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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산양리에서 벼락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금강 하류가 흘러드는 냇가가 있는데, 옛날에 그곳에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산이 하나 있었다. 그 산에는 정자가 하나 있었는데 지나가는 선비나 시인들이 쉬어 가는 이름난 곳이었다. 강 건너에 풍류를 좋아하는 돈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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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서 오화지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에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있는 채운산에 하늘에서 다섯 선녀가 내려왔다. 그들은 옥황상제로부터 “너희들은 땅으로 내려가 사람의 씨앗을 퍼뜨리고 하늘나라로 올라오도록 하여라.”라는 명령을 받았다. 채운산에 내려온 다섯 선녀는 산 아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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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강경에서도 크고 작은 전투와 국지전이 벌어져 그에 따른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이러한 전투 중에서 강경경찰서의 백병전은 가장 대표적인 격전이었다. 6·25전쟁 당시인 1950년 7월 17일과 18일 이틀 동안 강경 지역을 사수하기 위해 북한군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 강경경찰서 백병전으로 당시 경찰서장 정성봉(鄭成鳳) 등 83명의 경찰관이 장렬히 산화하였다. 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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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노동조합 은 강경포구가 번성했던 시절 객주의 활동과 함께 강경포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1920년대 당시 내륙지방으로서의 수산물 유통은 대부분 강경포구를 통해 전국으로 되었기 때문에 강경노동조합의 규모나 세력은 대단하였다. 강경포구 가 가장 번성했던 일제강점기에는 노동조합원의 구성이 1조당 60~80명으로 총 10개조로 구성되어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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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의 각 단체들이 연합하여 강경 지역에 설립한 연맹. 강경각단체연맹은 지역 계몽을 위한 다양한 운동들을 총체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3·1운동 이후 일제가 무단통치를 폐기하고 이른바 문화정치를 실시하면서 조선의 각 지방에는 근대식 학교 교육을 통해 신지식을 수용한 지역 청년들에 의해 각종 청년운동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조직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청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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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에 설치된 갑문. 강경갑문은 조석(潮汐)에 지장을 받지 않으면서 화물의 하역과 선적 작업을 가능하게 하고, 강물의 수위(水位)를 조절함으로써 홍수 피해를 줄이기 위해 1924년 10월 강경읍 내를 관통하는 하천의 하류 북옥리에 건립되었다. 강경포구가 성시를 누리던 시절 강경갑문은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명물이었다. 그러나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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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중앙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한약방 건물. 논산시 남서부에 위치한 강경읍은 금강 중하류의 경계이자 공주 등과 가까운 지역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젓갈 시장이 형성된 곳으로 1914년 논산시에 편입되었으며, 1920년대에는 충청남도에서 일본인을 제외한 외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던 상업 지역이었다. 강경 구 연수당 건재 약방은 2002년 2월 28일 등록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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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강경 지역에서 개항 이후에 건립된 건축물. 1910년 한일합방이 되어 우리 땅이 일제의 손아귀에 들어가자 일제는 건축 식민화를 본격화하였다. 1916년에는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설립하여 우리 건축가를 일부 양성하기도 하였다. 1920년대에는 모더니즘 양식, 곧 근대주의 건물이 개별적인 형태로 세워지기 시작했으나 일제 밑에서 교육을 받은 우리 건축가들은 그들의 식민화 건축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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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 지역에서 위어를 미나리, 당근 등과 초고추장에 버무린 향토 음식. 위어는 갈대 속에서 많이 자라서 갈대 위(葦) 자를 써서 갈대고기란 뜻의 위어(葦魚)라는 이름이 붙었다. 강경 지역에서는 우여라고도 한다. 멸치과에 속하는 물고기로 몸길이는 약 22~30㎝이다. 해수와 담수가 교차되는 수역에서 서식하는 위어는 강경에서 잡히는 희귀한 어종으로 연하고 부드러우며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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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중앙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강경중앙장로교회는 하나님의 은총과 성도들의 눈물어린 기도와 헌신적 봉사로 교회의 성장을 꾀하여 하나님의 구령사업과 사회 봉사 활동에 매진하고자 설립되었다. 강경중앙장로교회는 1961년 1월 26일 강경읍 중앙리 20번지에서 고 오일수 장로의 가족을 중심으로 20여 명의 성도들이 모여 첫 예배를 드림으로써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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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중앙리에 있는 강경중앙초등학교 강당.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후반 강경공립보통학교 개교 30주년을 기념하여 강경공립보통학교 후원회의 지원으로 준공된 건물로 한국 근대교육 시설의 주요 구성 요소의 하나인 학교 강당의 전형적인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논산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라는 역사적인 상징성과 함께 근대 도시 강경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의 하나로 연구 및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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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채산리 채운산에 남아 있는 상수도 시설물 중 일부. 강경 채운산 배수지는 일제 강점기에 건축된 배수지로서 당시 건립된 시설물 중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원형 배수지와 구형 여과지 2개 시설로 외부에 노출된 부분은 부분적으로 훼손되거나 퇴락한 곳이 있지만 내부는 노후화하거나 퇴락하지 않고 원형이 잘 유지되어 있다. 배수지의 관리 특성상 외부인의 출입은 제한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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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 지역에서 결성된 사회운동단체. 형평사는 일제강점기에 백정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이다. 일본의 수평사 운동에 영향을 받아 1923년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처음 결성된 이래 형평운동을 주도하는 가운데 전국적인 확산으로 이어졌다. 이에 부응하여 충청남도 논산의 강경 지역에서도 백정에 대한 차별 인습을 타파하기 위해 강경 형평사를 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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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화교 학교 교사와 사택 건물. 논산시 남서부에 위치한 강경읍은 금강 중하류의 경계이자 공주 등과 가까운 지역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젓갈 시장이 들어선 곳으로 1914년 논산시에 편입되었으며, 1920년대 충청남도에서 일본인을 제외한 외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던 상업 지역이었다. 강경화교학교 교사와 사택은 2007년 7월 3일 등록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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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남교리 황산로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글로벌 안목을 지닌 행동하는 지식인 지향, 비전을 가꾸는 창의적인 인재 육성, 인성과 학력의 조화 속에 슬기로운 정서 생활, 모두가 만족하는 교육 서비스 실천, 전통과 현대를 조화롭게 공유하는 문화인 양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36년 4월 11일 3년제 강경공립실과여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같은 월 21일 제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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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있었던 고용인들 중심의 친목회. 강경고용인친목회는 1920년대 전개된 계몽운동의 영향을 받아, 논산군 강경면(현 논산시 강경읍) 지역의 고용인들을 중심으로 회원들의 복리 향상과 교양 증진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강경고용인친목회는 1925년 5월 『조선일보』 강경지국에서 경찰의 엄중한 경계 속에서 창립되었다. 당시 회장은 우호경, 총무는 박석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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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 지역에 있던 미곡상조합. 일제는 통감부를 설치한 이래 조선에서 생산되는 양질의 쌀을 일본으로 가져가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개항장과 쌀 주요 생산지에 설치된 미곡상조합은 이를 추진한 중심기관이었다. 일제의 토지조사사업과 산미증식계획은 쌀 약탈을 정책적으로 추진하는 기반이나 마찬가지여서 일제강점기에 조선은 농업국가임에도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 직면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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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있던 천주교 교회. 강경 지역이 한국천주교회의 역사에 처음 기록된 것은 1883년의 일이다. 천주교 대전교구 통계자료집에 의하면, 1883년 당시 전라도 지역을 관할하던 리우빌 신부(Liouville, 한국명 유달영(柳達榮), 파리외방전교회)가 방문하여 사목 활동을 한 공소 중 은진 지방에 강경공소가 나타난다. 188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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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 지역에 설립되었던 금융조합. 강경금융조합은 자본주의적 발전과 더불어 금융 자본의 중요성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함에 따라, 강경 지역 조합원들의 영세한 신용을 결합하여 열악한 금융 상황을 완화시키면서 강경지역의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기 위해 1919년 3월 31일 설립되었다. 1920년 초반 임원진은 조합장 아라마키[荒卷], 이사 사이다[彩田]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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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있던 무산 학령아동을 위한 야학. 3·1운동 이후 문화운동 확산은 대한제국 이래 교육열을 다시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공립보통학교에서는 입학시험을 치르는 등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강경 지역도 교육열은 높아갔지만 학령아동 상당수는 초등교육 수혜마저 받을 수 없었고, 가중한 입학난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사회단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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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대흥리에 있는 농업협동조합. 