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문인 양사언이 연꽃·국화·대나무를 소재로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간포천성주 걸련국죽삼절(簡抱川城主 乞蓮菊竹三絶)」은 포천 출신으로 조선 전기의 문인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1517~1584]이 당시 포천 현감의 요구에 응해 연꽃·국화·대나무 등의 사물에 대하여 읊은 한시이다. 「간포천성주 걸련국죽삼절」은 양사언의 시집 『봉래시집(蓬萊詩集)』 권(卷)...
-
1894년 이남규가 포천을 거쳐 영흥 부사로 부임하는 노정과 영흥에서 겪은 일을 기록한 일기. 「갑오일기(甲午日記)」는 수당(修堂) 이남규(李南珪)[1855~1907]가 1894년[甲午年] 음력 5월 6일부터 12월 말일까지 영흥 부사(永興府使)가 되어 임지(任地)에서 겪은 일들을 일기체로 기록한 글이다. 「갑오일기」는 이남규의 문집인 『수당집(修堂集)』에 실려 있다. 「갑오일기」...
-
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문인 양사언이 고기잡이를 소재로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관어(觀漁)」는 포천 출신의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1517~1584]이 어부가 물고기를 잡는 모습을 보고 느낀 감흥을 적은 한시이다. 「관어」는 양사언의 시집 『봉래시집(蓬萊詩集)』 권(卷) 1에 수록되어 있다. 「관어」라는 제목 밑에는 “당시 포천 주수(主守)[수령]가 사령을 시켜 술을 보내...
-
조선 후기 유학자 김평묵이 포천의 금수정과 창옥병을 소재로 하여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관영평금수정지창옥병(觀永平金水亭至蒼玉屛)」[영평의 금수정을 보고 창옥병에 이르러서]은 포천 출신의 유학자(儒學者) 중암(重庵) 김평묵(金平黙)[1819~1891]이 영평 8경 가운데 두 곳인 금수정(金水亭)과 창옥병(蒼玉屛)을 보고 지은 한시이다. 「관영평금수정지창옥병」은 『중암집(重菴集)』...
-
1752년 조선 후기의 문신 이익이 포천 지역의 수해에 대해서 저술한 기문. 「괴풍폭우(恠風暴雨)」는 1752년 포천에서 이상한 바람과 큰비로 물난리가 나자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이 이때 입은 수해(水害)에 대해서 저술한 글이다. 「괴풍폭우」는 『성호사설(星湖僿說)』 권(卷) 3의 「천지문(天地門)」에 수록되어 있다. 「천지문」은 총 223항목이며, 천문(天文...
-
1714년 조태억이 포천 현감 구정명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구포천만(具抱川輓)」은 조선 후기의 문신 조태억(趙泰億)[1675~1728]이 1714년 3월 10일 포천 현감(抱川縣監)을 제수 받고 재임 중에 사망[1714년 11월]한 구정명(具鼎明)을 애도하며 지은 한시이다. 「구포천만」은 조태억의 문집 『겸재집(謙齋集)』 권(卷) 11에 수록되어 있다. 「구...
-
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문인 양사언이 금수정을 소재로 지은 오언 절구의 한시. 「금수정金水亭」은 포천 출신의 문인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1517~1584]이 금수정을 보고 느낀 정취를 적은 한시이다. 금수정은 현재의 장소에 김명리가 우두정(牛頭亭)이라는 정자를 지었는데, 얼마 후 이 정자를 양사언에게 주었고 양사언은 정자 이름을 현재의 금수정으로 고쳤다고 한다. 정자 현판의...
-
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문인 양사언이 금주산을 소재로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금주산(金柱山)」은 포천 출신의 문인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1517~1584]이 포천 영중면과 일동면 사이에 있는 금주산에 대하여 지은 한시이다. 「금주산」은 양사언의 시집 『봉래시집(蓬萊詩集)』 권(卷) 2에 수록되어 있다.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에 위치한 금주산[568m]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
-
1698년 이현석이 이수광의 시 「숙포천백형댁」의 운자를 따서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남산관 차숙포천운(南山館 次宿抱川韻)」은 1698년 이현석(李玄錫)[1647~1703]이 함경도 안변 부사(安邊府使)에 임명되어 임지(任地)로 가는 도중에 포천현의 관사(館舍)로 향하며, 증조할아버지인 지봉(芝峯) 이수광(李睟光)[1563~1628]이 지은 「숙포천백형댁(宿抱川白兄宅)」[포천의...
-
1464년 최항이, 세조가 탔던 말 12마리의 그림 가운데 포천 왕방산을 배경으로 그린 다섯 번째 말 그림을 소재로 지은 한시. 「능공곡(凌空鵠)」은 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몸소 탔던 말 12마리를 당(唐) 나라 고사(故事)를 모방하여 그리게 하였는데, 최항(崔恒)[1409~1474]이 말 그림을 기리며 지은 「십이준도찬(十二駿圖贊)」에 실려 있는 5번째 준마(駿馬) 능공곡에...
-
1651년 이경석이 금강산을 유람하러 가는 길에 포천에 이르러 조경에게 보낸 칠언 율시의 한시. 「도포천(到抱川)」은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1595~1671]이 1651년 유배에서 풀려난 후 금강산 유람차 길을 가던 중에 포천에 이르러, 당시 한양 조씨(漢陽趙氏) 가문의 향리(鄕里)인 포천 가채리에 은거하고 있던 일장(日章) 조경(趙絅)에게 지어 보낸 한시이다. 이경석은 1...
-
1892년 이남규가 포천에 사는 동신선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이건창에게 듣고 지은 전. 「동신선전(董神仙傳)」은 개항기 독립지사 수당(修堂) 이남규(李南珪)[1855~1907]가 영재(寧齋) 이건창(李建昌)[1852~1898]에게 들은 ‘동신선(董神仙)’이라는 인물의 독특한 행적을 기록한 글이다. 「동신선전」은 이남규의 문집 『수당집(修堂集)』 권(卷) 8에 수록되어 있다. 「동신...
-
1671년 김창협이 금강산을 유람하기 위해 포천을 지나고 지은 기행문. 「동유기(東遊記)」는 조선 후기의 문신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1651~1708]이 금강산을 유람하려고 길을 떠난 후 포천을 지나고 나서 여행의 감회를 적은 글이다. 「동유기」는 김창협의 문집 『농암집(農巖集)』 권(卷) 23에 수록되어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금강산(金剛山)의 명성을 듣고 늘 한번 유람해...
-
1745년~1747년 사이에 홍양호가 포천 현감 김효대와 함께 운악산 현등사를 유람하며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동포천재김여원 형제유현등사(同抱川宰金汝源 兄弟遊懸燈寺)」는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1724~1802년]가 1745년부터 1747년까지 당시 포천 현감으로 재직하였던 여원(汝原) 김효대(金孝大)[1721~1781] 형제와 함께 운악산(雲岳山) 현...
-
조선 후기의 문인 심육이 포천의 지인인 성보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만침포천성보(輓沈抱川誠甫)」는 조선 후기의 문인 저촌(樗村) 심육(沈錥)[1685~1753]이 포천과 연고가 있는 자(字)를 ‘성보(誠甫)’로 하는 지인(知人)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한시이다. 「만침포천성보」는 심육의 문집 『저촌유고(樗村遺稿)』 권(卷) 6에 수록되어 있다. 시서재복적고량(...
