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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태고종 소속의 불교 사찰. 가덕사가 위치해 있는 가마봉은 마을 남쪽을 둘러싸고 있으며, 가마봉과 마을 사이에 개천이 흐른다. 풍수 지리적으로 가마봉은 남근의 모양을 띠고 있고, 마을은 여근 형국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마을 사람들이 마을 앞 개천에 버드나무를 심어 음기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았다고 전한다. 마을 가운데에 봉황의 알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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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승려. 호는 구곡 또는 소은. 속명은 유씨이다. 『동문선(東文選)』에 실려 있는 이색의 「승련사기」에 따르면, 각운은 태고 보우의 법맥을 계승했다. 학덕이 높고 필법이 뛰어났다고 한다. 공민왕으로부터 그의 도행이 숭상을 받았다. 이로 말미암아 공민왕이 「달마절로도강도(達磨折蘆渡江圖)」와 「보현육아백상도(普賢六牙白象圖)」를 직접 그려 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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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신흥 종교 창시자. 본관은 진주. 수은공(睡隱公) 강항(姜沆)의 후손이다. ‘유도갱정’이라는 유도 계통의 신흥 종교를 창시한 강대성은 오낙중에게 받은 『음부경(陰符經)』을 읽으며 본격적인 수행에 들어갔다. 그는 아들, 부인과 함께 회문산에 들어가 도를 닦았다. 그러나 얼마 후 부인이 죽자 강대성은 남원, 구례 등지를 배회하다가 지리산으로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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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노암동에 있는 천태종 소속의 불교 사찰. 1985년 1월 15일 천태종 소속의 불자들이 죽항동 최영식의 주택에 모여 신도회를 결성했고, 1988년 1월 10일 금동에 신도 회관을 건립했다. 남원 지역에서 천태종의 포교가 활발해지자 천태종의 본산인 충북 단양의 구인사에서 스님을 보내 포교에 도움이 되고자 불사를 도와주었다. 그러다 1997년 12월 윤갈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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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 지장전, 관음전, 약사여래불, 산신각, 주좌, 적멸보궁, 불경 고서 등의 건물 및 유물이 있다. 현재의 관음사는 원래 이 지역에 위치해 있던 보현사의 산내 암자로서, 고려 후기에 창건되어 안불암(安佛岩)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누가 안불암을 창건했는지 알 수 없으나 일제 시대 전까지 불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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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 구룡사가 위치한 곳은 구룡폭포의 상류 지역인데 이곳의 물이 깨끗하고 맑아 남원의 유명한 소리꾼들이 와서 물을 마시고 판소리를 공부했다고 한다. 일제 때 명창 송만갑도 이곳에서 득음했다고 한다. 또 이곳은 기운이 영험하여 많은 무당들이 굿을 하였고 도인들이 많아 도인골이라 했다 한다. 옛날에 운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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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어현동에 있는 조계종 소속의 화엄사 말사. 극락암은 남원시 관광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춘향촌 양림 단지 안의 남원랜드 뒤에 자리 잡고 있다. 남원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명당에 위치하고 있는 비구니승 암자다. 1957년 9월 미륵전과 요사가 건립되었고, 초대 주지로 명선이 취임했다. 1955년 4월에 대웅전 건립과 동시에 토고약사여래불과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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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위치한 태고종 소속의 불교 사찰. 남원시 아영면 아곡리 남쪽 황산 자락에는 이 고장에서 유명한 ‘베틀 바위’가 있는데, 그 모양이 마치 옷감을 짜는 베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베틀 바위는 면이 넓고 평평하여 성인 십여 명이 앉아서 놀 수 있을 정도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이 바위에 신령이 깃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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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경주(慶州).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의 후손이다. 1579년(선조 12)에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쳔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청주에서 싸우다가 순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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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했던 의병. 김복흥은 명문가의 후손으로 태어나 진사시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군사와 군량을 모아 권율 장군과 명나라 지원군을 도왔다.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경언(景言), 호는 계곡(谿谷). 좌의정 양경공(襄景公) 김승주(金承霔)의 후손이며, 사정(司正) 김익창의 아들이다. 김복흥은 효성이 지극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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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경범, 호는 대곡. 판도판서 김관(金管)의 후손이다. 노사 기정진의 문하로 유교의 경전 가운데 사서에 능통했다. 스승인 기정진이 그를 ‘김맹자’라고 말하며 칭송했다고 한다.특히 성리 철학에 밝고 문장에 능했다고 한다. 『대곡집』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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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보자: 김영만(61세) 남원시 산내면 중황리 1558번지 거주 조사자 - 여기가 목기도 있었고, 한지 문종이도 많이 만들었죠? - 문종이 보러 이거 원산지는 뭐, 타지방은 말헐 것도 없고, 요 산내로 가서는 이 중황, 상황, 하황, 이 우개 삼개 부락이 있잖아요. 젤로 우개가 상황, 중황, 하황인디, 그 다음에 백일리, 그 세 부락, 네 부락 다 만들어요. 그러고 인제 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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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을생 할아버지는 백일리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백일리의 유래는 실상사 창건과 불과분의 관계가 있어. 원래 이곳은 전인미답의 산중이었는데, 통일신라 말기 대가람 실상사가 우리 마을 앞에 창건될 때, 스님을 따라 들어온 속세의 사람들이 최초로 우리 마을에 정착했다는 전설이 있어. 실상사의 번창과 쇠락이 마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해.” 참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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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태몽은 없지만 본시 우리 집안은 대대로 불교를 신봉했던 지라 어머니가 나를 낳기 전에 매동 뒤의 서진암에서 부처님에게 자주 기도를 드리며 아들을 점지해 주기를 소망했으니, 내가 세상에 나온 뒤 어머니는 ‘너는 부처님의 원력으로 낳은 아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내가 성장하여 스님들이 쓰시는 발우(鉢盂)의 제작을 평생의 업(業)으로 삼은 것도 어머님의 말씀과 무관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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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을생 할아버지는 고희가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금호공예’를 운영하며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그의 공식 직함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3호이자 ‘금호공예’ 사장이다. 그는 주로 자신이 경영하는 공방(工房)을 통해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또 실상사는 물론이고 전국의 명산대찰의 스님들과도 수시로 교류를 하고 있다. 마을의 대소사도 소홀히 하지 않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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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할아버지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 온 삶이 부처님의 원력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할 정도로 불교에 심취한 분이다. 