강경농업협동조합은 지역 농업인들의 경제적 이익 증진과 권리 향유 및 사회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69년 12월 23일 설립 인가를 받고 1970년 1월 28일 강경리 농업협동조합이 설립되었다. 1971년 9월 강경읍 대흥리 19-6번지에 사무소 건물을 매입하였다. 1972년 1월부터 상호 금융 업무를 취급하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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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서 해마다 10월 중순에 열리는 젓갈 축제. 1930년대 최대의 성시를 이루었던 금강 상류의 강경 지역은 지리적으로 내륙 깊숙이 위치해 해상 교통과 육상 교통의 요충지로 자리매김하면서 각종 수산물의 거래가 왕성했다. 또한, 하루에 100척 이상의 각종 선박들이 서해와 남해 등지에서 잡은 생선과 건어물, 소금 등의 거래가 이루어진 곳으로, 내륙과 섬의 교역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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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산양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심신이 건강하고 활동적인 학생, 바른 마음으로 협동 봉사하는 학생,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학생, 자주적으로 소질을 계발하는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40년 10월 16일 강경욱정공립심상소학교로 개교하였다가 1949년 5월 1일 강경산양국민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96년 3월 1일 강경산양초등학교로 교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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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남교리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기초, 기본 교육 구현을 통한 행복한 교실을 조성하여 개성인을 양성하며, 글로벌 예절 실천 중심의 능력인을 육성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직업 교육의 내실화를 기하여 실업인을 기르며, 건전한 심신을 갖춘 건강인을 기르는 것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성실’이다. 1920년 3월 29일 강경면영간이농업학교를 강경공립상업학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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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강경상업학교 학생들이 단행한 동맹휴학. 강경상업학교 맹휴사건은 강경상업학교 학생들이 동맹휴학을 통해서 일제의 식민지 노예교육에 반발한 학생운동이다. 조선 후기 이래로 전국적인 장시망(場市網)을 형성하는 등 상업도시로서 명성을 날려 왔던 강경에 1920년 3월 주민들의 기대감 속에서 강경상업학교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교육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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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서 강경포구로 들어오는 새우를 소금에 절여 만든 음식. 새우젓은 새우를 잡은 시기에 따라 이름을 달리 부르는데, 음력 5월에 담근 것을 오젓, 음력 6월에 담근 것을 육젓, 가을에 담근 것을 추젓이라 한다. 오젓은 음력 5월에 잡히는 살이 많은 참새우로 담근 새우젓으로, 껍질이 얇고 맑은 연분홍빛을 띠며 육젓 다음으로 좋은 젓갈이다. 육젓은 음력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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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중앙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성당. 강경성당은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살아가는 교회 공동체 정신으로 지역 사회를 복음화시키고 모든 이가 하느님의 구원에 동참하도록 빛과 소금의 역할을 지향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강경 지역이 한국천주교회의 역사에서 처음 나타난 것은 1883년의 일이다. 천주교 대전교구 통계자료집에 의하면, 1883년 당시 충청도 지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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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 지역에 조직된 수리조합. 수리조합은 일정한 지역 안의 토지 소유자 또는 토지 가옥 소유자가 모여 농지에 대한 관개용(灌漑用) 저수지나 제방 따위에 관한 사업을 목적으로 조직한 법인체이다. 토지개량조합으로 이름을 바뀌었다가 현재는 농지개량조합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강경수리조합을 포함하는 일제강점기의 수리조합은 대부분 한국인의 약탈과 미곡 수탈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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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대흥리에 있는 시외버스 정차 및 승하차 시설. 강경시외버스터미널은 강경읍에서 공주·논산·천안·성남·조치원·청주·서울·대전 등지로 운행하는 시외버스와 논산시의 성동면과 연무읍, 부여군의 석성면 등지로 운행하는 시내버스가 승하차할 수 있는 시설로서 건립되었다. 강경시외버스터미널은 1999년까지는 강경역 부근의 터미널길에 있었다. 2000년에 터미널길에서 1㎞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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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강경은 옥녀봉의 동남면에 중심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었고, 시가지 깊숙이 곡류하는 강경천을 이용한 수운교역이 활발하였다. 인구의 증가와 시장의 활성화에 따른 취락의 확장은 옥녀봉 동쪽 습지를 매립하여 이루어졌다. 당시에는 주요 교통, 운송수단이 주로 수운에 의해 이루어졌으므로 도로 개설은 미비하였다. 도로망은 현재의 서창리에서 홍교리 사이에 1간 폭의 도로가 있었다. 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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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 지역에 있던 일본인 권익 옹호를 위한 회사. 충청남도 논산의 강경지역은 조선 후기 이래 전국적인 장시망(場市網)을 형성하는 등 상업도시로서 명성을 날렸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인들은 일찍부터 강경지역에 이주하여 상권과 유통권 장악에 힘을 기울였는데, 강경신탁주식회사는 일본인이 상품 위탁판매와 한국인의 토지와 가옥 등을 수탈하고자 조직한 중개업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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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 지역에 있던 여성운동단체. 3·1운동 이후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은 크게 변화하였다. 여성들 자신도 사회적인 존재로서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인습과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자각은 여성단체 조직으로 나타났다. 특히 개신교를 비롯한 종교계의 여성단체는 우후죽순처럼 설립되는 상황이었다. 전문적 직업 여성이 사회 각 분야로 진출하는 가운데 사회적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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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남교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이웃을 사랑하고 스스로 질서를 지키는 민주적인 사람, 합리적인 생각으로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내려는 사람, 슬기롭게 생각하며 자기 스스로 공부하는 실력 있는 사람, 남의 의견을 존중하며 서로 합의하여 행동하는 협동적인 사람, 올바른 마음과 튼튼한 몸을 지닌 건강한 사람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정숙, 명랑, 협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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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대흥리에 있는 호남선 기차역. 강경역이 있는 강경읍은 논산시의 남부에 위치하며, 행정구역상 서부는 금강과 부여군, 남부는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과 접경 지역으로서 호남과 호서의 관문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과 어우러진 강경읍에는 논산팔경 중의 하나인 옥녀봉과 금강이 자리 잡고 있으며, 강경평야가 있어 곡창지대로 손꼽히기도 한다. 강경읍에서는 매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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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설립된 우체국. 강경우편국은 강경 지역에 최초로 설립된 우체국으로서, 이후 계속해서 논산·석성·노성 지역에도 우체국이 개설됨으로써 논산 전역은 근대적 우편 체제로 개편되었다. 1902년 7월 1일 통신원고시 제5호에 의해 강경우편국이 개설되었다. 이와 더불어 1903년 2월 20일에는 통신원령 제2호로 강경에 전보사가 설치되었으며, 같은 해 4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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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운동장. 강경운동장은 강경읍 주민들의 주요 체육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1990년 11월 황산대교 밑의 금강 둔치 변에 조성되었다. 강경운동장의 면적은 70,863.11㎡이며, 롤러스케이트장 1개, 배구장 2개, 게이트볼장 1개, 체력 단련 시설 13개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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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있던 유치원. 1920년대 중반부터 각 지역 사회단체는 주요 활동 영역의 하나로 유치원설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유치원교육은 3세 국민교육의 대명사로서 인식되는 분위기였는데, 이는 유아기 교육이 교육적인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비롯되었다. 1920년대 후반 논산지역에는 영화(永化)유치원·만동(萬東)유치원·강경유치원이 유치원교육을 주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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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읍. 강경포(江景浦)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금강을 낀 포구의 이름이 이 지방의 지명으로 대표하게 되었다. 『동국여지승람』에도 은진현(恩津縣)에 강경호가 있다고 나오고, 미내교비에도 강경촌이라는 지명이 기록된 것으로 미루어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지명인 것 같다. 본래 은진군 김포면(金浦面) 지역으로, 상강(上江)·환대(換垈)·홍교(虹橋)·답대(沓垈)·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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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의 강경읍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 강경읍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의 3·1운동에 호응하여 충청남도 논산의 강경읍 일원에서 1919년 3월 10일부터 4월 7일까지 전개된 일제의 조선 식민지 지배에 항거한 일련의 독립만세운동을 말한다. 강경읍은 논산 지역뿐만 아니라 충청남도 전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된 대표적인 지역으로 주로 옥녀봉과 시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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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는 강경읍을 관할하는 행정 기관. 충청남도 논산시를 구성하고 있는 2개 읍[강경읍, 연무읍], 11개 면[성동면, 광석면, 노성면, 상월면, 부적면, 연산면, 벌곡면, 양촌면, 가야곡면, 은진면, 채운면], 2개 동[취암동, 부창동] 중 강경읍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는 강경읍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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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대흥리에서 5일 간격으로 열리는 재래시장. 