-
1632년 이준이 포천 현감 허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만허포천(挽許抱川)」은 조선 후기의 문신 이준(李埈)[1560~1635]이 1632년(인조 10) 포천 현감(抱川縣監)에 부임하여 1636년(인조 14)까지 재직한 허교(許喬)[1567~1632]의 죽음을 애도하여 지은 한시이다. 「만허포천」은 이준의 문집 『창석집(蒼石集)』가운데 「창석선생속집」권(卷)...
-
1637년 강원도 암행어사 김홍욱이 포천의 어느 산성을 바라보며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망포천산성(望抱川山城)」은 조선 후기의 문신 학주(鶴洲) 김홍욱(金弘郁)[1602~1654]이 강원도 암행어사로 가는 길에 포천의 어느 산성에 이르러 느낀 감흥을 적은 한시이다. 「망포천산성」은 김홍욱의 문집 『학주전집(鶴洲全集)』 권(卷) 1의 「동행록(東行錄)」에 실려 있다. 「동행록」은...
-
조선 중엽 이덕형이 영평을 지나면서 감회를 적은 칠언 율시의 한시. 「모과영평(暮過永平)」은 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1556~1618]과 기발한 장난과 우정이 얽힌 많은 일화를 남긴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1561~1613]이 해가 질 무렵에 영평 지역을 지나면서 읊은 한시이다. 「모과영평」은 이덕형의 문집 『한음문고(漢陰文稿)』 권(卷) 2에 실려 있다. 관내산천설영평...
-
조선 후기 이헌경이 함경도 종성으로 가는 길에 포천에 묵으며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모숙포천(暮宿抱川)」은 1751년(영조 27)에서 1755년(영조 31) 사이에 간옹(艮翁) 이헌경(李獻慶)[1719~1791]이 종성 부사(鍾城府使)인 아버지 이제화(李齊華)의 간병 때문에 함경도 종성으로 가는 길에 올라서 날이 저물자 포천에 묵으며 길에서 본 풍경을 적은 한시이다. 「모숙포천...
-
1460년 김시습이 영평현을 지날 때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모투영평현(暮投永平縣)」은 조선 전기의 문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 날이 저물자 영평현으로 들어가면서 느낀 감흥을 적은 한시이다. 「모투영평현」은 김시습의 문집 『매월당집(梅月堂集)』 권(卷) 10에 수록된 「유관동록(游關東錄)」에 수록되어 있다. 「유관동록」은 김시습이 관동(關東)[강원...
-
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양사언이 미인을 소재로 지은 고전 가사. 「미인별곡(美人別曲)」은 포천 출신의 대표적인 문인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1517~1584]이 어떤 여인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시가의 한 양식인 가사 문학(歌辭文學) 작품이다. 제목에서 ‘미인(美人)’이란 단어는 보통 다른 작자의 작품에서는 임금을 비유하고 있으나, 「미인별곡」에서는 문자 그대로 아름다운 여인을...
-
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양사언이 반월산을 소재로 지은 오언 절구의 한시. 「반월산(半月山)」은 포천 출신의 문인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1517~1584]이 반월같이 아름다운 형상을 지녔다고 하는 반월산(半月山)의 풍경에 대하여 읊은 한시이다. 반월산은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와 하성북리 경계에 위치해 있다. 「반월산」은 『봉래시집(蓬萊詩集)』 권(卷) 2에 수록되어 있다...
-
조선 시대 포천 출신의 양만고가 반월산성을 소재로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반월산성(半月山城)」은 양만고(楊萬古)[1574~1654]가 포천의 대표 문화유산인 반월산성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 한시이다. 양만고의 자는 도일(道一), 호는 감호(鑑湖), 본관은 청주(淸州)로 봉래(蓬萊) 양사언(梁士彦)[1517~1584]의 아들이다.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후 알성 문과(謁聖文科)...
-
조선 후기 이덕무가 포천에 살고 있는 친구 백동좌에게 보낸 한시. 「봉기백양숙포천한거(奉寄白良叔抱川閒居)」는 1757년(영조 33)부터 1764년(영조 40)까지 7년 사이에 이덕무(李德懋)[1741~1793]가 그의 벗이자 처남인 영숙(永叔) 백동수(白東脩)[1743~1816]의 사촌 형제로서 포천에 살고 있는 양숙(良叔) 백동좌(白東佐)에게 보낸 한시이다. 이덕무는 박학한 학자...
-
1791년 유득공이 「어제석왕사비문」을 받들고, 석왕사로 향하는 길에 포천을 지나며 읊은 오언 율시의 한시. 「봉어제석왕사비문과포천(奉御製釋王寺碑文過抱川)」은 영재(泠齋) 유득공(柳得恭)[1748~1807]이 정조(正祖)가 지은 「어제석왕사비문(御製釋王寺碑文)」을 받들고, 함경도 안변(安邊)의 석왕사(釋王寺)로 향하는 길에 지난날 포천 현감으로 재직[1785(정조 9)~1788년(...
-
1579년부터 1580년까지 김성일이 함경도 순무어사의 임무를 수행하며, 포천 지역을 포함하여 순무 노정대로 작성한 일기. 「북정일록(北征日錄)」은 조선 전기의 정치가이자 문인이었던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1538~1593]이 1579년 9월 21부터 6개월간 ‘함경도 순무어사’의 임무를 포천 지역을 비롯한 노정대로 백성의 마음을 위로하고 달래면서 기록한 일기이다. 이를 「북...
-
조선 전기 포천의 쌍곡 송암에서 은거하던 이식이 형 이숙에게 부치는 칠언율의 한시. 「산가기금헌(山家寄琴軒)」은 조선 전기의 문신 사우정(四雨亭) 이식(李湜)[1458~1489]이 은거하던 포천의 쌍곡 송암[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에서 형 강양군(江陽君) 이숙(李潚)[1453~1499]에게 보내는 한시이다. 「산가기금헌」은 이식의 문집인 『사우정집(四雨亭集)』 권 상에 수록되...
-
조선 시대 포천 출신의 이항복이 평소에 겪었거나 전해들은 이야기를 수록한 잡기. 「산가지설(山家之說)」은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1556~1618]의 고민을 명풍수로 이름을 날린 교수(敎授) 박상의(朴尙義)[1538~1621]가 해결해 주었다는 잡기(雜記)이다. 「산가지설」이 실려 있는 「잡기」는 이항복의 문집인 『백사집(白沙集)』 중에서 『백사별집(白沙別集)』 권(卷) 4에...
-
1673년 김수증이 서울을 출발하여 포천을 지나 화천 곡운동까지 여행하고 지은 기행문. 「산중일기(山中日記)」는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1624~1701]이 50세 때 1673년 4월에 서울에서 포천을 지나 강원도 화천 곡운동까지 두루 구경하고 그 아름다운 절경 등을 노래한 일기 형식의 기행문이다. 「산중일기」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계축년[1673] 4월 11일....
-
조선 후기 이익이 포천 옥동산에 살던 셋째 형 이서에 대하여 지은 전기. 「삼형옥동선생가전(三兄玉洞先生家傳)」은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이 셋째 이복형 이서(李漵)[1662~1723]에 대하여 기록한 글이다. 호가 옥동 징사(玉洞徵士)이고, 자(字)가 징지(澄之)인 이서는 포천의 옥동산(玉洞山) 아래에서 살았으며, 남계(南溪) 박세채(朴世采)[1631~1695]...