하시는 일이 주로 불교 용품을 제작하는 일이고, 하루 일과도 참선과 수양을 통해 시작하고 끝낼 정도로 전형적인 불제자의 생활을 하고 있다. 그가 실상사 앞마을에서 태어나고 한 평생 발우를 제작하게 것이 모두 부처님과의 인연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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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을생 할아버지는 1957년 간부 후보생이 되어 1년 동안 고된 훈련과 엄격한 교육을 마치고 난 뒤, 1958년에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1969년 대위로 예편할 때까지 12년 동안 전후방의 여러 지역에서 군대 생활을 했다. 군문에서 장군이 되는 꿈을 꾸기도 했지만 비육사 출신으로서의 한계를 절감하고 예편했다. "막상 예편하고 보니까 육군 대위 출신을 특별히 반겨주는 곳이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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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생.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여성(汝成), 호는 하간. 제학(提學) 김신민(金新民)의 후손이자 선무량 김영진의 증손이다. 김재백은 어려서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문하에 나아가 유학과 예론 등을 공부했으며, 1682년(숙종 8)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했다.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스승 송시열이 유배될 때 스승의 무죄를 상소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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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생. 본관은 김해(金海). 휘는 치삼(致三), 자는 일지(一之), 호는 도연정(道淵亭).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김대장(金大壯)이고, 아버지는 김장이다. 1606년(선조 39)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음직으로 참봉에 제수되었다. 한강 정구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는데, 여헌 장현광·미수 허목 등 당시 석학들과 동문 수학하여 교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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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부안(扶安). 할아버지는 김수민(金壽民)이고, 아버지는 김복현(金復鉉)이다. 1827년(순조 27) 증광시 병과에 합격하였다.김해부사와 병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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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괴양리에 있는 남원 삼동굿놀이 진행·보존을 위해 조직된 단체. 남원 삼동굿은 남원시 보절면 괴양리에서 백중날 행하는 세시풍속이다. 남원삼동굿보존회는 이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행사 때마다 수시로 조직된다. 삼동굿놀이를 위한 조직이 언제 결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보절면 괴양리의 이기승, 양성현, 박지흥, 김인석, 김복녕, 송하덕, 이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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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위치한 준종합병원. 남원삼성병원은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병원으로, 남원 지역의 유일한 중소병원으로서 의원과 종합병원 사이의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남원의 대표적인 응급의료병원으로 지정되어, 야간 및 휴일에도 응급환자를 위해 24시간 대기체제를 갖추는 등 의료 서비스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남원에서 내과를 개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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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에 있는 대한산악연맹 전라북도 연맹의 지부. 산악 운동을 범시민 운동화 하여 시민의 체력 향상과 건전하고 명랑한 사회 기풍을 진작시키기 위해 설립되었다. 각 종 등반 경기에 관한 홍보와 보급 및 장려하는 일을 하고 있다. 산악 운동의 발전과 등반 경기 기술 향상을 위한 연구 및 사업, 우수 산악인과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해외에 있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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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죽항동에 있는 MTB동호회이자 자전거연합회. 자전거를 통해서 전라북도 남원시민의 심신을 단련하고, 자전거의 장점을 시민에게 홍보하여 동참하게 함으로써 시민의 건강과 친목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 2001년 9월 1일 초대 회장 김관찬을 비롯하여 회원 42명으로 설립되었다. 2003년 1월 김동주 회장이 취임하여 지금까지 회장을 맡고 있으며,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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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죽항동에 있는 양한방 의학의 협진을 통한 특화된 동서협진병원. 남원한방병원은 2005년 6월 14일 서오미 원장을 대표로 내과·정형외과·일반외과·통증의학과 등을 개설하면서 개원하였다. 2005년 8월 자동차 운전면허 적성검사 의료기관으로 지정되었고, 2006년 3월 법인설립허가를 받았다. 2006년 3월 학재의료재단 남원중앙병원 의료법인을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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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있는 의료 기관. 중풍, 치매, 고혈압 등 노인성 질환 및 만성 질환자에 대한 전문적인 치료를 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2005년 6월 1일 원광효사랑한방병원이 개원하였다. 2006년 3월 1일부터 2007년 2월 28일까지 전주 원광대 한방병원에서 위탁 경영하게 되어 원광대학교 남원한방병원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2007년 3월 1일 남원효사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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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남창리는 섬진강을 분기점으로 전라남도 고달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법정리로서의 남창리는 행정리인 용강리·신평리·남창리로 나뉘어 있다.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남창리는 용강, 또는 남원부의 조세 보관창고인 남창이 있어 남창부라 했다. 남창마을은 1610년(광해군 2)경 해주오씨가 최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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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왕정동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 남원 교룡산과 성원고등학교 사이의 명당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사찰로 비구니 승려들의 수행 정진 도량이다. 893년(진성여왕 7)에 도선국사가 이곳의 지세가 너무 강하다고 여겨 이를 누르기 위해 대곡암(大谷庵)이란 절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정유재란 때인 1597년(선조 30)에 절이 불에 타 소실되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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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어현동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 1920년 승려 응수와 노영준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암자 경내의 원통전은 정면 세 칸 측면 세 칸 규모의 팔각지붕 건물로 1929년에 건립한 뒤 1980년대에 약간 늘려 중수했다. 1949년에 미륵전을, 1970년에는 산신각을, 1986년에는 칠성각을 각각 지었다. 현재 조계종 소속의 비구니 승려 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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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있는 대한불교 법화종 소속의 사찰. 1967년 승려 도암이 신도들의 공양을 받아 도인사를 창건했다. 창건 당시 화주 김해 김씨로부터 대원각 건립의 물질적 지원을 받았다. 