조선시대 강경장(江景場)은 금강 수운을 기초로 하여 주변 지역에서 산출되는 생산물의 집하, 배급 기능을 담당하는 시장이었다. 강경장은 추석이나 설을 전후한 시기에 1만 5천여 명 이상이 몰리는 큰 시장으로, 19세기 초 편찬된 『만기요람(萬機要覽)』에는 전국 15개 장시 중 하나로 꼽혔으며, 조선 말기에는 대구장·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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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대흥리에 있던 전기 보급회사.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은 우리나라 근대사의 흔적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지역 중의 하나이다. 강경포구를 중심으로 상인과 농어민, 그리고 각지에서 몰려든 객주(客主)들이 성황을 이루었으며, 강경역이 세워짐으로써 강경역 주변은 새로운 근대화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렇듯 강경 지역의 급속한 인구 밀집으로 인해 각종 시설이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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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담근 젓갈. 강경전통맛깔젓은 옛 강경포구에 전래되던 전통적인 방법으로 담그고, 각지에서 생산되는 각종 젓갈을 선별 구입한 후 발효 숙성하므로 맛이 좋다. ‘젓갈 중 제일은 강경젓갈’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젓갈은 통일신라시대부터 혜(醯)라 불리며 식용되었으나, 본격적인 식품으로 발전한 것은 조선시대로 약 150종이 있었다. 강경전통맛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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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일원에 있는 강경전통맛깔젓 유통 시장. 강경젓갈시장은 1930년대까지 국내 3대 시장 중 하나였던 강경 시장의 명성을 되찾고, 강경전통맛깔젓을 강경 지방의 특산물로 내세우면서 이를 통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목적으로 1990년대부터 강경읍 일원에 복원하기 시작하였다. 1930년대까지 강경 지역은 강경전통맛깔젓 등의 각종 수산물이 활발하게 거래되는 포구가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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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강경전통맛깔젓 홍보를 위한 전시관. 일제강점기까지 원산포구와 함께 전국 2대 포구로 유명했던 강경포구와 평양시장·대구시장과 더불어 전국 3대 시장으로 번성했던 강경시장은 서해안에서 생산되는 각종 수산물이 집산되어 거래되던 곳이었다. 당시 새우·황석어 등 어물을 염장, 발효시켜 젓갈로 만들어 판매하면서 반찬과 김장재료로서 강경젓갈은 전국적으로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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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의 젓갈을 특화시킨 정보화마을. 강경읍 남교리·태평리·염천리 일대는 평야 지대를 형성하고 있어 예부터 곡창지대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강경읍에 있는 강경포구(江景浦口)에는 서해와 통하는 금강이 있어 굴지의 수산항으로서 한 세기 영화를 누리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강경은 계룡산과 대둔산에서 발원하는 금강 지류들이 논산천(論山川)에서 합류하고 강경읍 부근에서 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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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중앙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예절 바르고 스스로 소질을 계발하며 푸른 꿈을 키우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큰 꿈, 큰 희망’이다. 1905년 4월 2일 2년제 사립 보명학교로 개교하였다가 1907년 4월 7일 4년제 공립 강경보통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20년 3월 1일 수업 연한을 6개년으로 인가받았다. 1938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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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채산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올바른 가치관을 지닌 근면 성실한 사람, 창의적인 사고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 건강한 몸과 건전한 정신으로 사는 사람, 자율과 책임정신으로 더불어 사는 사람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지성, 협동, 노력’이다. 1951년 8월 31일 강경중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같은 해 9월 28일 개교하였다. 1952년 1월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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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이루어진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천의 제방공사. 강경천 제방공사는 일제강점기에 현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 지역이 호남선 개통, 호남병원 설립, 강경전기주식회사 설립, 학교 설립 등과 더불어 도시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제방공사이다. 홍수로 인한 강경천의 범람 피해를 예방하고 가뭄에 대비하여 농업용수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시행하였다. 1922년부터 1924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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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이루어진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강경천 및 논산천 개수 사업. 일제강점기 현 충청남도 논산 지역이 호남선 개통, 호남병원 설립, 강경전기주식회사 설립, 학교 설립 등과 더불어 도시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개수 사업이다. 홍수로 인한 강경천 및 논산천의 범람 피해를 예방하고 가뭄에 대비하여 농업용수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시행하였다. 1931년부터 1933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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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 지역에 설립된 청년회. 3·1운동 이후 일제가 무단통치를 폐기하고 이른바 문화정치를 실시하면서 조선의 각 지방에는 근대식 학교 교육을 통해 신지식을 수용한 지역 청년들에 의해 각종 청년운동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조직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청년들은 군이나 면 혹은 동리 단위로 청년수양단체를 결성한 뒤 야학·생활 개선 등과 같은 민중계몽 활동과 강연회·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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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남교리에 있는 기독교한국침례회 소속 교회. 1889년의 창립예배 이후 1896년에 창립된 강경침례교회는 논산 지역 개신교 중에 가장 먼저 설립된 교회이다. 1889년 한국에 온 캐나다인 선교사 펜윅의 영향으로 미국 보스톤 클라멘톤 침례교회 엘라씽기념선교회에서 파송한 폴링과 스태드맨의 선교로 1896년 2월 9일 지병석이 강경읍 북옥리 136번지 자택에서 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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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강경포에서 천주교 신자와 향촌 세력 간의 갈등으로 발생한 사건. 강경포 교안 사건은 천주교 신자인 김치문(빈첸시오)과 소금 상인 조흥도가 충돌하여 시작된 사건으로, 천주교 신자와 일반 주민의 갈등에서 출발하여 주한 프랑스 공사와 대한제국 간의 외교적 갈등으로 확대되어 일반인들의 교회에 대한 인식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교안이란 천주교가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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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포구. 강경포구는 금강 본류와 접해 있을 뿐만 아니라 내륙으로 통하는 논산천, 강경천, 염천 등의 지류가 이어지고, 서해의 조류도 강경까지 올라왔기 때문에 해상 교통과 내륙 교통을 잇는 큰 포구로 번성하였다. 강경포구는 조선 말기 3대 시장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강경장을 배경으로 하여, 성어기인 3~6월의 4개월 동안은 하루 100여 척의 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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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남교리에 있는 정보화 마을. 강경읍에 있는 강경시장은 구한말 평양시장, 대구시장과 더불어 전국 3대 시장의 하나로 명성을 지녔을 뿐 아니라 현재도 그 시대 건물이 원형대로 잘 보존되고 있어 고건축 연구 및 영화촬영지 등 새로운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강경전통맛깔젓은 현대인의 입맛에 맞춰 200년의 전통비법과 현대화된 냉장 자동위생처리 시설에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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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 강경포구에서 매년 가을 강경발효젓갈축제 기간에 지내는 용왕제. 논산시 강경 지역은 금강을 중심으로 하여 서해안과 내륙을 연결하는 통로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예부터 수산물의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논산시에서는 1997년부터 이러한 지역의 특징을 활용한 강경발효젓갈축제를 개최하여 다양한 이벤트와 젓갈의 관광상품화로 지역 특산물을 널리 홍보하고 있다.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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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서로 돕고 바른 예절을 실천하는 어린이, 깊이 생각하고 새로움을 탐구하는 어린이, 아름다움을 느끼고 다양하게 표현하는 어린이, 몸과 마음이 튼튼하고 의지가 강한 어린이, 소질을 계발하고 자기의 꿈을 가꾸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45년 10월 25일 학교 설립 인가를 받아 같은 해 12월 10일 강경남정국민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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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남교리에 있는 강상고등학교 음악 동아리. 강상고등학교 관악부는 강상고등학교 학생들이 음악 활동 체험을 통하여 올바른 정서와 인성을 기르고, 음악 활동에 대한 학생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하여 1931년 설립되었다. 강상고등학교 관악부에서는 강상고등학교의 특색 사업인 ‘소외된 이웃을 위한 연주 봉사’를 실현하기 위하여 충청남도 논산시에 소재한 요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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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세형은 1899년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면 중정(仲町)에서 출생하였다. 잡화상으로 일하던 중, 1919년 3월 10일 곽성진(郭性鎭)·석광열(石光烈)·박금봉(朴今奉)·추병갑(秋炳甲)·김종갑(金鍾甲) 등과 함께 사립 창영학교 교사 엄창섭(嚴昌燮)이 주도하는 강경 옥녀봉 만세시위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강세형 등은 1919년 3월 8일 강경읍에서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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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강경포구에서 상품의 위탁판매·창고업·화물수송업·금융업 등을 행하던 중간 상인. 논산의 서쪽에 자리한 강경포구는 조선 후기 농업생산력이 증대되면서 18세기 이후 상품작물이 등장함과 동시에 장시(場市)로 크게 발전한 곳이다. 