서산읍성의 입구 건물이며, 외동헌은 서산군에 부임하였던 수령이 근무하였다. 1917년 외동헌은 16.53㎡[5평]로 증축하였다. 관아문은 서산시청 입구에 있으...
-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강당리에 있는 회안대군(懷安大君)을 기리는 사당. 서산 숭덕사(瑞山崇德祠)는 조선 태조의 넷째 아들 회안대군[1364~1421] 이방간(李芳幹)을 제향하는 사당이다. 회안대군은 조선이 건립되자 회안군에 봉군되었고, 1398년(태조 7) 회안공으로 개봉되면서 의흥삼군부좌군절제사가 되었다. 제2차 왕자의 난으로 1400년(정종 2) 토산(兎...
-
개항기 서산 출신의 향리. 서세린(徐世獜)은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서산관아의 예방 소속 서리[구실아치]였다. 1894년(고종 31) 서산·태안까지 동학 운동이 번져 농민군이 관아를 습격하였다. 농민군은 군수 박정기(朴錠基)와 구실아치의 우두머리[首吏]인 송병훈(宋秉勳)을 살해하고 관아 건물을 불태워 버렸다. 이런 혼란 속에서 서세린은 객사에 봉안되어 있던 전패[임금을 상...
-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산동리에 있는 대한불교 총화종 소속의 암자. 『석가탑불사방명록의서』에 의하면 석천암은 1875년(고종 12) 밀양후인 박보살의 꿈에 부처[혹은 백발의 노인]가 나타나 굴속으로 인도하여 물줄기가 세차게 치솟는 곳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를 기이하게 생각하여 그곳에 부처님을 받들어 안치하고 이름을 석천암(石泉庵)이라 했다고 한다. 1980년에...
-
개항기 서산 출신의 향리. 송병훈(宋秉勳)[?~1894]은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서산관아의 수리(首吏)[이방 우두머리]였다. 1894년(고종 31) 10월 1일 서산·태안 지역에서는 조직적인 농민 봉기가 일어났으며, 서산에서는 관아가 습격 받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농민들이 서산관아를 공격하자 송병훈은 군수 박정기(朴錠基)를 도와 관아를 지키는 데 앞장섰다. 그러던 중 군...
-
개항기 서산 출신의 효자. 신대남(申大男)은 음암면 점촌[현 서산시 음암면 율목리]에서 도공(陶工)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삼형제가 물가에서 소라 한 개를 주워 똑같이 셋으로 나누며 우애를 다짐하니 사람들이 모두 기특하게 여겼다. 신대남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도자기 굽는 일을 하였다. 돈이 생기면 좋은 음식을 마련하여 어머니를 정성으로 봉양...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천주교 박해 당시 매장 터.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와 조산리 접경 부근의 해미천 주변은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기에 신자들을 생매장, 익사, 교수 등의 방법으로 처형하던 형장이었다. 구전에 의하면 이 일대는 이른바 여숫골로 불리기도 했다. 조산리의 해미천 변은 배교를 거부하는 천주교 신자들이 가장 처참하게 순교한 곳...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천주교 무명 순교자들의 합장묘. 해미천이 지나는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일부와 조산리 일대는 천주교 박해기 천주교도들의 생매장 처형지로 알려져 왔다. 1935년 목격자의 증언을 토대로 이루어진 발굴 작업에서는 상당수의 유골이 발견되어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순교하여 그대로 방치되어 있던...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갈산리에 있는 개항기 전통 가옥. 유기정 가옥(柳基定家屋)이 위치한 서산시 운산면 갈산리는 ‘산막’이라고도 불리며, 마을 북쪽에 은봉산이 자리하고 있다. 1905년(고종 42)경 건립되었다. 1970년경 사랑채의 좌측 조적벽이 무너지고 아궁이가 훼손되어 보수하였으며, 1976년경에는 우측 황토담의 일부분이 무너져 보수하였다. 2005년부...
-
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 윤찬구 가(家)에 소장되어 있는 윤시영(尹始永)의 일기와 관련 문서. 윤시영(尹始永)[1855~1913]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1891년(고종 28) 문과 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다 1902년(광무 6) 함흥 민요(民擾)에 안핵사(按覈使)로 파견되어 수령의 장부(臧否)를 조사하였다. 1...