이후에도 많은 신도들의 공양으로 관음전과 칠성각 등이 추가로 건립되면서 현재와 같은 규모의 도인사가 완성되었다. 2007년 4월 현재 도암의 아들인 도정이 주지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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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신촌동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 동림사의 초대 신도 회장이었던 양창현 옹은 『나의 70평생』에서 동림사의 창건 취지에 대해 썼다. “첫째, 영원한 세계의 존재를 마음으로 믿고 체득함으로써 유한한 인간계를 넘어선 경지에 돌입하고, 둘째, 죽음으로써 마음이 아울러 인간계로부터 해방되어 영원 자체의 세계에 들어가며, 셋째, 우리가 인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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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두신리는 행정리인 신촌리와 두곡리의 2개 행정리로 나뉘어 있다. 남원시에서 10㎞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요천수를 경계로 금지면과 인접하고 있다. 본래 남원군 두동면 두곡리 지역으로 두실, 망골 또는 두곡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신촌리·두곡리를 병합하여 두곡과 신촌의 이름을 따서 두신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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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승려. 본관은 웅진. 속성은 박씨(朴氏)이다. 진사 박경승(朴景升)의 아들로 유가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승려가 되어 승과에 장원 급제했다. 만항은 금강산, 지리산 등의 명산에서 수행을 하였고 낭월사(朗月寺), 운흥사(雲興寺), 선원사(禪源寺) 등의 주지를 지냈다. 그는 1313년(충숙왕 1)에 만행산에 보현사를 창건했고, 충렬왕의 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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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승려. 무기의 출생지는 미상으로, 호는 대혼자(大昏子)이다. 지리산에 숨어 있으면서 30여 년 동안 누더기 옷 한 벌로 지냈다고 한다. 겨울과 여름에는 산속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고, 봄과 가을에만 세속에 나와 70여 곳의 암자를 찾아다니면서 한번 머물면 10여 일이 지나야 그곳에서 나왔다고 한다. 한 곳에 머물 때는 서너 말의 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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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형태로 헤아릴 수 없는 문화적 소산으로 역사상, 또는 예술상 가치가 높은 것을 지칭하는 말. 무형문화재는 문화재 보호법에 따라 국가가 문화재위원회의 자문을 거쳐서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보호 대상으로 하는 문화재를 말한다. 연극·무용·음악·공예기술 등을 대상으로 하는데, 대상이 형체가 없기 때문에 실제는 그 기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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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노암동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암자. 미륵암은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암자로, 신라 말 고려 초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1947년 중창되었다. 원래 이 사찰이 자리 잡은 골짜기를 부처골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 전부터 이곳에 사찰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6·25전쟁 전에 덕봉이 이곳에서 토굴을 짓고 수도하였다. 그 후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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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죽산(竹山). 호는 송암, 시호는 충현. 남원에서 세거한 죽산박씨의 조상이다. 박문수는 고려 말에 우정승을 지냈으나, 조선 개국 후 두문동에 들어가 고려왕조의 신하로서 절개를 지켰다. 조선 개국 후 아들 박포가 2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게 대항하다가 참수당했다. 당시 박문수의 손자인 박자량이 전라관찰사였는데, 숙부 박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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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경엽(慶燁). 이조판서 난계 박연의 후손이며, 박성신(朴聖臣)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어버이 상을 당하자 무덤 근처에 여막을 짓고 3년 동안 시묘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가 반란을 일으키자 숙부 박성재, 사촌 동생 박상엽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진사 오상복을 따라서 팔량치에 나아가 같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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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박자량은 어린 시절부터 재주가 비범하여 마을 아이들과 놀 때에도 경사에 있는 말을 외워 모두를 놀라게 했다. 또한 『주역(周易)』을 연구하여 천문과 의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사서삼경과 『육도삼략(六韜三略)』을 통독하여, 독서를 시작하면 침식을 잊었다. 조선 태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한성판윤을 지냈고, 이어서 전라관찰사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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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양. 자는 옥여(玉汝), 호는 금서. 증조부는 방사량(房士良)이고, 할아버지는 방구성(房九成)이며, 아버지는 방계문이다. 1495년(연산군 1)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519년(중종 14) 효행으로 천거되어 현량과시에 병과로 합격하였다. 정언·수찬 등을 지냈고, 이조참의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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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선비.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회경. 전적 방원정의 아들이다. 1646년(인조 24)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는데, 이때 아버지 방원정도 문과에 함께 합격하였다. 평소 뜻을 배움에 두고, 옛것을 믿고 행동을 민첩하게 하였다. 효행과 우의를 아울러 다하였는데, 상제(喪祭)에 이르러서는 옛날의 예의를 한결같이 지키고자 하였다. 향리(鄕里)의 크고 작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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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전파를 통해 공중(시청자)에게 전파하는 매스커뮤니케이션. 전라북도 남원시에는 KBS 남원방송국과 군소 유선방송국이 있다. KBS 남원방송국은 1952년 10월 25일 대통령 제649호에 따라 남원군 남원읍 동충리 305번지에서 최초로 개국했다. 1986년에 지금의 남원시 향교동에 연건평 1,355평 규모의 지하 1층 지상 3층의 청사를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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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생.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준부(俊夫), 호는 사계(沙溪). 할아버지는 호조좌랑 방귀화(房貴和)이고 아버지는 방한걸(房漢傑)이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방원진(房元震)이 손자이다. 일찍이 조식(曺植)·이항(李恒)의 문하에 출입하며 학문을 닦았으나 관직에 뜻이 없어 과거에는 나가지 않았다. 주생면 영천리에 있는 사계천 위에 집을 짓고 송시(誦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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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수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마을의 유래와 역사는 다음과 같다. "실상사가 생기면서 마을도 생겼다고 해. 실상사는 참 사연이 많은 절이야. 왜정 때는 왜놈들 수비본부가 주둔했고, ‘여순반란’ 사건 때는 국군 본부, ‘6·25’ 때는 인민군 본부가 있었어. 지리산에 숨어 있는 반란군들을 토벌하려면 평지에 있는 실상사를 주둔군 본부로 활용하는 게 가장 유리했지 않았나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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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의 껍질을 벗겨 말린 감을 곶감이라 한다. 