전국의 3대 장시로 불릴 만큼 큰 규모의 장시가 열리고 상품유통이 활발하여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장시에는 수많은 전문직의 사람들이 상주하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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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읍의 옥녀봉 아래에 위치한 강경포구는 육상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초기까지 전국 3대 시장으로 불릴 만큼 충청권 일대를 상권으로 하는 주요 결절지이며, 수송 적환지였다. 이곳이 본격적으로 수산물시장의 역할을 한 것은 구한말 대자본을 가진 객주들의 등장부터이다. 천혜의 내륙항으로 일찍부터 수운이 발달한 강경포구는 금강 하구의 관문으로 서해에서 들어오는 각종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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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고상준은 1900년 12월 17일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읍 중앙동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당시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청포리에 살던 중 1919년 3월 10일 곽성진(郭性鎭)·석광열(石光烈)·박금봉(朴今奉)·추병갑(秋炳甲)·김종갑(金鍾甲) 등과 함께 사립 창영학교 교사 엄창섭(嚴昌燮)이 주도하는 강경 옥녀봉 만세시위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고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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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과 함께 전국 2대 포구, 평양, 대구와 함께 3대 시장의 신화를 간직한 강경은 근대시기의 역사의 흔적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도시이다. 그러나 이러한 강경에 근대사 관련 유적들이 지금은 거의 사라져 버려 안타까움이 많다. 강경의 근대건축물은 19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강경천의 호안공사가 완료되면서 세워지기 시작했다. 시가지에는 상업도시 구조에 적합한 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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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곽성진은 1899년 10월 6일 논산시 강경읍 중앙리에서 출생하였다. 전라남도 순천 외가에서 순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17년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1919년 학우들과 함께 서울 탑동공원에서의 만세시위운동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되어 고향인 논산 강경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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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남교리에 있는 구 강경공립상업학교의 교장 관사. 강경공립상업학교는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최초로 세워진 중등 교육기관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건축된 강경공립상업학교의 교육 시설 중 교장 관사는 1930년대 초반에 신축되어 현재까지도 전해지고 있으며 1920~30년대 학교 관사의 성격과 근대적 주택 건축 기술의 여러 특징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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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결성되었던 노동조합. 강경노동조합은 1910년 중반 강경포구의 하역 작업 처리 업무를 담당하던 노동자들이 결성한 조직체로서, 일반적인 의미의 노동조합이라기보다는 하역 노동자들의 동업자 모임에 가까운 조직이었다. 1920년대 당시 내륙 지방으로의 수산물 유통은 대부분 강경포구를 통해 전국으로 유통되었기 때문에 강경노동조합의 규모나 세력은 대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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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에 설립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소속 교회. 구 강경성결교회는 1918년 10월 성결교단에서 파송한 정달성 전도사가 충남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93-1번지에 있는 한옥 2칸을 빌려 예배를 드리면서 교회가 시작되었다. 강경 3·1운동 당시 영국 존 토마스 선교사의 구타 사건으로 변상받은 돈으로 1923년 교회를 건축하였다. 기독교 종말론적 신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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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있던 동일은행 지점. 1890년대 중반 정부 관료와 자산가 등에 의하여 국내에 근대적 개념의 은행이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1906년 통감부(統監府)가 설치된 이후 민간에서는 민족자본 육성을 위한 은행을 설립하고자 하였다. 한일은행은 1912년 민영휘(閔泳徽)가 은행장으로 취임하면서 민씨 문중의 은행으로 성격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한성은행이나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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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활을 쏘아 표적을 맞추어서 승부를 겨루는 전통 무술. 각궁(전통활)은 옛날의 무기로 생산된 때와는 달리 취미생활에 의존한 개인의 경영에 의하여 제작된다. 전통활은 물소뿔·물소 힘줄·뽕나무·민어부레풀 등을 이용하여 제작되며, 보급형인 개량궁은 인조뿔과 나무 등을 합성하여 만든다. 국궁은 주로 노인층의 전유물이었으나, 양궁의 보급과 더불어 젊은층에도 레저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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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은 금강과 논산천이 합류하는 가항(可航) 포구로서 전라북도 용안면의 평야 지대, 논산평야 등 국내 굴지의 미곡 생산지를 배후에 끼고 있어 조선 후기 이래 전국적인 상업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1876년 개항 이래 충청도 전체의 시장권이 철도와 개항장을 거점으로 제국주의적 상품 유통 시장으로 재편되면서 전통적 시장권의 중심인 강경의 지위는 하락하였다. 그러나 유통시장권에서의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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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이 평양 및 대구시장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시장으로 손꼽혔던 일제강점기에 최대 인구는 3만 명에 달하였다. 상인 등 유동인구까지 합치면 약 10만 명 정도의 인구가 한꺼번에 모여들었다. 이러한 인구의 집결은 상대적으로 문화시설의 보급도 빨리 오게 하였다. 1920년대 도내에서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왔고, 강경만의 전기 공급을 위한 화력발전소가 대흥리에 1백 평 규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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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채산리에 있는 요보호 아동을 위한 보육 시설. 금강애린원은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없는 아이들이 건강하고 건전한 사회의 역군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이를 위한 서비스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하여 1946년 10월 1일 김형일이 금강애린원을 개원하여, 같은 해 10월 10일 충청남도로부터 시설 인가를 허가받았다. 1958년 4월 30일 호남후생원을 흡수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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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시인이자 언론인. 김형원은 1900년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읍에서 출생하였으며 서울의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였다. 언론인으로서 김형원의 행적을 보면, 1920년대 『동아일보(東亞日報)』와 『조선일보(朝鮮日報)』의 기자를 거쳐 『동아일보』 사회부장, 『중외일보(中外日報)』·『조선일보』·『매일신보(每日新報)』의 편집국장을 역임하였다. 광복 후 복간된 조선일보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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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강경포(江景浦)의 남쪽에 있다 하여 일제강점기에는 남정(南町)이라 하였으며, 1947년 일본식 동명의 변경에 의하여 상업학교와 여학교가 있는 남쪽의 학교촌이라는 뜻에서 남교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김포면(金浦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강리(上江里)·환대리(換垈里)·홍교리(虹橋里)의 각 일부와 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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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설립되었던 잡지사. 일제강점기 문화운동의 확산은 서구 사조 유입과 더불어 문학 분야에 대한 대대적인 변화를 초래하였다. 1919년에 『창조(創造)』, 1920년에 『개벽(開闢)』 등의 문예지 발간은 문학을 통한 식민지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문학의 현실 참여는 민중들에게 현실 인식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강경 지역도 기형적이나마 상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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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남교리에 있는 공공 도서관. 논산강경도서관은 논산 지역 주민들에게 정보 습득의 공간과 생활문화의 공간을 제공하고, 취학 전 아동들과 노인층이 자유롭게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설립되었다. 논산강경도서관은 1993년 9월 3일 착공하여, 1994년 8월 6일 준공하였다. 1994년 9월 12일 「논산시 공공도서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가 제정, 공포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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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남교리에 있는 논산시 관할 치안 행정 기관. 논산경찰서는 논산 지역의 범죄 예방 정책의 수립과 집행, 기타 이에 관련된 활동을 통하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22년 강경읍 중앙리에 강경경찰서를 설치하고 각 면 단위에 주재소를 1개소씩 설치하였다. 1945년 8·15 해방과 더불어 경찰 제도 개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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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있던 청년운동 단체. 1920년대 중반에 이르러 청년운동은 사회주의계가 장악하면서 성격 변화를 가져왔다. 청년단체 조직은 종래 회장제에서 집행위원장제로 변했으며, 지역 내에 난립하던 청년단체도 청년동맹 산하로 결집하는 분위기였다. 논산 지역 무산청년단체도 1927년 6월경에 무산청년동맹으로 통합되었다. 논산무산청년동맹은 노동야학과 잡지 발간 등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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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대흥리에 있는 검찰 기관. 대전지방검찰청 논산지청은 충청남도 논산시와 부여군 관내의 범죄 수사와 공소권 행사 및 재판 집행의 지휘감독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1907년 「신재판소구성법」에 의거하여 검사국이 독립된 데 이어 1909년 10월 「통감부 재판소 설치의 건」에 의해서 공주지방재판소 검사국 관내에 강경구재판소 검사분국이 설치되어 석성군,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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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대정정(大正町)이라 하다가 1947년 일본식 동명의 변경에 의하여 대흥동(大興洞)으로 변경되었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김포면 지역으로, 황산(黃山)의 일부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채운면 성서리(城西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대정정이라 하여 논산군 강경면에 편입되었다. 