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국 시대 포천 지역에 있었던 통일 신라 시대의 지방 행정 구역. 견성군(堅城郡)은 신라 경덕왕 때 한화 정책의 일환으로 개편한 포천의 옛 이름이다. 포천은 고구려의 마홀군(馬忽郡)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견성으로 바꾸었다. ‘홀(忽)’이 ‘성(城)’을 뜻한다는 정약용(丁若鏞)의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를 참조하면, ‘마홀’은 ‘마성(馬城)’을 뜻하며, 이것이 ‘견성’...
-
조선 시대 포천 지역에 있었던 역원. 원(院)은 고려·조선 시대에 출장한 관원들을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가 드문 곳에 둔 국영 숙식 시설이지만, 상고(商賈)나 여행자의 숙식소로 활용되기도 하였으며, 지방 통치와 교통을 위한 기능을 하였다. 공덕원(功德院)이 언제 설치되고 폐치되었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전하는 초기 경기도의 117개소 원(...
-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열녀. 독실은 조선 시대 사노비 출신이며, 생몰년은 알 수 없다. 남편 전가음불(田加音弗)이 강원도에 행상을 갔다가 금성(錦城)에서 객사하자, 집안에 보관하던 물건을 모두 팔아 그 돈으로 직접 금성에 가서 남편의 시체를 고향으로 옮겨와 장사지냈다. 독실은 장차 자신이 죽으면 남편과 같은 곳에 묻어 달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그 말을 믿지 않았으나, 남편의 장례...
-
조선 후기 포천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 구역. 동면(東面)은 조선 영조 이후 재편된 영평현의 방리(坊里) 체계를 구성하고 있던 행정 구역이다. 동면은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이후 설치되었다가 『대동지지(大東地志)』 편찬[1864] 이전에 다시 일동면과 이동면으로 분화된 것으로 보인다. 『대동지지』에서는 일동면의 범위를 “처음이 15리, 끝이 30리”이며 이동...
-
경기도 포천 지역에 있었던 조선 후기 발군이 교대하거나 말을 갈아타는 역참. 발막(撥幕)은 발소(撥所)라도도 한다. 1597년(선조 30) 설치되었으며, 발군(撥軍)[각 역참에 속하여 중요한 공문서를 교대로 변방에 급히 전하던 군졸]에는 기발(騎撥)과 보발(步撥)이 있었다. 기발은 약 9,818.18m[25리]마다 설치하여 발장(撥將) 1명, 군정(軍丁) 5명, 말 5필씩을 두었다...
-
조선 시대 포천 지역에 있었던 역원. 원(院)은 고려·조선 시대에 출장한 관원들을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가 드문 곳에 둔 국영 숙식 시설이지만, 상고(商賈)나 여행자의 숙식소로 활용되기도 하였으며, 지방 통치와 교통을 위한 기능을 하였다. 벽탄석원(碧呑石院)이 언제 설치되고 폐치되었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전하는 초기 경기도의 117개소...
-
조선 시대 포천 지역에 설치된 내지 봉수. 포천의 봉수는 전국 5로의 주요 선로 중에서 두만강 부근인 함경북도 경흥 서수라(西水羅) 우암(牛巖)을 기점으로 서울 목멱산에 도달하는 동북쪽 직봉에 속하였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의 포천현에는 독산(禿山) 또는 독현(禿峴), 잉읍점(仍邑岾) 또는 잉읍현(仍邑峴) 봉수가 수...
-
조선 시대 포천 지역에 있었던 교통 통신 기관. 역(驛)은 왕래하는 관료나 사신들을 접대하고 공문서를 전달하며 관수 물자를 운반하던 교통통신 기관 중 하나로, 안기역(安奇驛)은 포천 지역에 설치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포천현 역원조(驛院條)에는 “안기역은 현 북쪽 4리에 있다[安奇驛 在縣北四里]”라고 하였다. 또한 윤지(尹漬)가 중수하자 성현(成俔)이 이를 기...
-
조선 전기 포천 지역에 있었던 교통 통신 기관. 역(驛)은 왕래하는 관료나 사신들을 접대하고 공문서를 전달하며 관수 물자를 운반하던 교통 통신 기관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영평현 역원조(驛院條)에서 양문역(梁文驛)에 대해 “현 동쪽 9리에 있다. 항간에서 독흘이라 부르는데, 양골이 와전된 것인 듯하다[在縣東九里 俗號獨訖 疑梁骨之訛]”라고 하였다. 또한 성현(成...
-
조선 시대 포천 지역의 교통 통신 시설 및 숙박 시설에 대한 총칭. 역원(驛院)은 경기도 지역에 있던 교통 통신 및 숙박 시설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포천 지역의 경우 함흥으로 가는 대로(大路)에 위치한 관계로 여러 역원이 설치되었다. 포천현에는 안기역(安奇驛)·벽탄석원(碧呑石院)·공덕원(功德院) 등이, 영평현에는 양문역(梁文驛)이 설치되었다. 이후 조선 후기에 송우참(松隅站)·만세...
-
조선 시대 포천 출신의 효녀. 첨지 정기(鄭璣)의 처 최씨(崔氏)는, 출가하기 전에 아버지가 호랑이에게 물려가자 단검을 들고 울부짖으며 하늘에 맹세하고 호랑이에게 다가갔다. 이에 호랑이가 슬그머니 물러나 도망하였다. 최낭(崔娘)으로도 전한다. 조정에서 정려를 하사하였다. 정려는 포천현의 남쪽 20리 떨어진 화산(花山)에 있다....