곶감은 장기간 저장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인데 건시라고도 한다. 곶감은 제사를 모실 때 바치던 계절식품이기도 하며 간식용으로도 애용되었다. 수정과를 만들 때 넣어서 단 맛이 우러나게 하는 용도로 활용되기도 했다. 곶감이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 때 중국에 보낸 예물 목록 중에 곶감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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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일흔 일곱이므로 1930년 생이야. 본관은 김해 배씨(裵氏)이고 조상 대대로 경남 합천에서 살았어. 할아버지 때 백일리로 이주했다고 해. 할아버지께서 합천에 살 때 어떤 친척이 고조부 묘 옆에다 몰래 묘를 쓴 일이 있었대. 그 일로 고향에서 크게 싸우고 이곳으로 이사 왔다고 들었어. 나는 여기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지내왔지. " "해방되기 바로 1년 전인가? 1944년에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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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배종수 할아버지는 '사단법인 6·25 참전 전우기념사업회 남원시 지회' 부회장과 '남향 쌈지돈 장학회' 부이사장의 직책을 맡고 있다. 주로 '남원 행정동우회' 사람들과 친분을 나누고 있다. 흥이 나면 ‘두만강’, ‘처녀 뱃사공’ 등의 예전 노래를 즐겨 부르고 요즘 노래는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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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신자야. 백일리 주민들은 실상사를 의지하여 생활하고 있으므로 대부분 불교 신자야. ‘6·25’ 때 공비 토벌을 목적으로 실상사를 불태우려고 했는데, 호국군 중위로 있었던 내 친형(배종석)이 극력 만류한 덕분에 화마를 면한 거야. 아마 우리 집안은 불교와 깊은 인연이 있나봐. 내가 김제의 불교 학교인 금산중학교에 진학한 것도 실상사에서 학비를 대주었던 덕분이야. " 해마다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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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경 지리산 빨갱이들이 완전히 토벌되자 마을에도 평화가 찾아왔어. 나는 산내면사무소에 취직해 총무과에서 일했어.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5.16 혁명을 만났는데, 군대 안 간 사람을 잡아들이더군. 나는 가슴과 팔에 입은 총상으로 군대에 안 갔어. 하지만 나도 병역 기피자로 몰리고 말았어. 그때 군대 안 간 사람들을 잡아들여 건설대를 조직했어. 내가 들어간 건설대가 지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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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리는 남원과 지리산을 대표하는 사찰 가운데 하나인 천년 고찰 실상사 입구에 위치한 마을이다. 따라서 마을의 형성과 발전 및 산업은 실상사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백일리에 목기 산업이 발달한 까닭도 실상사 스님들이 필요로 하는 발우, 목탁 등 불교 용구를 공급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신라 헌덕왕 때 출생한 홍척이 당나라에 유학하여 지장에게 선법을 배운 뒤 귀국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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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그 계절, 그 달, 그 시(時)가 될 때 반복해서 행하는 관습을 세시풍속이라 한다. 우리 조상들은 세시에 맞추어 하는 풍속이기에 세시풍속이라 불렀다. 대표적인 세시 풍속으로는 ‘정월’, ‘입춘’, ‘대보름’ 등이 있다. 정월이 되면 설빔을 입고 윗어른들께 세배하고 성묘하여 사람된 도리를 다하였으며, 일가 친척을 찾아 혈연의 정을 두텁게 하였다. 또한 이웃과 교분을 깊게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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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마을 총 면적은 백운봉 쪽 임야를 포함한 183.4㏊로 산내면 전체 면적의 7.09%를 점하고, 전답별 비율은 전이 농경지의 40.4%, 답은 36.2㏊로 농경지의 40.4%, 답은 36.2㏊로 농경지의 59.6%이며, 임야는 123㏊로 총면적의 67.0%이다. 전체 인구는 2006년 7월 현재, 916세대 2,157명이다. 남녀 비율이 거의 같은데, 남자가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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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운봉의 산내면 지역으로 통내(通內) 또는 백일(白日)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동수리, 서수리, 저전리, 하황리 일부를 병합하여 백일리라고 했다. 마을 뒤에는 백운봉이 솟아 있고, 지리산 천왕봉이 우뚝 솟아 있어 아침이면 백운봉과 천왕봉에 솟아오르는 태양이 깨끗하고 맑게 비치는 마을이라 하여 백일(白日)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한때는 동수, 서수, 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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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4세인 서명문 할머니가 들려 준, 백일마을과 함양군 마천면의 경계에 있는 금대암에 얽힌 전설이다. "마천 가는 도중에 금대암이라는 암자가 있어. 그런데 부엌 앞에 큰 바위가 있어서 밥을 하러 갈려면 스님이고 공양주고 간에 애를 먹었대. 하루는 마천의 내마, 외마 사람들이 그 바위를 옮겨 통행에 지장이 없게 하려고 했어. 장정들이 모여 내일 아침에 옮기기로 약속하면서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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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산내면은 삼한 시대에는 마한에, 삼국 시대에는 신라 모산현(母山縣)[운봉현]에 속해 있었으며, 940년(고려 태조 23년)에는 운봉현 산내방으로 개칭되었다. 1413년(조선 태종 13년)에는 운봉현이 군으로 승격되고, 1897년에 방(坊)이 면(面)으로 개칭되면서 운봉군 산내면이 백일(白日), 대정(大井), 입석(立石) 등 29개 리(里)를 관할했다. 1914년(순종 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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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있는 불교 암자. 백장암은 실상사 소속의 암자로, 이곳의 백장선원은 구산선문(九山禪門) 중에서 가장 먼저 문파를 이루어 한국 선불교의 전통을 계승한 곳이다. 백장(百丈)이라는 이름은 ‘평상심이 도이며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한 8세기경 활동했던 마조도일 선사의 제자인 백장 선사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백장 선사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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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왕정동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 1976년경 남원시 왕정동의 대복사가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으로 편입되었다. 이에 당시까지 대복사의 주지였던 승려 월호와 보살 견성화가 현재의 자리로 옮겨 한국불교 천태종을 종단으로 하는 보문사를 창건하였다. 지리산과 남원 평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명당에 자리 잡은 보문사는 아직 대웅전도 없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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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도룡리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 1306년(충렬왕 32) 승려 만항이 짓기 시작하여 1314년(충숙왕 1)에 완공했다. 본래 만항이 머무르던 작은 암자였으나, 꿈에 그 자리가 평생 수도할 곳이라는 계시를 받고 절을 지었다고 한다. 당시 건물로는 법당과 나한전, 약사전, 문수전, 조사전, 시왕전, 정루, 승당 등이 있었고, 소속 암자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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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불교 관련 단체. 문헌상의 기록에 의하면 남원 지역의 불교는 신라 헌덕왕 때 출생한 홍척이 당나라에 유학하여 지장에게 선법을 배운 뒤 귀국하여 지금의 지리산 산내면 입석리에 실상사를 개창하여 하나의 종파를 이룬 데서 비롯한다. 홍척이 지리산에서 창도한 선풍이 바로 한국 구산선종의 시초가 되었으므로, 남원 지역은 신라 이래 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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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은 한국전쟁 전후로 좌익 계열과 인민군 패잔병들에 의해 지리산에서 조직된 유격대를 일컫는다. 