1931년 4월 1일 강경면이 강경읍으로 승격됨에 따라 강경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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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대흥리에 있는 재래시장. 강경은 1920·1930년까지 대구, 평양과 더불어 전국 3대 시장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대흥시장은 상업도시로서의 강경의 맥을 잇기 위해 1955년에 건립된 유서 깊은 전통 재래시장이다. 1955년 10월, 현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대흥리 48-32번지[계백로105번길 8-4]에 5일장으로 개장하였다. 강경의 쇠퇴와 대형 할인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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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동흥리에 있는 사설 국궁장. 덕유정은 옛 선현들을 본받아 국궁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는 뜻에서 건립되었으며, 그 의미는 1948년 이은국(李殷國)이 지은 「관해루기(觀海樓記)」를 통해서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덕유정은 강경의 사정이요, 관해루는 덕유정의 누각이다. 노소 사원들과 일반 내빈의 쉼터로 외적의 침략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 번에 걸쳐 중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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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 지역에 있던 동양척식주식회사 지점. 통감부를 설치한 이래 일제는 조선으로 자국인의 이주를 적극적으로 권장하였다. 각 지역에 대한 안내서 발행은 이와 같은 목적을 관철하는 데 있었으며, 농업이민 장려는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설립으로 귀결되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1908년 「동양척식주식회사법」에 의하여 농사 개량과 농업 기술 향상이라는 표면적인 목적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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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강경의 동쪽에 있다 하여 일제강점기에는 동정(東町)이라 했는데, 1947년 일본식 동명의 변경에 의하여 동흥동(東興洞)으로 변경되었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김포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정이라 하여 논산군 강경면에 편입되었다. 1931년 4월 1일 강경면이 강경읍으로 승격됨에 따라 강경읍에 소속되어 오다가 194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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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서 장어를 잡는 방식. 장어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지역의 도랑 사이에 주로 서식한다. 밀물과 함께 바다로부터 들어온 장어는 도랑의 플랑크톤을 먹기 위해 도랑 깊숙이 숨어드는데, 똘맥이는 밀물이 들어오면 도랑 입구에 미리 묻어둔 그물을 들어 올려 도랑 입구를 막는 방법이다. 다음 썰물이 되어 도랑물이 빠지면서 장어도 도랑 입구 쪽으로 나오게 되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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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있던 기독교계 사립학교. 대한제국 말기 국망(國亡)에 대한 위기의식 고조와 선교사업 일환으로 사립학교에 의한 근대교육이 널리 보급되고 있었다. 특히 기독교에서는 여학교 설립을 통한 여성교육 보급에 박차를 기하였다. 충청남도 지방에서도 공주 영명여학교, 논산 영화여학교, 강경 만동여학교 등 여성교육기관이 설립되었는데, 이들 여학교는 일제강점기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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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일대에 서식하는 매과에 속하는 새. 편 날개의 길이는 수컷 30㎝, 암컷 37㎝ 정도로 독수리보다 작다. 암컷과 수컷은 배 쪽이 푸른 잿빛으로 머리꼭대기와는 확연히 다르다. 아랫면의 바탕색은 크림색 또는 녹슨 황색이며 잿빛이나 붉게 녹슨 색을 띠지 않는다. 아랫면의 검은색 가로 얼룩무늬는 가늘고 엷은 색이다. 날개의 폭은 넓고 길다. 눈 밑의 검은 무늬는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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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출신의 시인. 1925년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서 출생한 박용래(朴龍來)는 향토색 짙은 서정적 시 세계로 충청도 지역의 시인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시인이었다. 강고한 시적 자의식을 견지한 박용래는 1980년 11월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박용래는 중앙보통학교를 거쳐 1943년 당시 명문 학교였던 강경상업학교를 전교 수석으로 졸업하고 조선은행에 입사하여 은행원 생활을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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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출신의 시인이자 불교학자. 박희선은 1943년 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의 고마자와대학 불교학과에서 수학하였다. 대학 재학 중에 일본 학도병으로 끌려가 중국에서 복무하던 중 일본군을 탈출하고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45년 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1946년 정훈, 박용래 등과 시동인지 『동백』을 창간하면서 문단활동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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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방한민은 1920년 『조선일보』 창간을 주도했으며, 편집 및 사회부 기자로 재직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일제의 잔학성을 폭로 규탄하는 「골수에 맺힌 조선인의 한(恨)」이란 배일(排日) 연재 기사를 게재하였다. 일제의 간섭과 압력으로 조선일보에서 해고를 당하고 일본 동경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정창선(鄭昌先) 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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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 강경포구에서 조업 배가 나갈 때 안전을 위해 지내던 고사. 뱃고사는 선주와 뱃동사가 주축이 되어 치러지는데, 이들이 뱃일을 공동으로 작업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포구 일대에서 활동하는 객주들이 선주들에게서 좋은 물건을 떼기 위하여 뱃고사에 쓸 제물비를 대주기도 하였다. 뱃고사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뱃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전의 기원이다. 과거에는 금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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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은진현(恩津縣)편에 의하면 예전의 강경포는 강경산 아래 있는 해진(海津)이며, 강경산 봉수는 전라도 용안현(龍安縣) 광두원산(廣頭院山)에 응하고, 북으로는 황화산(皇華山)에 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조선시대의 강경은 한양과 호남간 봉화(烽火)의 중계지였다. 17세기 초의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직후였으므로 전쟁의 피해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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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북정(北町)이라 하였다가 1947년 북정과 옥녀봉(玉女峰)의 이름을 따서 북옥동(北玉洞)이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은진군 김포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창전리(倉前里), 서촌리(西村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강경 북쪽에 있어서 북정이라 하고 강경면에 편입하였다. 1931년 강경면이 강경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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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황산(黃山)과 양촌(陽村)의 이름을 따서 산양리(山陽里)라 하였다. 은진군 김포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삼거리(三巨里)·상강리(上江里)의 각 일부와 채운면 양촌리(陽村里)·성서리(城西里)·중내리(中內里)·신기리(新基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산양리라 하고 논산군 채운면에 편입하였다.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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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과 채운면 장화리를 연결하는 다리. 웃강경다리라고 불리던 것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상(上)자를 사용하여 상강경교(上江景橋)라 이름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상강경교는 총 연장이 140m이고, 폭이 11.7m이며, 왕복 2차선의 교량이다. 상강경교는 1985년 국도 23호선의 확장과 포장에 따라 논산시에서 인수·인계하여 강경천(江景川)을 가로질러 도시계획도로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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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 지역에 있던 소년계몽운동 단체. 3·1운동 이후 어린이에 대한 관심은 사회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각종 청년단체나 종교단체 등은 자라나는 세대에게 민족해방을 위한 일꾼으로서 성장하기를 기원하였다. 1923년 어린이날 제정은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에서 이루어졌으며, 이는 각지로 미쳐 소년계몽운동 단체 조직과 활동으로 이어졌다. 상애소년단은 강경 지역 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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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로부터 3년 연속 문화관광축제로 지정되어 2004 강경젓갈축제는 10월 14일(목)부터 10월 18(월)까지 5일간 강경포구와 젓갈시장 및 금강 둔치에서 진행되었다. ‘200년 전통의 젓갈! 강경포구로의 초대’를 주제로 갈대밭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금강 둔치에서 펼쳐진 5일간의 축제기간 동안 6개 분야 65개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제3의 맛 발효미인 젓갈의 우수성을 외국인 등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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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강경 서쪽에 있다는 의미의 서촌(西村)이라 하였다가 1947년 일본식 명칭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서촌과 창전리(倉前里)의 이름을 따서 서창동(西倉洞)이라 하였다. 은진군 김포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병부리, 산정리(山亭里), 석교리(石橋里), 강변리(江邊里), 창전리, 상원촌(上原村)을 병합하여 서촌이라 하고 논산군 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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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 지역에 있던 계몽운동 단체. 일제강점기의 문화계몽운동 확산은 학생운동과 청년운동 활성화로 귀결되었다. 선구회는 강경 지역 출신으로 중등학교 이상 졸업생이거나 재학생이 회원이었으며, 선구회 회원은 여름방학을 이용한 야학 운영과 잡지 발간을 통하여 새로운 서구 문명을 소개하는 등 강경 지역에서 지적 토대를 구축하였다. 선구회는 1920년대 당시 조선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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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성석기는 1888년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읍에서 출생하였다. 직업이 의복상이었는데, 1919년 3월 논산과 강경에서 독립만세운동이 끊이지 않자 강경면 중정(中町) 이성삼(李成三)의 집에서 친구 문상희(文尙羲)와 함께 독립운동에 참여하기로 결의하였다. 