-
개항기 이남규가 포천에 새로 지은 윤장의 집인 소재(小齋)에 대하여 지은 잡기체의 재기. 「소재기(小齋記)」는 개항기의 문인 수당(修堂) 이남규(李南珪)[1855~1907]가 윤장(尹丈)의 부탁을 받아 경기도 포천 용정(龍井)에 새로 지은 집[‘소재’라고 이름 지음]에 대하여 써 준 잡기(雜記)이다. 「소재기」는 이남규의 문집 『수당집(修堂集)』 권 6에 수록되어 있다. 동쪽 나라...
-
1767년 신광수가 포천으로 돌아가는 이중을 환송하며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송이중신은귀근포천(送彛仲新恩歸覲抱川)」은 조선 후기의 문인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1712~1775]가 과거에 합격하고 경기도 포천으로 귀향하는 이중(彛仲) 윤필병(尹弼秉)[1730~1810]을 환송하며 지은 한시이다. 「송이중신은귀근포천」은 신광수의 문집인 『석북집(石北集)』 권 8에 수록되어...
-
1519년부터 1521년 사이에 이행이 평안도로 떠나는 이해를 환송하며 포천에서 지은 한시. 「송이평사해지관서(送李評事海之關西)」는 1519년부터 3년 사이에 용재(容齋) 이행(李荇)[1478~1534]이 평안도 병마평사(兵馬評事)로 부임하는 이해(李海)를 환송하며 포천에서 지은 오언율 형식의 한시이다. 「송이평사해지관서」는 이행의 문집인 『용재집(容齋集)』 권 2에 실려 있다....
-
1630년 조임도가 칠원 현감에서 해임되어 포천으로 귀향하는 이립을 환송하며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송칠원이사군 파관귀포천(送漆原李使君 罷官歸抱川)」은 간송(澗松) 조임도(趙任道)[1585~1664]가 칠원 현감(漆原縣監)에서 파면되어 포천으로 돌아가는 이립(李岦)을 위로하며 지은 한시이다. 「송칠원이사군 파관귀포천」은 조임도의 문집 『간송집(澗松集)』 권 1에 수록되어 있다....
-
조선 전기 양사언이 포천 수원산을 소재로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수원산(水原山)」은 포천 출신의 문인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1517~1584]이 경기도 포천에 있는 수원산(水原山)을 대상으로 삼아 이를 보고 느낀 감흥을 적은 한시이다. 공북거진극(控北居辰極)[북으로 당겨져 북극성 위치에 자리하고] 경남배한경(經南背漢京)[길은 남쪽으로 한양을 등지고 있네] 야운매주일(夜雲...
-
1675년 임영이 부모와 통천으로 가는 도중 포천에 머물면서 지은 오언 고시(五言古詩). 「숙포천(宿抱川)」은 조선 후기의 문인 창계(滄溪) 임영(林泳)[1649~1696]이 부모를 모시고 강원도 통천으로 우거(寓居)[임시로 남의 집이나 타향에서 삶]하러 가는 도중 날이 저물자 경기도 포천의 어느 집에서 숙박하며 지은 한시이다. 광야생비풍(曠野生悲風)[빈 들녘에 슬픈 바람 일어나고...
-
1605년 이수광이 안변 부사로 부임하러 가던 중 포천에 묵으면서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숙포천백형댁(宿抱川白兄宅)」은 조선 중기 문신인 지봉(芝峯) 이수광(李睟光)[1563~1628]이 1605년 1월 함경도 안변 부사(安邊府使)로 임명되어 임지(任地)로 가는 도중 경기도 포천에서 묵으면서 감회를 적은 한시이다. 「숙포천백형댁」은 이수광의 문집인 『학성록(鶴城錄)』에 실려 있...
-
1460년 김시습이 영평현을 지날 때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숙포천인가(宿抱川人家)」는 조선 전기의 문신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 풍악산[금강산]을 향해 가던 중 날이 저물자 영평현으로 들어가 민가에서 묵으며 느낀 감흥을 적은 한시이다. 「숙포천인가」는 김시습의 문집 『매월당집(梅月堂集)』 권(卷) 10에 수록된 「유관동록(游關東錄)」에 수록되어 있...
-
조선 전기 이식이 대허에게 포천 생활을 회상하며 지어 보낸 칠언 율시의 한시. 「술회 증대허(述懷贈大虛)」는 조선 전기의 문신 사우정(四雨亭) 이식(李湜)[1458~1489]이 대허(大虛)에게 빈한하였던 경기도 포천 생활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며 적어 보낸 한시이다. 「술회 증대허」라는 시를 받은 대허는 조선 전기의 문장가인 최하림(崔河臨)[1455~1486]으로 호는 대허당(大虛堂)...
-
1845년 허전이포천의 친척 집을 방문하여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십일월왕포천족형가(十一月往抱川族兄家)」는 조선 후기의 문신 성재(性齋) 허전(許傳)[1797~1886]이 1845년 11월에 경기도 포천의 친척 형의 집을 방문하여 지은 한시이다. 「십일월왕포천족형가」는 허전의 문집 『성재집(性齋集)』 권 1에 수록되어 있다. 영문악수소개안(迎門握手笑開顔)[맞이하는 문에서 얼굴빛...
-
1501년 성현이 포천 안기역의 중수를 기념하여 지은 기문. 「안기역 중수기(安奇驛重修記)」는 조선 전기의 문신 용재(慵齋) 성현(成俔)[1439~1504]이 경기도 포천현에서 북쪽으로 2㎞ 정도 떨어져 있는 안기역[현재 경기도 포천시 신읍동]을 중수(重修)[건축물이 낡고 헌 것을 손질하며 고침]하고 이를 기념하여 지은 글이다. 「안기역 중수기」에서 성현은 찰방(察訪) 윤지(尹漬)...
-
조선 후기 박제가가 영평 현령으로 있을 때, 광릉에서 경기 감사를 만나고 돌아오면서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알순상우광릉 귀로게포천남현(謁巡相于光陵 歸路憩抱川南峴)」은 조선 후기의 문신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1750~1805]가 경기도 영평 현령(永平縣令)으로 재직[1797년(정조 21) 9월부터 1800년(순조 즉위년) 9월까지]하고 있을 때, 광릉(光陵)에서 경기 감사...
-
조선 후기 이호민이 포천 출신의 화가 어몽룡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어포천몽룡만(魚抱川夢龍挽)」은 조선 시대의 문인 오봉(五峯) 이호민(李好閔)[1553~1634]이 경기도 포천 출신의 선비 화가인 어몽룡(魚夢龍)[1566~1617]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한시이다. 어몽룡은 본관이 함종(咸從)이고, 자는 견보(見甫)이며, 호는 설곡(雪谷)·설천(雪川)이다....
-
조선 후기 이시발이 포천 출신의 화가 어몽룡의 묵매 그림을 보고 느낀 감흥을 적은 한시. 「어포천묵매도행(魚抱川墨梅圖行)」은 조선 중엽의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벽오(碧梧)인 이시발(李時發)[1569~1626]이 경기도 포천 출신의 선비 화가인 어몽룡(魚夢龍)[1566~1617]의 묵매(墨梅) 그림을 노래한 행체시(行體詩)이다. 어몽룡은 본관이 함종(咸從)이고, 자는...
-
1905년 최익현이 포천 본가에 있는 큰아들 최영조에게 보낸 편지. 「여영조(與永祚)」는 조선 후기의 문신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1833~1906]이 1905년 5월 6일에 경기도 포천의 본가[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가채리]에 있는 큰아들 최영조(崔永祚)에게 쓴 편지이다. 영조(永祚)에게 보냄 - 을사년[1905] 5월 6일 떠나간 뒤에 소식이 없으니 우울함을 말할 수 없다....