지리산에서 벌어진 동족상잔은 민족사의 최대 비극이다. 이념이 다르다고 해서 자행된 살육과 약탈에서 보면, 빨치산이든 국군·경찰이든 모두 피해자였다. 또한 누대로 지리산 자락에 삶의 터전을 잡았던 무고한 주민들이 입은 인적·물적 피해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지금은 평화와 용서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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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산정리는 등동리·가정리·마연리·산촌리를 행정리로 포함하고 있다. 수지면 면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3㎞ 떨어져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마연리·산촌리·둔촌리·가정리·외호곡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산촌과 가정의 이름을 따서 산정리라 하였다. 등동리는 약 3백 년 전부터 여양진씨, 경주김씨, 순흥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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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분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마천 가는 도중에 금대암이라는 암자가 있어. 그런데 부엌 앞에 큰 바위가 있어서 밥을 하러 갈려면 스님이고 공양주고 간에 애를 먹었대. 하루는 마천의 내마, 외마 사람들이 그 바위를 옮겨 통행에 지장이 없게 하려고 했어. 장정들이 모여 내일 아침에 옮기기로 약속하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대. ‘부처님의 신통력이 있으면 이런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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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4세인 서명분 할머니는 아직도 기력이 정정하고 매일 마을 노인정에서 할머니들과 함께 정담을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생활하고 계신다. 특히 할머니는 옛날 노래와 옛날 이야기를 많이 알고 계셨다. "마천 등구에서 태어났어. 아버지(서명수) 어머니(이수남) 사이에 아들 셋, 딸 셋을 두었는데 지금은 나만 남고 다 죽었어. 학교가면 시집 못 간다고 부모님이 공부를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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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아들집과 백일리 집을 오가며 소일하고 있다. 백일리 할머니들과 함께 정자에 모여 술 한 잔씩 하며 옛날이야기하고 노는 게 즐겁다. 남원 아들집은 아파트라 떠들며 놀 수 없다. 흘러간 옛날 노래를 참으로 좋아한다. 지금도 흥이 나면 몇 십 곡 부르는 것은 기본이다. 백일리와 남원 하이츠 아파트 노인들이 다 친한 친구들이다. 서명분 할머니에게 들은 노래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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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에 있는 실상사의 부속 암자. 서진암은 실상사의 부속 암자로서 승려들의 선방으로 활용되고 있다. 서진암은 원래 세암 또는 세진암이라 했다.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822년에 불탄 후 1827년에 성윤두타와 대영비구가 다시 세워졌다. 1917년 운담기순이 기금을 모아 중건했다. 1927년에는 서진암으로 명칭 변경을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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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곡동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 남원시 교룡산성 안에 있는 사찰로 신라 신문왕 5년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절 이름에 ‘국(國)’자가 들어가는 사찰들은 대부분 나라를 위해 큰 역할을 담당해왔던 것처럼 선국사도 나라를 지켜낸 수난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호남 지역의 6개 군현에서 거둔 군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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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 남쪽 산천을 유력하던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남원의 지형에서 주산인 만행산(萬行山)의 지세가 객산(客山)인 교룡산에 비해 너무 허약한 것을 알고, 지세를 돋우고자 만복사(萬福寺)·대복사(大福寺)와 더불어 선원사(禪院寺)를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875년(신라 헌강왕 1)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초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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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 사율리에 있는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암자. 60년 전에 김성덕화라는 보살이 남원시 덕과면 사율리의 야트막한 산자락에 산제당을 짓고 부처님을 모셨다고 하는데, 산제당이 바로 성덕암의 시초가 되었다. 김성덕화는 소재옥을 양자로 삼았는데 나중에 소재옥이 대웅전을 짓고 성덕암을 세웠다. 1997년 비구승 소재옥이 죽자, 1999년 6월 신영명 스님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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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승려. 속성은 이씨, 본관은 남원(南原). 호는 백암(柏庵). 이강의 아들이다. 성총은 13세인 1646년(인조 24)에 출가하여 전라북도 순창군 취암사에 나아가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1648년(인조 26)에 방장산으로 들어가 9년 동안 수초(守初) 취미(翠微)에게서 불경을 배웠다. 이후 송광사·징광사·쌍계사 등을 유력하면서 후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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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세전리는 동양리와 중양리·신산리 등의 행정리를 포함하고 있다. 세전리는 선사유적지를 포함한 많은 유적과 유물이 있는 남원시의 대표적인 문화 유적 마을이다. 세전리의 원래 이름은 잠밭이다. 이밖에도 솥뫼에서 뻗어내린 낙맥의 형태가 마치 지네 같다고 하여 오공동이라 하였으며, 노거수인 비사리나무가 마을 한복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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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우동리와 부동리를 행정리로 포함하고 있다. 송동면의 면소재지이다. 소가 누워 있는 형국이라 하여 소터, 솔터, 또는 우동이라 불렸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지형이 소가 누워 있는 와우혈이라고 한다. 마을 건너편 안산은 쇠구시라 하여 구시골로 부르고 있어 송기마을이 와우혈이란 것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우동리는 소의 형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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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송내리는 지리산 줄기인 원통봉 자락에 자리 잡은 산간 마을이다. 본래 이름은 봉수리라 했는데, 그후 큰솔 안·작은 솔안으로 불리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신촌리와 대촌리 각 일부와 흑성면의 신기리 일부를 병합하여 송내리라고 하였다. 고려 전기인 980년(경종 5) 전주최씨와 오씨가 처음 터를 잡았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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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면. 송동면은 법정리 13개, 행정리 26개를 관할하고 있다. 법정리로는 신평리, 송내리, 사촌리, 송상리, 장국리, 흑송리, 송기리, 장포리, 영동리, 연산리, 양평리, 두신리, 세전리 등이 있다. 행정리로는 신기리, 백평리, 송내리, 외산촌리, 내산촌리, 문치리, 오촌리, 생촌리, 원촌리, 부석리, 태동리, 동서내리, 안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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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송상리는 문치리와 오촌리·원촌리·생촌리 등의 행정리를 포함하고 있다. 본래 남원군 송내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송내리의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송상리라 하였다. 