그 후 문상희가 독립운동을 권유하는 취지문과 시위운동으로서 상점을 폐쇄하기를 권하는 「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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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천리(鹽川里)는 본래 은진군(恩津郡) 김포면(金浦面)의 지역이었다. 앞에 강경포(江景浦)가 있어서 배가 드나들며 소금을 많이 쌓아 두므로 염촌(鹽村)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염대리(鹽垈里), 강변촌(江邊村) 일부를 병합하여 염정(鹽町)이라 하여 논산군 강경면(읍)에 편입되었다. 1947년 해방 후 일본식 동명을 변경에 따라 염정을 염천동으로 고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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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강경포구는 경제수탈의 관문이었다. 1920년대 초 강경은 금강 수운에 의한 내륙으로의 상품이동은 거의 중단된 상태였고, 강경장도 퇴락해갔지만, 포구는 일본의 농수산물 수탈 전진기지로 바뀌어 계속 이용되었다. 충청도와 내륙지방의 쌀과 면화는 뱃길과 철길을 통해서 빠르게 일본으로 실려 나갔다. 일본인들은 강경시내 5곳에 대형 도정공장을 세우고 논산평야·강경평야는 물론 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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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우리의 인격을 가꾸고 키워주는 높고 거룩한 스승의 은혜를 기리고 받들며 존경과 감사를 표하는 날이기도 하다. 해마다 이 날이 오면 학생들은 정성을 모아 카네이션 꽃을 스승의 가슴에 달아드리며 은혜와 사랑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있다. 스승의 날 행사는 평소 스승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제자들의 마음이 하나로 표현된 것으로 이 운동의 근본적인 정신은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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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옥녀봉 남측 암벽에 있는 조선 후기 암각문. 암각 해조문은 하루 유동인구 10만을 헤아리는 거대 시장이었던 강경 지역의 풍부한 경제력과 임리정(臨履亭), 팔괘정(八卦亭), 죽림서원(竹林書院)으로 대표되는 흥륭(興隆)했던 학문적 분위기가 어우러져 1860년(철종 11) 강경포구에 새겨졌을 것으로 보인다. 글은 송심두(宋心斗)가 쓰고, 서항순(徐恒淳)·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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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있던 사립학교. 문화운동이 확산되면서 대한제국 이후 교육열은 고조되었으나 학교가 부족하여 만성적인 입학난이 계속되면서 급한 현안으로 부각되었다. 공립보통학교는 입학시험을 통하여 신입생을 선발하는 등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하였는데, 입학 지원자 가운데 30~40% 정도만 수용할 뿐이었다. 학령아동(學齡兒童) 구제를 위한 강습회 운영도 일시적인 미봉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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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서 물의 흐름을 이용하여 고기를 잡는 방법. 어덕매기는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자연을 이용한 고기잡이로 전통적인 ‘어살[漁箭]’ 어법을 내수면 어법으로 변용한 것이다. 어살이란 물고기를 잡는 장치로, 고기가 들도록 물이 드나드는 곳에 싸리·참대·장나무 등을 둘러 꽂아 둔 울타리를 일컫는다. 금강 하구에 속한 강경읍 주변에서는 예전부터 물이 드나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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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서 민물고기를 잡기 위해 사용하던 도구. 얼개미는 본래 곡식이나 가루 등을 치는 큰 체로서 곡물을 선별할 때 쓰이는 도구이다. 논산 지역 외에도 여러 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냇가에서 작은 민물고기를 잡을 때 사용하였다. 실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얼개미를 이용하여 냇가에 있는 고기를 떠내는 방식은 가장 원시적이면서 손쉬운 어로 방식의 하나였다. 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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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엄창섭은 1892년 12월 12일 전라북도 익산군[현 익산시] 웅포면 대붕암리 47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청포리 사립 창영학교(昌永學校)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19년 전라북도 군산 영명학교(永明學校) 학생 강금옥의 권유를 받고 강경에서 이른바 ‘강경 옥녀봉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심한다. 강경 옥녀봉 만세시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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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원래 강경포가 마을 앞에 있어서 소금배가 드나들면서 소금을 쌓아 둔다고 하여 염촌(鹽村)이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김포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염대리(鹽垈里)·강변촌(江邊村) 일부를 병합하고 염정이라 하여 논산군 강경면에 편입하였다. 1931년 강경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강경읍에 소속되어 오다가 1947년 염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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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읍은 논산시의 남부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논산시 채운동, 서쪽으로는 부여군 세도면(世道面), 남쪽으로는 전라북도 익산군 망성면(望城面), 북쪽으로는 논산시 성동면(城東面)과 접하고 있다. 강경은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강경은 전국 최대의 젓갈시장이 자리 잡고 있으며, 강경전통맛깔젓 축제를 개최하는 등 전국으로 신선하고 다양한 젓갈을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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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염천리에는 20여개, 강경 전체에는 약 140여개 가까운 젓갈상점들이 성업 중이다. 이렇게 많은 젓갈상점 가운데 강경젓갈시장 초창기부터 젓갈상점을 운영해온 젓갈상회는 신진상회와 형제상회 그리고 함열상회 세 곳이다. 약간의 시간 차이를 두고 있긴 하지만, 신진상회가 가장 빠르고 다음이 형제상회와 함열상회가 비슷한 시기에 영업을 시작하였다. 이 3개 상점이 현재까지 강경에서 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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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의병. 오일경은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 지역 출신이다. 1910년 일본의 강점이 본격화되자 나라를 되찾으려는 결심을 하고 의군(義軍)을 모집하고 지휘하여 근처 산에서 일본군 기마부대와 전투를 벌여 일본군 90명을 사살했다. 이후에도 논산 지역 일대를 돌아다니며 의병 활동을 이어가다 밀고로 일본헌병에게 검거되어 전주에서 사형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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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옥녀봉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암각군. 옥녀봉의 정상에서 내려다본 금강은 가히 절경이라 할 수 있다. 금강이 옥녀봉 앞에서 휘돌아 흘러 넓은 강폭을 이루며, 잔잔한 물가에 물고기들이 노닐며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자연 경치를 즐기며 곳곳에 암각을 새겨 놓은 것이라 추측된다. 그리고 암각 해조문은 선박들의 왕래를 돕기 위해 조수가 들어오고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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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에 있는 산. 옥녀봉은 논산시 강경읍 금강 변에 있는 낮은 야산이나 주변 일대가 금강 변의 넓은 평야 지대여서 실제보다 높게 느껴진다. 조선시대 은진현 서쪽 금강에 접한 지리적 요충지로서 산 정상에 봉수대가 있고, 아래에는 포구와 은진현의 세곡이 모이는 강창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옥녀봉의 봉화는 남쪽으로는 익산군 용암면의 광두원산의 봉수, 북쪽으로는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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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이 부여 방면에서 남동쪽으로 흐르다가 서해로 들어가기 위해 방향을 남동쪽으로 크게 굽어 돌아가는 부분에 위치한 강경은 지리적 위치가 낮은 산지인 구릉과 하천 주변의 편평한 지형인 범람원(犯濫原) 상에 자리 잡고 있으며, 북쪽의 옥녀봉(玉女峰)과 남쪽 4㎞지점에 위치한 채운산(彩雲山) 등의 구릉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20m 이하의 논산평야와 강경평야로 이루어진 평야 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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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0일의 제1차 옥녀봉 만세운동은 강경읍의 장날인 오후 3시경 엄창섭(嚴昌燮)이 주도하여 500여 명의 군중이 강경의 옥녀봉에 모여 독립만세를 부르고 하산하여 일본인이 거주하는 본정통(本町通)을 경유하여 강경시장을 일주하며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벌였다. 일본 경찰은 무력으로 진압했고 이날이 일본의 육군기념일이라 재향군인과 소방조를 동원하여 주동인물들을 체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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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채산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용암사의 연혁을 확인할 만한 자료는 없으나, 전하는 바에 의하면 백제 말엽인 660년경 채운향(彩雲鄕)에 낙안사(落雁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이 절이 용암사의 전신(前身)이었다고 한다. 낙안사는 고려 말기에 강경 옥녀봉에 옮겨 세워졌고, 절 명칭을 용암사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5년 후 다시 본래의 자리로 옮겨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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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의 금강 지류와 앞바다에 서식하는 멸치과에 속하는 물고기. 웅어는 갈대 속에서 많이 자라서 갈대 위(葦) 자를 써서 위어(葦魚, 갈대고기)라고도 한다. 강경에서는 우여, 의주에서는 웅에, 해주에서는 차나리, 충청도 등지에서는 우어라고 불린다. 몸길이는 약 22~30㎝이다. 몸통은 가늘고 길며 배의 모서리 부분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꼬리는 가늘며 길다. 입은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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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대흥리에 있는 원불교 교당. 원불교 강경교당은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인근 지역의 원불교 포교와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949년 이리교당 박영종 교도의 연원으로 입교한 백관선 교도가 1956년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으로 이주하면서 교당 설립의 뜻을 갖게 되었다. 1967년 백관선 교도와 이리교당 이정은 교무가 교당 설립을 약속하고 기반을 다져나갔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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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동만은 1898년 현재의 논산시 강경읍 중앙리에서 출생하여 자전거 상점을 운영하였다. 