-
개항기 서산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 본관은 무송. 자는 원보(元甫), 호는 우해당(雨偕堂) 또는 인재(仁齋). 아버지는 윤봉헌(尹奉憲)이고 어머니는 의성 김씨이다. 무송 윤씨의 주요 세거지는 당시 서산 지역이었던 태안군 소원면 시목리이다. 윤호(尹昊)[1868~1907]는 송근수(宋近洙)와 유중교(柳重敎)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유중교의 가르침을 사표로 삼아 정자(程子...
-
1894년 4월 충청남도 서산군 운산면 보현동에서 발생한 동학 농민군의 재지 양반 습격 사건. 서산 지역에 동학이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1894년 동학 농민 전쟁이 발발하기 몇 년 전쯤이었다고 한다. 서산·태안 지역을 포함하여 충청남도 서북부 지역에 동학이 급속하게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1907년 천도교의 제4대 교주로서 활약한 덕산 출신의 박인호(朴寅浩) 때문이었다....
-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 3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임영주(林榮周)의 정려. 임영주[1828~1865]의 본관은 평택으로 자는 선화(善化), 호는 효당(孝堂)이다. 천성이 후덕하고 효심이 지극하여 어버이 섬기기에 정성을 다하니 임영주의 효행에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효행 사실은 1905년(고종 42)에 이종림(李種林)이 쓴 정려기...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와 조산리에 있는 천주교의 성지. 해미순교성지는 한국 천주교회 사상 가장 중요한 순례지 가운데 하나이다.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숨져간 이른바 ‘무명 순교자’가 가장 많은 곳이며, 그 처형 방법도 자리개질·생매장과 같이 가장 참혹했다. 조선 후기 충청도 서북 지역의 군사와 치안을 함께 관장하던 해미진영(海美鎭營)은 이 지역의 천주교...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개항기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지. 서산시 해미면 조산리의 여숫골 일대에는 해미천과 인접하여 들판으로 이어지는 늪이 많았다. 늪지대에는 움푹 패어 물이 고인 커다란 웅덩이가 있었는데, 진둠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둠벙’은 물이 고인 웅덩이를 가리키는 충청도 지방의 사투리이다. 진둠벙은 박해기 천주교 신자들에 대...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곰실마을에 있던 개항기 효자 채홍우(蔡弘宇)의 정려. 채홍우[1765~1836]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주변에 명성이 자자하였다. 성년이 되어서는 부인 한산 이씨(韓山李氏)와 함께 정성껏 부모를 공양하고 효행이 각별하여 내외가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병을 얻어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병을 낫게...
-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 천장사에 있는 신중도. 신중도는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를 수호하는 호법신을 그린 불화이다. 불법승을 수호하는 호법신을 그린 신중도는 조선 후기에 크게 유행하였다. 언제부터 신중도가 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제석천을 단독으로 그린 고려 후기의 제석천도에서 그 시원을 찾을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고려 후기 제석천도처럼 제석천이 단독...
-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 천장사에 있는 지장시왕도. 지장시왕도는 지장삼존과 명부의 10명의 대왕인 시왕을 한 화면에 그린 불화이다. 지장시왕도는 주로 대웅전, 극락전 등 주 불전이나 암자의 법당에 좌측 혹은 우측 벽에 신중도와 마주보게 건다. 주로 사찰의 대웅전과 같은 주 불전 혹은 암자의 법당 한쪽 벽에 걸어 천도 의식을 거행한다. 「천장사 인법당 지장시왕도」는...
-
개항기 천주교 박해로 인하여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서 발생한 천주교인들의 순교 사건. 조선 후기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확산되면서 내포(內浦)[충청남도 서북부 가야산 주변을 통칭하는 지역] 지방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가 발생하였다. 호서좌영(湖西左營)이 자리했던 해미에서는 문헌상 179명의 순교자가 확인되고 있으나, 이름도 남기지 못한 무명 순교자가 더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해미의...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개항기 최광순(崔光淳)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최광순은 오위장(五衛將), 횡성현감(橫城縣監) 등을 역임하였으며, 1883년(고종 20)에 해미현감(海美縣監)으로 부임하여 만인산(萬人傘)을 받았다. 만인산이란 고을 백성들이 선정을 베푼 수령에게 그 덕을 기리기 위하여 바치던 물건으로, 비단으로 만들었고, 모양은 일...