문치리는 마을의 지형이 물래 형국이라 하여 물래재로 불리던 곳으로, 마을에 사당이 생긴 뒤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아져서 ‘글월 문(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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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면. 수지면을 관통하여 흐르는 수지천이 예로부터 물이 깨끗하고 물맛이 유난히 좋아 ‘물 수(水)’자, ‘맛 진[旨]’자를 붙여 수지면이라 했다. 또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물이 시작되는 곳이란 뜻으로 옛부터 물머리[首旨]라고 불렀다 수지방(水旨坊)과 초리방(草里坊) 등 2개 방(坊)이 있었던 지역으로 1897년(고종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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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말기 전라북도 남원시 실상사에서 입적한 승려. 수철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연허(緣虛)에게 나아가 승려가 되었다. 천숭(天崇)에게서 불경을 배웠고, 그 뒤 지금의 경주시 복천사(福泉寺)에서 윤법(潤法)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그는 명산을 찾아다니며 참선을 닦으면서 틈이 있을 때마다 『화엄경』을 연구했다. 지리산 지실사에서 제장(諸藏)을 열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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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식련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 비구니 승려들이 수도하면서 불법에 용맹정진하고 있는 만행산(萬行山) 자락에 있는 사찰이다. 만행산의 ‘만행(萬行)’은 불자(佛子)가 열심히 수행하고 남을 위하여 선행을 하는 이타적인 보살행(菩薩行)을 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려 말 목은 이색(李穡)이 지은 『동문선』 제72권의 「승련사기」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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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발간되는 정보·지식·오락·광고 등을 제공하는 정기 간행물. 전라북도 남원시에는 『남원신문』·『남원투데이』 등 인터넷 계열의 신문이 있으며, 중앙지인 『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 등과 지방지인 『전북일보』 등의 통합지국이 있다. 또 지역 소식과 생활 정보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남원교차로』가 있다. 남원 지역에서 최초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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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평리는 신기리와 백평리를 행정리로 포함하고 있다. 본래 남원군 흑성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백평리와 신기리 일부와 송내면 대촌리 일부를 병합한 뒤 신기와 백평의 이름을 따서 신평리라고 하였다. 신기리는 조선 중기 청주한씨가 처음 정착하였고, 그후 옥천조씨와 김녕김씨, 동래정씨가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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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1919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평촌리, 양촌리, 오산리, 치촌리, 세전리의 각 일부를 병합한 뒤 양촌과 평촌의 이름을 따서 양평리라고 하였다. 1630년경 진주강씨가 동성 마을을 이루다가 그뒤 문화유씨와 전주이씨·흥덕장씨 등이 양지촌에 정착하였다. 그 중 일부가 평촌에 정착하여 거주하다가 1920년 6월 경신년 대홍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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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연산리는 송동면 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원시와 세전리, 금지면과 수지면 사이 도로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본래 이곳에는 오산과 방죽안, 또는 연동이란 자연 마을이 있었는데, 두 마을을 합하여 연산이라고 불렀다. 1500년경인 연산조 때 김씨와 오씨, 변씨 등이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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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효기리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 이전부터 효기리 사람들이 현재의 연화사가 소재한 지역을 미륵골로 불러왔고 따라서 이곳에 오래된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 말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도 전해지고 있지만 확실한 문헌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며 절터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1927년 절터에서 석불입상, 좌불보살상 및 삼층석탑이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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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영동리는 영촌리와 손동리를 행정리로 포함하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손동리와 영촌리, 오산리, 장포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영촌과 손동의 이름을 따서 영동리라 하였다.영촌리는 정착조인 김수은이 이곳에 정착하기까지 수많은 고개를 넘어왔다고 해서 잿말, 재마을로 부르다 영촌(嶺村)으로 바뀌었다. 손동리는 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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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교당을 두고 있는 박중빈(朴重彬)이 창시한 불교 계통의 민족 종교. 원불교는 1916년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 길룡리에서 박중빈이 창시한 종교로 불법을 정통 교맥으로 삼아 ‘불법연구회’로 활동하다가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원불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모든 존재를 서로 가능하게 하는 큰 힘과 법칙으로서, 이를 불생불멸과 인과응보를 뜻하는 일원(○)으로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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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유촌리와 포암리의 이름을 따서 유암리라 했다. 유촌리에는 1535년(중종 30) 봄에 죽성박씨 연주라는 사람이 처음 정착하였다. 이 사람은 풍수지리설에 조예가 깊어 견두산 정상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춘삼월 버드나무에 꾀꼬리집이 있는 유지앵소(柳枝鶯巢)의 길지가 있음을 알았다. 그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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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본관은 영천(永川). 효자로 이름났던 이중엽(李重曄)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이익번이다. 이부춘은 천성이 착하고 가문의 전통으로 효심이 뛰어났다. 13세에 전주이씨와 혼인하였는데, 결혼한 지 3일 만에 이씨 부인이 물을 길어 밥을 짓자 태연하게 아침밥을 먹고 나서 아내를 데리고 처가로 갔다. 장인과 장모가 반갑게 사위를 맞이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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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본관은 영천(永川). 효자 이부춘(李富春)의 자손이다. 이상규는 8세 때 이웃에 사는 당숙 댁에 갔는데 당숙모가 참외를 주었으나 먹지 않았다고 한다. 당숙모가 이상히 여겨 물어보니, “아버지 어머니께서 아직 금년에 참외를 잡수시지 않았는데 어찌 제가 먼저 먹겠습니까?”라고 대답하였다. 그는 자랄수록 효심이 더욱 지극해졌는데, 서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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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내면 매동에서 태어났는데 18세 때 김갑용과 혼인했어.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결혼했지. 그 때 신랑은 징용으로 끌려가서 소련에서 돌아 온 직후로 26세였어. 친정집 매동에서 구식 혼례를 올렸는데 시누 남편이 중매를 섰어. 내가 백일리에서 신접살림을 꾸리는 데 시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시어머니(박오분)가 과부로 있었어. 참 말도 마! 얼마나 시집살이가 심했는지 시어머니가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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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마을 정자에 나와 마을 할머니들과 이런저런 얘기하며 노는 게 일이야. 