1919년 3월 10일 강경 지역의 사립 창영학교(昌永學校) 교사 엄창섭(嚴昌燮)의 주도 아래 이루어진 이른바 ‘강경 옥녀봉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윤동만은 엄창섭, 추병갑(秋炳甲), 고상준(高相俊) 등 시위주도자들과 함께 10일 오후 3시가 되자 옥녀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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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었고, 논산 지역에서도 1919년 3월 10일과 3월 12일 두 차례에 걸쳐 독립 만세 운동이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송재기·이근석·이봉세 등은 1919년 3월 20일 강경 장날을 이용하여 다시 독립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이근태는 1919년 3월 20일 오후 5시경에 강경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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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병주는 1894년 1월 20일 현재의 논산시 강경읍 산양리 72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연희전문학교 학생회장으로 활동하였으며, 이때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2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병주는 출소 후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국외에서의 독립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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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정자. 임리정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이 건립하여 후학들에게 강학하던 곳으로 원래는 황산정(黃山亭)이라고 하였으나, 임리정기비(臨履亭記碑)에 의하면 『시경』의 “두려워하고 조심하기를 깊은 못에 임하는 것같이 하며 엷은 어름을 밟는 것같이 하라”는 구절을 따라 임리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임리정은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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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상현(金尙鉉, 1811~1890)의 「임리정기」를 새긴 비석. 임리정(臨履亭)은 1606년 사계 김장생(金長生)이 최명룡·송흥주·윤운구와 집을 지어 학문을 닦고 연구하던 곳으로 강경의 황산(黃山) 산기슭에 있다. 이로 인하여 네 사람은 이이(李珥)의 묘당을 세우고자 약속하였으나 당시에는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1626년(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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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시장의 역사는 17세기 말경에 열린 하시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는 시장이라기보다 민간 소유답에 휴한기를 이용하여 상품을 진열하는 정도였다. 1808년 저습지를 매립하여 입지를 확보하면서 큰 시장의 규모로 확대되었다. 그 후 인구가 늘어나면서 시가지를 조성하게 되어 상권은 더욱 넓어졌다. 상시장이 생긴 것은 지금의 북옥동 등 옥녀봉 밑의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시장을 증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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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젓갈시장은 7월 중순부터 11월말까지이나 김장철 직전에 성시를 이루어 대전, 군산, 익산, 전주 등지에서 몰려온 젓갈류 도매상들과 소비시장에 내다 팔기위해 소량이나마 도매값으로 사려는 소상인들, 김장젓갈을 싸게 사려고 온 주부들 등으로 붐빈다. 8월 초부터 12월 초까지의 성수기에는 하루 평균 250~300여 드럼이 거래되며 가을철에는 1일 평균 120여대의 관광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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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젓갈의 특징은 모든 재료를 원산지에서 직접 가져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전통비법에 따라 현대화된 시설로 정갈하게 제조되어, 전국의 어느 젓갈과 비교될 수 없는 옛 고유의 참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젓갈은 발효 식품이기 때문에 발효의 방법과 발효 과정에서 맛과 품질이 좌우된다. 강경에서는 재래식 토굴이 아닌 현대화되고 과학적으로 시설되어 10~15℃ 정도를 유지할 수 있는 저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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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현재 전통맛깔젓 협동조합원의 회원 명단을 확인하면, 맛깔젓조합 박종율 협회장이 운영하고 있는 대복상회 등 총 82개 젓갈상회가 협회에 가입하고 있다. 물론 현재 강경읍 일원에서 대략 140여 개의 상회가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모두 젓갈협회에 가입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82개 젓갈협회에 가입되어 있는 젓갈상회 가운데 염천리에 주소를 갖고 있는 젓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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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부터 대를 이어 함열상회를 운영하고 있는 최순덕(여, 1956년생, 염천리 주민/함열상회 사장) 사장은 국민학교 때 전라북도 익산군 함열에서 강경으로 이사해 와서 황산국민학교(현 황산초등학교)로 전학하여 졸업을 하였다. 그리고 강경여자중학교에 진학하여 중학교 시절을 강경에서 지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가서 고등학교를 다녔으며, 결혼 이후 계속 서울에서 생활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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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강경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140여 개에 달하는 젓갈상회 가운데 가장 오래전부터 젓갈상회를 운영해 오고 있는 신진상회 심희섭(남, 1934년생, 염천리 주민/신진상회 사장) 사장에게 강경포구의 기억과 젓갈상회의 변천에 관하여 이야기를 들었다. 신진상회 심희섭 사장은 1934년 전라북도 익산군 삼기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삼기면 고향에서 국민학교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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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젓갈시장 이 형성되기 시작한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오랜 기간 동안 염천리에서 젓갈상점을 운영해온 형제상회 박청수(남, 1939년생, 형제상회 사장) 사장을 만나 염천리의 변천과 젓갈상회의 유래 등에 관하여 이야기를 들었다. 염천리의 지명은 예전부터 ‘염정(鹽井)’, ‘염대(鹽臺)’, ‘소금터’라고 불렸었는데, 염정은 일제강점기에 주로 사용되었던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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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지역은 과거 포구에 생선배가 많이 드나들 때부터 지역민들이 생선 다루던 전통 있는 솜씨로 맛좋은 젓갈을 담글 뿐 아니라 전국에서 생산되는 젓갈 중에서 좋은 젓갈만을 선별해서 구입하여 발효시켰기 때문에 강경젓갈이 전국 소비자들로부터 호평과 사랑을 받으며 유명해졌다. 이러한 강경 전통맛깔젓을 대내외에 널리 홍보하고, 강경전통 되살리기운동 전개와 연계하여 강경상권 회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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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9일(목)부터 13일(월)까지 금강 강경포구와 젓갈시장 일대에서 강경발효젓갈축제가 있었다. 축제의 장이 마련된 강경포구는 금강의 중하류에 위치해 있다. 강변에 잔디밭으로 넓은 둔치를 만들어 행사장소로 활용한 축제 마당은 옥녀봉과 죽림서원, 젓갈전시관, 유람선 선착장 등과 갈대가 피어난 강변 경치로 인해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음을 볼 수 있었다. 우선 강경을 찾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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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기섭은 1898년 12월 27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채산리 274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염정(䀋町) 지역에서 곡물상을 경영하고 있던 정기섭은 1919년 3월 10일 오전 엄창섭(嚴昌燮) 등의 독립 만세 운동 주동자들의 참여를 권유받고 이날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규섭에게도 함께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19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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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서 낚싯줄에 여러 개의 바늘을 달아 고기를 잡기 위해 만든 어업용 도구. 주낙은 땅주낙·뜬주낙·선주낙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땅주낙은 물속의 땅 가까이에서 생식하는 고기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뜬주낙은 표층이나 중층에 있는 어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데, 이 경우에는 낚시가 수면 아래 적당한 깊이에 있어야 한다. 선주낙은 낚싯줄을 수직으로 늘어뜨렸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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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서원. 논산시에서 익산 방향으로 국도 23호선을 타고 약 9.71㎝ 가면 강경읍이 나온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약 0.72㎞ 가다보면 황산리가 나온다. 죽림서원은 황산리에서 북쪽에 솟은 동산을 두고 금강 쪽을 바라보며 자리하고 있다. 죽림서원은 1626년(인조 4)에 세워졌다. 1663년(현종 4)에 중건하였으며 그로부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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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 죽림서원에 있는 조선 중기 묘정비. 죽림서원은 1626년(인조 4)에 세워진 사립 교육 기관이다. 본래 창건 때에는 지명을 따서 황산 서원(黃山書院)이라 하였다. 죽림서원 창건에 최초 발의하고 건의한 인물들은 김장생의 문인인 최명룡, 송흥주 등이었다. 이들이 이이(李珥), 성혼(成渾), 김장생(金長生)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황산사(黃山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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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원래 강경의 한 가운데 있어서 중촌(中村)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일본식 이름 중정(中町)으로 되었다가 1947년 일본식 동명 변경으로 중앙동(中央洞)이 된 데서 유래했다. 충청남도 은진군 김포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분전리(粉廛里), 제포리(薺浦里), 죽전리(竹廛里), 신대리(新垈里), 원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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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금정(錦町)이라 했다가 1947년 일본식 명칭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채운산(彩雲山)의 이름을 따서 채산동(彩山洞)이라 한데서 유래했다. 충청남도 은진군 채운면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채산리(彩山里), 학동(鶴洞), 작지리(鵲旨里), 양촌리(陽村里) 성북리(城北里)를 병합하여 금정이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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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논산군 채운면에 편입된데 유래한다. 부연하면, 1931년 강경읍에 편입될 때 영정(榮町)으로 되었으나, 1947년 일본식 명칭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1914년 지명인 채운면(彩雲面)에 의거하여 채운동(彩雲洞)이 된데서 유래한다. 