-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효녀. 만호 정창국(鄭昌國)의 처 창원 유씨(兪氏)의 이름은 용녀(溶女)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남편이 병으로 죽자 직접 염을 하여 장례를 치렀다. 집안사람들이 난리를 피하라고 권유하자, “죽는 것은 하늘에게 달린 것으로, 난리를 당하였는데 어찌 살기를 바라겠는가.”라고 하였다. 이듬해 정월에 청나라 병사들이 갑자기 들이닥치자 노복들의 부축...
-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한양(漢陽). 한천 부원군(漢川府院君) 정온(鄭溫)의 9세손으로 아버지는 정제이다. 조득남(趙得男)[1594~1636]은 포천현에서 동쪽으로 20리[8㎞] 떨어진 설악산 아래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화성리에서 출생하고 성장하였다. 어려서부터 천성이 어질고 효성스러웠으며, 기골이 장대하고 용력(勇力)이 뛰어나 주위의 촉망을 받으며 자랐다....
-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효자. 조항일(趙恒一)은 자는 여중(汝中)으로, 포천현의 남쪽 20리 떨어진 화산(花山)[현 포천시 가산면 가산리]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용주(龍洲) 조경(趙絅)에게 학문을 배웠다. 성장해서는 홀로 성리학을 공부하였다. 아버지가 병으로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베어 혈서를 써서 천지신명께 빌며 자신의 수명을 줄여서라도 아버지의 수명을 연장케 해 달라고 기원하였다....
-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수성. 형은 효자 최천주(崔天柱)이고, 최천후(崔天後)의 사촌 형이다. 부인은 광주(廣州) 김씨이다. 고려 시대에 수성백(隋城伯)에 봉해진 최영규(崔永奎)의 후손이다. 『포천 군지』에 수록된 효자 최천후(崔天候)는 사촌 동생 최천후(崔天後)와 같은 인물로 추측된다. 최천극(崔天極)[1602~1636]은 포천의 읍치 남쪽 20리 떨어진 화산(花山...
-
고려 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포천 지역에 파견된 지방관. 고려 초 이후 중앙 집권 체제에 의한 통치권의 범위가 점차 지방으로 확대되면서 중앙의 관원을 파견하지 못하던 속군현(屬郡縣)과 향(鄕)·소(所)·부곡(部曲) 등 말단 지방 행정 단위에 1106년(예종 1)부터 현령보다 낮은 지방관인 감무(監務)를 파견하였다. 조선 건국 이후 1413년(태종 13) 감무를 현감으로 개칭할 때까...
-
고려 전기 포천 지역에 파견된 지방관. 983년(성종 2) 12목(牧) 체제의 지방 제도를 시행하던 고려가 995년(성종 5) 지방 세력의 통제와 국방력 강화를 위해 12주에 절도사를 두고, 이보다 작은 주에 도단련사(都團練使)·단련사(團練使)·자사(刺使)·방어사(防禦使)를 설치하였다. 당나라의 군사적인 절도사 체제의 외관제 구축을 모방하여 설치한 것이다. 포주 단련사(抱州團練使)...
-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에 있는 삼국 시대 백제가 축조한 성. 포천 반월성(抱川半月城)은 일반적으로 반월산성(半月山城)이라고 하는데, 해발 284.5m의 청성산(靑城山)에 축조된 반월형의 테뫼식 산성으로 전체 둘레는 1,080m이다. 전체적인 형상이 반달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서 반월산성이라고 불리는데, 포천 지역은 물론 인근 지역에 있는 산성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포천...
-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자일리 한탄강 주변에 있는 명승지. 조선 시대 포천 화적연(禾積淵)은 기우제를 지내는 제단으로 알려져 있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 경기도 영평현조에는 기우제단(祈雨祭壇) 두 곳으로 화적연과 백운산(白雲山)이 나온다. 또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도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사를 종종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포천...
-
경기도 포천시 선단동과 동두천시 경계에 위치한 산. 옛 기록에 따르면 해룡산 인근에 해룡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며, 산 이름 역시 절에서 따온 것으로 전한다. 또한 이 산의 정상에는 감지(鑑池), 혹은 천호(天湖)라는 연못이 있었는데, 비가 오기를 빌고 연못 주위를 밟고 뛰어다니면 비가 내리거나 적어도 날씨가 흐려지는 효험이 있었다고 전한다. 사람들이 비를 빌었다는 연못은 조선 시...
-
경기도 포천지역에서 효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효녀 이씨」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효녀 이씨가 자신의 위험을 돌보지 않았다는 효행담이다. 1984년 포천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포천 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보면, 이씨는 이기(李紀)의 처이다. 그녀가 아직 출가하기 전의 일이었다. 어느 날 그의 어머니를 범이 물고 잡아먹으려 하자, 이...
-
경기도 포천지역에서 효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효녀 최씨」는 최씨가 아버지에게 닥친 호환을 용기를 내어 물리쳐서 효녀의 정려를 받았다는 이야기이다. 1984년 포천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포천 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보면, 최씨는 첨지 정기(鄭璣)의 처이다. 최씨가 아직 출가하기 전의 일이었다. 어느 날 범이 내려와, 그녀의 아버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