피곤하면 그늘에서 잠자고, 배고프면 먹고 정말 신선이 부럽지 않아. 아이고! 도시에서는 살라고 해도 못 살아. 이곳의 공기가 얼마나 좋은데. 남원만 나가도 공기가 달라. 아픈 할머니 있으면 면에서 사람이 와서 돌봐주고 그래. 참 좋은 세상이야." "지금 여기 누워있는 할머니들이 다 내 친구들이야. 매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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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말도 마! 저기 내려다보이는 비탈길에 오두막집을 짓고 살았어. 새마을운동 땐가, 초가집 헐어버리고 기와집을 지었지. 좁은 집에서 8남매 키우느라 참 고생 많았어. " "웬만한 반찬은 다 텃밭에서 해결했어. 장에 나가려면 인월장에 가야 했는데 옛날에 어디 장 한 번 나가기가 쉬웠어야지. 문슨 명절 때나 큰마음 먹고 인월장에 가서 먹을 것을 사왔어. 산내는 산나물이 많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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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순 할머니는 남편이 일본군에 끌려갔다가 중국에서 해방을 맞이하여 소련군에 잡혀 소련 땅에서 6년간 노동을 하고 돌아 온 아픈 기억이 있다. 몇 년 전 정부에서 일제 때 징용에 끌려간 사람들을 파악하여 보상해 준다는 소문을 듣고, 할머니께서 산내면사무소에 찾아가 남편의 과거 억울한 행적을 신고하고 보상을 받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면박을 당했다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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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본관은 영천(永川). 고려 때 효행이 깊고 정치가로도 이름이 높았던 영천부원군 이능간(李凌幹)의 후손이며, 이승언의 맏아들이다. 이중엽은 용모가 단정하고 효심이 극진하여 학문을 즐겼는데, 이는 엄격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남원양씨에게서 받은 교육 때문이었다. 부모가 먹고자 하는 음식이나 일용품이 있으면 무엇이거나 좋은 것으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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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본관은 조양(兆陽). 자는 인보(仁甫), 호는 국헌(菊軒). 아버지는 곡성훈도 임사강(林士綱)이며, 어머니는 개성고씨(開城高氏)로 이조참판을 지낸 고순(高淳)의 딸이다. 임옥산(林玉山)은 1451년(문종 1) 사마시에 합격하고 5년 후 무과에 급제했다. 군기감직장에 재임 중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하여 사직한 뒤에는 어머니의 분뇨를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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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태동리, 동내리, 서내리 일부를 병합하여 장국리라 하였다. 부석리의 명칭은 마을 앞산에 돌이 많아 생겼다. 태동리의 본래 이름은 이뜰이라고 하였다. 마을에 힘이 센 장사인 이뜰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힘이 좋다는 소문이 남원에 퍼져 이뜰장사라 불렀다. 이것이 나중에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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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 산림 면적이 가장 넓은 지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천혜의 도시 남원은 옛날부터 지리산에서 자란 다양한 수종의 나무를 이용하여 목기를 만드는 산업이 크게 번창하였다. 더구나 최초의 산문인 실상산문이 남원의 실상사에서 개창되었으므로, 남원은 자연히 한국 선종의 중심이 되었고 이에 따라 나무로 만든 불교 용구 산업도 크게 발전하였다. 목기 산업은 한때 산업화에 밀려 퇴조하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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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구 아저씨는 마을의 역사에 사건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청도 김씨(金氏)가 처음으로 들어와 마을을 개척했다고 들었어. 하지만 후손들이 번성하지 못해 집성촌을 이루지 못했어. 우리 마을은 특정 성씨의 집성촌이 아니고 김씨, 이씨, 박씨, 장씨 등 각성으로 구성되어 있어. 마을의 유래는실상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해. 우리 마을이 실상사와 구체적으로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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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마을 이장직을 맡고 있는 장종구 이장님은 올해 67세이므로 통념상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나, 마을에서는 70세 이상이 되어야 할아버지 소리를 듣고 또 중장년층에 속한 사람이 몇 명 안 되고 실제 마을일을 도맡아 하고 있으므로, 사실은 아저씨라는 호칭이 어울린다. "1939년 10월 2일 생이므로 올해 만 67세이고 부모로부터 태몽 이야기는 특별히 들은 적이 없어요. 다만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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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마을의 이장직을 맡고 있는 게 공식 조직의 전부라고 한다. 배점대, 박귀태 등의 친구들이 있는데 모두 서울 등 타지에서 살고 있어서 만나기가 어렵다고 한다. 매동에 사는 곽종식과 장항리에 사는 정인철은 같은 산내면에 살고 있으므로 가끔 만난다. 예전에는 술도 많이 먹고 노래도 잘했으나 심장이 안 좋은 후부터는 술은 일체 금하고 있으며 노래도 안 부른다. 한가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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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실한 불교 신자이다. 시간 날 때 마다 실상사뿐만 아니라 양수암, 죽림원, 약수암 등지의 암자도 자주 찾아가 불공을 드린다고 한다. 설날, 추석 등 명절이 되면 조상께 정성껏 제사를 지낸다. 한식에는 직접 선산에 가서 벌초한다. 지금은 명절에 자식들이 집에 오면 함께 식사하고 노는 게 주요 세시 풍속이다. 옛날에 놀았던 것들은 이미 다 사라지고 그저 기억만 날 뿐이다. 그래도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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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큰딸, 둘째딸을 연이어 낳자 농사만으로는 식구들을 부양하기 힘들더라고. 그래서 일자리를 수소문해 본 끝에 산내면에 소재한 ‘봉황석재’에 취직할 수 있었어. 나로서는 정규직의 일자리를 얻은 셈이지. 원체 박봉이었던지라 첫 월급을 얼마 받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1천9백원을 받았던가? 직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회사에서 ‘주동’을 많이 했어. 쟁의위원장을 맡아 사업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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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이름은 긴 냇가가 되므로 장가실 또는 장로가 되었다. 1623년(인조 원년)에 처음으로 달성서씨와 진주하씨가 터를 잡아 정착했고, 그 뒤에는 진주강씨가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본래 남원군 두동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포리라 하여 두동면에 편입되었다가 1956년 7월에 송동면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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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신촌동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암자. 남원시 신촌동 서방산에 자리 잡고 있는 해인사의 말사이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절에서 발견된 유물을 통해 고려시대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창건 이후 근대까지의 연혁이 전혀 알려 있지 않으며, 1945년 해방 후에 김완수·이순봉 등이 중창했다고만 전한다. 본래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이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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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리가 속한 산내면은 우리나라에서 첩첩산중의 오지 가운데 오지라고 할 수 있지만, 백일리는 남쪽은 벼농사를 지을 수 있는 평지가 꽤 넓고 시야가 트여 있으며, 동쪽으로는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장쾌한 경관을 자랑한다. 또 백일리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이어주는 길목에 있으므로 사통팔달의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다. 