-
개항기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풍전리에 있던 사립 교육 기관. 개항기 애국 계몽 운동 시기에 전국 각지에서는 지역 유지들의 주도로 사립 학교가 우후죽순처럼 설립되어 ‘교육 구국 운동’을 주도하였다. 1908년 기준 충청남도 지역의 공·사립 학교 수는 88교였으며, 전체 교사 수는 255명, 학생 수는 3,820명이었다. 같은 시기 서산, 태안, 해미 지역에는 6개 교육 기관이 존재...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대치리에서 서산시 해미면 대곡리로 넘어가는 가야산의 한 고개로 천주교 신자들이 압송되던 길. 내포 지방은 가야산을 중심으로 흩어져 있는 여러 고을들을 포함한 지역을 이른다. 따라서 내포의 각지에서 체포된 신자들이 해미 진영으로 압송되어 가기 위해서는 가야산을 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삽교천 인근에서 체포된 교인들이 해미로 압송되기 위해...
-
1894년 11월 충청남도 서산의 해미성에서 벌어진 내포 동학 농민군과 관군의 전투. 1894년 이른바 예포[북접] 농민군이 내포 지역에서 봉기를 일으킬 때, 서산 지역의 동학 교도들은 예포 농민군의 주력군 역할을 수행하였다. 홍주성 전투는 그동안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동학 농민 전쟁사에 새롭게 기록해야 할 중요한 전투였다. 홍주성 전투에서 패배한 농민군은 이후 해미성 전...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순교 유적. 천주교에서 정의하는 성지(聖地)는 엄밀한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활동, 죽음 그리고 부활이 이루어진 팔레스티나(Palestina)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따라서 팔레스티나 이외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행위와 관련한 순교지나 그 밖의 순례지는 성역(聖域) 혹은 성지(聖址)로 구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천주교 신...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개항기의 돌다리. 서산 해미읍성(瑞山海美邑城)의 서문 밖에는 성안에서부터 흐르는 개천이 있었고, 여기에 커다란 돌다리가 가로놓여 있었다. 이 다리를 통하여 사람들은 편리하게 수로를 건너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천주교 박해기의 순교자에게 돌다리는 지상에서 천상으로 넘어가는 마지막 통로로 여겨졌을 것이다. 다리를 건너서 서쪽...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개항기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장. 정분문(靜氛門)이라 불렸던 서산 해미읍성(瑞山海美邑城) 서문은 순교자들의 생사를 가르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성안의 옥에 수감된 천주교인들 가운데 형이 확정된 사람은 서문 밖으로 끌려 나와 처형되었다. 그러니 서문 밖 일대는 ‘사학죄인(邪學罪人)’들의 공식 처형장인 셈이었다. 매질이나 교수 혹...
-
1871년 충청도 서산을 비롯한 각 군현에서 작성한 읍지와 사례들을 합편한 충청도의 도지. 1871년(고종 8) 전국적인 읍지 편찬 계획이 수립되어, 충청도의 각 군현에서 모인 읍지들을 17책으로 만들었다. 현재 규장각에 소장된 『호서읍지(湖西邑誌)』는 총 17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기는 가로 20㎝, 세로 30.4㎝이다. 『호서읍지(湖西邑誌)』 각 책별 54개의 읍과...
-
충청남도 서산시에 명정의 현판이 보관되어 있는 개항기의 열녀. 본관은 창원. 아버지는 황민수(黃敏洙)이고, 남편은 홍종학(洪鍾鶴)이다. 홍종학 처 창원 황씨는 홍성군에서 황민수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당진군 석문면 삼봉리에 사는 홍종학과 혼인하였다. 2년 만에 남편이 죽자 삼년상을 치른 후 독약을 먹고 자진하였다. 충청남도 당진군 정미면 덕마리에 묘소가...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신장1리에 있는 개항기 열녀 홍종학의 처 창원 황씨(昌原黃氏)의 정려. 홍종학의 처 창원 황씨는 인근 홍성에서 황민수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당진 석문면 삼봉리에 사는 홍종학에게 출가하였는데, 혼인 2년 만에 사별하였다. 그 뒤 정성으로 삼년상을 마쳤으나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1901년(고종 38)에 음독하였다. 서산 시내에서 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