-
조선 후기 조경이 꿈에서 본 고향 포천의 와룡담에 대해 읊은 칠언 절구의 한시. 「옥천야몽 도포천와룡담(沃川夜夢 到抱川臥龍潭)」[옥천에서 밤에 꿈을 꿨는데 포천의 와룡담에 도달했네]은 조선 후기 문신 용주(龍洲) 조경(趙絅)[1586~1669]이 몸은 옥천에 있지만 꿈속에서 본 고향 포천의 와룡담(臥龍潭)에 대하여 지은 한시이다. 와룡담이 현재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
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양사언이 포천 운악산을 찾아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운악산(雲岳山)」은 조선 전기의 문인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1517~1584]이 경기도 포천의 명산 운악산을 찾아가서 느낀 당시의 감흥을 표현한 한시이다. 「운악산」은 양사언의 시집 『봉래시집(蓬萊詩集)』 권(卷) 2에 수록되어 있다. 양사언은 포천에서 태어나고 묻힌 포천의 인물로서, ‘영평 8경...
-
조선 후기 이의현이 포천의 효행과 우애로 이름난 감찰 유자미부터 그의 5세 후손까지의 이야기를 기록한 전. 「유감찰오세전(柳監察五世傳)」은 조선 후기의 문신 도곡(陶谷) 이의현(李宜顯)[1669~1745]이 문화 유씨(文化柳氏) 감찰(監察) 유자미(柳自湄)와 그의 5세(世) 후손들까지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한 전기(傳記)이다. 「유감찰오세전」은 이의현의 문집 『도곡집(陶谷集)』 권(...
-
1611년 정온이 경성 판관으로 좌천되어 부임하는 길에 포천 양문역에서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유양문역우음(留梁文驛偶吟)」은 1611년에 조선 후기의 문신 동계(桐溪) 정온(鄭蘊)[1569~1641]이 경성 판관(鏡城判官)으로 좌천(左遷)되어 임지로 나아가는 길에 양문역에서 머물며 우연히 읊은 한시이다. 1611년 43세였던 정온이 당시 광해군이 임진왜란 후 행궁(行宮)인 경운...
-
조선 전기 기화가 포천의 운악산을 유람하며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유운악산(遊雲岳山)」은 조선 전기의 승려 함허(涵虛) 기화(己和)[1376~1433]가 포천현에서 동쪽으로 12㎞ 정도 떨어진 지점의 운악산(雲岳山)을 유람하며 지은 한시이다. 기화는 법호가 득통(得通)이고, 당호(堂號)는 함허이며, 자는 수이(守伊)이다. 속성(俗姓)은 유(劉)이며, 충주 출생이다. 21세에 관...
-
조선 전기 남효온이 포천 출신의 사육신 유응부에 대하여 기록한 전. 「유응부전(兪應孚傳)」은 조선 전기의 문인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1454~1492]이 포천시 소흘읍 무봉리에서 출생한 사육신 유응부(兪應孚)[?~1456]에 관하여 기록한 전(傳)이다. 「유응부전」은 남효온의 문집인 『추강집(秋江集)』 권(卷) 8의 속록(續錄) 전(傳) 가운데 「사육신전」에 실려 있다. 「...
-
조선 후기 박제가가 포천의 솔재에서 현등산을 바라보며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유포천송치 망현등산(踰抱川松峙望懸燈山)」은 조선 후기의 문신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1750~1805]가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명덕리와 군내면 상성북리를 이어주는 솔재를 넘어가다가 바라보이는 현등산(懸燈山)[운악산]의 풍광을 묘사한 한시이다. 박제가는 박학한 학자이자 동시에 이덕무(李德懋)[174...
-
1579년 9월 22일 김성일이 함경도로 가는 길에 포천에 묵을 때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이십이일 모우저포천유숙(二十二日冒雨抵抱川留宿)」은 1579년(선조 12) 9월 22일 김성일(金誠一)[1538~1593]이 함경도로 가는 도중에 비를 피하고자 수의로 비를 막고 포천의 객사에 묵을 때에 지은 한시이다. 「이십이일 모우저포천유숙」은 『학봉집(鶴峯集)』 권(卷) 1의 「북정록...
-
1768년 채제공이 삼수 부사로 좌천되어 임지로 가는 도중 포천에서 지은 오언율의 한시. 「이질유경수도포천(李姪儒慶隨到抱川)」은 1768년(영조 44) 조선 후기의 문신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1720~1799]이 함경도 삼수 부사(三水府使)로 좌천되어 임지로 가는 도중에 배웅을 하던 조카 이유경과 헤어지며 포천에서 지은 한시이다. 「이질유경수도포천」은 채제공의 문집 『번암집...
-
1668년 3월 26일~27일 사이에 조복양이 영릉에서 포천의 이 선생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장사영릉 차포천이군운(將事寧陵次抱川李君韻)」은 1668년(현종 9) 3월 26일부터 27일까지 당시의 예조 판서(禮曹判書) 조복양(趙復陽)[1609~1671]이 효종(孝宗)의 능인 경기도 여주 영릉(寧陵)에 석물(石物)을 개수하고 제사를 드리러 가서 포천의 이 선생의...
-
조선 후기 서종태가 포천의 선영에서 읊은 칠언 율시의 한시. 「재포천묘하(在抱川墓下)」는 조선 후기 문신 만정(晩靜) 서종태(徐宗泰)[1652~1719]가 경기도 포천시 설운동 산1-14번지에 위치한 선영(先塋)[조상의 무덤]을 찾아가서 신주를 묻고 읊은 한시이다. 「재포천묘하」는 서종태의 문집 『만정당집(晚靜堂集)』 권(卷) 3에 수록되어 있다. 「재포천묘하」[포천의 선영 아래서...
-
조선 후기 이호민이 선영을 포천의 꽃골로 옮겼지만 미처 옮기지 못한 부인의 무덤을 지켜 준 산객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 칠언 율시의 한시. 「제종상인축병소서(題宗上人軸幷小序)」는 조선 후기 이호민(李好閔)[1553~1634]이 조상의 선영(先塋)을 포천의 꽃골[花谷]로 옮겼지만 미처 옮기지 못하고 홀로 남은 부인의 무덤 옆에 암자를 짓고 시묘살이를 해 준 산객(山客)에게 감사를 표...
-
조선 시대 허적(許𥛚)이 포천의 객사에서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제포천객사(題抱川客舍)」는 조선 시대의 문신 수색(水色) 허적[1563~1640]이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다가 포천의 객사(客舍)에서 머물며 지은 한시이다. 「제포천객사」는 허적의 문집 『수색집(水色集)』 권(卷) 2에 실려 있다. 『수색집』은 8권 4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수에 재종제(再從弟) 허균(許筠)[15...
-
1618년 이항복이 북청으로 유배를 가는 길에 포천 조카들의 배웅을 받고 이별하면서 지은 오언 절구의 한시. 「조발금성현포천 제질등사귀(早發金城縣抱川諸姪等辭歸)」는 1618년(광해군 10) 1월 15일에서 1월 16일 사이 백사(白沙)·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1556~1618]이 당시 인목대비 폐위론에 반대하자 광해군의 노여움을 사 함경도 북청(北靑)으로 유배를 가는 도중에,...
-
1819년 조병현이 포천을 향해 아침에 출발하며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조발향포천(早發向抱川)」은 1819년(순조 19) 조선 후기의 문신 성재(成齋) 조병현(趙秉鉉)[1791~1849]이 금강산(金剛山)을 유람하러 가는 길에 송우리에서 포천을 향해 아침 일찍이 출발하면서 지은 한시이다. 「조발향포천」은 조병현의 문집 『성재집(成齋集)』 권(卷) 4에 수록되어 있다. 권4에는...