백일리는 남원과 지리산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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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유래와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물으니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실상사와 관계가 있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것은 잘 모르겠어. 처녀 때 닥종이 만드는 일이 너무 힘들어 남편을 따라 보성, 임실에서 한 3년 살았어. 그때는 이곳만 벗어나면 잘 살 줄 알았지. 어려서 배고팠던 기억이 많이 생각나요. 그때는 어찌도 그리 못 먹고 못 살았던지! 지금 생각하면 참 세상 많이 좋아졌어.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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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 아주머니를 통하여 남원시 산내면 백일리, 대정리 일대가 예전에 유명한 한지 생산 지역임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2000년까지만 해도 겨울철에는 한지를 생산하는 공장이 가동하였는데 지금은 한 두세 곳에서만 생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산내 한지 생산지 마을 주민들은 보통 15살 전후부터 가사인 종이뜨는 일을 돌보았기 때문에 대부분 종이를 뜰 줄 안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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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리(한국전쟁)가 난 해의 이듬해(1951년)에 태어났으니 올해(2006년) 만으로 55세예요. 초등학교 다니는 손자, 손녀가 있으니 할머니 소리 들은 지도 오래 되었네. 내가 태어날 당시의 상황을 어찌 알겠냐만, 어린 시절에 참으로 배고프고 가난했던 기억밖에 없어요. 그 시절엔 왜 그리도 못 살았던지! 밥을 굶어 얼굴이 노랗게 뜬 사람이 부지기수였어요. 부모로부터 무슨 태몽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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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술 한 잔씩했으나 지금은 신경성 두통이 있어서 마시지 못 한다. 최근 머리가 아프고 토하고 해서 남원삼성병원에서 2주간 입원했다. 서울에 사는 친구 박점순하고는 사돈을 맺었다. 특별히 노는 일은 없고 다만 ‘사랑은 아무나 하나’, ‘미스고’, ‘있을 때 잘해’ 등의 노래를 즐겨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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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실한 불교 신자다. 실상사에 가서 불공을 드린다. 남편이 지금도 병석이 누워있으므로 제사는 잘 안 지내는 편이다. 특별한 게 없다. 명절 때도 자식들이 다 모이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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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집은 없고 지금 개업한 식당 건물은 1년에 2백만원에 세를 얻어 살고 있다. 원래 1년 세가 150만원이었는데 올해 주인이 50만원을 인상하여 타격이 크다고 한다. 그래도 음식 솜씨가 좋다고 해서 멀리서 찾아오는 단골 덕택에 유지된다고 한다. "김치, 산나물, 멸치볶음, 추어탕, 된장찌개, 김치찌개 등이야. 식당을 운영하므로 아무래도 반찬 종류가 많아요. 손님들 입맛에 맞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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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승려. 속성은 김씨, 자는 무회(無懷), 호는 용담(龍潭). 조관은 18세에 감로사의 상흡(尙洽)에게 나아가 승려가 되었고, 태허(太虛)에게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1721년(경종 1) 화엄사의 상월(霜月) 새봉(璽封)에게서 불법을 배워 그의 제자가 되었다. 1723년(경종 3)에 영해·낙암·희정 등을 찾아가 선종과 교종의 묘리를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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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에 있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지방 사무소. 국립공원관리공단의 28개 지방 사무소 중의 하나이다. 넓은 면적의 지리산 국립공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지리산을 행정구역상 3개 구역으로 구분하여 지리산 사무소, 지리산 남부사무소, 지리산 북부사무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지리산 국립공원을 보호하고 지리산 국립공원 시설의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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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승려. 속성은 윤씨. 자는 치원이고, 호는 통소(通炤). 지칭은 어려서 승려가 되어 흥원사 승통(僧統) 교웅(敎雄)에게 불법을 사사하고 그를 섬겼다. 27세에 승과에 급제하고, 1170년(의종 24)에 삼중대사(三重大師)가 되었다. 1179년(명종 9)에 수좌(首座)에 올랐고, 1187년(명종 17)에 승통이 되었다. 그는 국가에서 개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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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부절리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 부녀자들이 기도를 드리는 기도 도량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절의 창건은 1933년 김보덕화에 의해 이루어졌다. 창건 이전에도 움막 형태로나마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므로 보기에 따라 1933년의 불사를 중창으로 볼 수도 있을 듯하다. 이는 현재 절에 있는 삼층석탑이 조선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므로 절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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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초리는 문화유씨의 세가 큰 초리와 사방이 대밭으로 둘러싸여 은신처로 알려진 서당리로 이루어져 있다. 문화유씨 시조 유차달이 황해도 문화현 초리방에서 태어났는데 시조의 탄생지 이름을 따서 초리라고 명명했다는 설과 산이 적고 들이 넓어 풀이 많은 관계로 초리라 했다는 설이 있다. 초리는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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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승려. 속성은 이씨, 본관은 남원(南原). 이덕순(李德順)의 아들이다. 현휘는 영각산사(靈覺山寺) 심광(深光)에게 출가하여, 898년(효공왕 2)에 해인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이때 그의 계행이 청정하였다고 한다. 한 번은 그가 10여 명과 함께 난리를 피하여 무주에 이르렀는데, 도둑떼의 습격을 받아 함께 간 동행이 차례로 죽었다.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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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호곡리는 외호곡리, 내호곡리, 신덕리로 이루어져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외호곡리, 내호곡리, 양촌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호곡리라 하였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남원군이 통합됨에 따라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가 되었다. 호곡리의 처음 이름은 호음실이었다고 한다. 이 마을은 견두산 자락에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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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전라북도 남원에 실상사를 세우고 실상산문을 개창한 승려. 호는 홍직(洪直), 시호는 증각(證覺). 실상화상(實相和尙), 혹은 남한조사(南韓祖師)라고도 한다. 홍척은 헌덕왕 때 당나라에 유학하여 서당(西堂) 지장(智藏)의 불법을 배워 826년(흥덕왕 1)에 귀국하였다. 그는 남악(지금의 지리산)에 머물러 수도하면서 실상사실상사(實相寺)를 세우고, 우리나라의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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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안동리와 척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흑송리라 하였으며 1995년 남원시·남원군이 통합됨에 따라 남원시 송동면 흑송리가 되었다. 안계리는 본래 이름이 안가리였으나 마을의 지형이 요천 변에 위치해 있어 기러기가 날개를 접고 백사장에 내려앉은 형국이라 하여 이름을 안계로 바꾸었다. 약 500년 전...