충청남도 은진군 채운면에 속한 지역이었는데 방죽 채운제(彩雲堤) 안쪽이 되므로 방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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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채운리 골뜸마을에서 매년 음력 3월 삼짇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강경읍 채운리 골뜸마을은 소로를 사이에 두고 전라북도 익산군 망성면 신흥리와 경계가 되는 곳이지만, 도계와 무관하게 한 마을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마을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산제 역시 하나의 촌락 공동체를 구성하는 골뜸마을과 신흥리가 공동으로 지내는 것이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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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채운산에 있는 시대 미상의 산성. 산성이 자리한 채운산은 강경읍의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해발 57m의 나지막한 구릉이지만 주변 지역이 평야로 되어 있어 전망은 좋은 편이다. 북쪽으로는 옥녀봉산성과 불암산성이 건너다보이고, 서북쪽으로는 금강 본류가 흐르고 있다. 동북쪽으로는 넓은 논강평야(論江平野) 건너에 논산 황화산성이 있고, 동남쪽으로는 익산 미륵산성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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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5월 경부선의 개통은 강경의 쇠락을 예고하는 전주곡이었다. 경부선이 금강의 소항 종점인 부강을 지남에 따라 군산과 강경을 경유하여 부강으로 공급되었던 수산물과 일용 잡화는 부산과 인천을 경유하는 철도가 수송함으로써 금강수운의 역할은 자연히 감퇴할 수밖에 없었다. 경부선이 상류의 공주와 청주 지역을 강경의 상권에서 분리시킴으로써 금강수운과 하안취락은 큰 변혁을 겪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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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추병갑은 1903년 8월 14일 현재의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청포리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6일과 3월 7일경 세도면 사립 창영학교 교사 엄창섭(嚴昌燮)의 주도 아래 1919년 3월 10일 강경 장날에 독립 만세 운동을 일으키기로 정하고 본격적인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1919년 3월 8일 추병갑은 강경읍에서 한지 60매,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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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대화정(大和町)으로 되었다가 1947년 일본식 명칭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태평동(太平洞)으로 된 데서 유래한다. 충청남도 은진군 김포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교항리(橋項里), 조대리(鳥垈里)를 병합하여 대화정이라고 하고 논산군 강경면에 편입하였다. 1931년 강경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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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정자로 1633년(현종 4)에 송시열이 건립함. 1663년(현종 4) 송시열이 스승인 김장생이 임리정을 짓고 강학을 시작하자 스승과 가까운 곳에 있고 싶은 마음에 팔괘정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당대의 학자 및 제자들을 강학하였던 장소로 전해지는 팔괘정은 죽림서원의 북쪽 언덕에 서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마치 죽림서원의 양 날개처럼 사우를 위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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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 팔괘정 주변에 있는 조선 중기 암각군. 우암 송시열이 팔괘정을 짓고 생활하고 있을 때 팔괘정에 글이 걸린 꿈을 꾼 뒤 새겼다고 전한다. 각자를 한 정확한 연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논산에서 강경읍 방면으로 국도 23호선을 타고 6.32㎞를 가다 보면 산양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지방도 68호선을 타고 약 0.5㎞를 가면 강경읍 역전로가 나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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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은 우리나라 4대 강의 하나인 금강 상류에 위치한 내륙항으로, 도로 교통이 발달하기 전에는 하루에 100척 이상의 각종 선박들이 서해와 남해 등지에서 잡은 각종 생선과 김, 미역 등과 같은 건어물과 소금 등을 싣고 포구에 몰려와 거래를 했다. 물건을 판 돈으로 그들의 생활에 필요한 생활필수품을 구입해 가는 등 그 당시에 강경포구는 내륙과 섬과 갯가 사람들의 교역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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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강경포구에서 부두노동일을 하였던 이병순(남, 1931년생, 중앙리 주민) 할아버지로부터 약 10여 년간 포구에서 부두노동자로 일을 하였던 오래전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병순 할아버지는 지금부터 약 40년 전인 38세에 부여군 양화면에서 강경으로 이주하였다. 그는 강경으로 이주했던 38세부터 강경포구가 쇠락해져서 포구로서의 기능이 사라진 48세까지 약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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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중앙리 67번지에서 쌀 상회를 운영하면서 중앙2리 이장을 맡고 있는 서완길(徐完吉) 이장은 강경에서 태어나서 성장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토박이이다. 서완길 이장은 강경포구가 번성하였던 1970년대 초반까지 포구에서 객주 생활을 하였다. 서완길 이장은 달성서씨로 원래는 현재의 논산시 가야곡면이 고향이다. 그의 집안은 논산시 가야곡에서 13대 조상부터 살아왔다. 그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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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한규섭은 1898년 2월 7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10일 오전에 한규섭은 정기섭(鄭沂燮)으로부터 50명의 청년이 강경 지역으로 와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기로 정해져 있고, 다른 지역은 이미 독립 만세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오후에 있을 독립 만세 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받았다. 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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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지역에 있던 창고업과 금융업을 겸한 한성공동창고회사 소속 출장소. 조선 후기 이래 강경 지역은 충청남도에서는 물론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상업도시로 발전을 거듭하였다. 쌀과 수산물은 강경지역을 거쳐 개항장이나 전국 각지로 유통되었다. 이에 부응하여 상업 활동을 지원하는 금융업과 창고업도 성행하는 계기를 맞았다.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에 한성공동창고회사는 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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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있던 한호농공은행의 지점. 1890년대 중반 정부 관료와 자산가 등에 의하여 국내에 근대적 개념의 은행이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1906년 통감부(統監府)가 설치된 이후 민간에서는 민족자본 육성을 위한 은행을 설립하고자 하였다. 한성은행이나 대한천일은행 등이 귀족과 지주·거상 등을 중심으로 설립된 것에 반하여, 한호농공은행 강경지점은 논산 지역 상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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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설립된 충청남도 논산 지역 최초의 근대적 의료기관. 호남병원은 1913년에 설립되어 이듬해인 1914년에 개업하였다. 1928년 병원 건물을 신축하였으나 2004년 멸실되었다. 호남병원은 강경읍 서창리 55-1[계백로167번길 49]에 위치하였으며, 전체 면적 438㎡에 건물 면적은 240㎡였다. 병실 10여 개를 갖추고 있었으며, 건물 규모는 지상 2층, 건물 구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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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대흥리에서 연산면 천호리를 경유하는 철도 노선. 호남선(湖南線)은 대전조차장역에서 목포역에 이르는 총거리 252.5㎞의 철도이다. 대한제국 고종 때에 서울에서 목포에 이르는 철도를 부설하려고 하였으나 수원에서 천안, 대전을 거쳐 영남으로 이어지는 경부선 철도의 부설권이 일본 측에 넘어가 독자적인 간선 철도를 부설하는 데 실패하였다. 그 뒤 1914년 조선총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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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무지개다리가 있어 무지개다리, 또는 홍교리라고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김포면(金浦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포(越浦)·북촌(北村)·상원촌(上原村)·병부(並付)·중촌(中村)의 각 일부와 신장리(新場里)를 병합하고 일본인들의 본거지라는 뜻에서 본정이라 하여 논산시 강경면에 편입하였다. 1931년 강경면이 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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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의 황산나루에서 주로 잡히는 참복과 어류.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나루에서 주로 연안에 분포하며 봄에 산란을 위해 금강으로 올라오는 황복을 잡아 황복탕을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87년 정도의 전통을 자랑하나, 하구 둑의 건설로 소류(遡流)가 어려워지고, 강 하구가 오염되거나 식용으로 남획되는 등의 이유로 근래에는 수가 크게 감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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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과 부여군 세도면을 잇는 다리. 황산벌을 지난다는 의미를 담아 황산대교라 하였다. 교량 형식은 PSC 상자형, 하부 형식은 벽식 교각, 기초 형식은 우물통 기초이다. 충청남도에서 발주하여 삼부토건에서 시공하였으며, 설계는 영국 스트롱홀드 인터내셔널과 동일기술공사에서 시행하였다. 건설 기간 3년 3개월, 건설 비용 76억 원이 들었다. 1987년 6월 논산과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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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황금정(黃金町)으로 되었다가 1947년 일본식 명칭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황산동(黃山洞)으로 된 데에서 유래하였다. 전라북도 여산군에 속한 지역이었는데, 황산(黃山)과 황산포(黃山浦)가 있어 황산이라 하였다. 1895년(고종 32) 충청남도 은진군 김포면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황금정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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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강경천 일대에서 겨울을 나는 황새과에 속하는 새. 황새는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 및 북아메리카의 북부를 제외한 전 세계에 분포한다. 그중 우리나라의 황새는 러시아와 중국 동북부 및 일본 등지에서 번식하던 황새와 같은 아종이다. 과거에는 텃새로 살았지만, 현재는 중부 이북에서 번식한 대륙의 황새가 중국 본토와 우리나라 중부 이남, 일본 등지로 남하하여 월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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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 강경포구를 드나들던 황토로 물들인 돛을 단 배. 강경포구는 조선 후기 내륙의 대표적인 3대 장시의 하나로, 서해안의 소금과 해물이 강경포구를 통해 충청도 내륙 전역으로 유통되었다. 조선 후기의 유일한 운송 수단인 황포돛배는 면포에 황톳물을 들인 기폭을 달고 끊임없이 금강을 오르내렸다. 금강에 토사가 쌓이고, 금강 하구가 막혀 운항이 중단되었지만 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