-
조선 중엽 이의건이 포천의 백운사를 다시 찾은 후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중심백운사(重尋白雲寺)」는 조선 중엽의 문인 동은(峒隱) 이의건(李義健)[1533~1621]이 경기도 포천에 있는 백운사(白雲寺)를 또다시 찾아가서 그때의 감회를 적은 한시이다. 「중심백운사」는 이의건의 문집 『동은고(峒隱稿)』 권 30 별고(別稿)에 수록되어 있다. 고사거승소(古寺居僧少)[오랜 절에 거처...
-
1842년 허전이 진사시에 새로 급제한 포천의 조석룡에게 보낸 한시. 「증신방진사조국명 귀포천(贈新榜進士趙國明歸抱川)」은 1842년(헌종 8) 포천 출신으로 조선 후기의 문신 허전(許傳)[1797~1886]이 포천 지역에서 진사시에 합격한 조국명(趙國明)[조석룡(趙錫龍)]에게 보낸 한시이다. 「증신방진사조국명 귀포천」은 『성재집(性齋集)』 권(卷) 1에 수록되어 있다. 「증신방진사...
-
조선 후기 허목이 영평현의 백운산에 유람을 가는 정 선생에게 보낸 한시. 「증정군유백운산수(贈鄭君遊白雲山水)」는 조선 후기의 문신 미수(尾叟) 허목(許穆)[1595~1682]이 영평현(永平縣)에서 동쪽으로 24㎞ 정도 떨어진 지점의 백운산(白雲山)으로 유람을 가는 정(鄭) 선생에게 보낸 한시이다. 「증정군유백운산수」는 허목의 문집 『기언(記言)』 권(卷) 63에 수록되어 있다. 「...
-
조선 후기 조태억이 포천의 첨지 정철선에게 보낸 오언 율시의 한시. 「증포천향로정첨지(贈抱川鄕老鄭僉知)」는 조선 후기의 문신 겸재(謙齋) 조태억(趙泰億)[1675~1728]이 포천의 첨지(僉知) 정철선(鄭哲先)에게 준 한시이다. 조태억은 1698년(숙종 24) 4월에 모친상을 당해서 포천의 독곡(獨谷)에 장사를 지냈다. 조태억과 포천과의 관계는 이로부터 비롯된 듯하다. 「증포천향로...
-
1663년 강백년이 포천 현감을 지낸 심일준의 「백사정」 시에 차운하여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차심포천 제백사정운(次沈抱川題白沙亭韻)」은 1663년(현종 4) 조선 후기의 문신 설봉(雪峯) 강백년(姜栢年)[1603~1681]이 포천 현감(抱川縣監)을 지낸 심일준(沈日遵)[1590~?]의 「백사정(白沙亭)」이라는 시에 차운(次韻)하여 지은 한시이다. 심일준의 본관은 풍산(豊山),...
-
여말 선초 성석린이 포천 객사에 있는 시를 차운하여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차포천객사시운(次抱川客舍詩韻)」은 고려 후기·조선 초기 사이의 문신 독곡(獨谷) 성석린(成石璘)[1338~1423]이 포천 객사(抱川客舍)에서 본 시(詩)를 차운(次韻)하여 지은 한시이다. 「차포천객사시운」은 성석린의 문집 『독곡집(獨谷集)』 권(卷) 상에 수록되어 있다. 『독곡집』은 1460년에 2권...
-
조선 전기 박순이 영평천에 있는 회란석을 소재로 하여 읊은 오언 율시의 한시. 「차회란석운(次廻瀾石韻)」은 조선 전기의 문신 사암(思庵) 박순(朴淳)[1523~1589]이 영평천에 있는 회란석에 대하여 지은 한시이다. 박순은 자가 화숙(和叔)이고, 호는 사암, 청하자(靑霞子), 본관은 충주(忠州)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박순은 서경덕(徐敬德)[1489~1546]의 문인으로...
-
1699년~1702년 사이에 김창협이 영평의 창옥병을 소재로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창옥병(蒼玉屛)」은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1651~1708]이 조선 선조 때 정승을 지낸 사암(思菴) 박순(朴淳)[1523~1589]의 은거지였던 영평현의 창옥병을 찾아가 그 감회를 노래한 한시이다. 김창협은 자(字)가 중화(仲和)이고, 호(號)는 동음거사(洞陰居士), 한벽주인(寒碧主人)...
-
조선 후기 현상벽이 포천의 천주산 아래에 세워진 천주정사에 대해서 쓴 기문. 「천주정사기(天柱精舍記)」는 조선 후기의 유학자인 관봉(冠峯) 현상벽(玄尙璧)[1673~1731]이 유광기(兪廣基)[1674~1757]의 부탁을 받아 경기도 포천의 천주산 아래에 세운 천주정사에 대하여 쓴 기문(記文)이다. 천주정사는 기계 유씨 유광기가 부모의 묘소를 천주산에 마련한 뒤 세운 것이다. 「천...
-
1586년~1589년 사이에 박순이 청학과 영평의 창옥병을 소재로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청학(靑鶴)」은 1586년(선조 19)부터 1589년(선조 22) 사이에 조선 전기의 문신 사암(思庵) 박순(朴淳)[1523~1589]이 민간에서는 ‘까막새’라 불린다[俗呼黔鳥]는 청학과 영평 8경의 하나인 창옥병(蒼玉屛)을 소재로 하여 지은 한시이다. 박순의 자(字)는 화숙(和叔), 호(...
-
1784년~1785년 사이에 유득공이 포천 현감으로 재직하면서 지은 고금체시 형태의 한시. 「출재포천작(出宰抱川作)」은 1784년(정조 8)부터 1785년(정조 9) 사이에 조선 후기의 문신 영재(泠齋) 유득공(柳得恭)[1748~1807]이 포천 현감으로 재직할 때에 지은 고금체시(古今體詩) 형태의 한시이다. 유득공은 자(字)를 혜보(惠甫), 혜풍(惠風)이라 했고, 호(號)는 영재...
-
조선 후기 조태억이 포천으로 가는 도중에 즉석에서 입으로 부르며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출포천 도중구호(出抱川途中口號)」는 조선 후기의 문신 겸재(謙齋) 조태억(趙泰億)[1675~1728]이 포천으로 출발하여 가는 도중에 입에서 나오는 대로 즉흥적으로 읊은 한시이다. 조태억은 경종 대에 문형(文衡)과 정승(政丞)을 지낸 소론(少論)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왕세제(王世弟) 대리 청...
-
1890년 김평묵이 경기도 포천에 있는 유응부의 유허비각 중건을 기념하여 지은 기문. 「충목유공 유허비각 중건기(忠穆兪公遺墟碑閣重建記)」는 1890년(고종 27) 포천 출신의 유학자인 중암(重庵) 김평묵(金平黙)[1819~1891]이 사육신(死六臣)의 한 명으로 분류되는 유응부(兪應孚)[?~1456]의 유허비를 중건한 사실을 기록한 기문(記文)이다. 유허비각의 중건은 유응부의 후손...
-
조선 후기 조임도가 칠원에서 관직을 마친 이후립이 포천으로 돌아오자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칠원이후립 파관귀포천(漆原李侯岦罷官歸抱川)」은 조선 후기의 문신 간송(澗松) 조임도(趙任道)[1585~1664]가 칠원(漆原)에서 이후립(李侯岦)이 관직을 마치고 포천으로 귀향하자 이를 기리며 지은 한시이다. 조임도의 자(字)는 덕용(德勇), 호(號)는 간송, 초자(初字)는 치원(致遠),...
-
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양사언이 자신의 고향 집인 평망정을 소재로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평망정(平望亭)」은 포천 출신의 문인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1517~1584]이 평망정을 보고 자신의 고향 집을 찾아온 감회를 노래한 한시이다. 양사언의 자(字)는 응빙(應聘), 호(號)는 봉래, 해객(海客), 완구(完邱), 창해(滄海) 등이다. 본관은 청주(淸州)로 남사고(南師古)...
-
1597년 유몽인이 포천에서 지은 두 수의 칠언 율시의 한시. 「포천(抱川)」은 1597년(선조 30)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1559~1623]이 함경도 순무어사(巡撫御使)로 부임하면서 포천을 지나는 중에 지은 것으로 판단되는 두 수의 한시이다. 유몽인의 자(字)는 응문(應文), 호(號)는 어우당, 간재(艮齋), 묵호자(默好子) 등으로 사용했다. 본관은 흥양(興陽), 시...
-
1722년~1723년 사이 오원이 포천을 지나면서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포천(抱川)」은 1722년(경종 2)부터 1723년(경종 3) 사이에 월곡(月谷) 오원(吳瑗)[1700~1740]이 늦가을 새벽녘에 포천을 지나면서 진퇴격(進退格)[두 개의 서로 비슷한 운부(韻部)를 가지고 한 구씩 건너뛰어 번갈아 운자를 놓는 방식]으로 지은 한시이다. 오원의 자(字)는 백옥(伯玉), 호...
-
1664년 조경이, 1652년에 완성된 포천의 한양 조씨 사당에 대하여 지은 기문. 「포천가차리 선롱하사당기(抱川加次里先壟下祠堂記)」는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 위치한 한양 조씨 용주(龍洲) 조경(趙絅)[1576~1669] 가문의 사당에 대한 기문(記文)이다. 조경이 주도하여 사당이 완성된 것은 1652년(효종 2)이고, 「포천가차리 선롱하사당기」는 조경이 1664년(현종 5...
-
1637년 이후에 김상헌이 포천 객관에서 느낀 감흥을 노래한 칠언 절구의 한시. 「포천객관유감(抱川客館有感)」은 1637년(인조 15) 이후인 만년에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1570~1652]이 포천 객관의 감회를 읊은 한시이다. 김상헌은 자(字)를 숙도(叔度), 호(號)는 청음, 석실산인(石室山人), 서간노인(西磵老人)이라 했다. 본관은 안동(安東),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
1657년 조경이 포천 기곡의 봉화가 타오르는 것을 보고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포천기곡봉화(抱川機谷烽火)」는 1657년(효종 8) 71세 때 포천에 은거한 용주(龍洲) 조경(趙絅)[1586~1669]이 포천 기곡에서 봉화가 밤마다 타오르는 것을 보고 느낀 감회를 노래한 한시이다. 조경은 자(字)가 일장(日章)이고, 호(號)는 용주, 주봉(柱峯), 간옹(鬝翁) 등을 사용했다....
-
조선 후기 김창흡이 포천 길에서 금강산 스님을 만나 지은 오언 절구의 한시. 「포천도상 우풍악승(抱川途上遇楓嶽僧)」은 조선 후기의 문인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1653~1722]이 포천으로 가는 길에 풍악산[금강산]의 승려를 만나서 지은 한시이다. 김창흡의 자(字)는 자익(子益), 호(號)는 낙송자(洛誦子), 삼연 등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시호는 문강(文康)으로 이단...
-
조선 후기 권두경이 유배되었던 스승 이현일이 복권되자 마중하러 포천으로 향하는 길에서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포천도상작(抱川道上作)」은 조선 후기의 문신 창설재(蒼雪齋) 권두경(權斗經)[1654~1725]이 1694년(숙종 20) 4월에 유배를 갔던 스승 이현일(李玄逸)[1627~1704]이 복권되자 포천까지 마중 나가는 상황을 노래한 한시이다. 권두경의 자는 천장(天章)이고,...
-
1603년 허균이 금강산을 유람하고자 포천을 지나는 길에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포천도중(抱川道中)」은 1603년(선조 36)에 조선 후기의 문신 성소(惺所) 허균(許筠)[1569~1618]이 풍악산[금강산]을 유람하려고 집을 떠나 포천을 지나는 길에 지은 한시이다. 허균의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 성소이다. 본관은 양천(陽川)이고, 권필(權韠)[1569~1612...
-
조선 중기 이안눌이 포천으로 가는 길에 천둥과 거센 비를 만나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포천도중(抱川途中)」은 조선 중기의 문신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1571~1637]이 포천으로 가는 도중에 천둥과 거센 비를 만나 느낀 감흥으로 읊은 한시이다. 이안눌의 자는 자민(子敏)이고, 호는 동악(東岳, 東嶽), 동곡(東谷), 동엄(東广) 등이라 했다. 본관은 덕수(德水), 시호는...
-
조선 후기 송상기가 포천으로 가는 도중에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포천도중(抱川途中)」은 조선 후기의 문신 옥오재(玉吾齋) 송상기(宋相琦)[1657~1723]가 포천 가는 도중에 지은 한시이다. 송상기는 자를 옥여(玉汝), 호는 옥오재라 했다. 본관은 은진(恩津)이고,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송시열(宋時烈)[1607~1689], 송준길(宋浚吉)[1606~1672]의 문인으로 김...
-
조선 후기 이덕수가 포천으로 가는 길에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포천도중(抱川道中)」은 조선 후기의 문신 서당(西堂) 이덕수(李德壽)[1673~1744]가 포천으로 가는 도중에 지은 한시이다. 이덕수는 자를 인로(仁老), 호는 서당, 벽계(蘗溪)라 했다. 본관은 전의(全義)이고, 시호는 문정(文貞)으로, 박세당(朴世堂)[1629~1703]의 문인이다. 1696년(숙종 22) 진사...
-
조선 후기 권만이 포천으로 가는 도중에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포천도중(抱川道中)」은 조선 후기의 문신 강좌(江左) 권만(權萬)[1688~1749]이 포천으로 가는 길에 지은 한시이다. 권만의 자는 일보(一甫), 호는 강좌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남인 학자로 이재(李栽)[1680~1746]의 문인이다. 김성탁(金聖鐸)[1684~1747], 이상정(李象靖)[1711~178...
-
조선 후기 박윤묵이 금강산을 유람하고자 포천을 지나는 길에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포천도중(抱川途中)」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존재(存齋) 박윤묵(朴允默)[1771~1849]이 금강산을 유람하려고 집을 떠나 포천을 지나는 길에 지은 한시이다. 박윤묵은 초명이 지묵(趾默)이고, 자는 사집(士執), 호는 존재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정이조(丁彛祖)의 문인으로, 천수경(千壽慶)...
-
1830년에서 1838년까지 조인영이 포천으로 가는 길에 추위를 탈 정도로 찬바람이 불 즈음에 우연히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포천도중(抱川道中)」은 1830년(순조 30)부터 1838년(헌종 4) 사이에 조선 후기의 문신 운석(雲石) 조인영(趙寅永)[1782~1850]이 포천으로 가는 도중 찬바람이 심하게 불어 추위를 탈 때에 뜻하지 아니하게 지은 한시이다. 조인영은 자가 희경(...
-
조선 후기 이식이 포천으로 가는 길에 자형의 부채에 쓰인 시에 차운하여 지은 오언 절구의 한시. 「포천도중 차구자형선운각기(抱川道中次具姊兄扇韻却寄)」는 조선 후기의 문신 택당(澤堂) 이식(李植)[1584~1647]이 포천으로 가는 도중에 자형의 부채에 쓰인 시에 차운한 한시이다. 이식은 자를 여고(汝固), 호는 택풍당(澤風堂)이라 했다.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시호는 문정(文靖)...
-
1770년에서 1774년 사이 김익이 포천으로 가는 길에 처음으로 기러기 소리를 듣고서 지은 오언 절구의 한시. 「포천도중문초안(抱川道中聞初鴈)」은 1770년(영조 46)에서 1774년(영조 50)까지 조선 후기의 문신 죽하(竹下) 김익(金熤)[1723~1790)이 경성 판관으로 포천으로 오고 가는 도중에 처음으로 기러기 소리를 듣고서 느낀 감회를 노래한 한시이다. 김익은 자가 광...
-
조선 후기 강백년이 포천으로 가는 도중에 이동언을 생각하며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포천도중억이형(抱川途中憶李兄)」은 조선 후기의 문신 설봉(雪峯) 강백년(姜栢年)[1603~1681]이 포천으로 가는 길에 이동언(李東彥) 형을 생각하며 지은 한시이다. 강백년은 자가 숙구(叔久)이고, 호는 한계(閑溪), 청월헌(聽月軒), 설봉 등이며, 본관은 진주(晉州),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
조선 중기 이수광이 포천으로 가는 도중에 설악산 승려를 만나서 지은 오언 절구의 한시. 「포천도중우일승(抱川道中遇一僧)」은 조선 중기의 문신 지봉(芝峯) 이수광(李睟光)[1563~1628]이 포천으로 가는 길에 설악산에서 왔다고 말하는 승려를 만나서 지은 한시이다. 이수광은 자가 윤경(潤卿)이고, 호는 지봉이며, 본관은 전주(全州), 시호는 문간(文簡)으로, 신흠(申欽)[1566~...
-
조선 전기 홍언필이 포천 동헌의 작은 연못을 소재로 하여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포천동헌소당(抱川東軒小塘)」은 조선 전기의 문신 묵재(默齋) 홍언필(洪彥弼)[1476~1549]이 포천 동헌에 있는 작은 연못을 보고 느낀 감흥을 읊은 한시이다. 홍언필은 자가 자미(子美)이고, 호는 묵재,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시호는 문희(文僖)이다. 1495년(연산군 1) 사마시에 합격하고,...
-
조선 후기 이민서가 포천의 묘사에서 우연히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포천묘사우음(抱川墓舍偶吟)」은 조선 후기의 문신 서하(西河) 이민서(李敏敍)[1633~1688]가 포천 선영에 들렀을 때 묘사(墓舍)에서 뜻하지 아니하게 지은 한시이다. 이민서의 자는 이중(彛仲)이고, 호는 서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영의정을 지낸 이경여(李敬輿)[1585~1657]...
-
조선 후기 이민서가 포천의 묘소 아래에서 우연히 지은 칠언 율시 2수의 한시. 「포천묘하우음(抱川墓下偶吟)」은 조선 후기의 문신 서하(西河) 이민서(李敏敍)[1633~1688]가 포천 선영에 들렀을 때 묘소 아래에서 뜻하지 아니하게 지은 2수의 한시이다. 이민서의 자는 이중(彛仲)이고, 호는 서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영의정을 지낸 이경여(李敬輿)[1...
-
조선 후기 임영이 포천에서 동행한 이군과 이별을 아쉬워하여 말 위에서 즉석으로 입으로 부르며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포천별동행이군 마상구호(抱川別同行李君馬上口號)」는 조선 후기의 문신 창계(滄溪) 임영(林泳)[1649~1696]이 포천에서 동행한 이군과의 아쉬운 헤어짐에 대하여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입에서 나오는 대로 즉흥적으로 읊은 한시이다. 임영의 자는 덕함(德涵)이고, 호...
-
조선 후기 오시수가 포천에서 둘째 형님과 작별하면서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포천별이중(抱川別二仲)」은 조선 후기의 문인 수촌(水村) 오시수(吳始壽)[1632~1681]가 포천에서 이중(二仲)[둘째 형님]과 헤어지면서 지은 한시이다. 오시수의 자는 덕이(德而), 호를 수촌이라 했고, 본관은 동복(同福)이며, 탁남(濁南)의 중심인물이었다. 1648년(인조 26) 진사시에 합격하고,...
-
조선 후기 김석주가 포천 현감 홍수량이 보낸 나물을 받고 지은 오언 절구의 한시. 「포천쉬홍군 향이문무일속(抱川倅洪君餉以文無一束)」은 조선 후기의 문신 식암(息庵) 김석주(金錫胄)[1634~1684]가 포천 현감 홍수량(洪受湸)[1626~1696]이 나물 한 다발을 보내자 이에 사례하면서 지은 한시이다. 김석주는 자가 사백(斯百)이고, 호는 식암, 절재(節齋), 지재(趾齋) 등을...
-
조선 후기 채팽윤이 네 명의 비구를 포천 장거리에서 만나서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포천장거리 봉사비구(抱川塲巨里逢四比丘)」는 조선 후기의 문신 희암(希庵) 채팽윤(蔡彭胤)[1669~1731]이 신천에서 개골산[금강산]으로 들어간다는 네 명의 비구를 포천 장거리에서 만나서 지은 한시이다. 채팽윤은 자가 중기(仲耆)이고, 호는 희암, 은와(恩窩)이다. 본관은 평강(平康)으로 오광운...
-
조선 중기 이호민이 포천의 풍수암에 공양하고 준법사에게 준 칠언 고시의 한시. 「포천재공풍수암(抱川齋供風樹菴)」은 조선 중기의 문신 오봉(五峯) 이호민(李好閔)[1553~1634]이 포천의 풍수암(風樹菴)에 공양하고 준법사(俊法師)에게 준 한시이다. 이호민은 자가 효언(孝彦)이고, 호는 오봉, 남곽(南郭), 수와(睡窩)라 했다.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시호는 문희(文僖)로 유희춘...
-
조선 후기 채팽윤이 포천 들녘에 있는 정자를 소재로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포천정자야(抱川亭子野)」는 조선 후기의 문신 희암(希菴) 채팽윤(蔡彭胤)[1669~1731]이 포천의 어느 들녘에 있는 정자에서 지은 한시이다. 채팽윤은 자가 중기(仲耆)이고, 호는 희암, 은와(恩窩)이다. 본관은 평강(平康)으로 오광운(吳光運)[1689~1745], 이덕수(李德壽)[1673~1744],...
-
1846년 허전이 포천의 친척 형 집에서 비가 내리는 이틀 동안에 정도화와 주고받으며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포천족형가우우이일(抱川族兄家遇雨二日)」은 1846년(헌종 12) 조선 후기의 문신 성재(性齋) 허전(許傳)[1797~1886]이 포천에 있는 족형(族兄)의 집에서 비를 피하는 이틀 동안에 정도화(鄭道和)와 주고받으며 지은 한시이다. 허전의 자는 이로(而老), 호는 성재,...
-
조선 전기 김시습이 한양의 벗을 만나러 가는 길에 포천현에서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포천현(抱川縣)」는 조선 전기의 문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 어느 봄날 벗을 만나러 한양으로 향하는 길에 포천현의 모습을 보고 심회를 읊은 한시이다. 「포천현」은 김시습의 문집 『매월당집(梅月堂集)』 권(卷) 1에 수록되어 있다. 폐읍민거소(弊邑民居少)[피폐된 읍성...
-
조선 후기 윤순지가 포천의 관사에서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포천현관만제(抱川縣館謾題)」는 조선 후기의 문신 행명(涬溟) 윤순지(尹順之)[1591~1666]가 포천현의 관사에서 읊은 한시이다. 「포천현관만제」는 윤순지의 시집 『행명재시집(涬溟齋詩集)』 권(卷) 1에 수록되어 있다. 권 1의 시는 1627년(인조 5) 부친 윤훤(尹暄)[1573~1627]이 정묘호란 당시 평양에서...
-
조선 중기 곽열이 포천의 관사에서 명나라로 떠났던 사절단을 영접하기 위해 기다리면서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포천현영명류대작(抱川縣迎命留待作)」은 조선 중기의 문신 곽열(郭說)[1548~1630]이 포천의 관사(館舍)에서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사절단을 영접하기 위해 기다리면서 지은 한시이다. 「포천현영명류대작」은 곽열의 문집 『서포집(西浦集)』 권(卷) 4에 수록되어 있다....
-
조선 후기 서영보가 포천의 집에서 송재도를 만난 것을 기리며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포천현재 우지계송장(抱川縣齋遇芝溪宋丈)」은 조선 후기의 문신 죽석(竹石) 서영보(徐榮輔)[1759~1816]가 포천의 집에서 지계(芝溪) 송재도(宋載道)를 만난 것을 기리며 지은 한시이다. 「포천현재 우지계송장」은 서영보의 문집 『죽석관유집(竹石館遺集)』책(冊) 1에 실려 있다. 선생안발사동아(...
-
조선 후기 조태억이 한식날에 선영이 있는 포천의 묘사에서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한식일재포천묘사(寒食日在抱川墓舍)」는 조선 후기 문신 겸재(兼齋) 조태억(趙泰億)[1675~1728]이 한식날에 선영(先塋)이 있는 포천의 묘사(墓舍)에서 정희교(鄭希僑)와 더불어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고 금수정(金水亭)을 방문하면서 지은 한시이다. 조태억은 1698년(숙종 24) 4월에 모친상을 당...
-
1748년 오재순이 금강산 유람을 위해 포천의 송우, 만세교, 백로주 등을 지나면서 쓴 기행문. 「해산일기(海山日記)」는 1748년(영조 24) 조선 후기의 문신 순암(醇庵) 오재순(吳載純)[1727~1792]이 금강산(金剛山) 유람을 위해 포천을 지나며 송우(松隅), 만세교(萬歲橋), 백로주(白鷺洲) 등을 들리며 기록한 기행문이다. 조선 시대에는 한양에서 금강산 유람을 하고 외금...
-
1655년 강백년이 임지로 가던 길에 포천에서 친구 박선응의 무덤을 보고 읊은 칠언 절구의 한시. 「행도포천로중(行到抱川路中)」은 1655년(효종 6년) 조선 후기의 문신 설봉(雪峯) 강백년(姜栢年)[1603~1681]이 함경도 종성 부사(鍾城府使)로 임명되어 임지로 향하는 도중에 포천의 길가에서 친구 박선응(朴善應)의 무덤을 보고 느낀 감회를 읊은 한시이다. 「행도포천로중」은 강...
-
1653년 박장원이 포천현에 있는 안기역에 도착하여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행도포천안기역(行到抱川安期驛)」은 1653년(효종 4) 조선 후기의 문신 구당(久堂) 박장원(朴長遠)[1612~1671]이 포천현의 안기역(安期驛)에 도착하여 경상도 흥해(興海)로 정배(定配)한다는 임금의 명을 듣고 지은 한시이다. 「행도포천안기역」은 박장원의 문집 『구당집(久堂集)』 권(卷) 5의 「남...
-
1702년 김창업이 포천을 향해 가는 도중에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향포천도중(向抱川道中)」은 1702년(숙종 28) 조선 후기의 문신 노가재(老稼齋) 김창업(金昌業)[1658~1721]이 포천을 향하여 가는 길에 지은 한시이다. 「향포천도중」은 김창업의 문집 『노가재집(老稼齋集)』 권(卷) 2에 수록되어 있다. 차로평생주기순(此路平生走幾廵)[이 길을 평생 동안 몇 번이나 다녔...
-
조선 중엽 이항복이 포천의 운악산 현등사를 소재로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현등사(懸登寺)」는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1561~1613]과 기발한 장난과 우정이 얽힌 많은 일화를 남긴 오성(鰲城)·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1556~1618]이 포천 운악산(雲岳山)의 현등사에 대하여 읊은 한시이다. 「현등사」는 이항복의 문집 『백사집(白沙集)』 권(卷) 1에 수록되어 있다...
-
1825년 성해응이 이항복을 모신 화산 서원의 중수를 기념하여 지은 기문. 「화산 서원 중수기(花山書院重修記)」는 1825년(순조 25) 연경재(硏經齋) 성해응(成海應)[1760~1839]이 이항복(李恒福)[1556~1618]을 모신 화산 서원(花山書院)을 손질하여 고친 것을 기념하여 지은 중수기(重修記)이다. 화산 서원은 1720년(숙종 46)에 국가에서 인정한 사액 서원으로 ‘...
-
조선 후기 영평에 거주했던 이서구가 화적연을 소재로 하여 지은 오언 고시의 한시. 「화적연(禾積淵)」은 영평에 거주하였던 조선 후기의 문신 척재(惕齋) 이서구(李書九)[1754~1825]가 ‘영평 8경’ 중에 하나로서 영평현의 사람들이 기우제를 지내던 화적연을 보고 지은 한시이다. 이서구는 박학한 학자이자 동시에, 이덕무(李德懋)[1741~1793], 박제가(朴齊家)[1750~18...
-
1882년 4월 3일 포천 출신의 유학자 최익현이 친구들과 금강산 유람 중에 들린 화적연을 소재로 하여 지은 한시. 「화적연(禾積淵)」은 1882년(고종 19) 4월 3일에 포천 출신으로 개항기의 애국지사인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1833~1906]이 여러 친구들과 함께 금강산(金剛山)을 향하여 떠나는 길에 화적연에 들러 지은 한시이다. 「화적연」은 최익현의 문집 『면암집(勉...
-
조선 후기 박세채가 새벽에 포천을 떠나며 지은 오언 절구의 한시. 「효발포천(曉發抱川)」은 조선 후기의 문신 남계(南溪) 박세채(朴世采)[1631~1695]가 길을 재촉하느라 새벽에 포천을 떠나며 지은 한시이다. 「효발포천」은 박세채의 문집 『남계집(南溪集)』 외집(外集) 권(卷) 1에 수록되어 있다. 외집 권 1에는 시(詩)와 소(疏)가 실려 있다. 시는 170여 수가 연대순으로...
-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유학자 김평묵이 조상의의 처 함평 이씨의 효행으로 받은 정려에 대하여 지은 기. 「효부 함평 이씨 정려기」는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유학자 중암(重菴) 김평묵(金平黙)[1819~1891]이 1816년(순조 16) 조상의(趙尙義)의 처 함평 이씨의 효행(孝行)에 나라에서 내린 정려(旌閭)에 대하여 지은 기(記)이다. 효부 함평 이씨의 효행은 포천의 유학(幼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